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35
942장. 넌 또 뭐야!
“손대균 장로가 장태산을?”
– 그렇습니다. 지금 접촉 중입니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 삼우로펌의 조윤태 이사, 장태산과 동석했습니다.
“조윤태도? 왜?”
– 룸이라 더 자세한 정보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최근 발생한 장태산 가족과 연루된 사건이 의심됩니다.
보고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연루된 사건?”
– 장태산의 여동생 장주희가 학교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습니다. 그 사건 처리를 위해 만난 것 같습니다.
“그래?”
– 장태산이 가족 일에는 끔찍합니다.
“정확히 무슨 일인데?”
– 한국대 의대에 다니는 장주희가…… 왕따를 당했습니다.
“왕따라…….”
전화로 보고받던 남자는, 무려 대학생이나 되는 성년의 왕따 이야기에 대해 곱씹었다.
어린 시절 그는 왕따보다 못한 천대를 받으며 살았다.
머슴집 자식으로 태어나 짐승 취급을 당했다.
세상이 변했음에도 배운 게 없어 주인집 종노릇을 하며 살았던 부모.
그 주인집 자식들은 남자를 장난감 가지고 놀 듯했다.
뼈가 부러지도록 패는 일은 일상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이 싫었다.
눈에 띄는 모두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마음을 늘 안고 살았다.
그나마 사람 대우해주던 유일한 이가 주인집 딸이었다.
성사될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지만 속으로 그녀를 좋아했다.
나이가 비슷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보인 관심은 값싼 연민이었을지 몰라도 그는 한 가닥 진심을 품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가 주인집 딸을 마음에 두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당연히 주인은 대노했다.
머슴놈 주제에 감히 주인댁 아씨를 노렸다고 분개했다.
개 패듯 얻어맞고 멍석말이 당해 하천에 던져졌다.
좁은 동네를 넘어 면을 통틀어 가장 잘나가던 유지였던 주인집.
그대로 저승으로 가는 줄만 알았다.
어찌 목숨은 건졌지만 세상을 원망하며 사는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시점에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건넨 전대 원장을 만났다.
무슨 인연의 장난인지 모르지만 원장의 모든 걸 물려받았다.
그때부터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렸고 도전하는 모든 시험을 통과했다.
회는 물론이고 원장이 굳건히 다져놓은 권력이 모두 승계됐다.
뿌리가 깊어지고 힘이 생긴 후 복수부터 감행했다.
주인집의 기둥뿌리 하나 남기지 않고 뽑아내 박살을 내 버렸다.
생에 허락될 것 같지 않았던 권력을 이용해 간첩죄를 뒤집어씌워 주인집 내외를 구속했다.
각종 빌미를 다 걸어 소송하고 착취를 빙자해 재산을 모두 빼앗았다.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식들과 손자들까지 사회적 불구로 만들어 거지 소굴로 몰아넣었다.
거친 세상에 내던져진 그들은 버텨내지 못했다.
4촌 이내 혈족들까지 털어내 모두 다 거지꼴로 만들어 버렸다.
다시는 과거의 영화를 누렸던 집안을 꿈꿀 수 없게 철저히 망가트렸다.
잠시 잠깐 마음을 두었던 주인집 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기지촌으로 팔려가 여성으로서의 고귀한 삶을 뒤로하고 가장 밑바닥 삶을 살았다.
이 모든 복수가 독재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다.
시대는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는 인간 차별.
‘후후후.’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 웃었다.
장태산의 허점을 발견하는 족족 차곡차곡 쟁여두고 있었다.
“그런데 왜 손대균이 나섰지?”
– 신태주 딸이 왕따 행각의 주도자입니다.
“신태주?”
회에서 관리하는 투자회사 대표였다.
비자금을 불리거나 권력자들에게 떡밥을 뿌릴 때 신태주가 나섰다.
나름 중요한 자리를 책임지고 있는 인물.
