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18
붉은 빛 아래 하얀 인영
중년의 미녀가 소환한 폭풍 역시 무너진 상태였다. 그녀는 피를 토하며 다급하게 후퇴했으나, 대량의 생기를 빼앗긴 후였다.
젊은 여인은 냉랭함을 유지했으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오른손은 피범벅이었다. 그녀의 몸을 두르듯 흐르고 있던 금색 강 또한 한층 느려진 상태였다.
하지만 여인은 이를 악물고는 고운 손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순간 그녀의 몸을 두른 금빛 강이 폭발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금색 빗방울이 되어 검은 두개골을 향해 돌진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검은 두개골이 움찔 멈추었다. 이때를 틈타 노인과 여인은 곧장 후퇴했다.
“흉수들이 너무 많군. 제헌진(祭獻陣)으로 녀석들부터 죽여야겠어!”
노인은 입가의 피를 소매로 닦으며 외쳤다.
그 외침에 사방의 수련자들이 뒤로 물러나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순간 진법의 빛이 그들의 몸에서 번쩍이며 드러났다.
“생기를 바쳐 요종의 진을 이룬다!”
수천 명의 수련자들이 동시에 자신의 생기를 바치며 외친 이 말에는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어려 있었다.
그들이 동시에 진을 구성하는 주문을 외친 그 순간, 거대한 균열에서는 어스름한 빛이 격렬하게 번득였다. 큼직한 아가리처럼 벌어진 균열이 거대한 소리와 함께 순간 아물렸다.
피할 시간조차 없었던 흉수들은 찰나의 순간 그대로 숨을 거두었고 용 역시 포효하면서도 맞물리는 균열 사이에 끼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거대한 머리를 거두었다.
이 광경에 노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여섯 명이 힘을 합쳐 용을 죽인 후에 진을 구성하려 했으나 자신들만으로는 용을 처리할 수 없었다.
‘이천매가 있었더라면 저 두개골과 용까지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노인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뒤이어 균열이 맞물린 이 짧은 틈을 이용해 그는 또 한 번 금단들을 소환해 두개골을 공격했다.
냉랭한 여인도 공격에 나섰다. 나머지 네 명의 수련자는 사방으로 흩어져 작은 두개골들과 떨어져 나온 흉수들을 처리했다. 오랜 시간 함께 싸워온 이들은 이제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한편, 파란 안개에 몸을 감춘 세 명의 요종 수련자들은 말없이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을 향해 달려든 몇몇 두개골과 흉수들은 안개에 닿자마자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죽고 말았다.
“이곳에서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살아남고 싶다면 강해져라! 수준을 높여라! 목숨을 건 전투를 이어나가라! 당시 우리 세 사람이 그러했듯이!”
“구유 심연의 용은 강하니 진의 효력이 다하면 우리가 처리하겠다!”
안개 속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맞물렸던 균열이 꾸물거리기 시작하더니 점차 벌어졌다. 그리고 이내 구유 심연의 용이 우렁차게 포효했다.
한데 용을 상대하기 위해 막 나서려던 안개 속의 세 사람은 흠칫 놀라더니 어딘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속도로 무언가가 다가왔다. 그것으로부터 느껴지는 막강한 기운은 숨이 막힐 정도였고 심지어 균열 밖의 흉수들은 두려운 눈빛으로 몸을 바들바들 떨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균열 안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두개골들 역시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 듯했다.
노인과 냉랭한 여인을 골치 아프게 하고 있던 거대한 두개골도 흠칫 놀라더니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도망치려 했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수련자들 역시 맹렬히 다가오는 기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몰린 그곳에서 이내 붉은 빛 한 줄기가 나타났고 그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요종에는 여섯 개의 수련성이 있었다. 이 여섯 개의 수련성은 고리 형태를 이룬 채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다. 한데 간단해 보이는 이 원 하나에는 하늘을 뒤흔들 듯 엄청난 기운이 맴돌았다. 원 자체가 하나의 진이기 때문이다.
