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37
“도우, 무슨 일을 겪었기에 원영기 수련자 따위가 달려들 정도로 험한 꼴이 되었는가?”
한제는 그를 바라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선계의 조각이 붕괴했네.”
거마족 사내는 흠칫 놀라며 두 눈으로 기이한 빛을 번득였다.
“지금 붕괴한 선계의 조각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말인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쓸 데 없는 소리를 했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짓더니 포권을 취했다.
“붕괴한 선계의 조각에서 도망쳐 나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우습게 여길 수 없지. 이 치호는 감탄했네! 도우를 어떻게 부르는 것이 좋겠나?”
한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운이 좋았을 뿐이지. 난 천우라고 하네.”
선계의 조각이 붕괴되던 당시를 떠올린 한제의 마음에 두려움이 일었다. 만약 선계의 기운으로 만든 결정을 삼키는 모험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지금쯤 이미 허무에 잠식되어 버렸을는지도 몰랐다.
유혼의 위엄
“천우라⋯⋯.”
치호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두 말했다.
“주작성 남부에 있는 5성 수련국 천혼국(天魂國)의 증 씨 가문 사람인가?”
한제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치호는 생각에 잠겼다. 상대는 부인했지만 치호는 상대가 경지를 숨기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가 보기에 천우라는 자는 분명 어느 5성 수련국에서 길러낸 핵심 제자일 것이다. 4성 수련국 출신이라면 그가 알지 못할 리가 없었다. 거마족 역시 4성 수련국으로 같은 성 수련국에서 난 천재적인 인물에 대해서는 상당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우, 좀 더 가까이서 대화를 좀 해도 되겠나?”
말없이 다가갔다가는 상대가 공격을 해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치호는 먼저 천우라는 자의 의사를 물었다.
한제는 침착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치호는 곧장 한제가 자리한 대의 가장자리로 다가와서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빛의 장막 하나가 펼쳐졌다. 이제 그들은 주위와 차단된 것이다.
한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으나 내심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도우는 나와 같은 주작성 사람이니 나를 좀 도와주게!”
치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음? 무슨 일인지 솔직하게 털어놓으시게.”
한제가 웃으며 물었다.
치호는 이를 악물며 옥패 하나를 꺼내 한제에게 내밀었다.
“보면 알걸세!”
한제는 옥패를 받아들고 신식으로 한 번 훑었다. 옥패에는 새가 지저귀고 꽃이 만발한 산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는 절경이 그려져 있었다.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연못이었는데 그 위에는 옥석으로 만들어진 관이 하나 떠 있었다. 그리고 그 관에는 세 자루의 선검이 꽂혀 있었는데 해골의 손에 들려 있던 그 검과 외관이 상당히 비슷했다.
한제를 더욱 긴장하게 만든 것은 옥으로 만들어진 관이었다. 만약 한제가 제대로 본 것이 맞다면 그 옥은 선옥(仙玉)이었다.
또한 연못에는 각종 식물이 떠 있었는데 그 역시 범상치 않아 보였다.
한제는 옥패를 다시 치호에게 건넸으나,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도우, 이것은 우리 거마족 군주의 것이네. 몇 년 전 선계에 들어온 뒤 무의식중에 난입한 곳이 선수(仙獸)의 보호를 받고 있었고 동시에 무수히 많은 금제가 걸려 있었지. 그분 혼자서는 경거망동할 수 없어 몰래 기록만 해 오셨다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이 발견했을 수도 있겠군.”
그러자 치호가 웃으며 대꾸했다.
“그럴 리 없네, 도우. 감히 보장하건대 다른 사람에게는 발견될 수가 없어. 미안하지만 그 이유는 지금은 말할 수가 없네.”
한제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도 나도 들어가기 굉장히 어려운 곳일 것 같은데.”
치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 둘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약속한 사람이 하나 더 있네. 세 사람이 함께 간다면 성공률은 더 높아지겠지.”
한제는 말했다.
“곧장 답을 하기는 쉽지 않군. 생각할 시간을 좀 주게.”
치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이렇게 하세. 함께할 생각이 든다면 한 달 뒤 이 옥패 지도에 나타난 조각에서 만나도록 하지. 그때 도우가 오지 않는다면 거절한 것으로 알겠네.”
