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2
‘천마의 시험이라…….’
메시지의 내용이 달라졌다.
‘천마신교’의 시험이 아닌, ‘천마’의 시험으로.
이해한다.
폐쇄적인 집단. 한 명의 플레이어도 다음 층으로 올려 보내지 못한, 아니 그러지 않는 고집.
아니, 어쩌면 아집.
천마신교가 시대가 흐를수록 작아지고 약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림계는 천하제일문을 논할 때, 천마신교를 제일 앞에 두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무림계의 역사.
무림계가 탑에 들어오기 전부터 살아 있던, 고대의 하이랭커.
천마신교 그 자체.
천마(天魔).
그 한 명의 존재 때문이었다.
후욱-.
문도 열리지 않은 밀폐된 방 안에 바람이 불었다.
방 안이 어두워졌다.
보이는 건 이제 누군가의 뒷모습뿐이었다.
“네게 묻겠다.”
남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유원은 그제야 직감했다.
이곳은 보이는 것과 다른 장소다. 실제로 자신이 서 있는 곳은, 아마 이런 작은 방 안이 아닐 것이다.
“어디서부터 알았느냐?”
시험은 통과했다.
그런데 왜 굳이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건가 싶었는데.
“그게 궁금하셨습니까?”
“이것까지 더해, 시험이다.”
천마신교의 시험은 역시 소문대로였다.
다른 문파의 시험과는 달리 천마신교의 시험은 정해진 규칙이나 틀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질문까지 더해 시험이라.’
제법 뻔뻔한 구석이 있었다.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만약 이게 진짜 시험이었다면 진작 다음 시험이 시작되었다 메시지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시험이든 아니든 딱히 상관은 없었다.
굳이 비밀로 할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였습니다.”
“처음?”
“진법에 들어가기 전부터 저를 보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시험은 그때부터 시작됐지요.”
이유는 간단했다.
“편하게 남의 뒤를 따라 걷기만 해도 되는 시험이 어디 있습니까?”
유원은 그간 천마신교의 악명을 숱하게 들어왔다.
유원이 기억하는 천마신교는 투쟁과 전투의 집단이었다. 그런 천마신교의, 그것도 천마의 시험이 고작 길이나 잘 따라오라는 것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래도 제 길 정도는 알아서 찾아 걸을 줄 아는 녀석이군.”
목소리에 만족감이 담겼다.
스으으-.
주위의 배경이 흐려졌다.
어둡던 방 안이 환해지고, 비좁던 벽이 사라지며 바깥의 풍경이 보였다.
천마의 뒷모습은 금세 모습을 감췄다.
-합격이다.
유원의 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
메시지는 들리지 않았다.
방금 전의 질문은 따로 시험에 등록된 게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천마 개인의 시험.
아마 대답 여하에 따라, 유원을 대하는 천마의 반응이 달라졌을 것이다.
‘합격이라…….’
어쨌든 호감 정도는 얻은 모양이었다.
‘아저씨 비위 맞추려면 당분간 꽤 피곤하겠군.’
유원은 길게 이어진 거리를 따라 걸려 있는 횃불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마을이었다.
해가 진 산속, 어두운 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복작거렸다.
산속 깊은 곳에 이런 마을이 있다니.
‘여기가 바로 천마신교.’
유원은 잠시 서서 마을을 감상했다.
쌀과 갖은 곡물, 닭과 소, 돼지 따위의 가축을 싣고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과 칼과 창을 찬 무인들.
무림의 일부 문파에서는 천마신교에 악마가 산다고 말한다.
유원은 진짜 악마를 알고 있었다.
헛소리였다.
보라.
이곳도 무림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그렇게 유원이 잠시 마을을 감상하는 사이.
“너, 너!”
뒤늦게 진법을 통과해 들어온 광하묵이 유원을 발견하곤 소리쳤다.
“어떻게 여기 있는 거냐?
아무래도 진법에 빠졌다 생각한 유원이 멀쩡히 돌아오자 꽤 놀란 모양이었다.
사실대로 말할까.
잠시 천마를 만나고 왔다고.
하지만 천마는 천마신교의 상징적인 신이다.
괜히 그를 언급해서 좋을 게 없다.
사실 진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먼저 걸어왔습니다.”
“걸어서?”
광하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말은, 진법을 스스로 뚫고 들어왔다는 말이 아닌가.
“어떻게……?”
