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946
954장. 좋은 파트너.
– 괜찮겠습니까?
– 뭐가 말인가?
– 방법을 제안한 순찰차사님에게도 업풍이 불 게 확실합니다. 만약 저 아이와 진선님이 악행의 길로 접어든다면 그 여파가…….
한국대 병원의 상공.
두 차사가 마주 보고 선 채 대화를 나눴다.
오 차사의 얼굴은 더없이 심각했다.
모든 비밀을 다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눈앞의 강 차사는 전생에 오 차사의 마지막 생의 영혼을 거둬갔다.
황천을 건널 때도 큰 도움을 줬다.
무슨 연유로 이렇게 친절하냐 묻자 빙그레 웃으며 전생의 인연이 있다고 말해왔다.
나중에 차사직을 맡고 난 뒤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놀랍게도 눈앞의 리차드 강 차사는 고려의 대장군이었고 오 차사는 거란족의 대장군이었던 시절의 인연이 있었다.
오 차사의 당시 이름은 소배압.
귀주대첩으로 수십만 정병을 잃고 도망치던 소배압은 거란 성종이 낯가죽을 벗겨 버리겠다고 날뛸 정도로 참패를 당했다.
소배압이 도망칠 때 강감찬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무기와 갑옷까지 벗어 던진 채였다.
그런 전생의 인연을 거듭하며 돌고 돌아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귀향처에서 불교에 귀의했던 소배압은 축생계를 돌다가 자신과 인연이 깊었던 조선에서 마지막 기생으로 환생했다.
뭇 사내들에게 온갖 희롱을 당하며 결코 평범하게 살지 못했던 소배압.
피의 대가로 일생 웃음을 팔았다.
창을 들었던 손으로 가야금을 뜯었다.
적을 죽이라 명하던 입으로 사내들을 위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 뒤 차사가 되어서도 전생을 거듭하며 훈습한 괄괄한 성정을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아 있는 전생 업보로 큰 벌을 받았다.
그때도 리차드 강 차사가 아니었다면 지금 일을 맡고 있는 차사직도 얻지 못했다.
왜 또 자신을 구해주는지 물었을 때 더 오래된 전생에 서로가 아주 가깝고도 먼 인연으로 얽혀 있다고만 했다.
오 차사라고 모든 전생을 기억할 수는 없었다.
그저 위기의 순간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건넨 리차드 강 차사가 고마울 뿐이었다.
– 오 차사. 자네도 버리지 못한 업의 길이네. 그런데 나라고 다르겠나?
– 차사님…….
– 죽어서도 인과의 업은 돌아간다네. 내 장 신선 덕분에 오늘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네. 그런데 닥치지 않은 미래의 업이 두려워 은혜를 외면해야 하겠나?
이치에 맞는 리차드 강 차사의 말에 오 차사는 입을 다물었다.
진선은 특이한 인간이긴 했다.
살아 있지만 신선인 동시에 죽은 자이기도 했다.
저승에도 명부가 없었다.
그 말인즉 상위급 신선이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또 버젓이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정도 카르마 포인트를 가진 다른 신들이었다면 신선계에서 온갖 즐거움을 누리며 살 것이다.
그러나 진선은 어딘가 달랐다.
굳이 추악한 인간 세상에서 온갖 것들과 부대끼며 의연하게 자기만의 길을 갔다.
– 정말 장 신선을 질투했나?
– ……그런 것 같습니다.
– 왜?
– 차사가 된 이후 그 어떤 세상 것도 부질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와 명예, 하다못해 건강까지도 다섯 가지 감각에 의해 생겨났다 사라지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장 진선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그 감정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심한 특혜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도 살아생전 저런 특혜를 받은 이는 없었을 것입니다.
오 차사가 가감 없이 자신의 감정을 줄줄 솔직하게 내뱉었다.
차사가 된 이후 무뎌졌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장태산을 만난 뒤부터 자꾸 일어났다.
만남은 짧았지만 기상천외한 능력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승에서 잘 먹히는 잘생긴 얼굴에 주변에는 미녀들이 넘쳐났다.
쌓은 부도 엄청 났으며 그야말로 세상 부러울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옆에 따라다니는 죽은 잡귀도 차사보다 진선을 더 두려워했다.
모든 상황들이 오 차사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죽었다 다시 회생하는 건 성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늘이 결코 허락되지 않는 업의 법칙이다.
하지만 장태산은 그 법칙에서마저 비켜나 있는 존재였다.
– 쯧쯧. 아직도 과거의 업풍에서 벗어나지 못했군.
– 네?
