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35
꼽추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후 부족원들과 검은 구름을 이루어 다시금 전진했다.
둔천은 돌연 우뚝 멈추며 냉소했다.
“천우, 잘 보게. 문정기 수련자와 맞먹는다는 선유족의 구엽 술주사가 이 십억존혼번을 얼마나 두려워하게 되는지 말이야!”
둔천은 말을 마친 뒤 몸을 돌려 선유족 쪽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한 줄기 빛이 번개처럼 튀어나오더니 구엽 술주사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왔다.
둔천은 기다렸다는 듯이 두 손으로 결인을 한 뒤 혀끝을 깨물어 피를 뿜어낸 후 외쳤다.
“나와라, 5억 개의 존혼(尊魂)과 13개의 주요 혼백!”
순간 세상이 어둑해졌다. 온 하늘이 검은 막으로 뒤덮인 듯했으며, 온 땅은 지옥으로 변한 것 같았다. 이어 끝없는 혼백들의 비명 소리가 들끓었다.
혼백들이 혼번에서 쏟아져 나와 빽빽하게 사방을 뒤덮었다. 그중 13개의 주요 혼백들은 눈을 번득이며 선유족의 중년 남자를 응시했다.
“잘 봐라, 이것이 바로 존혼번의 진정한 사용법이다. 혼진(魂陣)!”
둔천이 외치며 몸을 뒤덮고 있던 혼번을 펼쳤다. 다시금 30척 길이의 깃발 모습으로 돌아간 혼번이 앞을 향해 휘둘렸다. 그러자 하늘을 뒤덮은 5억 개의 혼백들이 모종의 규칙에 따라 사방을 휘젓다가 13개의 주요 혼백을 중심으로 거대한 진을 이루었다. 금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한제로서도 파악할 수 없는 진이었다.
“연혼!”
둔천은 크게 외치며 오른손을 앞으로 뻗어 쥐었다.
순간 그 혼백들로 구성된 진이 우르릉 하고 한 번 떨리더니 모든 혼백이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일종의 주문인 듯했다.
돌연 검은 기운이 혼백들로부터 피어올라 한데 결합하더니 거대한 손이 나타났다. 이 거대한 손은 마치 둔천의 분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손과 똑같은 동작을 취했다.
둔천이 손을 움직이자 그 중년 남자의 몸에서 반짝이는 흰색 빛의 허상이 나타났다. 그의 혼백이었다.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은 그 혼백을 움켜쥐려 했다.
구엽 술주사는 어떤 법보도 사용하지 않고 오른손을 들어 올려 허공을 때리며 가볍게 외쳤다.
“고정!”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혼백을 움켜쥐려 했던 거대한 손은 그대로 멈춰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이어 중년 남자가 허공을 쥐자 푸른색, 붉은색, 보라색, 흰색, 남색의 다섯 기운이 그의 손에 응집되었다.
“정(鼎)!”
남자가 외치자 그 다섯 갈래 기운은 사방으로 퍼졌다가 그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거대한 솥 형태를 이루었다.
“제련!”
남자가 다시 외쳤다. 순간 그 다섯 개의 거대한 솥은 바르르 진동했고 뒤이어 그 위에 기이한 부호들이 나타나 번쩍이면서 솥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각 솥 주위에 각각 하나씩, 총 다섯 개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나 진 안에서 끊임없이 회전했다.
노련하고 침착한 기운이 순식간에 진을 뒤덮었다. 진을 이루고 있는 혼백들 중 몇몇 혼백은 소용돌이 안으로 끌려 들어가 찢기고 흩어졌다.
그러나 둔천은 콧방귀를 뀌며 냉소했다.
“과연 구엽 술주사는 다르구나. 주요 혼백, 응집!”
순간, 혼백들로 이루어진 진이 갑자기 회전하면서 5억 개의 혼백이 몰려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이 13개의 주요 혼백들에 응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응집된 13개의 주요 혼백은 전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갖게 되어 이제는 각기 영변기 후기 수준에 상당했으며 그 체내에서는 선기도 맴돌았다.
이를 본 중년 남자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고 둔천은 냉랭하게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요 혼백, 합일!”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13개의 주요 혼백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하나로 응집되었다. 이는 5억 개의 혼백과 13개의 주요 혼백이 합쳐진 하나의 혼백이었다.