손대균의 리앤장 로펌이 그를 관리하고 있었다.
– 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어.”
한참 전에 이미 되도록 장태산과 부딪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살다보니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태산도 일송회와 애써 부딪치지 않으려 했지만 이런 가족 문제라면 입장이 다를 수 있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놔둬. 손 장로 능력을 볼 때가 왔어.”
장태산에 대해 적대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손대균을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 알겠습니다.
“계속 지켜보고…….”
똑똑.
그때 들려오는 노크 소리.
“아버지. 저 들어가도 됩니까?”
뚝.
남자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래 들어오너라.”
방금 전까지 차갑고 냉정하게 보이던 남자 얼굴에 화사한 빛이 감돌았다.
끼릭.
낡은 문이 열렸다.
“이 늦은 시간에 웬일이더냐?”
목소리 또한 한없이 온화해졌다.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늦었습니다. 궁금한 게 많더라고요.”
“피곤하지 않더냐? 아직 시차 적응도 덜된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아이들이 주는 에너지가 좋습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젊은 청년이 안으로 들어서며 밝게 웃었다.
“그럼 이제 방에 들어가 쉬지 않고 무슨 일이더냐?”
남자가 연신 웃는 얼굴로 물었다.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누구를 말이냐?”
“여기 이 사진 속 제 정혼자 말입니다.”
청년의 손에 들려 있는 사진 속 미모의 여자.
“기다리거라. 곧…… 좋은 소식이 올 거다.”
***
갑자기 왜?
손유리는 나와 손대균에게 있어 아픈 손가락이다.
대학생 시절 만나 마음을 나눴던 그녀.
비 오는 날의 마지막 추억은 지울 수 없을 만큼 진하고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눈앞에 있는 손대균 때문에 헤어졌다.
뭔가 감춰진 이야기가 있을 거란 건 짐작하지만 애써 묻지 않았다.
손유리와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
썸을 타다 어설프게 정리가 돼 버린 관계.
또 손유리 집안과 악연으로 얽혀 있기도 했다.
과거였다면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을 정도의 사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정리해 버릴 수 있는 인연도 아니었다.
– 유리요? 그분은 또 누굽니까?
침묵에 잠겨 있던 장립이 치고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질문이 당황스럽습니다.”
손유리는 프랑스에 유학 중이다.
이 자리와 전혀 상관없음에도 나에게 묻는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
술을 들이켠 손대균이 날 조용히 바라봤다.
눈빛에 드러나 보이는 복잡한 감정.
과거 한때처럼 같이 마주보고 웃을 수 없었다.
“너에게 유리는 어떤 존재냐?”
또다시 이어지는 질문.
“…….”
이번에는 내가 말이 막혔다.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 유리라는 분 예뻐요? 저 선배라는 분 딸이에요? 와! 우리 형님 진짜 마당발이시네.
귀신아, 나 지금 복잡하다.
입 다물고 있지 않으면……. 진짜 보낸다.
– 넵…….
“지금 이 자리에서 대답을 드려야 합니까?”
“최소한 그 대답은 듣고 싶다.”
“둘의 문제입니다.”
“아직도 남녀 사이의 일이 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바보는 아니라 믿는다.”
왠지 할 말이 없었다.
“유리와 널 갈라놓은 건 나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고.”
손대균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안타까워서. 유리와 너 둘 다.”
“???”
“네 덕분에 깨달은 게 많았다.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고나 할까.”
술이 들어가서인지 진심이 섞여 나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는 이질적이었다. 적응해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지. 모든 걸 부정하고 새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껏 누려왔던 부를 비롯해 권력을 내려놓을 자신이 없었어. 솔직히 말해 맨몸이 되는 순간 나에게 쏟아질 돌팔매가 두려웠다.”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손대균의 독백은 언제 들어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 쯧쯧. 죽어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귀신이 인생 선배라도 되는 양 혀를 찼다.
