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42
949장. 긴급수술(3).
“!!!”
소란스럽던 응급실이 일순간 당혹감에 휩싸이며 침묵에 빠져들었다.
말 그대로 집단 멘붕 상태.
다발성 장기 손상으로 내원한 아이가 느닷없이 황승재 교수의 아들임을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아이 엄마의 입에서 애절한 곡이 터져 나왔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두 사람은 익히 아는 사이인 게 확실했다.
반쯤 넋이 나간 듯한 여성의 말에선 한 치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열하는 여성을 당황한 채 바라보는 황승재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피를 흥건하게 쏟은 채 침상에 축 처져 늘어져 있는 남자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의 말을 듣고 보니 자신과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한 아이가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황승재는 비몽사몽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여인이 떠난 지 어언 10년이 다 되어 갔다.
하루아침에 매정하게 연락을 끊고 해외로 떠나버렸던 그녀였다.
그런 여인이 눈앞의 아이를 제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다 죽어가는 위급한 상태에 있는 아이를.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어쩌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기도 했다.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이 직접 자신 가족의 생사를 지켜봐야 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의사라는 운명의 소용돌이가 만들어낸 파편 같은 것이었다.
오늘 황승재는 그 소용돌이가 만들어낸 파편을 제대로 얻어맞은 셈이다.
“승재 씨……. 제발! 우리 승민이…… 구해줘! 흐으으윽.”
정민희는 어제 만났던 사람 대하듯 황승재를 붙들며 서럽게 울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한 시절을 다 바쳐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의 아이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지금은 보란 듯이 의사가 된 황승재.
그와 연애 당시 기반을 잡지 못한 황승재에 대해서 집안의 반대가 극심했다.
한국대 의대생이 부족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집안에서는 경제인 집안과 연이 닿기를 바랐다.
정치에 발을 담그고 있던 아버지의 뜻이 확고했다.
계속되는 정치 생활을 위해서 선거 자금은 물론 여러 라인으로 도움이 절실했다.
대학교에 입학하는 동시에 내로라하는 집안으로부터 연이어 선자리가 들어왔다.
미모와 함께 한국대 미대생이라는 타이틀이 중매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에게는 상류층에 줄을 댈 수 있는 최고의 신부감으로 꼽혔던 탓이다.
누가 봐도 황승재 역시 괜찮은 신랑감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아버지의 눈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장 거금의 자금과 정치계에 영향력을 보일 수 있는 재력가가 필요했던 정치인 아버지.
정민희는 그런 아버지의 눈을 피해 몰래 연애를 지속했다.
황승재는 어른들에게 너스레를 떨거나 살갑게 구는 성격은 못 됐다.
하지만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죽어가는 이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최고의 흉부외과 의사.
그런 의사가 되리라 포부를 가진 황승재의 무한한 열정과 노력에 정민희는 매료됐다.
하지만 황승재의 길은 순탄치 않았고 그런 만큼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동시에 아버지의 압박도 심해졌다.
그 시기는 황승재에게 가장 중요한 때였다.
안팎으로 가해지는 압박과 괴로움을 견디며 묵묵히 황승재가 어서 합격하기를 기도했다.
더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시키는 대로 선만 보고 잠적하려 계획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은 잔인했다.
덜컥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것.
어디에도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알게 되는 순간 당장 낙태를 종용할 게 뻔했다.
황승재도 사실을 알게 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아버지부터 찾아갈 게 확실했다.
혼자 몇날 며칠을 고심하던 정민희는 유학을 핑계로 미국으로 도망을 쳤다.
황승재에게는 매정하게 결별을 선언한 뒤 친구 집으로 도피했다.
부모님께도 주소를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미국에서 출산을 하고 아들을 시민권자로 만들었다.
아버지가 나중에 알게 되면 그 성격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해 놓은 것이다.
타국의 삶은 외로웠지만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가진 게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에서 삶은 버틸 만했다.
아빠인 황승재의 가운데 이름 승과 엄마의 민을 따 아들의 이름을 승민이라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 못하게 아이가 아빠의 존재를 물었다.
왜 자신은 다른 아이들처럼 아빠가 없냐고 처음으로 물었던 아이.
당시 정민희는 어린 아이를 끌어안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때마침 그즈음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언제까지나 굳건할 것 같던 아빠가 중앙 정치권에서 밀려나며 화병을 얻었고 급기야 돌아가셨다.
회오리처럼 불어대던 풍파에 엄마까지 병을 얻었고 딸을 찾는다는 소식에 귀국을 했다.
그때가 벌써 1년 전.
