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36
얇은 선의 수는 전혀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달려드는 선들의 선봉에는 여전히 검은 선이 있었다.
손뢰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의 원신이 정수리 위로 떠올라 부채를 쥐었다. 그 순간, 원신은 마치 그 부채가 불에 달군 인두라도 되는 듯이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부채를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바람이 휘몰아쳤고 그 얇은 선들은 우뚝 그 자리에 멈췄다. 검은 얼음들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를 모두 검은 얼음의 세계로 바꿔버렸다.
원신을 회수한 손뢰는 앞의 동굴 입구를 향해 달려가며 웃었다.
“도우, 내 힘에는 한계가 있어서 이 봉인은 10초 정도만 유지되네. 돌아와서 다시 도우를 구해주겠네!”
손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한제의 입가에는 미묘한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계획대로 손뢰는 지금에서야 부채를 사용했다. 회복된 얇은 선들에게 한제를 미끼로 던진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원하던 보물을 손에 넣는다 해도 미친 듯이 추격하는 얇은 선들에게서 도망치기란 힘들 것이다. 게다가 만약 자신이 선검을 가져간다면 더욱 필사적으로 추격해올 것이 분명했다.
그는 선검을 손에 넣은 뒤 그 해골을 한제에게 던져버릴 생각이었다. 그럼 그 얇은 선들이 한제를 두고 자신을 쫓아올 리는 없을 터였다.
허나 줄곧 손뢰를 경계하고 있던 한제가 그대로 둘 리가 없었다. 비록 이 검은 얼음은 분명 기이한 존재였지만 한제는 이미 꺼내둔 나무 조각상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 검은 얼음이 사방의 봉인에 가까워진 순간, 나무 조각상에 새겨진 세월의 경지가 발산되었다.
유수처럼 빠르게 흐르는 시간도 세월이었고 거꾸로 흐르는 것 역시 세월이었다. 이 세월의 경지에서 시간의 변화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었다. 그것이 바로 세월의 경지가 갖는 장점이었다.
한제는 석주 공간에서 오랜 시간 수련을 해오면서 시간의 역변에 대해서는 아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세월의 경지를 흉내 낼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한 줄기의 기이한 빛이 나무 조각상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검은 얼음에 섞여 들었다. 그리고 이 세월의 경지를 이용한 한제는 손뢰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속박에서 빠져나왔다.
봉인 안에서 번쩍 하고 뭔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손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얼음에 붙들린 얇은 선들을 지나 동굴 밖에 나타났다.
“도우, 그 세령(洗靈)의 나무도 아직 주지 않고 어찌 그리 급하게 들어가는가?”
손뢰는 화들짝 놀랐으나, 재빨리 결단을 내리고는 저물대에서 세령의 나무를 꺼내 한제에게 던졌다.
한제가 세령의 나무를 저물대에 챙긴 후 몸을 돌려 동굴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손뢰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시간을 아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기에 얼른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해골의 가슴팍에 달린 금빛 쇳조각을 떼어낸 한제의 모습이었다.
손뢰는 재빨리 시체의 손에 들린 선검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선검에 닿는 순간, 그는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의 오른손에 순식간에 수많은 핏방울이 맺혔다.
한제는 본 척도 않고 몸을 틀어 동굴을 빠져나갔다. 그의 손에 들린 금번에서는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고 그 안에서 금제로 이루어진 몇 마리의 용이 튀어나와 한제의 몸을 감싸더니 우르릉 소리를 내며 위쪽 벽을 뚫고 솟아올랐다.
손뢰는 시뻘게진 눈으로 이를 갈고는 다시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고통을 참고 선검을 꽉 틀어쥐었으나, 이내 더 큰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오른손은 황황한 금빛에 베어나가며 피범벅이 됐다. 심지어 가슴팍까지 그 금빛에 베였고 옷 안에 입고 있었던 은빛 갑주는 곧장 녹아내렸다.