이 진은 온 세상을 파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요종이 아주 오래전 이곳으로 보내졌을 당시의 종주가 직접 마련한 것으로 흉수들의 공격을 저지할 최후의 방어선이기도 했다.
또한 각 수련성마다 하나씩, 요종에는 총 여섯 개의 문이 있다. 각 문 안에는 요종의 장로들이 있는데 서로 왕래가 거의 없이 대부분 단독적으로 행동했다. 이는 요종이 세워졌을 당시, 초대 종주이자 마지막 종주가 정립한 것으로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었다.
각 수련성 산문 안에는 또한 똑같이 생긴 거대한 비석이 있는데 모든 비석에는 한 중년인이 새겨져 있다. 그는 구름을 타고 있어 옷깃이 펄럭였고 하늘에서 대지를 응시하고 있는 아홉 개의 눈을 마주 보고 있었다.
중년 사내의 뒤로는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라 하늘과 땅도 감당하기 버거워 보였다.
사내는 요종의 초대 종주이자 최후의 종주고 거대한 나무는 종주의 영혼으로 연결된 법보다.
소문에 의하면 요종 종주는 하늘과 땅을 놀라게 할 정도로 강력하다고 했다. 아주 오래전, 이곳 균열의 전장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컸던 시절에는 흉수와 왕수, 황수는 물론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녀석들도 들끓었다고 한다. 허나 요종 종주가 녀석들 모두를 하나하나 처리하고 균열을 거의 봉인했다.
한데 봉인을 완료하려던 순간,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누군가가 균열 안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신통력을 발휘해 봉인을 저지한 것이다. 그래서 균열이 완전히 봉인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축소됐다.
그의 봉인은 균열 안쪽까지도 은근히 영향을 미처 지나치게 강력한 흉수들이 떼로 쏟아져 나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비석에 새겨진 아홉 개의 눈이 원고 선역을 의미한다는 것은 요종의 장로 정도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들도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아주 오래전, 요종이 신종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것은 초대 종주의 명령 때문이다. 그가 신종의 일부 제자에게 균열의 전장에서 대대손손 머물면서 단 한 마리의 흉수도 나오지 못하도록 목숨을 바쳐 지킬 것을 명했다.
당시 신종의 종주가 곧 요종의 종주로 그가 원고 선역에서 온 사람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이미 실종되어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 상태로 지금 신종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당시 그의 노예였던 대리자라는 소문도 돌았다. 요종이 신종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저항할 준비까지 했던 것이 바로 그 때문이라고도 했다.
물론 모든 것은 소문일 뿐,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요종의 전장 너머, 강렬한 붉은 빛이 번득이며 그 안에서 한제가 나타났다. 얼마나 빠르게 이동했는지 2급 성역에서부터 요종의 전장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며칠에 불과했다.
“하얀 노파! 요종의 명령에 따라 이천매의 부탁을 들어주러 떠났던 노파다! 한데 곁에 있는 자는 누구지?”
“무척 강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상한 건 흉수과 두개골조차 저자가 나타나자 두려움에 떨며 도망갔다는 사실이다.”
금단을 만들어냈던 노인이 깊은 눈길로 한제를 살폈다.
“이천매 때문에 온 건가?”
냉랭한 여인은 한제를 훑어보고는 심신을 바르르 떨었다.
심지어 파란 안개에 몸을 감춘 세 사람 역시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하얀 노파, 그자는 누구인가?”
파란 안개 속 누군가가 물었다.
백의의 노파가 막 대답을 하려던 순간, 한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균열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균열 근처까지 물러나 있던 두개골과 흉수들이 날카롭게 비명을 질러댔다.
“시끄럽다!”
눈 깜짝할 사이 균열 앞에 이른 한제가 오른손을 세차게 휘둘렀다. 그러자 무궁무진한 천둥번개로 가득 찬 폭풍이 일더니 순식간에 균열 전체로 퍼져나가며 흉수들을 도륙했다.