한국대 병원 가까운 곳에 집을 구했다.
쇠약해진 엄마를 모시고 나름 아들과 행복하게 지냈다.
가끔 황승재의 안부가 궁금하거나 많이 보고 싶은 날이면 출근하는 그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과거와 다름없이 여전히 규칙적인 삶의 패턴 속에서 집과 병원만 주구장창 오가는 황승재.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그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홀연히 떠나버린 자신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는 걸 정민희는 잘 알았다.
몇 번이나 찾아가 사실을 다 말하고 싶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기다림 끝에 기회가 목전에 찾아왔다.
내일이면 아이의 생일이었다.
그날을 기념해 황승재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 하루를 앞두고 또 다시 운명의 장난처럼 사고가 터졌다.
아파트 안에서 아이와 산책을 했다.
내일이면 아빠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한없이 들떠 있던 아이.
깡충깡충 뛰면서 즐거워하던 아이가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토끼처럼 뛰던 아이를 향해 자가용 한 대가 돌진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였다.
대형 고급 세단을 운전하던 중년 여성의 운전 미숙이 불러온 사고였다.
도로 라인을 잘못 잡고 인도를 침범해 돌진한 사고.
게다가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문자까지 보내고 있었다.
미처 아이를 발견하지 못한 데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 차량과 충돌한 아이는 몇 미터를 날아가 화단에 처박혔다.
모든 게 정말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너무 놀라 비명 한마디도 토해지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해진 채 아이가 떨어진 곳으로 다가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팔짝팔짝 뛰어다닐 만큼 건강했던 아이.
작은 꽃잎 같은 입에서 붉은 피가 연신 쏟아지고 있었다.
사지는 힘없이 뒤틀려 있었고 검은 별 같던 작고 예쁜 두 눈은 뜬 채였다.
그제서야 세단에서 내린 여자는 못 볼 걸 봤다는 듯 인상을 썼다.
경비원이 사고 현장을 보고 119를 불렀다.
가해 차량를 운전한 중년 여성의 입에서는 ‘재수 없는 날’이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땅이 꺼지고 눈앞이 샛노랗게 변했던 정민희.
눈을 떴을 때는 한국대 병원 응급실에 와 있었다.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찾았다.
의사들 여러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아들 승민이를 살리려 최선을 다했다.
이 모든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마치 새드 앤딩을 유도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일부러 연출하는 장면 같았다.
그때 거짓말처럼 모습을 보인 황승재.
정민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어떤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소리쳤다.
“승재 씨 의사잖아……. 우리 아이…… 반드시 살려내……. 으아아아앙.”
정민희가 응급실 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내 아이…….”
황승재는 반쯤 넋이 나간 채 축 쳐진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었다.
삐이이이이이잇.
그 순간 날카로운 경고음이 무겁게 가라앉은 응급실 공기를 찢으며 울렸다.
심장이 멈춘 것이다.
“뭐 해! 제세동기!”
“심장 쪽 상황을 모릅니다!”
“당장 죽어가는데 그게 대수야!”
“어, 얼마를 넣습니까!”
“200줄!”
노준수 과장과 응급의들이 홀린 듯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제는 동료 의사의 아이를 살려야 했다.
어린 아들을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게 할 수는 없었다.
황승재가 어떻게 의사 생활을 해 왔고 삶을 살아왔는지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흉부외과를 찾는 환자들을 위해 밤낮 없이 공부만 해 오던 후배 황승재.
그의 아들이라고 밝혀진 아이를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신없이 움직이는 의사들도 모르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조치가 전혀 없었다.
그저 하늘의 신께서 황승재를 가엽게 여겨 기적을 보여주시기만을 바랐다.
***
“안 뜁니다!”
“220!”
“안 됩니다! 그러다 아이 심장이 터집니다!”
“넣으라면 넣어!”
“…….”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바이탈 신호가 끊겨버린 아이.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는 상태였다.
이제는 천륜실마저 옅어질 대로 옅어져 언제 끊어질지 모를 상황.
– 안타깝지만 다 끝났네요.
– 그게 지금 안타까워하는 목소리 맞아?
– 직업병이야. 세상에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거의 없어. 저 아이는 엄마와 아빠 앞에서 죽기라도 하잖아. 얼마 전에는 피씨방 쓰레기통에서 갓 태어난 아이 영혼도 수거했어.
– 진짜…… 너무들 하네.
– 그게 하늘이 정한 인과의 법칙이야. 너무 촘촘해서 결코 누구도 피할 수 없어. 그래서 사는 동안 무조건 선하게 살아야 해.
– 넌 선하게 살았어?
