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61
한제는 거칠게 외치며 세 번째 주먹을 날렸다. 그 주먹이 보탑을 강타했을 때, 그 위의 균열이 순식간에 뻗어나가더니 결국 보탑은 무너져 내렸다.
산산조각이 난 보탑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잠시 후, 한제는 뒷짐을 진 채 무너져 내린 보탑 안에서 여유롭게 걸어 나왔다.
천벌은 매우 강력했지만 한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천벌은 그를 벌할 수 없었다.
한제가 무너진 보탑에서 걸어 나온 그때, 상공의 균열에서는 먹먹한 포효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금빛이 번쩍이더니 세 번째 법보가 나타났다. 그것은 금빛 고리였다.
그 순간, 균열에서 발산되는 금빛은 더욱 강렬해졌고 압박감도 한층 커졌다. 이전의 두 법보에서 흘러나오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압박감은 주위를 감싼 짙은 안개 밖으로도 퍼져 나갔다.
사도환 등은 전에 없이 강력한 압박감에 화들짝 놀라며 물러섰으나, 개중 물러나는 게 늦었던 수련자들은 삽시간에 얼굴이 창백해지며 피를 토하기도 했다.
“저건 대체 무슨 법보지?”
남운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의 수준으로는 이 위압감이 수련자가 아닌 법보에서 기인한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묵직한 기운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전가 노인뿐이었다. 안개 안쪽을 들여다보다가 처음으로 한제로부터 시선을 돌려 금빛 고리를 바라보았다.
‘봉명환! 그의 기억 속, 당시 천벌을 설정할 때 썼던 세 번째 법보야. 저 법보는 선강 대륙에서도 꽤 유명하지만 안타깝게도 천벌의 일부가 되어 버렸지. 그리고 안타깝게도 내 몸은⋯⋯.’
전가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의 두 눈만은 밝게 빛났다.
‘만약 이한제가 저 법보를 굴복시킨다면 저자가 셋째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다만 결코 쉽지는 않겠지.’
한제 역시 금빛 고리에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을 똑똑히 느꼈다. 그리고 한제의 얼굴는 처음으로 흥미롭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한제의 시선이 닿은 순간, 금빛 고리는 돌연 우뚝 멈추더니 곧장 달려들었다. 동시에 이 금빛 고리는 기이하게 부풀어 올랐고 압박감 역시 폭등했다. 눈 깜짝할 사이 수천 척 크기에 달할 정도로 커진 고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한제의 몸을 뒤덮은 상태에서 급속도로 수축하기 시작했다.
한제의 두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그는 피하는 대신 그 자리에 선 채 고리가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순식간에 줄어든 금빛 고리는 한제의 이마를 에워싸면서 마치 원형 봉인처럼 꽉 조여 왔다.
이 원형의 봉인이 이마에 쩍 달라붙자 한제의 이마는 움푹 파였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파문이 체내로 주입됐고 원신에도 이마의 것과 같은 봉인이 둘러지게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원신을 봉인한 뒤 다시 주입된 형태 없는 파문이 영혼까지 봉인했다.
봉명환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바로 이런 속성 때문이었다.
한제는 침착하게 두 눈을 감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감긴 두 눈 안으로는 밝은 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이 법보에 흥미를 느낀 그는 그 구조를 연구해 허점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접 그 법보의 위력을 느껴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천벌을 마주한 상황에서 그것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그 법보를 탈취할 방법을 찾아내려 하는 것은 한제뿐이었다.
그는 본디 담이 큰 사람이었다. 수차례 죽음을 경험하고 많은 일을 겪어본 그가 눈을 감은 이때, 세상의 모든 것은 거짓이 됐고 그 거짓 속에서 한제의 심신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가동됐다.
고신으로서, 수련자로서, 다섯 갈래의 본원을 깨닫고 2천여 년간 수련을 해온 사람으로서, 또한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대학자로서 형성해낸 연구 능력이었다.
그의 심신에서 육신을 비롯한 모든 것은 흩어져 사라진 상태였다. 남은 것은 금빛 고리뿐이었다.
화려한 빛을 발산하고 있는 빛의 고리는 수십억 개의 문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빛의 고리가 실체를 갖춘 것은 그것을 이룬 문양들이 매우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각의 문양은 한 줄기 기운을 품고 있었고 수십억 개에 달하는 기운은 서로 다르면서도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것들은 회전을 하면서 한 사람의 육신과 원신, 결국에는 혼백까지 봉인할 수 있었다. 그 세 가지 모두를 봉인하는 것은 한 사람의 생명을 봉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봉멸족의 봉인의 힘과 비슷하지만 분명 달랐다.
설명은 장황했지만 사실 고리가 나타나고 한제가 이런 생각을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에 불과했다.
