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86
892장. 내가 립이고 립이 나다.
“여기가…… 어디야?”
“아는 분 별장.”
“좋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야.”
LA 근교에 있는 라구나비치 별장.
안으로 들어서던 여여가 놀라워했다.
로버트 라이언 명의로 구입돼 있는 별장이었다.
가장 비싼 값을 치른 만큼 전망이 아주 끝내줬다.
탁 트인 자리에서 달빛을 온전히 받아 태평양에서 내달려오기 시작한 파도가 시원하게 한눈에 보였다.
여여는 긴장이 풀렸는지 오는 중에 차에서 잠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던 여여.
가슴 절절히 느껴지는 장립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나까지 감동 받게 했다.
이른 나이에 죽은 장립이 결코 복이 없는 게 아니었다.
– 없는 거 맞습니다! 하아…….
귀신의 한숨은 산사람들의 것과 달리 차갑고 오싹했다.
내 귓가에 대고 내뱉는 것처럼 직방으로 한이 전달됐다.
억울해?
– 네! 억울합니다! 제가 키스라도 해 봤으면……. 흑흑.
귀신이 운다.
아직 신 레벨에 오르지 못한 장립의 서러운 울음이 쏙쏙 귀에 박혔다.
최대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억울하게 죽으면 안 될 일이다.
오직 산자들만이 오감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생생한 삶을 다시 느끼고 싶어 고생인 걸 알면서도 신들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설프게 포인트를 소유한 신들은 신계에 머물러도 별재미가 없었다.
립.
그를 불렀다.
– 네…….
여여와의 롱 키스를 지켜보고 기운이 쫙 빠져버린 립이 힘없이 대답했다.
살아 있을 때 잘했어야지.
– 그러게 말입니다. 왜 그렇게밖에 못 살았을까요…….
대부분의 인간들 모두가 그렇게 후회하며 산다.
천년을 살 것처럼 욕망에 몰두해 진짜 인생을 낭비한다.
내 가족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존중하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생.
그게 진짜 인생인 걸 죽어서 알게 되는 거다.
살아 있을 때는 내가 먼저, 무조건 나부터, 내 것부터, 그렇게 사는 이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불만도 넘친다.
내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모든 요소가 사회 탓이라 매도한다.
그런 사람의 인생은 절대 한 치도 발전할 수 없다.
죽어보면 안다.
죽어서 입소하게 되는 세계에서는 결코 남 탓으로 돌리고 회피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
살아서 모든 게 불만인 인간들과는 일정 거리를 두고 떨어져 살아야 정신건강에 좋다.
그와 반대로 오늘 하루를 온전히 내게 주어진 축복이라 여기고 살아가는 이들과는 무조건 가깝게 관계하며 지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사람답게 사는 길로 인도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장립 역시 죽어서 깨닫게 된 것뿐이다.
살아 있을 때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불평불만이 많았던 순간을 그새 망각한 것일 뿐.
스스로에 대해 명상하고 미래 발전적 사고를 하는 인간에게만 내일이 의미 있는 거다.
– 저에게 다음 생이 있을까요?
응.
당연히 있다.
내가 쌓고 있는 장립 포인트라면 신뿐만 아니라 환생 포인트로도 충분했다.
아마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면 잘 먹고 잘 살게 될 거다.
– 여여는…….
욕심내지 마.
한 번 얽힌 인연이 다하고 다시 만날 수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다시 만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운명의 순환 고리가 그만큼 짧아져야 한다.
물론 간절히 원하고 쌓은 포인트가 충분하다면 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여여는 살아있는 사람.
장립과의 만남을 위해 죽게 할 수는 없었다.
– 어렵군요.
그것도 욕심이다.
집착을 버려.
– 당신이 부러울 뿐입니다.
“무슨 생각해?”
여여가 날 보고 웃는다.
사랑스럽다.
자꾸 보니 더 사랑스럽다.
처음 볼 때와 달리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모든 그늘이 사라졌다.
깊은 바다와 같이 맑고 투명한 눈빛이 매혹적이다.
스윽.
여여를 자연스럽게 품에 안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이 순간 장립이다.
“여여 생각.”
“……립. 변한 거 알아?”
알아도 모른다.
그냥 지금 난 장립으로 빙의되어 살고 있는 장립이라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웠다.
어차피 난 여여와 진한 키스를 한 사이다.
– 으아아아아!
립의 억울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귀신 놀리는 맛도 쏠쏠하다.
“싫어?”
“아니……. 난 다 좋아.”
그래, 사랑이란 이런 거다.
상대가 무엇을 하든 용서해 줄 수 있는 이해를 안고 살아가는 것.
여여의 눈빛은 깊은 포용을 품고 있어 더 따뜻했다.
“이날을 기다렸어.”
속삭이듯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나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
“행복한 추억 많이 만들자.”
“……어디 가?”
여여는 똑똑했다.
내가 말하는 의미를 바로 잡아냈다.
“내가 변했다고 했지?”
“어.”
