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6
그때, 갑자기 땅이 어두워졌고 누군가가 손으로 휘저은 듯 구름이 용솟음쳤다. 갑자기 새카만 안개가 나타나 한곳으로 모여 들더니, 거대한 관의 모습을 이루며 천천히 내려왔다.
그리고 허상의 그림자가 천천히 그 관 위에서 나타나는가 싶더니, 그의 몸은 빠르게 엉겨 붙어 실체가 되었다.
거친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말하라. 주인의 원영이 어째서 이 조각 안에 숨어 있는 것이지?”
순간, 괴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 ★
괴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자신의 온몸에 붙은 아홉 장의 부적을 동시에 뜯어냈다. 아홉 색깔의 기체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 우뚝 솟아올라 한제가 있는 위치에 이르더니, 한제를 안고 빠르게 내려왔다.
한제는 괴물이 자신에게 다가온 순간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는 괴물에 대한 적개심을 완전히 접은 후였기에 순순히 괴물이 이끄는 대로 내려왔다.
바닥에 무사히 착지하자 괴물은 곧장 손으로 결인을 한 뒤 조각을 건드렸다. 그러자 시커먼 회오리가 조각 외벽에 나타났고 괴물은 한제를 끌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여덟 개의 빛기둥이 사라졌고 조각은 천천히 지면으로 가라앉았다.
그때, 허공에 떠 있는 관 위에 올라 있던 남자의 몸은 완전한 실체가 되어 있었다. 미라처럼 비쩍 마른 몸을 드러낸 채 냉랭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는 그의 옆에는 온몸에서 악취를 풍기는 시체가 서 있었다.
땅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조각을 바라보던 남자는 거대한 신식으로 온 폐허를 뒤덮으며 샅샅이 훑었다. 그러더니 그의 시선은 결국 다시 그 조각 위에 닿았다.
한편, 괴물에 의해 조각 안으로 끌려 들어간 순간, 신식을 펼친 한제는 주위 풍경에 무척 놀란 상태였다. 크지 않은 조각 안의 공간에는 많은 하얀색 결정체가 부유하고 있었고 정중앙에는 검은색 돌로 만든 사람의 형상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이 돌로 만든 사람의 형상은 아까의 그 조각과 똑같았는데 그 형상으로부터 나온 보랏빛 띠가 조각 안의 곳곳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어서 빛의 장막 하나가 조각 안에 나타났다. 그 빛의 장막에서는 파동이 한 번 일더니 그 광막에서 바깥의 광경이 펼쳐졌다. 괴물은 일견 놀란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강렬한 원한 같은 걸 풍겼다.
광막에 비친 바깥 풍경을 보니, 미라 같은 남자가 조각을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인님, 백 년이 지나갔습니다. 이번에는 도망치시지 못할 겁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고개를 돌려 괴물을 바라보았다.
“네가 저 자의 주인이야?”
괴물은 멍하니 한제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한제가 눈을 빛내며 입을 벌려 초록색 검을 토해냈다. 그 초록색 검은 가부좌를 튼 채 허공에 떠 있는 돌로 된 사람의 형상을 향해 매섭게 달려들었다.
순간, 한 줄기의 보라색 기운이 그 돌로 된 사람 형상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초록색 비검은 순간이동을 하며, 그 보라색 기운을 피한 뒤 돌로 된 사람 형상을 찔렀다.
격렬한 마찰음이 울려 퍼지더니 빛으로 이루어진 공 하나가 돌로 된 사람 형상으로부터 빠져나왔다. 한제는 한손으로 비검을 조종했고 비검은 다시 방향을 틀어 빛으로 이루어진 공을 쫓았다.
괴물은 그제야 조급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분노가 깃든 눈으로 괴물은 비검을 가리키며 웅얼웅얼 소리를 냈다. 그 반응에 한제가 흠칫 놀란 그때, 빛의 공으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젊은이, 진정하게. 이 늙은이에게는 악의가 없네. 내가 바로 밖에 있는 저 남자의 주인이라네.”
