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36
943장. 구해줘.
“그런 넌 뭔데?”
“뭐라고?”
홍영기는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멋모르는 놈이 끼어들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려 들었다.
오늘을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콧대 높은 한국대 경영학과 대학원생을 작업하는 날이었다.
아유라는 투자자들이 새로운 타깃으로 잡은 중견 업체의 3세였다.
오양식품의 차기 오너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여성이기도 했다.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오양식품은 알짜였다.
구입해 놓은 강원도 땅들이 관광산업 특정지구로 선정되어 몇 배로 값이 뛰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덕도 봤다.
유휴지 부동산 값이 올라 기업 자산 평가 기준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국민들의 신뢰를 많이 회복하면서 주력인 라면 사업도 순항 중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자 당연한 수순처럼 오너 쪽에서 욕심을 드러냈다.
정확히는 눈앞에 있는 핏덩어리 아유라의 작품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사업을 이어받았다.
새로운 라면 시장의 강자 우뚝이가 들어오면서 3위로 밀렸다.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해외 영업 부문을 키웠다.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와 동남아로 조직력을 키우며 대기업처럼 확장해 갔다.
초기 투자금이 꽤 들어갔다.
최근 시세 확장으로 5000억대 매출을 올렸지만 순수익은 200억에도 미치지 못했다.
공장과 부동산 담보대출을 통해 자금을 해외 영업망에 쏟아부었다.
해외 식품 산업 중 라면은 레드 오션 사업에 들었다.
저렴함과 다양성으로 무장한 중국 라면이 동남아를 휩쓸고 있어 수익을 내기 쉽지 않았다.
농경식품이나 우뚝이처럼 대표 상품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계속 적자가 발생했다.
그런 오양에 경영 조언을 내세우며 투자를 더 하도록 펌프질했다.
아유라가 그 말을 조곤조곤 따랐다.
한국대 경영학과 대학원생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세상 무서운 줄 전혀 몰랐다.
날고뛰는 MBA 인재들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유영하는 곳이 기업사냥 투자판이었다.
하나같이 머리 좋은 수재들이 학벌로 무장해 기업들을 작업해 되팔아먹었다.
정치권은 물론 내로라하는 상류층과의 커넥션도 탄탄했다.
정도 경영을 내세우는 오양식품의 주변 인맥과는 애초 차원이 달랐다.
오양이 흔들리자 냄새를 맡고 하이에나 같은 선수들이 대거 달라붙었다.
요즘 국내 M&A 전문가 투자 기업으로 꼽히는 B&S가 주포가 됐다.
대표 신태주는 미국에서 공부한 유학파였다.
뒷배도 탄탄한 재력가와 정치인들로 빵빵했다.
그가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이 터졌다.
더러 피해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로 인해 고소 고발이 이루어졌지만 검찰에서 막혔다.
현장 상황을 잘 아는 경찰도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윗선이 그 정도이니 언론들도 알아서 침묵했다.
금감원을 비롯해 행정 기관도 타이밍을 보며 적극적으로 거들었다.
청와대 윗선이 뒤에 있다는 말까지 돌았다.
피해자들 중심으로 단체가 구성되어도 법원에서 적극적이지 않았다.
당한 쪽만 억울하고 바보 꼴이 됐다.
어제까지도 멀쩡했던 기업이 어느 순간 알맹이만 쏙 빼앗긴 채 다른 손에 팔려나갔다.
한 건만 작업을 해도 거액이 돌았다.
이번에 그 대상이 된 오양식품.
학교 후배인 아유라를 홍영기가 담당하기로 했다.
경영대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 투자 회사에 입사한 홍영기.
워낙 타이틀이 그럴싸하다 보니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한국대 경영학과라는 간판 그 자체가 투자자의 명함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이 그 대망의 결실을 얻으려는 순간이었다.
콧대가 어지간히 높은 아유라.
후배지만 같은 과 선후배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중간 정도 진행되었을 때 경영난에 봉착했고 자연스럽게 사채에 연결해줬다.
어차피 모두 다 예상했던 시나리오에 들어 있던 계획이었고 순서였다.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탄탄하던 오양식품도 수순을 밟으며 위기에 처했다.
한 번 사채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100이면 90 이상이 망해 넘어지게 돼 있다.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가 이자를 불렸다.
그 와중에도 오너 일가는 안팎으로 철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 안에서 피를 빨렸다.
담보로 잡힌 주식들도 엉망이 됐다.
막장 수순인 신주인수권부사채도 이미 발행됐다.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아무 곳에도 없는 상황.
은행권도 기업 신용등급이 떨어진 오양식품 대출을 연장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자금을 회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제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때였다.