– 글쎄…….
– 형님. 오늘은 퇴근 후에 소주나 한잔하죠. 씁쓸하네요. 인생이 참 뭐 같은 경우가 왜 이렇게 많은지.
장립이 먹먹한 눈앞의 상황에 한탄을 터트렸다.
저벅저벅.
영혼 없는 좀비처럼 넋이 나간 황승재 교수가 숨이 멎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지금 아이의 상태는 화타가 와도 살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황승재 역시 의사라 이 상황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황 교수 비켜! 뭐 하는 거야!”
노준수가 신경질적으로 황승재를 밀치며 외쳤다.
“크으으으…… 윽.”
억눌렀던 슬픔이 그 자리에서 한꺼번에 터져버린 황승재.
마치 초원의 야생 짐승이 내지르는 고통의 울부짖음 같았다.
투두둑 늘어진 아이의 팔뚝 위로 떨어지는 눈물.
그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힘없이 침대 밖으로 축 쳐져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직 살아 있는 듯 온기가 남아 있는 아이의 작은 손.
가늘고 여린 그 손을 떨리는 손으로 잡는 황승재.
참으로 인생 아이러니했다.
오늘 처음 본 아들이 눈앞에서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미안해……. 미안하다……. 내…… 아들…….”
자포자기해 버린 듯한 황승재 교수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응급실에 서 있는 모두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때 난 보았다.
영혼의 모습을 한 아이가 아빠인 황승재의 손을 꼬옥 움켜잡는 모습.
죽어서 찾게 되었지만,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제 아빠였다.
울컥 하는 마음과 함께 심장에 통증이 느껴졌다.
– 귀인의 희생으로 저 의사는 앞으로 세상을 위해 훌륭한 외과 의사가 될 겁니다. 아! 오묘한 하늘의 이치여! 당신을 찬탄합니다!
– 이치? 젖소 치즈 찢어 먹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 뭐라고?
– 네 눈에는 저게 이치냐? 차라리 같이 죽이는 게 낫지! 부모 앞에서 자식이 죽어 가면 그 부모 정신이 온전하겠어?
– 그러니까 성인이 나오는 거야. 처절한 세상의 고통을 통해 인생무상의 이치를 깨달아 묵묵한 수도자 같은 길을 가는 거야.
– 됐어! 난 이 죽음 반댈세!
– 그래봐야 끝났어. 저기 봐. 아이 영혼이 이제 분리되고 있어. 천륜실도 거의 다 지워졌어. 삼신 할매 보호기간도 끝나서 나서줄 신도 없고.
죽음 속에서도 자기 할 일을 빈틈없이 하는 오 차사.
그녀의 말대로 인생은 무상하다는 선인들의 가르침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좋아하는 이와 이별해야 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수반했다.
나 또한 죽어본 몸이라 그 기분을 잘 안다.
하지만 내 생각에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이제 처음 본 자식의 죽음.
그 생명까지 바닥에 깔고 세상이 알아주는 성인이 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건 자기학대의 다른 이름인 미래 버전이다.
내가 지켜본 황승재 교수는 아이의 죽음이 따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좋은 의사가 될 재목이었다.
이 일이 그에게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까 걱정됐다.
“죽음? 꺼져…….”
조용히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말.
– 지, 진선님. 설마…… 개입하실 건 아니시죠?
– 형님!
스윽 손을 내밀었다.
아무도 날 눈여겨볼 수 없는 상황.
뜻을 받아 꿈틀거리는 마나들을 모았다.
– 진선님, 그래봐야 할 일이 없으세요. 카르마 포인트는 넘치시지만 진선님은 인간의 탈을 쓰고 계십니다. 저 아이를 구원하는 일은 절대 불가능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개입하는 순간 대왕님의 노여움이 감당키 어려울 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명 회복!”
억제할 수 없는 의지로 나직하게 외쳐지는 주문.
파앗!
투명한 빛이 터졌다.
다들 마법을 모르기에 나만 보였다.
내가 아는 최상의 마법 주문이었다.
육신의 온기가 남아있다면 다시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을 수 있다.
완벽한 치료는 가능하지 않다 해도 최소한 잠시 동안의 생명 보장이 가능했다.
띠! 띠! 띠!
그때 응급실 내 침중한 공기를 깨뜨리며 울리는 바이탈 신호.
“어! 시, 심장이 다시 뜁니다!”
“바이탈 신호가 잡혔습니다!”
“뭐라고?”
“세상에……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모두들 경악에 빠졌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또각또각.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황승재 교수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교수님 뭐 하세요! 긴급수술 들어가야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