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39
주춤주춤 물러나던 그는 우뚝 멈춰 서더니 두 손으로 동시에 미간을 두드렸다. 그리고 몸을 뒤로 살짝 기울이면서 무언가를 휙 내던졌다.
그와 동시에 변운의 앞에 앞발을 높이 쳐든 천우의 허상이 나타났다.
“크와아아!”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뿔이 하늘에 닿기라도 할 것처럼 치솟은 천우는 하늘을 뒤흔들 듯 우렁차게 포효하며 떠오른 태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허나 천우를 소환한 후로 변운의 수준은 급격히 떨어져 공겁기 후기에서 원래의 수준인 공겁기 중기로 돌아왔다. 잠시 혼개의 능력을 포기하는 대가로 소환한 진정한 천우의 혼으로 잔야의 위력에 맞서려는 것이었다.
천우의 혼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어둠을 찢고 나타난 태양과 충돌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큭!”
순식간에 잔야가 무너져 내렸고 한제는 피를 토하며 수천 척을 밀려났다.
허나 변운 역시 휘청거리고 있었다. 삽시간에 1천 년은 더 늙어버린 듯한 그는 한 움큼 피를 토하며 다급하게 물러났다.
허나 한제는 집요했다. 그는 부상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변운을 추격했다. 혼개가 흩어진 기회에 상대를 죽일 생각이었다.
한편, 당지아는 그 뒤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방금 한제를 도운 것은 언니를 생각한 행동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변운을 뒤쫓는 한제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홱 돌려 저 먼 곳으로 사라졌다.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변운을 따라잡은 한제는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도고의 힘이 깃든 주먹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변운을 가격했다.
콰쾅!
변운은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한제 또한 몸이 바르르 떨려왔으나,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날렸다.
콰쾅! 쾅! 펑!
요란한 소리가 연거푸 울렸고 이제 변운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지금껏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한제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그저 상대를 죽이는 데만 몰두하는 자는 처음이었다.
한데 그때, 수천 리 떨어진 귀일종에서 돌연 검고 커다란 손이 불쑥 나타나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손을 본 한제는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변운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곧장 뒤로 물러났다. 거의 동시에 발아래에 파문이 일더니 곧 한제는 모습을 감췄고 검은 손은 변운을 덥석 움켜쥔 채 귀일종으로 끌고 들어갔다.
추락하던 네 개의 운석은 모두가 사라진 후에야 대지에 떨어졌다.
콰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반경 1천 리 안에는 짙은 모래 안개가 일어났고 한참 뒤 안개가 흩어져 사라졌을 때 지면은 저 아래로 꺼져 있었다. 땅속에 박힌, 수많은 균열로 뒤덮인 검은 운석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 ★ ★
한제는 무려 두 달은 쉬지 않고 이동해야만 닿을 거리의 어느 산맥 상공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의 얼굴음 매우 창백한 상태였다.
이내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는 그의 표정은 쓸쓸해 보였다.
“천우주도 떠날 때가 됐군.”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발아래 대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에게는 매우 익숙한, 당시 칠도종이 있던 바로 그 곳이었기 때문이다.
“축지성촌을 발휘해 무의식적으로 다다른 곳이 이곳일 줄이야.”
한제는 검은 안개에 휩싸인 산맥으로 돌진했다. 그리고는 당시의 기억을 더듬으며 칠도종 쪽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에 잠긴 산봉우리에 도착한 한제는 고래(古來)의 기운이 풍기는 궁전들을 발견한 뒤 중앙 대전의 전방에 마련된 광장에 착지했다. 바닥에 깔린 청석은 이미 거의 다 파손된 상태라 그 위로는 잡초가 가득 자라난 상태였다.
가부좌를 튼 채 칠도종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쓸쓸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아갔다. 어떤 의미에서 이곳은 그의 고향인 셈이었다.
그 말
한제는 두 눈을 감은 채 체내의 부상을 치료했다. 혼개는 이미 거둔 상태였고 이사를 소환해 경계를 맡겼다.
한제는 사흘 후에야 다시 눈을 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처음 방문했을 당시에는 대충 둘러봤을 뿐이라 이번에는 천우주를 떠나기 전 마음을 정리하려는 듯 천천히 거닐었다.
수많은 대전을 당시 칠도종의 제자들이 머물렀을 처소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의 걸음이 마지막에 이른 곳은 칠도종 중앙의 대전이었다. 그곳에는 칠채선존의 것이었을 거대한 의자가 하나 있었다.
조용한 대전의 바닥과 탁자 의자 위로 먼지가 두껍게 쌓인 상태였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던 한제는 두 눈을 감고 동부계의 존재를 느껴보려 했다. 문득 고향인 동부계가 그곳에 있는 모든 이가 그리워졌다.
동부계에 남은 한 아름다운 여인이 눈에 아른거렸다. 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산 위에 선 여인은 뭔가를 찾는 듯 검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참 뒤, 한제는 대전을 나왔으나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다. 앞에는 아직 잔혹한 현실이 버티고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천우주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 분명해! 그 변화로 인해 귀일종에서는 나에게 주려 한 보상을 바꾸었지. 아니, 어쩌면 그들은 내가 천우주를 배반하기를 원했는지도 몰라. 그러면서도 어째서인지 내가 귀일종을 떠나가도록 내버려 뒀지. 그리고 대혼문은⋯⋯.”
이때 한제의 두 눈이 돌연 번득였다. 뭔가를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느낌은 또렷하지 않았다.
