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75
* * *
“그러니까, 그 안에서 이 녀석이 나왔다고?”
꿈뻑-
하르간이 고개를 들이밀며 빤히 바라보자, 단풍은 그 큰 눈망울을 몇 번 깜빡였다.
대체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은 눈빛이었다.
“그래.”
“와, 완전 귀여운데?”
단풍을 본 하르간은 작고 귀여운 애완동물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반응이었다.
확실히 귀엽긴 했다.
머리와 몸통이 거의 반반으로, 정말 이름대로 어느 게임 단풍 이야기 속의 캐릭터처럼 생겼으니까.
별의별 기괴한 괴물들이 판치는 이 탑 안에서, 단풍은 누군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기에 충분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너무 가까이 가지 마라.”
물론.
“그러다 잡아먹힌다.”
유원의 눈에는 단순히 마냥 귀엽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본체를 모르니 저러지.’
단풍이 부화하며 유원은 녀석의 속에 잠들어 있던 괴물을 보았다.
또한, 그 괴물은 이제 유원의 속에도 함께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하르간은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지만.
“아무튼 떨어지란 말이지?”
“그래.”
“자식 하나 생겼다고 너무 아낀다.”
“그게 부모 마음이지.”
손바닥으로 하르간의 얼굴을 멀찌감치 떨어뜨린 유원이 곧장 그를 불러낸 용건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네 어머니 이야기 좀 해 봐라.”
“갑자기 엄마는 왜?”
“한 방 먹었으니 이제 다음은 이쪽이 공격할 차례다.”
언제까지 수비만 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헤라클레스가 혼자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헤라클레스의 동선은 대략 파악하고 있었다.
신전 한 곳을 털 때마다 헤라클레스는 다음 행선지를 플레이어 키트를 통해 알려 왔으니까.
‘헤라클레스의 폭주를 계속 두고 볼 리 없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으니.’
아껴 두었던 카드인 판도라도, 아테나도 사로잡힌 지금.
제우스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제우스, 이제 직접 움직일 거다.”
웅크리고 있던 거인을 이끌어 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니 알아 둬야지. 이번 싸움의 히든카드에 대해서.”
“히든카드? 그게 뭔데?”
눈을 깜박이는 유원과 단풍.
잠깐의 침묵 이후, 하르간은 당황한 듯 물었다.
“설마, 나?”
“여기 오기 전에 뭘 들은 거냐?”
“아니, 나한테 대체 뭐가 있다고?”
“제우스의 반쪽이 너한테 있지.”
유원의 발언에 하르간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반쪽이라니.
자신에게, 그런 게 있다고?
“지금은 그릇이 너무 작아, 그 힘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분명 있긴 있어.”
“대체 무슨 얘기냐?”
“그러니까 한번 말해 봐라. 네 어머니, 어떤 분이셨는지.”
“우리 어머니는…….”
잠시 말을 흐리며 주저하는 하르간.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그는 숨을 골랐다.
이내.
“아주 아름답고, 순수한 분이셨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하르간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평생 한 남자만 사랑하신 순애보셨지.”
* * *
철걱-
제우스의 몸에 황금빛의 갑옷이 씌워졌다.
생소한 느낌이었다.
하얀 천 외에, 이렇게 딱딱한 갑옷을 입는 건 기간토마키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니.
기간토마키아에서 역시 헤라클레스의 활약 덕분에 그가 나설 일은 드물었다.
스윽-
준비를 마친 제우스가 연못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연못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은 어딘가 슬퍼 보였다.
겉으로는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로 보였겠지만…….
“이건, 볼 때마다 기분 나쁘군.”
틱-
첨벙-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연못 위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잔잔하던 수면이 흔들렸다.
자연스레 비춰지던 제우스의 얼굴이 사라졌다.
그 속에 들어있던 건, 제우스가 숨기고 있던 표정이었다.
‘이걸 통해 알게 됐지.’
진실을 비추는 연못.
그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벌거벗겨진다.
