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43
도마종 종주는 그런 한제를 기이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이 상황에서도 저항하다니, 역시 지정된 사람답군. 아주 좋아. 그렇다면 우리 도마종 수인(手印)의 위력을 보여주지. 너도 알고 있지 않았던가?”
중얼거리던 중년 사내는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후려쳤다. 그러자 하늘은 무너져 내릴 것처럼 물고기 비늘 같은 파문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이전에 나타났던 하얀 도포 노인의 허상이 나타났다.
노인은 중생을 내려다보듯 저 아래에서 질주하고 있는 한제를 응시하다가 곧장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순간, 노인은 거대한 하얀색 손바닥이 됐다. 이 손바닥에 달린 손가락은 무려 일곱 개였다.
뒤이어 반대 방향 허공에서 나타난 검은 도포의 청년은 냉소하며 거대한 검은색 손바닥이 됐다. 역시 일곱 개의 손가락이 달린 이 손바닥은 마기를 발산하며 한제를 향해 내리 떨어졌다.
흑백의 거대한 손바닥 두 개가 내려와 눈 깜짝할 사이 한제로부터 수만 척 앞에 이르더니 서로 융합하면서 흑백의 빛을 번득이는 선마인(仙魔印)이 됐다. 그리고 이 손바닥이 나타난 순간, 온 세상은 어두운 밤과 밝은 낮이 뒤섞이며 흐릿해졌다.
흐릿해진 세상 속. 도주를 멈추고 그 자리에 우뚝 선 한제는 자신에게 내리 떨어지는 거대한 선마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서 절망이나 슬픔은 읽어낼 수 없었다. 약간의 아쉬움은 엿보였으나 무척 덤덤해 보였다.
한제는 자신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재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저 모완을 되살리지 못했고 형제 같은 벗들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한제는 두 눈을 감았다. 모든 발버둥과 저항을 포기한 그는 아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영혼 속의 천역주를 소환했다.
쉭 소리를 내며 하강하던 거대한 손바닥이 한제의 몸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 순간, 도마종 종주는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인 채 곧장 하늘을 향해 뻗은 오른손을 휘둘렀다.
꽈르릉!
우렁찬 음파와 광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그리고 한제의 몸을 뒤덮은 손바닥은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그저 꽉 움켜쥘 뿐이었다. 도마종 종주가 마지막 순간 공격을 멈춘 것이다.
그는 몸을 훌쩍 날려 그 손바닥과 융합한 뒤 곧장 녹마주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의 뒤로 지면에 남아 있던 도마종 수련자들 역시 저마다의 빛을 그리며 따라붙었다.
모두가 떠나가자 맹토주 안으로 옮겨졌던 거대한 산맥도 후퇴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맹토주에서는 녹마주와 사전에 협의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도마종 종주의 표정은 덤덤했지만 그는 내심 방금 느꼈던 충격에 대해 의아했다. 심지어 만약 아까 끝까지 한제를 죽이려 들었다면 엄청난 화를 입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함마저 느껴졌다. 흔치 않은 느낌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무시할 수 없었다.
고민에 빠진 도마종 종주는 더욱 빠르게 이동했다. 그는 지금 녹마주 중심, 즉 녹색 마갈의 사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자의 육신으로 녹마를 자양하고 혼으로 녹마를 부활시킬 것이다!”
★ ★ ★
몇 달 뒤, 녹마주 중앙부, 녹색 빛의 연못 안에서는 대량의 기포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근처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했다. 또한 이곳 연못의 기포가 터지면서 흘러나온 녹색 안개로 뒤덮여 있었는데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상태였다.
반경 백만 리에 퍼져 있는 연못에는 멀리서 보면 마치 거대한 전갈처럼 보이는 높은 건물이 있었다. 거대하고도 새카만 전갈이 연못 위에 엎드려 있는 형태였는데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또한 그 안에서 발산된 짙은 마기가 사방을 뒤덮어 수련자들의 접근을 막았다. 허락받지 않은 수련자가 진입할 경우 마기에 노출돼 곧장 미쳐버리고 말 터였다.
