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36
“만표!”
“왜 그러나?”
둔천이 의아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만표라는 자 만난 적이 있습니다.”
“만표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한제는 만표와 관련된 이야기를 둔천에게 해주었다.
“흥미롭군! 수만 년 동안 살아온 늙은이라면 분명 문정기를 돌파했겠지. 그러지 않았다면 여태 살아 있을 리 없을 테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동하던 둘은 어느덧 주작대륙 북쪽 끝에 이르렀다.
곧장 그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한제의 눈빛이 변했다. 그보다 한 발 앞서 상황을 파악한 둔천은 한손으로 한제를 잡고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한 줄기 푸른색 빛의 장막이 눈 깜짝할 사이에 주작대륙 변방에서 솟아올랐고 빛의 장막이 온 주작 대륙을 뒤덮었다.
“주작진(朱雀陣)!”
둔천이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내뱉었다.
주작진은 주작성의 가장 강력한 진으로 온 주작성을 뒤덮어 외부 수련성의 수련자나 요마들의 진격을 막을 때 사용하는 보호막이었다. 작게는 한 사람만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고 그 강도는 비할 데 없이 뛰어났다.
“보아하니 주작국은 선유족에 대항하기 위해 큰 결심을 한 것 같네. 주작진을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소모되는 영석과 선옥의 양은 상상을 초월하지.”
둔천은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으로 앞을 두드렸다. 순간 한 줄기 검은 기운이 손가락 끝에서 튀어나와 검은 빛을 이루더니 그 푸른 막에 떨어졌다. 그 순간, 푸른 막이 요동치더니 뒤이어 푸른 빛으로 이루어진 허상의 주먹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 그 검은 빛을 때렸다.
펑!
충돌 이후 검은 빛은 흩어져 사라졌고 거대한 주먹은 빛의 장막으로 되돌아갔다.
“주작진에 거마족의 신통술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니 거마족의 피도 섞여 들어간 모양이야.”
둔천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네는 거마족에 후환을 남겨놓으면 안 되었던 거야. 나였다면 그들을 모두 죽여 버렸을 걸세. 선유족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주작의 두 번째 제자 건풍이 직접 모든 거마족의 봉인을 풀어주고 그들을 주작국으로 데려왔다네. 거마족의 신통술이 필요했던 거지. 거마족의 피가 있으면 주작진은 거마족의 천부적인 신통력까지 발휘할 수 있으니까!”
한제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당시 치호 때문에 차마 모든 거마족을 죽이지는 못했던 것이다.
둔천은 서늘한 눈으로 주작진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주작진으로 대륙 전체를 포위했다면 1만 리 간격으로 누군가가 진의 눈 역할을 하고 있을 터! 얼른 모습을 드러내라! 그러지 않으면 선유족이 오기 전에 내가 이 진에 커다란 구멍을 낼 것이다. 나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한다. 딱 셋을 세겠다.”
둔천이 둘까지 셌을 때, 인영 하나가 장막 안에서 나타났다. 하얀 옷을 입은 그는 용모가 준수했으나 사악하고 기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진정하시죠, 선배님. 나오라고 하셔서 이리 나왔습니다.”
그는 여유로운 얼굴로 웃으며 답했다.
“열어라!”
“그러죠.”
둔천의 차가운 목소리에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두드렸다. 순간 장막에 틈이 하나 생겼고 둔천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주작대륙 안으로 들어갔다.
한데 한제가 뒤를 따르려던 그때, 그 사내가 손으로 허공을 때렸다. 그러자 빛의 장막이 곧장 다물리며 한제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둔천의 분노에 찬 질책에도 상대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 진정하시라니까요. 악의는 없습니다. 그저 그 유명한 천우 도우와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을 뿐입니다. 천우, 나와 한 번 겨뤄보겠는가?”
남자는 빛의 장막 밖에 있는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누구냐?”
한제는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천우, 우리가 대면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지만 나는 자네에 대해 오랫동안 알아왔네. 특히 나의 첩 홍접은 자네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지.”
그 말에 한제의 두 눈이 번득였다.
“건풍!”
사악하고 기이한 느낌의 남자 건풍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 대해 알고 있었나? 말 안 듣는 사매가 자네 앞에서 내 흉을 본 모양이군.”
“됐다, 건풍. 주작진을 거둬라. 네놈과 실랑이를 벌일 시간이 없다. 말을 듣지 않는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둔천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악의는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선배님께서 찾으신 후계자는 저와 겨룰 용기조차 없답니까? 걱정 마십시오.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저 이야기나 좀 하려는 겁니다.”
건풍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에 둔천이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한데 그때, 한제가 불쑥 입을 열었다.
“좋다. 원한다면 그리하지.”
건풍은 눈을 번득이더니 돌연 통쾌하게 웃어댔다. 그러더니 몸을 날려 장막 밖으로 나와 한제로부터 1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섰다.
“좋아, 과연 이원봉과 거마족 선조를 죽인 자답군.”