‘이 법보는 절반만 완성된 것이로군. 누군가에 의해 천벌에 융합됐고 천벌을 통해 끊임없이 완성되고 있지. 완성이 멀지 않았어. 1만 년 정도? 아무튼 흥미롭군. 이제 천벌이 뭔지 확실히 알 것 같다.’
한제는 미소를 지었다.
그 무렵, 균열 안에서 들려오는 포효가 더욱 또렷해졌다. 이제 마치 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거대한 인영 하나가 돌연 균열에서 나타났다.
인영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고신의 기운 한 줄기가 훅 끼쳐왔다. 그것은 분명 고신이었다. 미간에서는 여덟 개의 반점이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고 표정은 험악했다. 하지만 두 눈은 마치 이지를 상실한 듯 텅 비어 있었다. 반점 또한 한제의 것과 달리 뭔가에 의해 봉인되어 있는 것처럼 어두웠다.
“쿠아아아아!”
균열 밖으로 나온 고신은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지르고는 눈을 감고 있는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균열 안에서 또 다른 포효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키가 1만 척에 달하는 고신 셋이 동시에 나타났다.
수많은 상흔이 몸에 새겨진, 거친 피부의 세 고신 역시 한제에게로 돌진해왔다.
이제 균열 안에서는 먹먹한 소리와 함께 짙은 마기가 확산됐다. 시커먼 마기는 곧 네 명의 고마로 변했다.
각각 여덟 개의 반점을 가진 고마들은 비릿하게 웃으며 고신의 뒤를 따라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끝이 아니었다. 다음으로는 요기를 품은 날카로운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8성급 고요 넷이 균열에서 튀어나왔다.
끔찍한 생김새와 날카로운 손톱, 푸른 피부가 고요들을 더욱 무시무시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고신과 고마에 고요까지, 총 열두 명의 8성급 고족이 자신을 둘러싼 채 포효하며 달려드는데도 한제는 두 눈을 감은 채 아직도 빛 고리의 구조와 허점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가 십억 개의 문양을 살피면서 문양을 하나하나 파악할 때마다 그 문양에서 발산되던 금빛은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이때까지 한제는 십억 개의 문양 중 3할을 통제한 상태였다. 3할의 문양이 빛을 잃은 고리는 한층 어두워져 있었다.
그때, 한제 앞에 가장 먼저 이른 것은 맨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고신이었다.
그 고신의 가슴팍에는 거대한 상흔이 하나 있었다. 아주 오래전 베인 듯한 상처였다. 8성급 고신이라면 비록 왕족이 아니더라도 육신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할 터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큰 상처를 남겼다면 당시 이 고신을 공격한 자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짐작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고신은 한제로부터 1천 척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르러 있었다. 1천 척은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거대한 고신에게는 주먹만 뻗어도 닿을 거리였다.
이때 고신의 주먹과 함께 강력한 폭풍이 안개를 휩쓸며 일어났다. 그 고신의 뒤로는 거대한 허상이 떠 있었는데 그것 역시 고신이었다.
한데 이 허상의 고신은 갑옷을 착용한 채 진한 살기를 뿜고 있었고 미간에서는 무려 아홉 개의 반점이 회전하고 있었다. 저 허상의 고신은 일종의 상징으로 자신을 소환한 8성급 고신에게 전승을 해준 존재일 터였다.
그런 8성급 고신의 주먹에 온 우주가 진동했다.
광풍을 일으키며 뻗어온 주먹이 1백 척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 한제는 눈도 뜨지 않은 채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손을 뻗어 그 주먹을 막았다.
콰쾅!
이어 거대한 소리와 함께 고신의 텅 빈 두 눈 가득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기색이 드러났다. 그때, 한제가 손바닥으로 고신의 거대한 몸을 살짝 두드렸다.
쿠르릉!
그러자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고신은 한 움큼 피를 왈칵 토해내고는 무려 10만 척이나 뒤로 밀려났다.
그 무렵, 나머지 세 고신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달려들며 한제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8성급 고신 세 명이 전력을 다해 휘두른 주먹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세 개의 주먹이 코앞으로 달려든 순간, 한제의 미간에서 일곱 개의 반점이 번쩍이며 회전했다. 동시에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한제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여유롭게 반 발짝 앞으로 나서며 오른손으로 한 고신의 주먹을 살짝 건드렸다.
쾅!
짧은 굉음과 함께 온몸을 벌벌 떨던 고신의 주먹이 밀려났다. 그때를 틈타 한제는 고신의 가슴팍을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고신은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키더니 피를 토해내며 한참을 밀려났다.
이어 한제는 몸을 홱 돌려 양손을 쭉 뻗었다. 그러자 양쪽에서 날아들던 두 개의 주먹은 한제의 손에 막혀버렸다. 두 고신의 주먹은 거의 티끌만큼이나 작아 보이는 한제의 손에 잡힌 채로 멎어버렸고 이어서 고신들의 혼이 그대로 끌려 나왔다.