비록 천마신교가 진법으로 최고는 아니더라도 보통 10층의 플레이어가 이걸 뚫고 들어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광하묵 본인만 하더라도 미리 길을 알아 두지 않았다면 진법을 통과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유원은 그 길을 먼저 길을 알고 있던 자신들보다 먼저 통과해 들어왔다.
별반 어려움 없이 진법을 통과했다는 뜻이었다.
“중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멀리 오느라 피곤하니 어서 갑시다. 천마신교는 시험자에게 숙소도 제공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요?”
유원은 다소 뻔뻔하게 말하고는 성큼 마을 안으로 걸음을 옮기기기 시작했다.
광하묵은 잠시 놀라고 황당해 그런 유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자신이 천마신교에 몸을 담고 자리를 잡은 지가 벌써 오십 년.
그 긴 시간 동안 제 스스로 진법을 통과해 들어온 플레이어는 한 명도 없었다.
아니, 그런 자가 있다는 이야기조차 들어 본 적이 없었다.
* * *
광하묵은 수하들을 시켜 유원에게 숙소를 안내해 주었다.
다음으로 그가 알아본 건 김유원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는 분명 실력이 있었다.
플레이어 키트를 통해 이제 막 10층에 올라온 플레이어임을 확인했으니, 신분을 속인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아래층에서는 이름이 알려져 있을 터.
분명 수소문을 하다 보면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을…….
“그 정도냐?”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쉬울 줄은 몰랐다.
몇몇 수하를 통해 알아보자, 광하묵은 금방 유원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예. 이미 위쪽의 여러 거대 길드에서는 김유원을 영입하려 힘쓰는 모양입니다.”
천마신교는 아래층의 일에 관심을 거둔 지 오래였다.
때문에 천산을 벗어나 움직이는 무인이나 교역을 위해 오가는 상인이 아니고서야 아래층의 정보를 들을 일이 없었다.
광하묵이 유원의 이름을 모르고 있던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 정도면 이미 무림에서도 접촉한 적이 있겠군.”
무림.
그것은 단순히 10층의 세계를 뜻하는 이름만이 아니었다.
정식 명칭은 무림맹(武林盟).
무림맹은 여러 랭커들을 보유한 중견 규모의 길드였다. 각 무림세가의 연합으로, 탑의 한 층을 보유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자세한 건 더 알아봐야겠지만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런데도 여기까지 찾아왔다? 거리도 상당할 텐데?”
“듣기로는 아래층의 시험을 모두 최상위 성적으로 통과하고 올라왔다고 합니다. 1층의 콜로세움까지 기록을 갱신할 정도니, 이번에도 같은 기록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마신교를…….”
천마신교의 시험은 지금껏 어느 플레이어도 통과하지 못했다. 천마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다른 무림의 문파들처럼 시험의 난이도를 조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시험을 내는 주체인 천마가 원하는 문턱이 워낙 높으니, 통과자가 나올 수가 없었다.
“난 놈은 난 놈이군.”
1층 콜로세움이라면 광하묵도 기억했다.
그는 천마신교에서 태어나, 천마신교에서 자라온 순혈(純血)이었다.
당연히 무공이라면 꽤 익혀 둔 상태였고, 튜토리얼은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랭커가 될 자질을 가진 플레이어들은 콜로세움의 시험 중 10번 대까지 통과하기 마련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광하묵에게 콜로세움의 시험은 콜로세움의 시험은 벽으로 다가왔다.
7번째 시험에 도달했을 때 광하묵은 처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
무공에 시스템의 힘까지, 단번에 탑의 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콜로세움은 그런 광하묵의 자신감을 완전히 박살 내 놓은 것이다.
“대주는 신교의 시험을 본 적이 있으셨지요?”
수하의 물음에 광하묵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신교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대단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언젠가 플레이어가 되어 천마신교의 시험을 통과할 것을 꿈꿨다.
하지만 역시나, 시험은 통과할 수 없었다.
천마신교의 시험은 그가 겪은 콜로세움의 시험보다 더 높고 단단한 벽이었다.
“그랬었지.”
“시험은 어땠습니까?”
수하의 물음에 광하묵은 고개를 저었다.
“몰라.”
“예?”
“시작하자마자 떨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신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험을 시작하자마자 떨어지다니.
자세한 설명을 기다리는 수하에게, 광하묵은 그간 속에 쌓아둔 억울함을 토로했다.
“내겐 자격이 없다 말하시더군.”
* * *
뜨거운 김이 나는 목욕물이 받아졌다.