그와 동시에 수많은 빛이 사방팔방에서 모여들어 그 빛의 공에 융합되었다. 그러더니 그 빛은 키가 1척 정도 되는 작은 노인의 모습으로 바뀌어 한제의 앞에 드러났다.
노인은 굉장히 허약해보였고 온몸이 어두침침했다. 일견 동자처럼 보이기도 한 그는 한제에게 인사를 했다.
한제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오른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작은 비검이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칼끝은 상대를 향해 있었다.
시음종(尸陰宗) (2)
괴물은 그 노인 곁으로 가서는 고개를 돌려 분노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입으로 웅얼웅얼 소리를 내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노인은 쓰게 웃으며 몸을 살짝 날려 괴물의 어깨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괴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멍청아, 손님께 그렇게 무례하게 굴지 말거라.”
괴물의 표정이 금세 누그러졌다. 하지만 한제를 향한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어려 있었다.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한제를 향해 온화하게 말했다.
“젊은이가 손쓸 필요는 없네. 내가.”
“크크아악”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조각 밖에 서 있는 남자가 기괴한 소리를 뱉어냈다. 그 소리가 시작된 순간, 조각이 흠칫 떨리는가 싶더니 아래로 가라앉던 움직임을 우뚝 멈췄다.
노인의 얼굴이 약간 변하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하며 보라색 기운을 토해냈다. 그 기운은 곧장 조각의 내벽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조각의 두 눈에서 보라색 빛이 번쩍이며 다시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미라 같은 남자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손을 뻗어 허공을 쥐었고 조각은 또다시 가라앉던 것을 멈추었다. 이어서 그는 끊임없이 각종 결인을 했고 조각은 우르릉 소리와 함께 다시 우뚝 솟았다.
노인은 한숨을 내쉬고는 몹시 피곤한 표정으로 한제에게 말했다.
“반 시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으니 걱정 말게. 상황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
일단 한제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이 늙은이의 이름은 오태우라 하네. 시음종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곁에는 여전히 녹색 비검이 언제든 쏘아져 나갈 기세로 허공에 떠 있었다.
오태우는 쓰게 웃었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 없네. 이 늙은이는 한때 원영기에 이르렀지만 지난 몇 백 년 동안 끊임없이 원영의 기운을 소모해버려서 지금은 너무나도 허약해졌다네. 젊은이에게 그 어떤 위협도 되지 못할 걸세. 오히려 젊은이의 그 비검이 자칫 내 목숨을 앗아갈 뻔했네.”
한제는 눈빛을 빛내며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밖에 있는 자는 누구입니까? 당신이 저 자의 주인입니까?”
오태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저 자는 이 늙은이의 시체 인형이라네. 아, 나는 원래 시음종의 시조(始祖) 중 한 명이지. 시음종에는 독특한 수련 방법이 있지. 모든 정식 제자들은 시체 한 구를 찾아 자신의 시체 인형으로 삼아야 하네. 수련이 깊어질수록 시체 인형 역시 강해진다네.”
한제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런데 당신의 시체 인형이 배신을 한 거군요,”
오태우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체 인형은 원래 절대 배신을 할 수 없다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3백 년 전 이 늙은이가 저 녀석을 데리고 이곳으로 왔지. 이곳에 넘치는 음한기를 이용해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였어.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시체 인형은 그 기회를 타 나를 공격했지. 그리고 그 순간 내 통제에서 벗어난 거야.”
그 무렵, 조각의 흔들림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오태우의 눈에는 초조한 빛이 떠오르더니 말이 조금 더 빨라졌다.
“당시 난 바깥세상과 단절한 채 상처를 치료해야 했기 때문에 저 녀석을 쫓을 수가 없었어. 백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는 점점 호전되었고 그 후 나가서 저 시체 인형을 찾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저 녀석에게 지혜라는 것이 생겨버렸다네. 심지어 나보다 더 발전해 원영기 중기에 해당하는 수준을 갖춘 상태로 말이지.”