한제는 곧장 오른손을 펼쳐 그 안에 3촌 크기의 소인을 소환했다.
소인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한제의 손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한제를 향해 세 번의 절을 올렸다.
한제는 심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손을 콱 움켜쥐었다. 방금 전 예측을 통해 보았던 것은 짙은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흐릿하고 모호했지만 그와 동시에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 상태였다.
“이렇게 보상을 한 상황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내 생각에 변함은 없을 것이네. 만약 이한제가 이를 속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천우주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하게!”
귀일종의 종주에게 대혼문과 합의한 내용이라는 증거를 요구했을 때 상대가 내놓은, 청우 선존의 신식으로 응집된 머리카락을 통해 들은 말이었다.
그 말을 다시 떠올린 한제는 곧 혼연도를 통해 얻은 흐릿한 예측의 결과에 담긴 숨은 뜻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에 잠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한제는 돌연 경련을 일으키듯 온몸을 바르르 떨다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의 두 눈에서는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말에서 강조한 단어는 ‘상황’, ‘있다’, ‘변함’, ‘속히’, 그리고 ‘배반’이야! 상황에 변함이 있으니 속히 배반하라!”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는 청우 선조가 그에게 남긴, 최대한 빨리 천우주에서 벗어나라는 경고였다.
“이토록 비밀스러운 암시를 남긴 것을 보면 내가 불공평한 대접을 받고도 천우주를 떠나지 않으려 할까봐 걱정한 모양이군. 천우주를 배반하면 난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지 못해.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하지. 청우 선조는 내가 최대한 빨리 천우주를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인가⋯⋯.”
생각에 잠긴 한제는 이 천우주에 거대한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고 느꼈다. 대혼문과 귀일종이 태도를 바꾼 이유가 바로 그 수수께끼일 터였다.
한제는 이 수수께끼가 녹마주와도 깊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전부터 천우주와 녹마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 이유가 뭔지 궁금하게 생각해오던 참이었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찾을 수 없었기에 한제는 결정을 내렸다.
“이곳은 이미 진흙탕이다. 문제가 발생한 이상 고민만 할 수는 없지. 이제 그만 천우주를 떠나자. 쉽지는 않겠지. 장애물이 적지 않을 거야. 내 추측이 맞는다면 나를 막으려 하는 자들 대부분은 녹마주 출신일 터.”
생각을 정리하고 막 떠나가려던 순간, 한제는 돌연 표정이 급변해 고개를 들어 산봉우리를 에워싼 검은 안개를 바라보다가 몸을 날려 사라졌다.
한제가 사라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마구 꿈틀거리던 검은 안개 안쪽에서 인영이 하나 나타났다.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안개 속을 관찰하던 그는 자신을 쫓는 이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칠도종 광장에 착지했다.
“빌어먹을 도중에 여러 곡절 때문에 생각보다 며칠 늦었군. 이로 인해 선조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았어야 할 텐데…”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 그는 이내 광장 한쪽에 가부좌를 틀려 했다.
그때였다. 돌연 누군가의 목소리가 광장 안에 울려 퍼졌다.
“두청!”
광장 안에 나타난 인영은 바로 두청이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겁을 집어먹고는 화들짝 놀라 곧장 날아올랐다. 허나 이내 목소리가 낯익음을 깨닫고는 오히려 화색이 돌았다.
“이 도우!”
한제는 다소 경계하는 목소리로 한동안 보지 못했던 두청을 향해 불쑥 입을 열었다.
“누가 자네를 이곳에 보냈나?”
“대혼문의 청우 선조가 몇 달 전에 찾아 왔네. 원래는 사흘 전에 이곳에 도착해야 했어. 청우 선조가 자네에게 주라고 한 물건이 있거든.”
얼른 한제 앞에 내려선 두청은 오른손으로 허공을 쥐어 검은 돌을 하나 소환해냈다. 생김새도 느낌도 공간석과는 달랐다.
평범해 보이는 돌이었다. 두청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갖은 방법으로 돌을 연구했으나 끝내 아무런 단서도 파악하지 못했다.
허나 이 돌을 한제에게 전달하라는 명을 내렸을 당시 청우 진인의 진중한 모습으로 미루어 결코 평범한 물건은 아닐 터였다.
두청에게서 검은 돌을 건네받아 자세히 살피던 한제의 두 눈동자가 순간 수축했다. 검은 돌에서 혼연도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검은 돌을 움켜쥔 한제는 두청에게 포권을 했다.
“고맙네!”
두청은 얼른 고개를 저으며 웃더니 눈을 깜빡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안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건가?”
한제는 대답 대신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말해줄 수 없네. 두 형, 연이 닿는다면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그때까지 잘 있게!”
말을 마친 한제는 하늘을 향해 한 걸음 내딛었고 이내 사라져 버렸다.
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뭔가를 깨닫고는 아쉬운 듯 속으로 한숨을 내쉬던 두청은 대혼문으로 향했다. 두청은 청우 진인에게 임무를 완수했음을 알려야 했다.
한편, 세상에 녹아든 한제가 칠도종을 떠나 다시 나타난 곳은 황량한 사막이었다. 천우주에서는 흔한 곳이 아니었다.
어두운 밤. 바람은 뼛속까지 파고들 듯 차가웠다. 일반인이라면 얼어 죽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허나 한제에게는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한제의 손에는 방금 전 두청으로부터 받은 검은 돌이 쥐어져 있었다.
그 돌을 바라보며 한제는 고민했다.
‘지금 열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