시비들이 가져온 목욕물이 가득 채워지자, 유원은 사람을 모두 물리고 목욕물에 몸을 담갔다.
쏴아아-.
목욕물이 넘쳐흐르자, 더 많은 김이 위로 피어올라 흩어졌다.
“후아-.”
열흘간 이어진 여정의 피로가 녹는 기분이었다.
몸이 풀어졌다. 나무로 된 원통에 들어가 뜨거운 물에 몸을 불리며 잠시 눈을 감았다.
몇 분간의 사치.
유원은 다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깥에 위치한 작은 욕실.
이곳만 비추어 봐도 알 수 있다.
“……작네. 정말.”
천마신교는 작았다.
아니, 작은 것보다는 부유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 시점의 천마신교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플레이어의 영입, 그들에게 받아 낸 포인트를 통한 수입, 그렇게 배출한 플레이어와 랭커를 통한 다른 세계와의 교류.
그런 것들이 전혀 없는, 예전만 못한 성세를 이루고 있는 게 바로 현재의 천마신교였다.
‘아저씨 고집 하고는.’
시험의 난이도를 조금만 낮춰도 충분히 바뀔 수 있는 것을.
고집불통은 여전하다 싶었다.
‘그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만.’
탑의 시스템은 결코 고장이 없다. 그것은 탑의 오래된 역사는 물론, 지금 이 시대에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먼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탑의 시험은 늘 어려운 시험일수록 더 큰 보상을 내려 준다.
그렇기에 이 10층을 생각할 때, 모두는 한 가지를 떠올렸다.
“천마신교.”
“천마신교지.”
“그거밖에 없지.”
튜토리얼 이후.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회의에서, 10층의 시험에는 단연 천마신교가 거론되었다.
“역시 무림계 하면 무림대전이 매력적이지만…….”
“무림대전이면 매력적이긴 하지. 우승만 하면 대환단이라도 받아 낼 수 있을 거고. 소림이든 남궁세가든, 어느 쪽이든 최고의 비급을 받아 낼 수 있겠지.”
“그런데 여기, 무림대전 우승 못해 본 놈 있어?”
“……나.”
“나. 지금 시비 거냐?”
……한바탕 소란이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원은 픽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도 그때, 무림대전을 알지 못했거나 참가했어도 우승하지 못하고 떨어진 몇몇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특히 손오공이 가장 크게 난리를 쳤다. 손오공은 시험을 통과하자마자 다음 층으로 넘어가, 무림대전에 참여해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 녀석 성격이면 그런 대회를 놓친 건 용납 못하지.’
어쨌든 천마신교의 시험에 관심을 가진 건 유원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벌어질 미래까지 더해, 그 긴 역사 동안 누구도 통과하지 못한 시험이라니.
“천마가 일찍 죽은 게 아쉽군.”
“그 녀석이 살아 있으면 뭐든 알아낼 수 있었을 건데.”
“이미 죽은 자다. 아쉬워해서 뭐 하겠어?”
천마는 아우터 갓과의 싸움에서 일찍 목숨을 잃었다. 크로노스의 시계태엽이 만들어진 건 천마의 죽음 이후라, 그에게 어떤 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
결국 천마신교의 시험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건 없는 상태.
‘몸으로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다.’
유원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이 천마신교의 시험이 어떤 것인지.
대체 왜, 다른 시험에 비해 유독 이 천마신교의 시험만 이토록 난이도가 높은 건지.
그리고…….
“그래서 천마신교에 뭐가 있는 건데? 누구 아는 사람 없어?”
“몰라.”
“뭔가 있긴 있는데.”
“뭐가 있는지는 모르는 상태군.”
“뭐가 있든 평범한 건 아닐 거다. 여기 모인 놈들 중에 천마신교의 시험을 통과한 놈은 아무도 없으니까.”
“도박 아니야? 허탕일 수도 있지 않아?”
“탑과 시험은 결코 노력과 결과를 배신하지 않는다. 결과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허탕일 리는 없다.”
그들이 무엇을 감추고 있는 건지도.
유원은 그것을 알아보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정말 만약이기는 해도, 정말 허탕이면 어쩌나 해서였다.
그런데.
[‘?의 알’이 꿈틀거립니다.]아무래도 허탕은 아닌 모양이었다.
“오랜만이다.”
인벤토리 속에서 꿈틀거리는 이름 모를 알.
오랜만에 깨어난 알의 반응에 유원은 1층 콜로세움의 시험을 막 통과했을 때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