지금 한제의 마음은 온통 이천매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요란한 흉수들의 포효에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가벼운 손짓 한 번으로 녀석들을 뭉개버린 것이다.
순간 사위가 고요해졌다. 심지어 균열 안에서 포효하던 용도 움찔했고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두개골들은 천적을 마주한 것처럼 바르르 떨었다.
그때 균열 밖의 두개골들을 훑어본 한제의 눈빛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적멸계의 마혼?’
일찍이 주작성의 역외 전장에서 탄혼이 되어 대량의 마혼들을 삼켰던 한제는 두개골들의 몸에 흐르는 마혼의 기운을 읽어낼 수 있었다. 비록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은 것도 아니었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더니 입을 벌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두개골들은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검은 기운으로 무너져 내려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대한 두개골도 마찬가지였다.
손짓 한 번으로 흉수들을 처리하고 들숨 한 번으로 두개골들을 흩어버렸다. 이 엄청난 광경에 모든 사람이 충격을 금치 못했다.
“적어도 첫 번째 천쇠는 겪은 것 같군. 한데 어째서 빛 고리가 보이지 않는 거지?”
“빛 고리를 숨길 수 있는 신통력이 있는 건가?”
“만만히 볼 자가 아니야. 하얀 노파는 이천매의 명혼 옥패를 전달해 주러 갔는데 어떻게 저런 자와 함께 왔을까? 아니, 설마⋯⋯?”
“저자가 이천매의 명혼 옥패와 관련 있는 자인가?”
안개 속 세 사람은 경계심을 옥패를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경계심을 드높였다.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음에도 한제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그는 서서히 벌어지고 있는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하지만 망설이면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운을 느꼈다.
“이천매가 저곳에 있나?”
한제는 백의의 노파에게 물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폭발을 앞둔 화산처럼 감정을 꾹 내리누르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
노파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답을 들은 한제는 균열이 벌어지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듯 두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뒤이어 두 눈이 빛으로 번득이는가 싶더니 체내에서 광기 어린 기운을 발산하며 무언가를 찢듯 두 손을 휘둘렀다. 균열을 억지로 벌리고 있는 것이다.
“멈춰! 균열 안에는 구유 심연의 용이 있어! 녀석이 나타나면 많은 수련자가 죽을 걸세! 우리가 진을 형성할 때까지 기다리게!”
파란 안개 속의 수련자들 중 하나가 말했다. 동시에 그들 셋은 균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한제는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계속해서 기운을 내뿜었고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은 그대로 찢겨 나갔다.
“캬아아아!”
균열이 벌어진 순간, 구유 심연의 용이 포효를 내지르며 입을 쩍 벌려 단숨에 삼킬 듯 한제에게로 돌진했다.
한제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에 용의 눈에 드러난 광기와 온몸을 뒤덮은 비늘에서 발산되는 검은 기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녀석은 1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몸으로 한제를 포위하려 들었다.
“감히 조잡한 뱀 따위가 나를 삼키려는 것이냐!”
한제는 싸늘하게 내뱉으면 한 손을 들어 전방을 후려쳤다.
콰쾅!
공간을 찢어발기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무궁무진한 원력이 몰려들면서 거대한 손바닥 허상을 이루더니 용의 앞을 가로막았다.
펑! 펑!
“캬오오오!”
용은 비명을 내지르며 경련했다. 몸에는 수많은 균열이 일면서 그 사이로 피가 터져 나왔다.
다급하게 물러나는 녀석의 두 눈에서 잔혹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짙은 두려움만 남아 있었다.
“안 죽어?”
한제는 기이한 눈빛으로 한 걸음 나서며 균열로 들어섰고 오른손을 다시 한 번 후려쳤다. 그의 손은 용의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뿔에 닿았다.
쾅!
“크아아아!”
두 개의 뿔이 그대로 부러졌고 용은 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허나 그럼에도 용은 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