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7
거의 한 달 만에 수련동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유원은 어딘가 말라 보였다.
얼굴은 핼쑥하고 핏기가 없으며,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해 하얗고 창백해 보이기까지 했다.
‘뭐야?’
‘수련을 하고 나온 거야, 병에 걸려 있던 거야?’
‘약재 때문인가?’
‘저래 가지고는 삼초식이 아니라 일초식도…….’
순간 광하묵과 천자룡은 유원을 보고 온갖 생각을 해야 했다.
제아무리 플레이어를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지만 유원의 상태는 그만큼 심각해 보였던 것이다.
“마중입니까?”
유원은 수련동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광하묵과 천자룡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병약해 보이기까지 한 겉모습과는 달리 유원의 걸음걸이는 별반 문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안정되어 보이기까지 했다.
광하묵은 그런 걸음걸이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안에서 보법이라도 익힌 건가?’
가까워진 거리.
광하묵은 애써 속으로 생각한 걸 내색하지 않고는 대답했다.
“그냥 지나가다 들러 봤다. 그래, 수련동에서는 무슨 성과라도…….”
성과라도 있었느냐고, 그렇게 물으려던 광하묵은 곧 입을 다물었다.
가까이 다가와 기다리고 있던 시비에게 새로운 옷을 받아 입는 유원.
그에게서 풍기는 진한 약초의 향 때문이었다.
“듣기로는 의당에서 온갖 약재를 다 받아 갔다는데…….”
광하묵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도전자가 엄청난 양의 약재와 해독제를 요구해 의당의 약재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소식이었다.
그땐 그 많은 약재들을 어디에 쓰려나 싶었다.
무공 수련 중에 다치는 경우야 종종 있는 일이지만 그 많은 약재를 다 쓸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설마 그걸 다?”
천자룡 역시 유원에게서 진한 약초 향을 맡고는 서둘러 수련동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수련동 안에서도 똑같이 약초 향이 나는지를 확인해 보려는 것이리라.
“배고픕니다.”
유원은 그동안 쓰디쓴 약재와 해독제로 채웠던 배를 쓰다듬었다.
“밥부터 먹죠.”
* * *
달그락-, 달각-.
지이익, 우적-.
유원은 그야말로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웠다.
닭다리를 찢어 입안에 우겨넣고, 그것도 모자라는지 미리부터 야채볶음을 젓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면서도 눈은 상 위에 있는 다른 음식을 훑었다.
맞은편에서 함께 식사를 하던 광하묵은 손을 멈춘 채 물었다.
“한 달 내내 굶기라도 한 거냐?”
수련동 안에는 벽곡단이 있었다.
맛은 없지만 그걸 먹는다면 어느 정도 허기를 채우고 영양분을 채울 수 있을 터.
만약 착오가 있어 벽곡단이 채워져 있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랬다면 진즉 수련동을 나왔을 것이다.
“어차피 한 번 나올 생각이었습니다. 그 맛없는 걸 굳이 챙겨 먹을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맞다는 소리냐?”
“예.”
한 번 대답을 한 유원은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정말 한 달 내내 굶었다니.
아니, 진짜로 굶은 건 아닐 것이다.
유원의 배 속은 음식이 아닌 다른 걸로 채워졌을 테니.
‘정말 그 많은 약재를 다 복용할 줄이야.’
아직까지도 지워지지 않는 여러 가지 약재들의 향.
‘대체 그 많은 약재를 어디에 쓴 거지? 어디 상처를 입은 건 아닌 것 같고. 독에 중독되기라도…….’
설마 하는 생각에 광하묵의 눈이 크게 떠졌다.
중독.
그거라면 설명이 됐다.
간혹 일부 영약들 중, 독성이 강해 복용이 어려운 영약이 있었다.
그 경우, 영약의 효능보다는 독성이 더 강해 영약보다는 독으로 더 많이 쓰인다.
하지만 값을 지불할 포인트를 따지지 않고 의당에서 독을 중화시킬 약을 무한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면.