속에 꽁꽁 숨겨 둔 표정을 드러내게 되고, 그로 인해 진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알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별로라는 걸.’
수많은 사람을 이 앞으로 데려왔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과연 자신의 여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녀들은 신기하게도 자신의 앞에서 똑같은 표정을 하고, 또 다른 똑같은 표정을 숨기고 있었다.
“하긴. 별로겠지.”
제우스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백 명의 여인을 거느리고, 수백 명의 자식을 가진 자.
그렇기에 어떤 여자도, 어떤 자식도 사랑하지 않게 된 자신이었다.
그런 주제에 누군가의 사랑을 바란다는 건 욕심이었다.
그녀들은 모두 제우스를 향해 경멸 어린 표정을 지었고, 올림포스의 왕이기 때문에 앞에서는 웃음을 지었다.
부서졌던 연못의 수면은 곧 잠잠해졌다.
잔잔한 수면 위.
또 다른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미쳤었지.”
유일하게 이 속에서 웃고 있던 사람.
“사랑이란 걸 다시 하고.”
그녀는 먼저 자신을 사랑했고, 뿌리치는 손을 또다시 맞잡았다.
끝끝내 그녀를 이곳에 데려왔을 때, 제우스는 충격을 받았다.
두 번째였다.
연못 밖의 얼굴과 속의 얼굴이 같은 사람은.
다른 게 있다면 다른 한 사람인 헤라는 연못 밖에서도, 속에서도 똑같이 제우스를 경멸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이지만.
“그래, 미쳤지.”
연못 위로, 다시 자신의 모습이 비춰진다.
그렇게 몸을 돌린 제우스는 손에 벼락을 쥐고, 천 년 만에 신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딴 녀석에게 내 반쪽을 주고 말이야.”
* * *
“요약하자면 대충, 유일하게 제우스를 사랑한 여인이라는 건가.”
“이게 그렇게 간단히 요약되는 거였나.”
나름 길게 이야기를 푼 하르간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제우스를 사랑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유일인지는 모르지. 네메시스도 계시고, 테미스도 계시고…….”
몇 명 언급된 이름에 유원은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훗날 제우스를 몰아내는 데 가장 앞장서 동조한 자들의 이름.
그녀들은 올림포스 내에서 그 누구보다도 제우스의 몰락을 바라고 있었다.
“그들 모두, 하데스 편에 붙었다. 못 들었나?”
“진짜냐?”
“네 어머니는 어떠셨을 것 같지?”
그 물음에 하르간은 잠시 주저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하늘이 반쪽이 나도, 아마 아버지 편이셨겠지.”
“너랑은 다르군.”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위대하니까. 올바른 게 뭔지 알면서, 사랑에 눈이 먼 어리석은 여자가 바로 우리 어머니셨거든.”
“그렇게 말해도 괜찮겠냐?”
“상관없다. 본인도 아셨던 거거든.”
어깨를 으쓱여 보인 하르간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본인께서는, 부디 내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셨고.”
“왜 네가 이쪽에 섰나 했더니, 그런 이유에서였나.”
“그래. 이게 올바른 거니까. 이게 올림포스니까.”
올림포스는 정의로운 집단이라는 믿음.
최초의 올림포스는 이 탑의 무질서를 질서로 바꾸기 위해 만들어졌다 알려져 있었다.
아마도 하르간은, 그 뿌리를 계승하고자 하는 모양이었다.
우웅-
유원의 품안에 있던 플레이어 키트가 울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르간의 머리 위에서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바앗, 바아-.”
어느새 하르간의 머리 위에 올라가 머리를 토닥이고 있는 단풍.
유원은 그런 단풍을 다시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고는 말했다.
“슬슬 일어나라. 나머지는 가면서 이야기하지.”
“나머지? 더 할 이야기가 남았나?”
“여기 오기 전에 하려다 못한 이야기.”
“아, 그거…… 그런데 가긴 어딜 간다는 거냐?”
“방금 네 큰아버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울렸던 진동.