얼른 손을 거둔 손뢰는 선검을 포기하고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지른 뒤 동굴에서 빠져나갔다. 벌써 시간이 꽤 흘렀다. 지금 도망친다면 살아남을 작은 희망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그 검은색 얇은 선이 갑자기 꿈틀 하더니 검은 얼음에서 빠져나와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손뢰에게 달려들었다.
손뢰는 기겁했다. 스승님은 분명 그에게 10초 정도는 버틸 수 있노라고 자신했는데 그보다 더 빨리 풀려난 것이다!
사실 검은 선은 번개공을 흡수하면서 천지의 위력이 배어 더 강력해진 것이었으나, 손뢰나 그 스승이 이 사실을 알았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한제의 세월의 경지가 검은 얼음의 봉인을 조금 약화시킨 탓도 있었다.
선계 조각의 붕괴
이제 도망칠 시간은 없었다. 검은 선이 다가오며 죽음의 그림자가 손뢰의 온몸을 뒤덮었다. 위쪽으로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 한제를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 광기가 어렸다.
그가 이마를 치자 이마에서 검은 구슬 하나가 튀어나왔다. 손뢰는 매우 아쉬운 듯 그 검은 구슬을 내려다보았다. 이것은 그가 수백 년간 수련한 공법을 소화한 것으로 화신기 중기에 이를 때 응집해낸 결과였다. 문파의 공법에 따르면 이 구슬은 앞으로 두 번째 원신이 될 중요한 존재로 구슬이 없으면 그의 경지는 화신기 중기에서 원영기로 대폭 떨어질 것이다.
“폭발!”
손뢰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그 검은 구슬은 곧장 검은 빛을 번득이더니 순간 펑 하고 자폭했다. 한 줄기 검은 고리 모양의 파문이 퍼져 나왔고 가장 앞서 다가오던 검은 선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잔뜩 웅크린 채 그 파문에 저항했다. 하지만 그 뒤에서 이제 막 검은 얼음의 봉인에서 풀려난 얇은 선들은 파문의 공세 아래 옴짝달싹 못 한 채 하나하나 흩어져버렸다. 심지어 사방의 동굴 벽들도 붕괴하는 것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그 구슬이 자폭하면서 낸 위력은 이 선계 조각이 버틸 수 있는 임계점에 달했다. 순간, 하늘과 땅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공간의 균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갈수록 많아졌고 또 갈수록 커졌다.
땅 위에 흐르던 용암은 마치 폭발하는 것처럼 펑펑 소리를 내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온 하늘과 땅이 격렬하게 흔들렸고 멸망의 빛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확산되었다.
뒤이어 하늘과 땅은 마치 집어삼켜지듯 서서히 소멸되기 시작했다.
손뢰는 자폭하던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편 도망치던 한제는 아래에서 파멸적인 기운이 솟아오르면서 순간이동을 구속하는 힘이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에 순간이동을 하려던 그는 돌연 우뚝 멈추었다. 사방의 대지가 뒤흔들리는 것을 명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선계의 조각이 붕괴하는 것인가?”
한제는 이 변고를 단박에 파악했다. 순간이동을 쓰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멋모르고 순간이동을 했다가 공간의 균열 안에서 나타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제는 속으로 욕을 지껄이며 전력을 다해 금번을 휘둘러서는 번개처럼 질주했다. 그를 구속하던 기이한 힘이 사라진 덕분에 한제의 속도는 원래 상태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지면의 붕괴 속도는 매우 빨라,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 1천 척 범위 밖이 이미 어두운 허무로 변해버렸다. 그 허무는 마치 커다란 입을 벌린 채 끊임없이 이 선계의 조각을 삼켜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한제의 간담이 순간 서늘해졌다. 1천 척 밖에서 시작된 붕괴는 어느덧 5백 척 범위로 줄어들었다.
한제는 숨을 들이마신 뒤 몸을 훌쩍 날려 질주했다.
허무는 계속해서 그 범위를 넓혀가며 가까워졌다. 3백 척, 2백 척, 1백 척⋯⋯.
한제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와 지표면 사이의 거리는 아직 한참 남은 상태였다.