– 장 신선과 자네는 전생에 나와 비슷하게 인연이 깊었네. 그때도 오 차사는 장 신선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느라 미워했네.
– 그 정도 깊은 인연입니까?
– 버리게. 그러면 얻어질 것을…….
– …….
오 차사는 입을 다물었다.
강 차사가 말하는 전생 업이 뭔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아직도 자신의 수행이 부족하다는 걸 절감할 뿐이었다.
– 사실 나도 장 신선이 부럽기는 하네. 하지만 동시에 안타깝기도 해.
– 그게 무슨 뜻입니까?
– 이생과 영혼의 세계를 동시에 걸어가는 자. 그 양어깨에 매달린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하는가?
– 그건…….
– 나도 보이지 않네. 감춰진 것들을 밝히며 살아가야 하는 저 고난의 길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네. 그러니 부러워하지 말고 기도해 주게. 장 진선이 진짜 신선이 되는 날……. 세상은 또 한 번 뒤집어질 것이야.
알 수 없는 미래를 아련한 시선으로 언급하는 리차드 강 순찰사자.
오 차사는 강 차사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불길처럼 일던 질투가 천천히 녹아내렸다.
생각해 보면 진선 주변으로 이런저런 사건이 많았다.
이번 일만 해도 자신이었다면 모른 척 팽개칠 아이의 업풍까지 껴안았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선업 행인 건 분명했다.
강 차사 말대로 고난의 길이었다.
– 가서 일하게. 죽은 자나 산 자나 모두 각자의 일이 있는 법. 그 끝을 보기 위해 우리는 억겁의 시간을 보내고 있네. 오 차사…….
– 네. 강 차사님.
– 항상 감사하게. 그리고 스스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그러다 보면 언젠간 진리가 오 차사를 자유롭게 할 것이네.
선문답이나 진배없는 강 순찰 사자의 말이었다.
오 차사는 귀속을 파고드는 강 차사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
두고두고 우리고 또 우려 깨달아야 할 화두였다.
휘리링.
세속의 거친 바람이 두 차사의 몸을 통과하며 빠르게 흩어졌다.
***
– 형님 저도 책임져 주십시오!
안 돼!
단호하게 거부했다.
내가 뭘 믿고 장립을 책임진단 말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장립은…… 대책 불가였다.
아직도 파악이 안 된 오묘한 정신세계.
죽은 상태였음에도 또렷한 답이 안 보였다.
– 왜 안 된다는 겁니까? 꼬맹이는 보자마자 품어주고 전 오랜 시간 동안 충성을 했는데……. 막말로 비정규직 같단 말입니다!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고개를 들어 장립을 빤히 봤다.
가끔 나에게 도움도 되지만 이럴 때는 철없는 애 같다.
생각해 보면 장립 입장에서 억울할 수도 있다.
장립의 몸으로 생산된 포인트는 반 땅으로 나누어 지급되고 있다.
그러니 냉정하게 말해 비정규직이 맞다.
또 아직 장립이 필요했다.
나중에 적당한 때 따로 강 차사를 불러 저승으로 보내도 늦지 않았다.
두고 봐서 말 잘 들으면 신선계로 보내줄 수도 있다.
그 내막을 눈치 채고 앙탈을 부리고 있었다.
휘적 귀를 후벼 팠다.
장립 말을 무시하겠다는 행동이다.
스르릇.
사무실 문이 열렸다.
장립의 육신으로 살고 있는 임성철 회장이 들어섰다.
유세라 상무는 퇴근하고 자리에 없었다.
경호팀에 미리 말해 놓아서 임성철 회장은 필요하면 언제나 출입이 가능했다.
“오셨습니까.”
“내가 많이 보고 싶었던 눈치군.”
“아니요. 잘 살고 계시지 않습니까. 앉으십시오.”
임성철 회장에 대한 경호는 최대한 조용히 이뤄졌다.
그는 나에게 누구보다 중요한 인재였다.
중국 쪽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는 믿을 만한 대타가 절실했다.
– 회장님! 형님이 저를 책임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장립……. 자네는 어리석군.”
임성철 회장이 소파에 앉으며 장립을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 네? 어리석어요?
“장태산 회장 성격을 아직도 몰라? 자네를 내치기로 마음먹었다면 진작 정리했을 거야. 시끄럽고 별 도움이 안 됨에도 자네와 같이 다니고 있다는 건 장립 자네를 그만큼 배려하고 있다는 증거일세.”
역시 생각하는 수준이 다른 회장님이다.
단숨에 내 성향을 꿰뚫었다.
