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up with luck RAW novel - Chapter 275
276화
군주급 악마는 괜히 군주라 불리는 게 아니다.
이 드넓은 지옥에서 채 100명도 되지 않는 존재.
하물며 그 위치는 핏줄이나 기타 인맥으로 내정되지 않는다.
강자 독식의 세계답게 오직 힘.
힘만이 다른 악마를 굴복시키고 군주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런 군주 중 14위라는 성적은 딱지치기로 딴 것이 아니다.
“네 놈…!”
위기의 순간, 레라지에의 주변에 전개된 마법진이 촘촘히 격벽을 형성해 언럭키를 막았다.
염화 오러와 극빙 오러.
일반 오러도 아니고 속성을 가미한 특수 오러들인데, 그걸 두 개나 다루는 언럭키의 공격이 막힌 것이다.
심지어 오러는 마법사의 천적이라고 불리는 기술 아닌가.
어지간한 공격 마법도 일단 반으로 가르고 시작하는데, 급전개한 마법진으로 이걸 막아내다니.
아티팩트의 힘도 빌렸겠지만 레라지에 본인이 실력 있는 전투 마법사라는 뜻이었다.
‘내 결계 마법의 대부분을 무시하고 들어오다니…도대체 뭐 하는 놈이지?’
다만 레라지에는 크게 놀란 상태였다.
군주이면서 전투 마법사답게 그는 자신의 주변을 온갖 결계와 방어 마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본인의 상시 발동 마법은 물론이고 인식 밖에서 오는 공격을 대비한 아티팩트들도 다수 존재했는데, 언럭키는 뚝 떨어진 것처럼 등장한 것이다.
‘사신의 수확길’ 스킬 덕분이었지만 그걸 모르는 레라지에는 간담이 서늘했다.
자신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어도 저 무시무시한 오러가 제 목을 떼어갔으리라.
‘쳇. 아쉽네.’
언럭키가 아쉬움의 혀를 찼다.
이 한 방에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은 안 했지만, 정말 좋은 기회이긴 했는데.
비슷한 기회가 이번 전투에서 두 번 올 확률은 낮았다.
아무리 사신의 수확길 스킬이 극강의 은신 스킬이라고 하지만, 이미 한 번 보여버렸다.
레라지에 같은 군주라면 언제든지 대비하고 있을 테니, 정면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건 내가 너무 불리하고.’
언럭키가 눈동자를 굴렸다.
당황한 레라지에, 그 너머에 흥미 있는 표정으로 이 쪽을 보고 있는 제파르. 그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악마까지.
적나라하게 포위당한 상황이었다.
악마들은 제 군주가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는지 웅성거리며 별 대처는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당황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금세 정신을 차린 레라지에는 반격할 것이고, 그때 되면 무조건 진다.
일단 언럭키 본인부터가 만전의 상태가 아니었다.
극빙 오러를 쓰고 있는 ‘빙혈용검’은 벨라가 선물해준 최상급 레전더리의 명검이었지만, 다른 손에 쥔 건 그냥저냥 한 유니크 검이었다.
심지어 예전에 얻고 그냥 인벤토리에 넣어둔 거라 레벨 제한도 낮았다.
그 뜻은 공격력이 낮다는 뜻이다.
원래라면 이 손에는 에픽 등급의 ‘성검’을 쥐고 있어야 했다.
그랬으면 이 두 군주를 상대로 진짜 승부를 봐 볼 수도 있었겠지.
성검에 내장된 스킬들은 아무리 불리한 상황도 반전시킬만한 것이었으니까.
“자네는 누군가?”
그때 뒤편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던 제파르가 물어왔다.
쓰고 있던 대검까지 옆에 박아넣고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엔 흥미가 가득해 보였다.
“크흐. 저 재수 없는 레라지에에게 한 방 날릴 뻔하다니. 아주 재미있잖아.”
킬킬거리며 몇 번 더 웃던 제파르가 말을 이었다.
“군주의 기세를 풍기긴 하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야. 군주가 된 지 얼마 안 됐나?”
“…….”
언럭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침묵하고 있자 제파르가 어깨를 으쓱였다.
“과묵한 친구였군. 근데 지금은 그런 과묵한 점이 불리할 거라는걸 모르겠는가? 내가 저 재수 없는 놈이랑 힘을 합쳐서 자네부터 공격하면 어쩌려고?”
“말해 뭐해. 그땐 다 죽는 거지.”
-스스스스!
언럭키가 두 자루의 검을 뻗었다.
염화 오러와 극빙 오러가 솟구친다.
때를 맞춰 언럭키의 옆으로 파티원들과 정예 소환수들이 도착했다.