‘그거라면 설명이 된다. 독성을 지닌 영약…….’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직 의문은 남았다.
‘대체 독성이 얼마나 강한 영약이기에?’
이미 식사는 뒷전이었다.
광하묵은 이미 자신의 것까지 음식을 거의 비워 낸 유원을 바라보고 있기에 바빴다.
그렇게 식사가 마무리되자.
“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배를 채운 유원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 한 끼를 든든하게 했다고 처음의 초췌하고 비루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어 보였다.
“어딜 가나?”
“무공 서고에 갑니다.”
“무공 서고에?”
“예.”
첫 번째 할 일을 끝냈으니 이제 다음을 준비할 때.
‘하긴. 플레이어인 만큼 두 달의 무공 수련은 웬만큼 레벨을 올리는 것보다 나을 테니.’
유원의 행동은 처음 그가 이곳 천마신교를 찾아온 이후 가장 합리적이고 이해가 되는 행동이었다.
광하묵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람할 수 있는 서적에는 제한이 있다는 것만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그럼.”
유원은 광하묵에게 짧게 인사하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담당 시비에게 부탁해 안내를 받자, 수십 명의 무인들의 경비가 세워져 있는 거대한 전각으로 향할 수 있었다.
유원은 시비를 따라가면서 무인들의 면면을 살폈다.
‘모두 플레이어인가.’
광하묵이나 천자룡처럼 천마신교 출신의 순혈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 모두 어느 정도 탑을 오른 플레이어들이었다.
그중에서는 광하묵보다 더 뛰어난 실력자로 보이는 플레이어도 있었다. 어쩌면 거의 랭커에 근접한 실력자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진짜 랭커도 있군.’
유원은 무공 서고 바로 앞을 지키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가장 평범해 보이는 인상에 별 볼 일 없는 복장을 하고 있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저자가 이곳의 머리였다.
‘경비가 철저하다.’
천마신교에도 몇 명 없는 랭커까지 배치해 놓을 정도라니.
‘당연한 건가.’
무공 서고는 어느 문파에서든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다.
그곳에 기록되고 저장된 서적이야말로 문파의 근간이자 뿌리이며, 모든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하물며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을 자처하며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이기도 한 천마를 배출해 낸 천마신교야 오죽하랴.
‘절대로 허용된 것 이상의 정보를 열람할 수 없다는 뜻이겠지.’
이것은 단순히 천마신교의 시험만이 아니었다.
무림계에 속한 문파들은 탑의 시스템에 의해 시험으로 인정을 받는다. 천마신교도 다르지 않았다.
이건 탑의 시험이다.
허용된 것 이상의 정보를 어렵지 않게 열람할 수 있을 만큼 탑의 시험은 허술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어차피 경비가 없어도 못 볼 텐데.”
따라붙는 경비의 시선이 귀찮아진 유원이 묻자, 랭커로 보인 무인이 답했다.
“절차이니 따라 주시지요.”
그래도 광하묵보다는 제법 예의가 있다 싶었다.
천마신교의 무인들은 대부분 호전적이고 그만큼 격식이 없다고 들었는데.
이름 모를 그 무사의 대답에, 유원은 굳이 더 따지지 않았다.
어차피 천마신교의 시험을 진행하는 만큼 이들 역시 자신이 하는 일에 끼어들거나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간단하기 그지없는 절차를 마친 유원은 전각 안으로 발을 들였다.
높은 천장.
그리고 그 높은 천장에 닿을 만큼 높게 쌓여진 책장들.
“오…….”
순간, 유원도 탄성을 흘리고 말았다.
대체 몇 권이나 될까.
수십만?
아니, 수백만?
이 정도면 무공 서고가 아니라 거대한 도서관이라 해야 할 판이다.
“저쪽 문으로 연결된 공간으로는 넘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만 명심하시고, 이 안에 있는 서적은 마음껏 이용하십시오.”
경비대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쪽으로 물러났다.