“문정기⋯⋯.”
중년 남자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대량의 혼백들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혼백은 문정기 수준에 달해 있었다.
연혼종의 주요 혼백들은 모두 연혼종의 영변기 수련자들로 만들어진 존재들이었다. 이들은 삶에서 문정기에 이르지 못한 것을 통탄할 정도로 아쉬워했고 그 아쉬움은 혼번 안에 남아 끊임없이 성장했고 더 강력해졌다. 결국 그들의 그런 집념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문정기 수준에 상당하는 힘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허나 이조차도 존혼번의 위력 중 일부에 불과했다. 이 상태만으로도 문정기 초기 수준에는 대항할 수 있었지만 문정기 후기 수준인 주작에게 대항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주작을 진정으로 두렵게 하는 것은 이 존혼번의 위력이 모두 발휘됐을 때의 힘이었다. 특히 36개의 주요 혼백 중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네 번째 주요 혼백이 바로 주작을 두렵게 만드는 존재였다.
둔천은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너희 선유족과 주작국 사이의 전투에 우리 연혼종은 낄 생각이 없으니 목숨은 거두지 않겠다. 그러니 냉큼 꺼져라!”
중년 남자의 얼굴은 어두워져 있었다. 둔천은 두려운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십억존혼번의 힘 때문에 물러서려니 내심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둔천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십억존혼번의 위력이 겨우 그 정도면 나를 위협할 수 없다.”
그 말에 둔천은 가소롭다는 듯 비웃더니 싸늘하게 내뱉었다.
“나와라, 10개의 주요 혼백!”
그가 혼번을 흔들자 곧장 영변기 수준인 10개의 주요 혼백들이 더 나타나 묵묵히 사방을 맴돌았다.
이를 본 중년 남자는 쓰게 웃었다. 그는 이제야 어째서 선유족이 십억존혼번을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우리와 주작국 사이의 전투에 참여하지 않겠다면 내 선유족을 대표해 약속하지. 연혼종 안에는 한 걸음도 들여놓지 않겠다.”
중년 남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마친 그는 둔천을 향해 포권을 한 뒤 신중하게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둔천은 다시 혼번을 휘둘러 모든 혼백을 거두었다.
“십억존혼번⋯⋯.”
방금의 상황을 목격한 한제의 눈이 광기로 번득였다. 저 혼번만 손에 넣으면 세상에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
“십억존혼번의 위력을 직접 보니 어떤가?”
다시 연혼종으로 돌아가는 중에 둔천이 물었다. 덤덤한 말투였지만 자부심이 잔뜩 묻어 있는 목소리였다.
“굉장합니다.”
한제는 거짓 없이 감탄했고 이에 둔천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존혼번에 정확한 사용 방법이란 없네. 예를 들어, 진법을 잘 다루셨던 6대 선조의 손에서는 하나의 진으로 그 힘을 떨쳤지. 그런가 하면 10대 선조께서는 경지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삼켜버릴 수 있었는데 이 혼번을 사용해 혼백들을 삼켜내면 적들은 두려움에 떨었다네.”
한제는 둔천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허나 존혼번에 존(尊)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것은 이 혼번의 진정한 힘인 융합 덕분이야. 방금 그 문정기 수준의 혼백은 융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오랜 시간 그 힘을 발휘하기는 힘들지만 2각정도는 가능하네. 허나 그것도 존혼번의 진정한 필살기는 아니야. 이 혼번으로 문정기 후기에 대적할 수 있는 것은 네 번째 주요 혼백 덕분이지. 수만 년 동안 이 혼번의 네 번째 주요 혼백이 나타난 것은 딱 한 번뿐이었어. 우리 연혼종에서 마지막으로 배출해낸 문정기 초기 수준의 선조께서 2대 주작과 연합하여 주작성에 들어온 외부 수련성 출신의 문정기 후기 수련자 네 명에게 맞설 때였지.”
둔천은 한제에게 존혼번에 대해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2년 후면 한제가 이 혼번의 주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한제를 진정한 직계 제자로 여기는 듯, 그에게 둔천은 아무것도 아끼지 않았다. 이 순간, 둘은 마치 사제지간 같았다.
2대 주작
이야기를 듣던 한제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2대 주작과 손을 잡았다고요?”