말이 많지만 장립이 있어 심심할 틈이 없었다.
살아 있는 인간들보다 더 원초적으로 생각하고 발언하는 장립.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 시끄럽고 별 도움 안 되는…… 끙.
촌철살인에 장립이 신음을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며칠 만에 조우한 삼인방.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조심스럽게 임성철 회장에게 그간의 일을 넌지시 물었다.
“멀었어.”
임성철 회장의 짧은 한마디.
“그랬군요.”
대략 짐작한 대로인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물어볼 것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도 그 녀석도, 둘 다 멀었어.”
“회장님은 아니시죠. 멀었다는 걸 스스로 아는 순간 이미 득도한 겁니다.”
“그런가? 장 회장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겉모습은 팔팔한 청춘이지만 생각의 폭은 여전히 그룹 회장 임성철이었다.
유순함이 말투에서 삶의 경험에서 묻어난 겸손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와 함께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 뒤 본래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 회장님. 얼굴에서 깊은 고통이 느껴집니다. 저와 반반 나누시죠. 제가 의리하면 한 끝장합니다.
“고통은 나누면 반이 아니라 두 배가 되는 거야. 그걸 자네와 왜 나눠?”
피식 웃으며 임성철 회장이 대꾸했다.
이 정도 고통은 죽음을 충분히 숙지한 임성철 회장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 오정도 크게 중요치 않을 수도 있었다.
– 섭섭합니다. 그래도 같이 뜨거운 밤을 함께 보낸 전우로서……. 어? 그런데 이 향수 냄새는 뭐죠? 왜 낯선 여인의 체취가 회장님 몸에서 나는 겁니까?
개코가 된 장립이 킁킁거리며 임성철 회장에게 바짝 다가가 냄새를 맡았다.
“친구를 만났어.”
“네?”
“비 올 때 만나는 좋은 술친구.”
임성철 회장이 알 수 없는 웃음을 띠었다.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는 표정이다.
임준형 회장 때문에 이래저래 괴로웠을 게 뻔하다.
그때 만난 좋은 술친구라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 와아! 배신자네! 세상에 그 좋은 술친구와 술만 마셨어요? 아니잖아요! 전 병원에서 죽어라 형님을 괴롭히는 차사와 전투 중이었는데!
눈치가 빨라진 장립이 서운함을 팍팍 드러냈다.
그래도 꿈적하지 않는 임성철 회장.
“내가 도와줘야 할 일이 있다고?”
“네.”
“그게 뭔가?”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중국 권력층이 지금 저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여러 행보를 보여주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엘자 고자룡 회장을 만나주십시오.”
“자룡이를?”
엘자 회장을 아무렇지 않게 이름으로 부르는 임성철 회장.
“네.”
“시선 분산용인가?”
“그것도 맞지만 구체적으로 사업 이야기를 나누셔야 합니다. 중국 쪽 사업 파트너는 장립이 될 것입니다.”
“고맙네. 내가 그렇지 않아도 심심했던 참이네.”
“내일 약속 잡아 놨습니다. 회장님이 가시면 됩니다.”
“장 회장 추진력 하나는 알아줘야 해.”
“회장님만 하겠습니까.”
“내가 숙지할 내용은 어디 있나.”
“여기 있습니다.”
도도희 대표를 통해 중국 진출 사업에 대해 정리한 계획서를 건넸다.
스륵.
오정을 다스리던 회장답게 목차와 내용을 빠르게 살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표현도 부족하군.”
처음으로 구체적 청사진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계획서만 봐도 엄청난 대박에 미래가 보장되는 사업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렇습니까?”
“오정 몫은?”
임성철 회장의 눈빛이 번뜩였다.
환희에 불탄다고나 할까?
방금 전 말한 득도는 얘기는 취소해야겠다.
“윤아에게 듬뿍 떼 줬습니다.”
“그래야지. 우리가 남도 아니고.”
“…….”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양심이 쿡쿡 찔렸다.
“그런 표정 안 지어도 돼. 아직 미래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다만.”
임성철 회장이 날 지그시 바라봤다.
스윽.
그리고 내 앞으로 쑥 내미는 손.
“우리 다시없을 좋은 파트너 맞지?”
“물론입니다.”
손을 마주잡았다.
또렷하게 느껴지는 맥박.
찌릿, 뜨거운 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 저도 파트너 맞죠? 으흐흐흐.
맞잡은 손위에 덤으로 귀신의 손이 얹혀졌다.
누누이 느끼는 거지만……. 생각보다 둘 다 진짜 괜찮은 파트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