도마종 종주는 녹색 마갈 사당 밖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의 수준에는 이곳의 짙은 마기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가 거대한 전갈 형태의 건물 위에 허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전갈의 입에서 기침 소리가 흘러나왔다. 매우 허약한 기침 소리였으나 사방이 고요했던 터라 또렷하게 들렸다.
한데 기침 소리가 점점 또렷해지더니 이내 전갈 입에서 세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중 뒤에 선 두 명의 중년 사내는 공겁기 중기 수준의 위력을 발산했고 서늘한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흉포한 전갈이 그려진 녹색 도포를 입은 이들은 마치 호위무사처럼 녹색 도포 차림의 노인을 보호하고 있었다. 무척 노쇠한 듯 보이는 노인은 등이 잔뜩 굽은 상태로 계속해서 기침을 하는 중이었다.
“콜록, 콜록. 데리고 왔느냐?”
위태로워 보이던 걸음을 멈춘 노인이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도마종 종주는 노인에게 매우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데려왔습니다. 보시지요, 제사장님.”
이어서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전방에 흑백의 기운으로 덮인 한제의 인영이 나타났다. 그는 두 눈을 꼭 감고 가부좌를 튼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잘했다. 녀석은 우리 녹마주의 운을 제압하는 데 아주 적합해. 녹마님께서도 만족하실 터.”
고개를 든 노인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녹색 도포에 가려진 눈은 만족스럽다는 듯 한제를 훑었다.
“녀석을 사로잡기 위해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도마종 종주가 입을 열었다.
“녹마님께서 부활하시면 그에 대한 상을 내리실 게다. 또한 이자를 제압하는 데에는 너의 도마법(道魔法)이 필요하다. 이자의 의지를 지우고 심신과 기억을 훼손하는 방법은 잘 알고 있겠지?”
노인은 격정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의지가 매우 강한 녀석이라 기억과 심신까지 훼손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도마종 종주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쿨럭, 쿨럭. 머지않아 녹마주에는 단 하나의 종파, 도마종만 남게 될 것이다! 쿨럭, 쿨럭!”
말을 마친 노인은 이내 격렬하게 기침을 해댔다.
“좋습니다. 제사장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전력으로 도마법을 발휘해 이자의 마음속에 도마변(道魔變)을 심어 스스로 자신의 심신을 파괴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호탕하게 웃던 도마종 종주는 곧장 오른손 검지를 쭉 뻗어 한제의 미간을 두드렸다. 이어서 한제를 감싸고 있는 흑백의 빛 덩어리를 움켜쥐어 저 아래 거대한 전갈 형태의 건물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한제가 거대한 전갈에 떨어진 순간, 전갈의 등 부분에서 돌연 거대한 회오리가 나타나더니 한제를 빨아들였다.
“본원을 무려 여덟 개나 가지고 있군요. 게다가 그중 하나는 이미 진신을 갖춘 상태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와 같은 천둥번개의 본원도 있고요! 천둥번개의 본원을 연결점으로 삼아 심신과 기억을 훼손할 겁니다!”
우렁차게 외친 도마종 종주는 이내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감았다.
곧이어 녹색 도포의 노인은 콜록거리며 돌아서더니 다시 전갈의 입으로 향했다. 그의 기침 소리가 천천히 멀어져가는 동안 그의 뒤에 서 있던 두 호위무사는 끝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노인의 뒤를 따랐다.
★ ★ ★
전갈처럼 생긴 건물 가장 깊은 곳의 허공은 무궁무진한 녹색 빛으로 가득했다. 줄기줄기 빛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녹색 전갈의 혼이 잔뜩 들어 있었다. 이 공간에 응집된 그것들은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한제는 녹색 빛으로 가득 찬 이 공간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천천히 몰려든 수많은 녹색 전갈에게 몸 절반 이상이 뒤덮인 상태였다.
한제는 미동도 하지 않았으나, 오른쪽 눈에서는 번개와 같은 빛이 어렴풋이 번득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체내에서는 천둥번개 본원의 힘이 맴돌면서 파지직 하는 소리와 줄기줄기 전광이 온몸을 수시로 휩쓸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제는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심신과 의지, 영혼은 무겁게 가라앉아 좀처럼 활성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제사장과 도마종 종주등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 가운데 한제의 영혼 안에서는 구슬이 하나 회전하고 있었다.