“맞아. 난 변했어. 그래서……. 긴 시간 당신과 함께할 수 없어.”
“립…….”
당황하며 놀라는 여여.
“들어봐.”
달달한 사랑놀이를 하기에는 내가 너무 바빴다.
여여를 평생 책임져 줄 수도 없었다.
장립의 모습을 하고 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오늘이 지나면 난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장태산이다.
“다시 공부 시작해.”
“쉽지 않아. 갑자기 학교를 나와 버려서…….”
“조금 전 친한 친구에게 부탁했어. 학교에서 승낙했어.”
“정말?”
여여도 공부를 포기하고 싶어 포기한 게 아니었다.
낙담하는 목소리에 은근히 기쁨이 감지됐다.
갑작스런 사태로 인해 학업을 중단했지만 하버드에 다니던 인재였다.
“교수가 꿈이잖아.”
“…….”
여여가 입을 다물었다.
짧은 시간 온시은을 통해 하버드 대학교 학교 컴퓨터를 해킹했다.
여여의 입학 성적은 대단했다.
4년 전액 면제 장학생이었다.
학점도 대부분 A+.
그대로 학업이 진행된다면 교수 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알고도 인재를 썩힐 수는 없었다.
로버트 라이언을 통해 하버드에 연락을 넣었다.
밤이어도 상관없었다.
로버트 라이언은 미국인들에게 재물신과 같았다.
총장에게 확답을 받았다고 곧바로 연락이 왔다.
기부입학 제도가 넘쳐나는 미국 사회에서 성적이 뛰어난 학생의 재입학은 일도 아니었다.
적당한 선에서의 장학금 투척을 약속했다.
여여가 재입학하는 순간 교수들이 친절하게 그녀를 대해 줄 것이다.
이런 일들을 위해 내가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이 삶의 목표는 아니지만 중요한 수단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한 도구다.
“내 영혼을 구제해 주신 분을 도와야 해.”
“아…….”
“그분께 깊은 은혜를 넘치게 받았어. 그걸 갚기 전까지는 마음대로 살 수 없어.”
“그분이 누군데?”
“……비밀이야. 들어봤어? 천기누설이라고.”
“나쁜 사람…… 아니지?”
“물론이야. 인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재림한 신과 같은 분이야.”
내 입으로 나를 칭찬하는 거 진짜 쑥스럽다.
뻔뻔하게 얼굴에 철판 좀 깔고 밀어붙였다.
– 으으.
장립 귀신이 닭살이 돋는 듯 신음을 흘렸다.
“다행이야. 그런 분을 만나서.”
여여는 날 철석같이 믿었다.
“여여 일도 도와주셨어.”
“감사한 분이네.”
–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여여는 진심을 말할 줄 아는 여자다.
립이 어떻게 이런 고귀한 영혼을 만날 수 있었는지…….
– 저 다 듣고 있거든요!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응…….”
여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락.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반짝이는 여여.
“기숙사도 준비했어. 그리고 여기 카드.”
미리 준비해 두었던 걸 꺼냈다.
한도 빵빵한 카드다.
“이건…….”
진심으로 놀라는 여여.
나의 주도면밀함에 나도 당황스럽다.
“날 사랑한다면 받아줘.”
“립…….”
어차피 내 돈 안 나간다.
로버트 라이언이 제공하는 비밀 카드 중 하나다.
“공부 열심히 해. 그러다 보면 꽃이 피는 어느 날…… 당신 곁에 내가 있을 거야.”
끄덕.
여여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에 가만히 맺히는 맑은 이슬.
손으로 부드럽게 그녀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스윽.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볼에 가져가 대는 여여.
“다른 사랑을 해도 돼.”
“아니야. 됐어. 난 네가 없으면 사랑 같은 거 의미 없어.”
아니! 여여! 나 진짜 바빠서 그래!
시간이 약이라고 여여가 장립을 잊고 다른 남자를 만나 사랑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보이는 진심으로 보아 글렀다.
– 역시. 여여 당신은…….
뒤에서 장립이 감동했다.
나도 여여의 지고지순함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랑에 목숨을 거는 여자가 얼마나 있을까?
남자들도 다들 초식남이 되어 사랑 같은 것에 목숨을 걸지 않았다.
“여여.”
여여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렀다.
“립…….”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타다닥.
작은 불꽃이 튀는가 싶더니 뒤이어 강한 스파크가 튀었다.
스윽 다가오는 여여의 열기 오른 뜨거운 입술.
립! 눈 감아!!!
–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
에라!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알림음이 그랬다.
내가 립이고 립이 나라고.
– 이건 아니잖아요! 어떻게 당신이 내가 될 수 있냐고요!
포인트 벌 때는 내가 본인이라고 아까워하지 말라고 했던 립이 본심을 드러냈다.
립…….
미안하지만 이번 생에는 양보해라.
– 뭘 말입니까!
다 알면서 묻는 귀신.
어! 여여……. 잠깐 거기는…….
– 으아아! 아아아아아아아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