한제는 애초에 이야기를 나눌 생각은 없다는 듯 곧바로 저물대에서 선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러더니 선력을 불어넣어 크게 휘둘렀다. 그는 건풍과 처음 대면한 사이였지만 그에게 좋은 감정은 전혀 없었다.
상당한 힘이 실린 예리하고 깨끗한 검광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건풍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을 두드렸다.
쾅!
거대한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한제는 이번 공격에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극한의 선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그 위력은 가히 놀랄 만했다.
건풍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 1천 척 넘게 이동한 후에야 겨우 선검의 위력을 막아낼 수 있었다. 이제 그에게서는 방금과 같은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한제의 손에 들린 선검을 바라보았다.
“선보(仙寶)!”
그의 오른손 검지는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 줄기 선혈이 흘러 손가락 끝에 맺혔다가 뚝 떨어졌다. 오른팔에서는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아무리 상대가 선보를 이용해 전력을 다한 것이라 해도 이 정도의 위력을 보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내심 당황했다.
건풍이 밀려나는 순간, 한제는 곧장 입을 벌려 한 줄기 검은 빛을 토해냈다. 이어서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순간 십억존혼번의 허상이 나타났다. 혼번을 휘두르자 모든 혼백이 쏟아져 나왔다.
한제는 현재 자신의 실력으로는 건풍에게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선공을 퍼부어 상대가 손쓸 틈 없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1억 개가 넘는 혼백이 쏟아져 나왔을 때 한제가 눈을 번득이며 외쳤다.
“흡수!”
12개의 주요 혼백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곧장 건풍에게 달려들었다.
건풍이 푸른빛의 장막 밖으로 나왔을 때부터 혼백들에게 둘러싸일 때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건풍에게는 손을 쓸 기회조차 없었다. 그가 상대를 얕잡아보지 않았다면 애초에 한제는 혼번을 쓸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보기에 한제는 비열했다. 말을 하고 있는 사이 공격을 퍼붓다니, 이는 습격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보며 둔천은 오히려 기뻐하며 껄껄 웃었다. 그가 보기에 천우는 연혼종의 정수를 잘 알고 있었다. 아예 공격을 안 한다면 모를까, 기왕 할 거라면 선수를 빼앗아야 하는 법이었다.
건풍
건풍을 둘러싼 혼백들은 쉭쉭 소리를 내며 점점 압박을 가해왔다. 특히 12개의 주요 혼백은 정말 위협적이었다.
건풍은 잔뜩 구겨진 얼굴로 저물대에서 붉은 송곳을 꺼내들었다.
“주작 송곳!”
둔천의 표정이 변했다. 주작이 저 건풍이라는 녀석을 총애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런 법보를 줄 리 없었다.
“천우, 저것은 주작의 법보로 준선보에 속하는 것이라 위력이 상당하네.”
둔천이 신식을 통해 소리를 전달했다.
그 말을 들은 한제는 본디 과감하고 단호한 성격답게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외쳤다.
“폭발!”
그 한 마디에 1억 마리가 넘는 혼백들이 곧장 자폭했다.
쾅, 쾅, 쾅!
수많은 혼백들의 자폭이 일으키는 위력은 무궁무진했다. 건풍은 다급하게 송곳을 거둔 뒤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손으로 결인을 했다. 순간, 주작 대륙을 뒤덮고 있던 주작진이 흔들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주작 대륙 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는 건풍의 몸을 뒤덮었다.
그의 몸에서 푸른 빛이 번득이더니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사방을 휘저었다.
수많은 혼백들이 일으키는 강렬한 힘에 빛의 장막은 격렬하게 흔들렸고 그 안에 있던 건풍도 휘청거리며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한제는 손을 들어 12개의 주요 혼백을 거두고는 대륙 안으로 들어가 둔천 곁에 섰다.
한제의 존혼번은 12개의 주요 혼백을 거둔 뒤 한 줄기 검은 빛이 되었고 한제의 원신으로부터 날아가 둔천의 체내로 들어갔다. 그리고 둔천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십억존혼번과 융합되었다. 두 번만 사용할 수 있는 허상의 십억존혼번이었기에 이제 힘을 다한 것이다.
둔천은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눈빛을 번득이다가 이내 손을 내려놓았다. 건풍이 지금 주작진으로 보호받고 있는 이상 네 번째 주요 혼백을 동원하지 않는 한 그를 죽일 수 없었다.
한편, 한제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덤덤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건풍의 몸을 둘러쌌던 푸른 빛이 흩어졌다. 어두웠던 얼굴도 원상태를 회복했다. 허나 한제를 바라보는 두 눈에는 분노가 어려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마음을 다잡은 후 분노를 억누르더니 다시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대단하군! 이제야 자네의 위력을 실감했어.”
“별 말씀을…”
한제가 덤덤하게 말했다. 멀지 않은 곳의 숲을 슬쩍 바라보던 그는 작은 한숨을 내쉰 뒤 몸을 훌쩍 날려 연혼종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둔천은 비웃는 듯한 눈으로 건풍을 힐긋 본 뒤 한제를 뒤따랐다. 두 사람은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건풍의 눈에 분노의 빛이 다시 차올랐다. 그는 한제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