구슬이 한 바퀴 회전할 때마다 한제의 영혼과 심신, 기억과 의지 등은 바르르 진동하면서 부드러운 빛으로 보호됐다. 마치 한제와 육신이 분리되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이 기이한 상황에 한제의 육신을 맴도는 천둥번개의 본원은 갈수록 강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진신으로 응집된 화염의 본원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 차이 역시 갈수록 좁혀지는 중이었다.
마치 체내에 생성된 보이지 통로가 가부좌를 틀고 있는 도마종 종주와 한제를 연결하고 있는 듯했다. 이 통로를 통해 이미 완성됐지만 아직 진신으로 응집되지는 않은 천둥번개의 본원은 상대의 그것과 융합해갔다.
★ ★ ★
눈 깜짝할 사이 몇 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한제의 천둥번개 본원은 점점 강력해졌고 이로 인해 체내에서는 콰쾅 하는 우렁찬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그는 통로를 통해 도마종 종주의 의지가 담긴 천둥번개의 본원을 흡수하기도 했다.
이때 거대한 전갈 형태의 건물 밖에 가부좌를 튼 도마종 종주의 미간은 점차 구겨지고 있었다. 한제의 천둥번개 본원이 자신의 천둥번개 본원을 이토록 많이 흡수하고도 아직까지 의지를 응집해내지 않을 줄은 몰랐다.
‘본래대로라면 한 달 안에 끝났어야 할 일이건만…’
자신의 의지가 깃든 천둥번개 본원으로 한제의 천둥번개 본원을 완전히 대체함으로써 상대의 심신과 기억, 의지를 모조리 지워버리는 것이 계획이었다.
제사장이 이 방법을 사용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수많은 방법으로 단숨에 한제의 심신을 지울 수 있었다. 허나 그런 방법은 너무 거칠어 상대에게 많은 손상을 입힐 수밖에 없다. 이는 후에 부활할 녹색 마갈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될 터였다.
“제사장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네 달째 되던 어느 날, 도마종 종주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 그의 천둥번개 본원은 이미 거의 한제의 체내로 끌려 들어간 상태였다.
‘기이한 일이로군. 저자는 체내에 회오리라도 담고 있는 것처럼 나의 의지를 빨아들이고 있어.’
사실 이 추측은 꽤 정확했다. 한제 체내의 천역주는 한 바퀴를 돌 때마다 한제의 영혼을 보호하고 체내로 들어온 의지를 모조리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가겠다. 콜록콜록⋯⋯.”
전갈 건물에서 노인의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침으로 인해 끊겼던 목소리는 한참 뒤에야 다시 이어졌다.
“내게는 뇌제주(雷帝洲)에서 가져온 뇌제 구슬이 두 개 있다. 본래는 녹마님이 부활하시면 흡수하시도록 준비해둔 것이나, 네게 하나를 주마.”
한 줄기 회색 번개가 전갈의 체내에서 번득이며 튀어나와 도마종 종주의 코앞으로 돌진하더니 주먹만 한 구슬로 변했다.
구슬 안에는 수없이 많은 번개가 담겨 있었는데 그 사이로 전차의 허상 하나가 어렴풋이 보였다. 전차 위로는 흐릿한 인영이 서 있었다. 그가 뇌제인 모양이었다.
식견이 넓은 도마종 종주는 이 구슬을 보자마자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동시에 무언가 갈등하는 듯 그 눈빛이 기이하게 번득였으나, 이내 그는 치솟는 탐욕을 억눌렀다.
녹마를 위해 준비한 것을 함부로 탐낼 수는 없었다. 만약 지금처럼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제사장은 이것을 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망설임 없이 도마종 종주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뇌제 구슬은 다시 번개가 되어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도마종 종주 체내의 천둥번개 본원은 폭증하더니 그가 조절하기도 전에 곧장 도마법으로 형성된 통로를 따라 한제의 체내로 몰려들었다.
전갈의 체내 깊은 곳, 녹색 빛으로 찬 공간. 한제의 몸은 격렬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체내 천둥번개 본원은 폭발적으로 치솟으면서 진신으로 응집될 조짐을 보였다.
현실이 된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