말을 마친 그가 옥패 하나를 한제에게 건넸다.
신식으로 살펴보니 대나검종의 것과 마찬가지로 전송진을 활성화시키는 열쇠 역할을 하는 옥패였다. 하지만 그 옥패에서는 수많은 선계의 조각 중 오직 하나만 반짝이고 있었다.
“이 옥패를 가지고 저 소용돌이에 들어가면 지정된 곳에 떨어질 걸세. 도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네!”
치호는 포권을 취한 뒤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용돌이 안으로 진입했다. 곧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한제는 옥패를 챙긴 뒤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금번을 흔들었다. 검은 안개가 사방을 가리자 한제는 두 눈을 감았다. 그의 원신이 정수리를 통해 천천히 빠져나오더니 고통스런 표정으로 결인을 했다.
잠시 후 쌀알만 한 선계의 영기 결정체가 원신의 미간에서 억지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원신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허약해져서는 다시 한제의 육신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한참 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한 빛이 역력했다.
한제는 손에 들린 선계의 영기 결정체를 힐긋 보더니 저물대에 챙겼다. 아직 그의 경지로는 선계의 영기를 융합하는 것도 불가하니, 그 영기를 응집해 만든 결정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이것은 화신기 후기에 이른 뒤 영변기에 이를 무렵에나 흡수를 시도할 수 있는 보물이었다. 화신기 후기에 이르지 못한 수련자에게는 선계의 영기가 보물이 아니라 독약이었다.
주작성에 영변기 수련자가 적었던 것은 선계의 영기가 희소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직접 선계에 와서 영기를 흡수할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니었다.
역사가 1만 년이 넘는 대형 종파는 선계의 영기 결정을 가지고 있기도 하나, 이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종파에서도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제자나 장로뿐이었다. 하물며 영변기 수련자가 적으니 문정기 수련자는 더욱 적을 수밖에 없다.
한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원신은 상당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유혼이 있어 다행이었다. 더욱이 유혼들이 회색 옷의 수련자를 삼키면서 원신도 약간 회복한 상태였다.
한제가 저물대를 두드리자 하얀 옥석 하나가 나타났다. 옥석에서는 선계의 영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신식으로 그것을 한 번 훑은 한제는 곧장 이 선옥이라는 것은 사실 수련자의 영석과 거의 다르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다만 영석은 영기를 선옥은 선계의 영기인 선기(仙氣)를 발산할 뿐이었다.
한제는 영변기 이후의 수련자에게는 선기를 호흡하는 것도 경지를 깨닫는 것 못지않게 중요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선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한제는 선계의 영기가 얼마나 귀한지 알고 있었다. 만약 이 선옥을 주작성에 떨어뜨린다면 엄청난 쟁탈이 벌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다른 수련성에서 주작성을 침범할 수도 있었다. 비록 원신이 약간 손상을 입긴 했지만 수확은 상당했다.
한제는 선옥을 다시 저물대에 챙겨 넣은 후 이번에는 그 해골의 가슴팍에 달려 있던 금색 쇳조각을 꺼냈다. 손뢰에 따르면 방어용 법보였다. 허나 한제는 그 쇳조각에 손을 댄 순간 이것이 무기일 리가 없다고 느꼈다.
한제는 곧장 신식을 펼쳐 쇳조각을 살폈다. 한데 신식이 그 쇳조각에 이른 순간, 한제는 머리가 뒤흔들리는 듯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러더니 뒤이어 여러 정보들이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한참 뒤 눈을 뜬 한제는 놀란 눈으로 쇳조각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 물건이야말로 그 동굴에 있었던 세 가지 중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일 것이라 확신했다.
이 쇳조각은 일종의 옥패인데 사신차(射神車)라는 것의 제조 방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쇳조각의 기록에 따르면 그 해골의 주인은 자칭 천보상인이라는 자로 선계에 들어온 뒤 수련에는 관심도 갖지 않고 모든 힘을 법보를 만드는 데 쏟았다. 사실 그가 선계에 온 이유도 세상에서 가장 강한 위력을 가진 법보인 사신차를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꿈은 선계의 재난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일생을 사신차 연구에 바친 그는 결국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채 동굴에 봉인해 두었다.