마지막으로 콧대 높은 아유라만 꺾으면 됐다.
그런 때 느닷없이 방해꾼이 끼어들었다.
“니가 알아서 뭐해! 당장 이 손 안 놔!”
홍영기가 눈에 불을 켜며 악을 썼다.
‘이 새끼 뭐야? 뭐 하는 놈인데 이렇게 힘이 세?’
평소에도 꾸준한 운동을 통해 몸을 관리해 온 홍영기는 체격도 좋고 힘도 좋은 편에 속했다.
센터 관장한테도 밀리지 않던 그가 손목이 잡힌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변호사.”
“변호사?”
변호사라는 말에 홍영기가 살짝 당황하며 되물었다.
거짓말처럼 손은 자유로워졌다.
오늘 작업 장소로 선택한 이곳 텐프로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깡패들이 관리하는 곳이다.
강남 하나회 구광필의 죽음 이후 서울은 한동안 시끄러웠다.
숨죽이고 있던 지방 조직들이 하나둘 상경해 터를 다시 닦았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손이 지저분하고 더럽다고 알려진 세력 좋은 항구파가 강남 요지를 차지했다.
부산 터줏대감 구성파를 몰아내고 서울까지 진출한 항구파.
요즘 같은 세상에서도 칼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실력도 좋고 마무리도 깔끔했다.
그들에게 부탁하면 안 되는 일이 없을 정도다.
증거 인멸도 완벽해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더 오늘은 이곳 텐프로 파라다이스를 작업 장소로 정했다.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는 곳이다.
아유라를 위해 미리 술에 약도 살짝 타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문제는 아유라가 정신력까지 강했다는 것.
좋은 말로 해도 통 말이 먹히지 않았다.
오양식품이 개털되는 순간 아유라를 직업여성으로 팔아버리겠다고까지 협박했다.
그녀 명의의 주식이 담보로 잡혀 있는 사채업자와 통화도 시켰다.
사채업자는 한 발 더 나가 부모의 장기까지 떼어버리겠다 말했다.
일이 술술 풀려갔다.
현실을 깨닫고 벌벌 떨며 처분을 기다리던 아유라.
더러운 손길을 뻗었다.
그런데 그때 난데없이 아유라가 비명을 지르며 반항 모드로 돌아섰다.
보기 좋게 뺨을 후려갈겼다.
아유라의 입술이 터지며 피가 흐르자 왠지 가학적 쾌감까지 뒤따랐다.
잠깐 환희에 차 방심하는 사이 아유라가 급소를 가격했다.
그 틈에 문을 열고 뛰쳐나간 아유라.
거기에 갑자기 끼어든 웬 놈이 초를 뿌리고 있는 상황.
“자, 장태산?”
한쪽에 구겨져 떨고 있던 아유라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장태산을 알아봤다.
“줄리엣. 많이 망가졌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인사를 나눴던 줄리엣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장태산.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아유라의 피 묻은 입가를 닦아줬다.
그리고.
“도와줄까?”
“!!!”
아유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간힘을 쓰며 마지막 힘을 냈다.
기회였다.
과거 온시은이라는 여자를 클럽 K에서 구해 준 일이 있는 장태산이 자신 앞에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간부로 나를 변호사로 선임할 거지?”
장태산이 아유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장태산! 널 변호사로 선임할게! 제발…… 구해줘!”
***
– 형님! 저 자식이 약 탔어요!
귀신이 증거가 될 만한 상황을 알아서 꼰질렀다.
아유라의 상태가 딱 봐도 안 좋았다.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지만 몸이 휘청이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아예 눈동자가 풀리기 직전이다.
만약 조금만 시간이 지체됐었다면 큰 사고가 났을 게 빤했다.
– 그리고 싫다는데 막 입을 맞추고…….
귀신이 도움 될 만한 일을 했다.
내가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상황을 줄줄 설명했다.
그런데…… 장립아, 그 방에는 왜 갔어?
– 유일하게 자연 미인이잖아요. 그리고 뭔가 액션도 신선하고…….
변태 귀신으로 임명해도 손색이 없을 놈!
귀신과의 통신을 멈추고 바짝 놀라 있는 놈의 낯짝을 바라봤다.
“들었습니까? 방금 구두로 변호사로 선임된 장태산입니다.”
정중함으로 포장하고 제대로 싸가지로 신분을 밝혔다.
“닥쳐! 얼빠진 새끼가 어디서 구라질이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놈이 나의 신분을 불신한다.
“당연히 모르죠. 알아야 합니까? 오늘 처음 보는데. 당신은 나를 압니까?”