한제는 저물대를 두드려 쌀알만 한 결정을 꺼냈다. 선계의 영기를 응집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1백 척, 50척, 30척⋯⋯. 허무는 계속해서 포효하며 다가왔다.
한제는 30척 밖에 자리한 허무의 커다란 입이 쩍 벌려지는 것을 보며, 선계의 영기 결정을 삼켰다. 그 순간, 그의 원신은 처음으로 통증을 느꼈다. 선계의 기운으로 부풀어 오르는 느낌에서 비롯된 통증이었다. 원신이 타오르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허무의 어둠은 더욱 가까워졌다. 30척, 20척, 10척⋯⋯.
한제는 거꾸로 솟아오르는 유성처럼 갑자기 위쪽으로 돌진해 이전의 몇 배에 달하는 속도로 지면을 뚫고 나갔다. 그리고 그가 지면을 뚫고 나간 순간, 이 조각의 대지는 대부분이 어둠에 잠겨버렸다.
발아래는 온통 어둠뿐이었다. 멀지 않은 몇몇 곳에만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 같은 돌 조각이 있을 뿐이었다. 허나 그중 몇 개는 계속해서 줄어들다가 마침내 사라졌다. 하늘에도 갈래갈래 균열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제는 느끼지 못했다. 그는 유성보다도 더 빠르게 지면을 뚫고 올라 하늘로 솟아올랐다.
하늘은 온통 공간의 균열투성이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은 서로 연결된 균열이 형성한, 대지와도 같은 검은색 허무였다.
한제는 끊임없이 위로 상승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의 앞에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한데 이어지며 허무를 형성했다.
한제는 단번에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갔다. 사방이 어둠에 뒤덮였다. 강렬한 한기가 가득 느껴졌고 한제의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
한제는 자신의 몸을 통제하여 뒤로 물러나 끊임없는 몸부림 속에 아직 맞물리지 않은 공간의 균열에서 다시 빠져나왔다. 그리고 결국 이 선계의 조각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순간, 한제는 하늘을 뚫고 올라 사라졌다.
점점 더 높이 날던 한제는 멀찍이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볼 수 있었다. 처음 선계의 조각에 진입했을 때 통했던 바로 그 소용돌이였다.
그 소용돌이 아래에는 평평한 대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몇몇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그 대 위에 이르자마자 울컥 피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하지만 쓰러지기 직전, 남은 힘을 끌어모아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유혼들이 쏟아져 나왔다.
역외전장에서 모은 수만 마리의 유혼이 포효하며 한제의 곁을 맴돌아 검은 회오리바람을 형성했다. 대 위에 있던 사람들은 사색이 되어 뒤로 물러났다.
가까스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제는 저물대에서 몇 개의 약병을 꺼내 단약들을 집어삼킨 뒤 호흡을 시작했다.
소용돌이 아래쪽에 자리한 거대한 대 위에서 1만여 마리의 유혼들이 웅웅 소리를 내며 사방을 회전했다. 그들의 음산한 눈빛은 시시때때로 대 위에 서 있는 몇몇 사람들을 향했다.
사실 그가 역외 전장에서 모은 유혼은 이미 10만 마리를 넘었으나, 그들 중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이 1만 마리 정도에 불과했다.
이 유혼들은 마혼보다는 약하지만 대신 상대의 경지에 신경 쓰지 않고 두려움 없이 달려든다. 1만 마리의 유혼이 화신기 수련자를 이겨낼 수 있는지는 알지 못했으나,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제는 당시 고왕이 무수히 많은 유혼들에게 에워싸여 고생하다가 육신이 삼켜졌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 유혼들 중에는 분명히 다른 존재가 하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혼과 똑같았지만 그 두 눈에는 한 줄기 영력이 깃들어 있었다. 바로 허이국 마혼이었다.
그는 유혼들 틈바구니에 섞여 득의양양한 모습이었다. 주인이 자신을 꽤나 아끼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마혼들이 죽었으나 자신은 무사했다. 게다가 곁에는 후배 격인 유혼들이 잔뜩이었다. 앞으로도 안전할 터였다.