그는 동굴을 나가 필요한 재료들을 구하던 중이었으나 그때 재난이 미치는 바람에 그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일생을 쏟아부은 연구를 이대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던 그는 누군가가 그것을 발견해주기를 바라면서 이 쇳조각에 자신이 완수하지 못한 사신차의 제작 방법과 동굴의 주소를 기록해두었다. 이 쇳조각을 발견하는 자가 가능하면 연구를 이어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사신차의 제작방법은 매우 복잡했고 재료 또한 대부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라 제작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쇳조각의 기록대로라면 그 동굴에는 사신차가 몇 개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정보까지 접한 한제는 가슴이 뛰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금번을 회수한 뒤 대 위의 소용돌이로 향했다.
대 위에 있던 여러 사람들은 한제를 보자 시선을 피했다. 그들은 대부분 원영기로 감히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부상을 입은 수련자가 있으면 약탈을 할 생각으로 이곳에 있는 자들이었다.
한제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을 훌쩍 날려 소용돌이 안으로 향했다. 곧 한제의 몸은 끊임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쇳조각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천보상인의 동굴은 선계의 서쪽에 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의 선계는 이미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그 동굴이 여태 존재하는지, 이미 누군가에 의해 발견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한제의 몸은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지다가 동쪽의 어느 조각에 착지했다.
사방을 둘러본 한제는 다시 위로 떠올라 소용돌이 위의 대에 이르렀다. 그리고 곧장 소용돌이에 진입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한제는 마침내 서쪽의 어느 조각 위에 이를 수 있었다.
천보상인의 설명에 따르면 그 동굴은 호랑이 모양의 산봉우리 아래에 있다. 허나 신식으로 훑은 결과 이 조각에서는 호랑이 모양의 산봉우리는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한참 고민한 끝에 한제는 다소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이 선계의 조각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두 명의 수련자를 마주쳤는데 서로 살피기만 할 뿐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며칠 뒤, 한제는 아무런 수확도 없이 다시 위로 솟아올라 소용돌이를 통해 또 한 번 떨어져 내렸다. 소용돌이 근처의 대 위에 있던 사람들은 며칠 동안 한제가 계속해서 그곳을 드나드는 것을 보고 의아했으나, 감히 그 이유를 묻지는 못했다.
이번에 한제가 도착한 곳은 서쪽이 아니라 동쪽 가장자리였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떨어져 내려도 언제쯤 원하는 조각에 도착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실망한 그가 막 하늘로 솟아올라 떠나려하던 그때, 갑자기 전방에서 두 갈래의 법력의 파동이 나타났다. 두 사람이 앞과 뒤에 서서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앞 사람은 검은 구름으로 뒤덮인 채 바람처럼 날고 있었고 뒤에 있는 흰색 옷의 사내는 부채를 쥔 채 냉소하고 있었다.
이때, 앞에서 도망치던 사내는 한제를 발견하고 얼른 다가오며 소리쳤다.
“도우, 나 좀 도와주게!”
하얀 옷의 사내는 음침한 얼굴로 손에 든 부채를 착 접더니 앞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손 하나가 나타나더니 앞에서 도망치는 사내를 향해 뻗어졌다.
앞쪽의 사내는 그 거대한 손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깜짝 놀랐으나, 그 큰 손이 움켜쥔 순간 사내는 기이하게도 수많은 검은 벌레가 되어 손가락 틈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한제로부터 1천 척 정도 거리의 앞에 나타났다. 한제는 그가 주작성에서 온 그 음흉한 눈빛의 소년이라는 것을 알았다.
소년은 어두운 표정으로 더는 도망치지 않고 몸을 돌려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하얀 옷의 사내를 마주보았다.
하얀 옷의 청년은 한제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도우, 이 일은 자네와 관련이 없으니 비켜주게!”
소년이 곧장 입을 열었다.
“도우, 저자는 내가 가지고 있던 선기(仙氣)의 결정을 빼앗았네. 만약 나를 도와 저자를 죽여준다면 그 결정을 자네와 반으로 나누겠네!”
하얀 옷의 청년은 눈을 가늘게 뜨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헛소리가 심하구나. 오히려 네놈이 내 물건을 가로챈 것 아니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