입가에 웃음기를 띠고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놈의 표정이 아주 가관이다.
“너 상황 파악 안 돼? 지금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른 줄 알아!!!”
남자 놈이 인상을 구기며 제법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그건 도리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사람도 많은 강남 한복판 유흥주점에서 상대 여자의 술에 약을 탄 미친놈.
자신이 한 일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놈의 정신 상태가 더 궁금했다.
– 형님, 평소처럼 한 대 패고 시작하시죠.
내가 깡패야? 뭘 패!
귀신의 시크한 제안을 듣다보니 그동안 내가 교육 잘못 시킨 것 같다.
이곳은 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우아하게 법대로…….
“뭡니까?”
그때 새로운 얼굴의 남자들이 등장했다.
숫자는 셋.
날렵한 몸매에 검고 두꺼운 안경테로 독사 같은 눈빛을 은근히 감춘 놈이 제일 앞에 섰다.
그 뒤로 블랙슈트로 몸을 가리고 험상궂은 인상을 한 떡대 두 명이 가드를 섰다.
“유 상무. 이 새끼가 지금 영업 방해하고 있어. 당장 처리해!”
“그래요?”
놈의 말에 유 상무인 듯한 작자가 날 노려봤다.
안경 너머로 빛나는 독사의 눈동자.
서울 말씨를 사용했지만 강한 엑센트가 독특했다.
“112에 신고해주시죠. 지금 제 의뢰인이 이 남자가 탄 정체 모를 약물을 마셨고 폭행까지 당했습니다. 찢어진 옷자락 보이시죠? 이건 형법 제301조 강간 및 상해 치상죄가 성립될 사안입니다.”
담담하게 법조문을 읊조렸다.
“뭐, 뭐라고?”
놈이 그제야 현실감이 드는지 말을 더듬었다.
유 상무라는 자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강간 및 상해 치상죄는 무기 및 5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는 중범죄에 속했다.
걸려들면 실형을 피할 길이 거의 없었다.
“짭새를 부르라고……. 여기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반말로 다시 묻는 깡패 유 상무.
경찰을 부르라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변호삽니다. 제가 할까요?”
유 상무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며 반문했다.
“변호사? 크크크. 어이 꼬맹이. 지금 룸에 들어가 계신 분들이 누군 줄이나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 형님! 제가 들어보니까. 부장검사라는 사람도 있고 판사, 기자, 의원님들이라는 분들도 있고 아주 많던데요.
헐!
그러고 보니 복도에서 바라본 통로만 해도 수 개의 문이 보였다.
방음이 워낙 철저해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오지는 않지만 룸 안쪽 상황은 보나 마나다.
대한민국 상류층 남자들의 타락과 유흥을 위한 놀이터.
같은 남자로서 씁쓸함이 밀려왔다.
룸을 관리하는 깡패들이 도리어 피해자와 변호사를 겁박하는 상황.
“손님, 이제 좀 상황을 알아들었습니까? 용기 있으면 한 번 불러보시던가요.”
유 상무의 표정이 한층 여유 만만해졌다.
그러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죠.”
띠띠딕.
112를 눌렀다.
– 네. 112입니다. 무슨 일인가요?
침착한 여성 경찰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남역 사거리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룸에서 강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빠른 출동 바랍니다.”
– 네! 알겠습니다. 바로 출동 지령 내리겠습니다.
강간 사건이라는 말에 경찰은 더 묻지 않았다.
“이 새끼 꼴통이네. 얘들아, 조용히 보내드려라.”
“넵! 형님!”
뒤에 가드로 서 있던 떡대 두 명이 유 상무의 명령에 따라 앞으로 나섰다.
“뭡니까?”
“보면 몰라. 넌 지금 클럽 영업을 방해한 범죄자가 되는 거야. 지금이라도 저 여성분을 우리 고객님께 넘기고 조용히 꺼져주면 없던 일로 해줄게. 하지만…….”
우두둑.
손가락 깍지를 끼며 유유히 다가오는 두 명의 떡대.
“내가 책임질 테니까! 밟아 버려!”
아유라를 폭행했던 놈이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호기롭게 외쳤다.
“태산아…….”
내 등 뒤에서 발발 떠는 아유라.
– 형님! 마법 쓰세요 마법.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죠. 흐흐흐.
나의 실력을 알고 있는 신이 난 귀신이 마법사용을 권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 필요한 건 마법이 아니라 주먹.
폭력으로 일어선 자는 폭력으로 무너져야 그나마 현실을 깨닫는다.
우선 입가에 씨익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정당방위인 거 아시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