그 진동은 하데스에게 도착한 메시지였다.
“슬슬 우리도 움직일 때다. 제우스도 그럴 테니까.”
“아버지께서…….”
기간토마키아 이후 대외적인 활동이 전무하다시피 하던 제우스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올림포스가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제아무리 제우스라 해도 신전에 틀어박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니. 단순히 은거하고 계셨던 것만은 아니지.’
제우스는 신전에 앉아 연못을 통해 세상을 본다.
또한 얼마 전에는 원탁이 다스리는 도시인 캐멀롯에 직접 벼락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는 모든 활동을 접고, 오직 한 가지만을 계획하고 있었다.
두 번째 기간토마키아.
비로소 거인족을 멸망으로 이끌, 그 큰 전쟁을 말이다.
하르간은 조금 지친 듯한 얼굴로 물었다.
“이 싸움이 마지막일까?”
“아마도.”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올림포스와 하는 싸움은 마지막이겠지.”
“올림포스와는?”
“그래.”
“넌, 그 다음도 있는 모양이군.”
이번에도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올림포스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산 너머가 평평한 평지인 건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넘어야 할 산은 이보다 훨씬 높았고, 올림포스는 여러 산들 가운데 첫 번째일 뿐이었다.
“천장을 부수겠다고 했지?”
-“이 탑의 천장을 부숴 버릴 거다.”
튜토리얼에서 유원이 했던 말.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단순히 목표가 높은 녀석이구나 싶었다.
이런 녀석이어야 비로소 자신의 옆에 설 수 있으며, 장차 올림포스의 왕이 될 자신과 견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플레이어가 되어서 겪은 이 탑은 천장부터 올려다보기엔 너무 넓고, 겨우 올려다본 천장은 너무 높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유원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높은 곳을 보고 있었다.
“말해 봐라. 그 위에, 대체 뭐가 있는 거냐?”
절대 알 리 없는 질문이었지만 하르간은 궁금했다.
대체 그 위에 무엇이 있기에 유원도, 제우스도 그토록 그 위를 바라는 것인지.
그리고 어째서인지 유원이라면 저 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역시나.
“아직은 몰라도 된다.”
유원은 모른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직은.”
* * *
콰앙-!
쩍, 쩌저저저저-
지반이 무너져 내리고, 신전이 와르르 무너졌다.
성처럼 거대한 신전이 무너져 내리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일 분 남짓.
헤라클레스는 1미터 남짓한 길이의 짧은 곤봉을 다시 등에 걸쳐 메고는 중얼거렸다.
“이걸로 다섯 개째인가.”
다섯 개.
그것은 헤라클레스가 무너뜨린 올림포스 신전의 숫자였다.
헤라에 이어 포세이돈, 디오니소스, 헤스티아.
그리고 지금, 데메테르의 신전까지.
두 번째 아테나의 신전까지는 분주히 막아서던 랭커들은 세 번째부터는 돌연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바로 지금, 다섯 번째 신전까지 내내 말이다.
‘그 녀석 말대로군.’
“두 번째 신전을 무너뜨리고 나면 아마 세 번째부터는 굳이 널 막지 않을 거다. 막아 봤자 손해라는 걸 알 테니까.”
처음에는 설마 싶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해도, 정말 딱 두 번째 신전부터 그들이 유원의 예상대로 움직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신기한 녀석이란 말이지.’
쿠르르릉-
무너진 신전 위.
뿌연 먹구름이 밀려오며, 서서히 공기가 차갑게 식어갔다.
이 징조는 헤라클레스가 처음 이곳 32층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신기하게도 정말, 말하는 대로 딱 들어맞으니…….’
하늘을 가득 메운 뿌연 먹구름.
“그리고 다섯 번째 신전부터는 아마…….”
쾅-!
잔뜩 화가 난 듯, 성난 천둥소리.
그것을 보는 순간 헤라클레스는 확신했다.
“네가 원하던 제우스를 만날 수 있을 거다.”
그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