유혼의 회오리는 매우 컸고 대 위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눈도 떼지 못하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이마에 도끼 모양의 낙인이 찍힌, 주작성에서 온 거마족 사내도 있었다.
그의 곁에는 회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 하나가 있었다. 그의 두 눈은 음산했고 코는 뾰족했으나 끝이 약간 굽은 것이 상당히 음침해 보였다. 그는 한제 쪽을 힐끗 보더니 앞으로 나왔다.
거마족 사내는 비웃는 눈으로 그 중년 남자를 보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저자의 경지는 원영기 후기 절정에 불과했다.
그 회색 옷의 사내는 조심스레 다가갔고 유혼들과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가 오른손을 들며 주문을 외우자 그의 손에서 한 덩어리의 검은색 화염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그리고 화염 주위로는 한 층의 열기가 나타났다.
탐욕에 가득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던 그자는 화염을 휙 내던졌다.
그때, 한제 곁을 맴돌던 유혼들이 우뚝 멈추더니 일제히 그 사내를 주시했다. 회색 옷의 사내는 곧장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유혼들은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돌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중 3분의 1는 그 화염 덩어리로 나머지 3분의 2 정도는 그 회색 옷의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상당히 소름끼치는 광경이었다.
그 회색 옷의 남자는 깜짝 놀라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는 손에 나타난 비검을 휘두르며 유혼들을 썰어버렸다.
하지만 이 유혼들은 법술에 어느 정도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다. 엄습하는 검광에 몇몇 유혼은 속도를 늦추었지만 뒤에 있던 수많은 유혼들은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중 일고여덟 마리는 이미 그 사내의 몸에 들러붙었다. 그는 순간 안색이 변해 혀끝을 깨물더니 피를 토해냈다. 그 피는 곧장 한 덩어리 화염이 되어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사내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마에 송글송글 땀을 흘려가면서 호흡했다. 체내로 들어온 유혼들을 쫓아내려는 모양이었다.
그의 주위에는 잔뜩 모여든 유혼들이 그를 감싼 채 화염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천천히, 그 사내를 뒤덮은 화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언제든 꺼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편 검은 화염은 달려든 유혼들의 공세에 점점 어두워지다가 결국 몇몇 유혼들과 함께 한제로부터 30척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소멸해 버렸다. 남은 유혼들은 사내를 향해 달려들지 않고 한제의 곁을 배회했다.
회색 옷의 사내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다. 선계에 들어올 정도의 수련자라면 각 수련성의 정예 수련자일 것임은 알고 있었으나, 중상을 입은 상대라면 당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은 그 수련자는커녕 이 알 수 없는 존재들에게도 대항할 수 없었다. 만약 상대가 회복을 마친다면 자신은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왼손을 휘둘러 작은 솥을 쥐었다. 못내 아쉽지만 이 솥을 통해 원래 자신이 속한 수련성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가 작은 솥을 막 활성화시키려던 그 순간, 좌선하고 있던 수련자가 갑자기 번쩍 눈을 뜨더니 오른손을 뻗어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회색 옷의 사내에게 들려 있던 작은 솥은 그의 손을 벗어나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제의 손으로 옮겨갔다.
깜짝 놀란 사내의 얼굴은 새하얗게 변했다.
한제는 음침한 눈빛으로 손을 다시 휘둘렀다. 한없이 가벼운 손짓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회색 옷의 사내를 감싼 화염은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그 순간, 회색 옷의 사내는 순간이동을 해 소용돌이 밖에서 나타났다. 이제 선계의 조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살길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유혼들이 그보다 훨씬 빨랐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수많은 유혼이 그의 체내로 뚫고 들어갔고 그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과 함께 대 위로 뚝 떨어졌다. 이미 목숨이 끊어진 후였다.
천천히, 그의 몸에서 피와 살은 사라지고 해골만 남았다. 유혼들은 기쁜 듯 그 뼈를 파고들었다.
한제가 의식을 통해 지시하자 유혼들은 모두 그의 미간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을 지켜본 거마족 사내는 하하 웃으며 앞으로 몇 걸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