웃기지도 않는다.
손대균만큼 반평생을 넘어 살아본 자와 이십 대에 삶을 마무리 한 자의 삶의 무게는 무척 달랐다.
인고의 세월을 버틴다는 것 자체가 인생 선배 대접을 받을 만했다.
그게 노욕에 가득 찬 자거나 평범한 촌부일지라도 운명이 던지는 시험은 가볍지 않다.
귀신아!
– 넵! 형님!
좋은 말로 할 때!!!
귀신이 곧바로 꼬리를 말고 내뺐다.
“안타까워할 필요 없습니다. 그게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는 법이죠.”
냉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꾸 엇갈리는 인연이었다.
그대로 흘러가도록 놔두는 수밖에 없었다.
괜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인연을 붙잡으려 역류해 가다 또 다른 업풍에 휩싸일 수 있었다.
“유리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도 상관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시집?
생각지도 못한 문제다.
유리 선배는 아직 서른도 안 됐다.
“무슨 뜻입니까?”
“유리에게는 이미 어릴 때부터 정해져 있는 정혼자가 있었다. 그가 유리를 원한다.”
“……유리 선배도 그 사실을 압니까?”
“몰라.”
“그게 가능한 말입니까? 얼굴도 모르는 정혼자에게 시집을 보낸다니……. 전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생각처럼 상식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시집을 보낸다는 말은 충격이다.
“일송회와 관련 있습니까?”
“……대답하지 않겠다.”
손대균이 이런 식으로 말할 정도라면 고위급 인사의 자손임이 확실했다.
지끈 머리가 아파 왔다.
유리 선배가 거부한다고 해서 거부될 상대들이 아니라는 의미다.
일송회는 대한민국을 암중으로 지배하고 있는 거대 핵심 권력이다.
아무리 리앤장의 주인이라 해도 요구를 거부했다가는 다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손대균의 고민이 피부에 와닿았다.
딸을 그 자리에 보내기 싫은 아버지의 마음이 엿보였다.
그래서 나에게 떠넘기듯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제가 알아서 하면 되겠습니까?”
“자신 있어? 만약……. 일이 잘못되면 진짜 너를 용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손대균의 억지가 담긴 경고.
그만큼 딸을 사랑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폐인으로 만들고 아들을 바보로 만들어 놓은 나에게 기회 같은 책임을 지울 정도로 말이다.
“기한은 얼마나 있습니까?”
“넉넉하게 잡아 한 달.”
“알겠습니다. 그 안에 답을 드리겠습니다.”
“……현명한 답을 기다리마.”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없다.”
“신태주 방어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좋은 승부 부탁드립니다. 그럼.”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곧장 룸에서 나왔다.
또로록.
술이 잔에 채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대균의 복잡한 심정이 혼자 남은 룸에 진득하게 깔렸다.
쏠리는 신경을 거두어 들였다.
손대균 스스로 살아내야 할 인생이고 운명이었으며 업이었다.
저벅저벅.
화려한 복도를 지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형님! 사건입니다! 사건요!
그때 귀신이 호들갑을 떨며 나타났다.
사건? 무슨?
– 지금 바로 앞 룸에서…….
벌컥.
귀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쪽 룸 문이 거칠게 열렸다.
타다닥.
급하게 밖으로 뛰어나오는 여인.
터억!
나와 세게 부딪쳤다.
그 순간.
“사, 살려주세요.”
입가에 피를 흘리며 고개를 든 여인이 다짜고짜 살려달라고 말했다.
“!!!”
나도 아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년이! 어딜 도망가!”
열린 룸에서 뒤따라 튀어나온 남자가 여자의 머리칼을 거칠게 휘어잡았다.
“아악!”
고개가 뒤로 꺾이며 비명을 지르는 여자.
턱!
거의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남자 손목을 강하게 잡았다.
“넌 또 뭐야!!!”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