벨라가 방패를 펼친 채 전위에 서고 아세린이 언럭키처럼 쌍검에 오러를 끌어올렸다.
벨키서스는 어느새 거대한 곰의 형태로 변신한 상태였고 칼리스먼은 제 얼굴이 어디 보일까 싶어 벨키서스 옆에 딱 붙어 얼굴을 가리기 바빴다.
언럭키의 옆에 선 해골 케르베로스 위의 데스 나이트들 역시 오러를 뿜어내고 있었고, 데빌 키메라 역시 언제든 달려들 듯 흉흉한 기세를 뿜어냈다.
“호오…. 자신 있을 만한 이유가 있었구먼.”
제파르가 언럭키 파티의 전력을 보고 감탄했다.
숫자는 부족하지만, 확실히 하나하나 정예라고 할 만했다.
“어디. 한 번 놀아볼까?”
제파르가 히죽히죽 웃으며 대검을 뽑아 들었다.
그를 따라 무시무시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레라지에와 정반대로 육체파 군주.
“조심하시오. 제파르는 정면으로 상대를 찢어발기며 싸우는 스타일이니.”
“그건 안 봐도 알 것 같긴 하네요.”
벨키서스가 조심스럽게 경고해주었다.
부상이 낫지 않은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부상 악화를 신경 쓰지 않고 전력으로 나설 생각이었다.
‘그나저나…기세가 정말 말도 안 되는군.’
전에 봤던 식탐 넘치던 트롤, 레그녹스를 뛰어넘는다.
그놈 역시 앞에 있으면 압도되는 기분이었지만 제파르는 그보다 더했다.
전투파 군주이다 보니 흉흉한 기세를 더욱 증폭시켜서 뿜어내는 것이겠지만, 왜 상위권 군주로 분류되는지 알겠다.
군주급 괴수는 여러 번 만나봤지만 진짜 군주를 만나는 건 지금이 처음.
‘확실히 레그녹스나 에오나루스님, 혹은 벨키서스님 이상이야.’
왜 군주가 군주로 불리는지 알겠다.
한때 바알의 오른팔이었던 벨키서스도 그걸 잘 알았기에 긴장된 눈빛이었다.
언럭키가 혹시나 해서 그에게 물었다.
“좋은 방법 없으십니까?”
“있소.”
“!?”
그냥 한 번 던져본 말인데 생각지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사실은 여기 오기 전에 에오나루스에게 연락을 보내놓았소.”
“에오나루스님…?”
“군주가 놈과 동료라고 하지 않았소?”
혈림에서 그와 만난 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지옥에 관한 벨키서스의 해박한 지식을 듣는 것이었지만, 언럭키의 얘기를 할 때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에오나루스에 대한 것이었다.
바알의 비밀 던전에서 역린을 찾아 에오나루스를 제정신 찾게 만들고, 조력자가 된 것 등.
“군주의 영토에 온다는 위험한 짓을 하면서 보험 하나 깔고 오지 않는 건 바보짓이지. 그에게 연락을 보내놓았소. 그걸 봤으면 지금쯤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오.”
“오…!”
언럭키가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는 멍청이와는 격이 다른 현명함이 보였다.
칼리스먼은 지금도 레라지에에게 제 얼굴이 보여질까, 고개를 푹 숙이고 숨기는데 급급해하고 있었다.
“과묵한 줄 알았는데 무슨 얘기를 그렇게 쫑알쫑알 나누시나? 이름 모를 군주와…벨키서스.”
“오랜만이오. 제파르.”
“하핫. 대악마라 불리던 그 힘이 한참은 약해졌군. 그런 주제와 나와 대등하게 말을 섞으려고 하나!”
제파르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리고 그때, 당황함에서 정신을 차린 레라지에도 한 걸음 다가왔다.
“내 영토에 침략한 침략자들이 곧 죽을 것도 모르고 계속 떠드는구나.”
“레라지에. 넌 죽을 뻔했으면 얌전히 있지. 아니면 아까 못다 한 승부를 이어서 하려고?”
“닥쳐라 제파르. 너나 저놈이나 둘 다 갈아 마셔 버릴 테니까.”
“해보시던가.”
제파르가 대검의 끝 방향을 살짝 돌려 레라지에에게로 돌렸다.
레라지에 역시 힘을 끌어올려 주변에 온갖 마법진들을 띄웠다.
언럭키의 등장 전까지 치고받고 싸우던 둘이다.
심지어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싸웠다.
지금도 기세는 더할 나위 없지만, 몸 상태는 영 말이 아니었다.
-크롸라라라!
그 순간이었다.