유원은 경비대장이 가리킨 방향에 또 다른 문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꽤 먼지가 쌓인 듯한 철문.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여기 있는 건 전부 열람이 가능한 하급 무공 서적들이라는 건가?’
천마신교의 역사는 수천 년을 자랑한다.
그들은 탑의 세계에 들어오기 전부터 존재했으며, 끝없이 무공을 창안하고 개발해 그것을 발전시켜 왔다.
이곳 무공 서고는 바로 그런 천마신교의 정수가 녹아 있는 장소.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유원은 남궁세가를 비롯한 여러 문파의 무공 서고를 열람한 경험이 있었다.
랭커가 될 플레이어이자, 랭커가 되기도 했던 유원에게 잘 보이려던 무림계의 문파에서 초대를 받아 견학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남궁세가의 세 배…… 아니, 네 배는 되겠군.’
유원은 가까이 손이 닿는 아무 서적이나 꺼내 보았다.
무림계의 글자는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번역되었다.
‘팔극권(八極拳)을 응용한 권법인가. 좀 더 복잡하긴 하지만 위력은 높이고, 대신 방어가 허술하군.’
펼친 김에 유원은 서적에 그려진 그림을 따라 해 보았다. 10층의 시험은 한 번 통과한 적이 있었기에 무공에는 어느 정도 조예가 있었다.
그렇게 동작을 따라서 하길 잠시.
탁-.
유원은 곧 책장을 덮었다.
‘역시 무공은 나랑 안 맞아.’
어느 정도 익히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시스템이라는 힘이 존재하는 탑에서 무공은 느리고 답답한 학문일 뿐이다. 무공에 상당한 재능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무공을 익혀 강해지는 건 그리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한 권의 책을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은 유원은 드넓은 서고를 둘러보았다.
방대한 양.
이걸 다 언제 보나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천마신교 전부를 뒤져 보는 것보다는 서고 하나를 뒤져 보는 게 나을 테니까.
‘석 달의 시간이 그냥 주어진 건 아닐 텐데 말이야.’
탑은 불가능을 시험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불가능한 시험은 시험의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원이 기억하는 불변의 법칙이었다. 그리고 이번 시험은 분명, 보통의 플레이어였다면 불가능에 가까운 난이도를 지니고 있었다.
‘랭커. 그것도 권천주 정도 되는 랭커의 삼초식을 견뎌 내라니.’
어디 그게 이제 막 10층에 올라온 플레이어에게 내려질 시험이란 말인가.
처음 들었을 때부터 유원은 시험이 어딘가 이상하다 여겼다. 물론 충분히 통과할 만하다 생각했고, 시간을 단축하는 만큼 보상이 커질 거라 생각해 바로 도전하려 했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시험을 공략할 키워드는 석 달의 시간. 그리고 플레이어에게 제공되는 지원 속에 있다.’
그걸 찾기 위해 찾은 서고였다.
‘남은 기한은 두 달.’
저벅-.
유원은 본격적으로 무공 서고를 살피기 시작했다.
‘최소한 한 달 안에 찾아낸다.’
사락-.
책을 뽑아 첫 장을 펼치고, 잠깐 본 후 다시 집어넣었다.
길게 볼 필요도 없었다.
수십만 권에 달하는 책을 하나하나 뽑고, 그걸 훑어보고 분류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이 많은 서적을 다 읽어 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다. 이 많은 무공 서적 중 어떤 것을 익혀야 할지, 모든 서적을 다 읽어 보고 판단할 순 없었다.
서적의 종류를 살피고 겉과 제목을 보고, 첫 장을 보는 것처럼 시간을 단축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짚이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심법. 이건 검법. 이건…… 명상법? 이런 것도 있나?’
유원이 원하는 건 검법이나 도법, 보법 같은 게 아니었다.
‘분명 있을 거다.’
권천주.
천마신교를 이끄는 주역이자, 무림계에서 손꼽히는 고수.
랭커.
‘천마령(天魔靈)의 시작이.’
그와 맞붙을 수 있는 단서가, 여기에 반드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