콰르릉!
요란한 소리가 울렸고 두 고신은 동시에 피를 뿜어내며 밀려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제가 네 고신을 물리쳤을 때 그의 이마를 옥죄고 있는 금빛 고리는 절반 정도 어두워진 상태였고 남은 빛도 빠르게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그 빛이 완전히 흩어진다면 한제는 빛 고리를 완전히 파악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고신에 이어 고마들이 달려들었다. 잔인한 표정의 고마들에게서는 짙은 마기와 신통술이 발산되고 있었다. 이 기이한 신통술은 고마의 법기가 되거나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는 혼이 되어 네 고마를 에워싼 채 한제에게로 돌진했다.
그중 한 고마가 휘두른 거대한 검은 도끼가 코앞까지 다가오는데도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는 동족인 고신을 처리할 때는 온 힘을 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마는 동족이 아니었다.
거대한 도끼가 떨어지던 찰나, 몸을 훌쩍 날린 한제는 오른손으로 도끼의 날을 꾹 눌렀다. 그러자 도끼를 쥐고 있던 고마가 덜덜 떨기 시작했다. 도끼의 날 역시 강한 진동에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마기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이 마기는 흩어질 듯하다가 돌연 한제의 오른쪽 눈동자로 몰려들더니 말끔히 흡수됐다.
동시에 앞으로 한 걸음 나선 한제는 순식간에 도끼를 휘두른 고마의 앞에 이르렀다. 뒤이어 손바닥으로 그 고마의 가슴팍을 누르더니 주먹을 꽉 쥐고는 힘껏 잡아당겼다.
“끄아아아!”
끔찍한 비명과 함께 8성급 고마의 몸은 완전히 핏덩어리로 변해 사방으로 튀었다. 허나 한제는 아랑곳 않고 손에 들린, 고마에게서 뽑혀 나온 짙은 검은색 기운을 오른쪽 눈에 넣었다.
한데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세 고마는 물러나지 않았다. 이지를 상실한 듯한 그들은 피를 쫓는 잔인한 허상만 남은 채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그중 이미 한제의 뒤에 이른 녀석이 집어삼킬 듯 입을 쩍 벌렸다. 동시에 다른 두 고마는 각기 한제의 양옆에서 신통술로 소환한 짙은 마기를 한제를 향해 쏘았다. 그 바로 뒤에서는 고요들도 다가오고 있었다.
원고 선역
한제의 이마에 걸린 금빛 고리는 빛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제는 한 줄기 얇은 금빛만이 남아 저항하고 있을 뿐이었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던 한제는 뒤로 성큼 물러나며 등으로 뒤에서 다가오던 고마를 받았다.
꽝!
“크오오오!”
우렁찬 충돌음과 함께 고마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 고마가 폭발한 마기의 폭풍 아래 온몸이 무너져 내렸을 때, 한제는 왼손을 또 다른 고마의 몸에 얹고 인과인을 발휘해 마기를 흡수한 뒤 여유롭게 몸을 날려 마지막 고마 앞에 이르렀다.
그렇게 고마의 신통술들은 한제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 채 바람처럼 그대로 지나갔고 고마가 놀랄 틈도 없이 한제의 손바닥이 가슴에 닿았다.
콰쾅!
허무할 정도로 짧은 굉음과 함께 고마의 온몸은 마기로 변해 한제의 손바닥 안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고요들 역시 이런 광경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달려들고 있었다.
한제는 제자리에 선 채 오른손으로 감은 오른쪽 눈을 문질렀다. 그리고 손을 뗐을 때, 그의 이마를 두르고 있던 금빛 고리의 마지막 빛마저 흩어져 사라졌고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안개 너머에서 이를 지켜보던 전가 노인은 잔뜩 격앙된 눈이 점점 더 밝게 빛났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저 법보를 길들이다니! 저 녀석이 셋째일 가능성은 3할이 아니라 5할이야! 나는 내부(內府)에서 수만 년, 칠채는 외부(外府)에서 수만 년을 찾았는데도 셋째를 발견하지는 못했지. 만약 내가 먼저 찾아낸다면⋯⋯?’
전가 노인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편,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뜬 순간, 미간에 선인의 불멸체로 이루어진 금빛 핏방울이 나타났다.
그 핏방울은 이마의 어두워진 빛 고리를 따라 퍼져 나가 한 바퀴를 완전히 돌았다. 그러자 빛 고리는 전보다 훨씬 밝은 금빛으로 번득였다.
하지만 그 금빛은 한제의 것이었다.
눈처럼 하얀 옷자락을 나부끼며 싸늘한 눈으로 고요들을 바라보는 한제에게서는 짙은 살육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 살육의 기운 아래,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상공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서 거대한 금색 손의 허상이 나타났다.
역령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