용의 포효가 지상에 내리꽂혔다.
수많은 악마는 물론이고 군주급조차 순간적으로 몸이 굳을만한 포효.
그때를 놓치지 않고 벨키서스가 역시 하늘을 향해 소리 질렀다.
-커허헝!!
곰으로 변한 형태에서 터져 나오는 울림.
그건 에오나루스의 포효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두 포효를 거의 동시에, 직격으로 얻어맞은 수많은 악마가 비틀거렸다.
기세가 약한 놈들은 서 있지 못하고 쓰러지기까지 할 정도였다.
-화르르륵!
동시에 하늘에서 거대한 불꽃이 내려왔다.
에오나루스가 쏘아 보낸 브레스였다.
산처럼 치솟은 불꽃으로 시야가 가려진다.
그 후, 바닥에 내려앉은 에오나루스가 다급하게 말했다.
-어서 타라!
말하지 않아도 언럭키 파티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훌쩍 뛰어 에오나루스의 등 뒤에 올라탄 것이다.
다만 해골들은 내버려 두었다.
네크로맨서의 장점은 소환수의 생명을 챙길 필요 없다는 점이다.
‘혼란스럽다고 해도 금방 정신 차릴 거야. 해골들이 최소한의 저지는 할 수 있겠지.’
약간만 지체할 수 있어도 해골들은 제 역할을 다 할 것이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해골들이 불꽃 너머로 돌진해, 혼란에 빠진 악마들을 공격했다.
“순순히 보내줄 줄 알고!”
다만 레라지에는 눈을 부릅뜬 채 날아가기 시작한 에오나루스를 노려봤다.
일반 악마들과 달리, 군주급들은 기습적인 일격들에도 멀쩡했다.
당장이라도 쫓아올 듯 씩씩거리는 레라지에.
그때, 놈의 눈이 커졌다.
“…설마 거기 너. 내 징수관 아닌가?”
“!!??”
에오나루스의 등에 올라탄 언럭키 파티의 구석에 있는 칼리스먼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다.
매보다 뛰어난 시력이 잘못 볼 리가 없었다.
“히익!!?”
칼리스먼은 기절할 듯 놀랐다.
그렇게 정체를 숨기려고 노력했는데 이렇게 들키다니.
레라지에는 불같은 분노를 뿜어냈다.
“이 배신자 놈!! 어떻게 내 성 안에서 모르는 놈들이 튀어나왔나 했더니 다 네 놈 때문이었구나! 내 갑옷을 훔쳐 간 것도 다 네가 알려줘서였어!”
오해였지만 레라지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아닙…읍읍!”
“그래 맞다. 칼리스먼 덕분에 네 성에 몰래 잠입해서 탈탈 털어먹을 수 있었지. 이 갑옷도 마찬가지고. 고맙게 쓰도록 하마.”
“이 미친놈이…!?”
칼리스먼은 경악한 채 뻔뻔한 얼굴로 말한 언럭키를 쳐다봤다.
“이놈 칼리스먼!!”
자고로 때린 놈보다 배신한 놈이 더 뼈아픈 법.
레라지에가 붕 떠올랐다.
양 손바닥 위로 마법진이 겹겹이 생성된다.
“이딴 짓을 벌여놓고 도망을 치려 해? 웃기지 마라! 절대 내 영토에서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놈의 양손으로 심상치 않은 마력이 몰려든다.
언럭키가 긴장한 상태로 검을 치켜들었다.
‘마법 베기는 몇 번 성공해봤는데, 저런 놈의 마법도 벨 수 있으려나.’
검왕의 특성 중에는 마법을 물리적으로 벨 수 있는 것도 있다.
그걸 토대로 마법사의 천적처럼 활동할 수 있는데, 과연 이번에도 통할까?
해봐야 알 것이다.
-쾅!
“큽!?”
그 순간이었다.
레라지에가 방향을 바꿔 옆에서 날아온 공격을 막아냈다.
“하핫. 재미있는 녀석이었는데 왜 자꾸 괴롭히려고 하나. 넌 나랑 놀아야지 레라지에.”
제파르가 대검을 휘둘러 이쪽을 향해 손을 뻗은 레라지에를 공격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레라지에는 공격을 포기하고 제파르를 상대하는데 집중해야 했다.
다만 그러는 와중에도 중간 중간 불타는 듯한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봤다.
정확히는 그 시선이 칼리스먼에게 정확히 꽂혔다.
언럭키가 ‘픽’ 하고 웃으며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너 제대로 찍힌 것 같은데. 어떡하냐.”
‘네 놈 때문이잖아!’
히죽거리는 언럭키와 반대로 칼리스먼은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