둔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선유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1대 주작은 스스로를 희생하여 당시 몇 명의 문정기 수준의 수련자들과 함께 선유족을 완전히 봉인했지. 그리고 한 사람을 지목하여 2대 주작으로 임명했네.”
한제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는 재능도 뛰어났고 뜻도 원대했지. 이념 역시 그 후의 주작들과는 전혀 달랐어. 그는 5성 수련국을 압박하지 않았네. 그가 주작으로 집권한 기간은 1천 년 남짓이었지만 그 기간에 그는 역대 주작 중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섰어. 거의 문정기 절정에 이르렀다고 하지. 그러니 주작성 역사상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네!”
그 말에 한제는 사도환이 떠올랐다. 사도환은 틈만 나면 자신이 주작성의 최고 고수라고 떠들어대곤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당시에는 그 말을 흘려 들었던 한제도 최근 들어 점점 그게 사실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의 이름이 뭡니까?”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지. 그저 2대 주작이라고 알고 있을 뿐이야. 주작이라면 알고 있을까?”
둔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어떻게 됐죠?”
“행방불명되었네.”
둔천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우리 연혼종 선조와 2대 주작이 손잡고 다른 수련성 수련자들과 맞붙은 전투는 선유족의 조령(祖靈)과 싸웠을 때보다도 격렬했다더군. 결국 문정기 초기에 불과했던 우리 연혼종 선조께서는 당해내지 못하셨으나 네 번째 주요 혼백을 이용해 겨우 목숨을 건지고 한 명의 적을 죽이는 데 성공하셨지. 허나 네 번째 혼백이 입은 부상도 작지 않아 결국 수면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네. 아마도 이제는 회복되지 않았을까 싶군. 아무튼 그 전투에서 결국 승리를 거두었지만 2대 주작은 상대에게 쫓기다가 소식이 끊겨버렸어.”
한제의 머릿속에 파문이 일었다. 당시 사도환은 외부 수련성에서 온 수련자들에게 대항했고 그러다 결국 적들에게 육신이 파괴되어 남은 원영만 겨우 석주 안으로 피신했다고 말했다. 그러니 둔천이 말한 2대 주작과 사도환의 이야기는 너무도 비슷했다.
한제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현재 자신과 주작 사이에는 감정의 골이 깊었다. 만약 사도환이 정말 당시의 2대 주작이라면 그가 지금의 주작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무슨 생각을 하는가?”
둔천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묻자 한제는 조심스레 대답했다.
“선유족과 주작성 사이의 전쟁 말입니다. 만약 2대 주작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지금의 주작을 도우려 할까요?”
둔천은 어이없다는 듯이 한제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2대 주작이 아직도 살아 있을지는 둘째 치고 만약 그가 살아 있다 해도 지금의 주작을 도우려고 하지는 않겠지. 둘은 서로 전혀 알지도 못하잖아. 게다가 2대 주작은 거칠고 사나웠다고 하네. 만약 1대 주작으로부터 입은 은혜가 아니었다면 그는 일찍이 주작성을 떠나 다른 수련성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수준을 더욱 증진시켰을 걸세.”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번득이더니 물었다.
“주작은 총 몇 대째 내려오고 있습니까?”
“지금이 14번째 주작이라네.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주작이기도 하고…”
둔천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한제는 다시 불쑥 물었다.
“선배님, 그런데 좀 전에 언급하신 선유족의 조령이라는 것은 뭡니까?”
둔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네. 그저 책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니까. 당시 선유족과 전쟁을 치렀을 때 일찍이 나타났었데 그 조령 때문에 우리 연혼종의 문정기 수련자 선배들이 많이 당하셨다는군.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두지. 곧 주작대륙에 도착이네. 최대한 빨리 연혼종으로 가서 자네의 수준을 영변기로 올려놓아야지!”
그의 말대로 저 멀리 주작대륙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둔천은 더욱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아, 그러고 보니 당시 주작성에 쳐들어온 네 명의 외부 수련성 수련자 중 한 명의 이름을 우리 연혼종 선조께서 기록해 두었다네. 오행성(五行星)에서 왔다는 그자의 이름은 만표라고 했던가? 그래, 분명 그런 이름이었지. 자네가 관심 있다면 돌아가서 그 서적 옥패를 찾아주겠네.”
그 말에 한제는 번개라도 맞은 듯 경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