오태우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어. 심각한 중상을 입은 원영은 내 몸을 떠나 요행히 도망쳤네. 그 후 이 조각 안에 숨어들어 다시는 나가지 못했지. 밖에 있는 저 시체는 당시의 내 육신이야. 음한기가 가득한 이곳의 영향을 받아 껍데기에 불과한 저 시체에도 지혜가 깃들었나보군.”
한제는 냉소하며 말했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저 시체 인형이 당신 말대로 지혜를 가졌다면 왜 떠나지 않고 당신을 찾는 거죠?”
오태우는 씁쓸한 표정으로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젊은이, 자네가 모르는 게 있어. 그건 우리 시음종의 비밀과 관련이 있지. 저 시체 인형은 내 통제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게 수백 년간 종속되었던 녀석이야. 그러는 동안 저 녀석의 정신도 일부 나와 융합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내게서 1백 리 이상 떨어질 경우 곧장 소멸되어 버린다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야. 바로 내 원영을 삼켜서 날 자신의 육신에 봉인하는 거지. 그러면 저 녀석은 내 속박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거든.”
한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지난 몇 백 년 동안 저 자는 당신을 찾아내지 못했던 건가요?”
오태우는 조각의 내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도망치던 당시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 조각 안에 들어왔어. 이 조각에는 아주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서 내 기운을 감출 수 있었지. 그 덕에 여태까지 숨어서 살아갈 수 있었고. 게다가 저 시체 인형은 원영 중기에 이른 뒤 어찌된 일인지 한 번씩 백 년간 수면 상태를 유지하더군. 그 역시 내가 여태 저 녀석에게 삼켜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지.”
“그럼 당신은 왜 저 자가 잠들어 있는 동안, 도망치지 않은 거죠?”
한제는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도망치려고 해봤지. 허나 이 이상한 숲은 알 수 없는 안개로 뒤덮여 있는데 그 안개는 내 원영에 강력한 손상을 입히지. 조금이라도 그 안개에 닿으면 난 버텨낼 수 없네. 시체인형에 지혜가 깃들면서 나와의 감응을 통해 내가 이곳에 숨은 것을 알아차린 듯 하네. 게다가 이 아이가 제멋대로 자네를 데리고 조각을 활성화시키면서 저 녀석들도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지.”
한제는 오태우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오태우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이 아이는 내가 조각 안에서 발견했네. 이 녀석은 이곳에 잠들어 있었지. 솔직히 처음에는 이 녀석의 몸을 빼앗으려고 했지. 한데 녀석의 체내에는 엄청난 힘이 깃들어 있어서 실패하고 말았어. 그 과정에서 이 아이도 잠에서 깨어났고 그 후부터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여태까지 살아왔다네.”
여기까지 말을 잇던 오태우가 눈을 반짝이며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이제 평생 이곳을 벗어날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네. 이 아이가 자네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일세. 내 이렇게 부탁함세. 젊은이, 날 좀 도와주게. 난 이곳을 떠날 수가 없어. 그러니 부디 젊은이가 시음종에 가서 나의 사형인 양유재에게 내가 이곳에 갇혀 있다는 것만 전해주게.”
오태우는 거의 애걸복걸했다.
한제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 시체 인형을 피해, 날 그곳으로 보낼 방법이 있습니까?”
오태우는 간절한 표정으로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남은 원영의 기운을 끌어 모으면 자네를 시음종으로 보낼 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야. 그 진을 통해 곧장 시음종 본부에 도착할 수 있네.”
한제는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상대를 빤히 쳐다봤다.
“음, 그런 진이 있다면 본인이 가셔도 되지 않나요?”
오태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시체 인형이 나로부터 1백 리 이상 떨어지지 못하듯이 나 역시 그렇다네. 지금처럼 원영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저 시체 인형이 죽어버리면 나 역시 소멸되고 말 걸세. 하지만 난 죽기 싫고 저 시체 인형에게 사로잡히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다네.”
어느새 조각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처럼 더욱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오태우는 여전히 무표정한 한제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젊은이, 이 늙은이를 한 번만 도와주게. 이 아이도 함께 보내겠네. 이 녀석의 몸에 붙은 아홉 개의 부적은 내가 이 녀석을 발견했을 때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아주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지. 그러고 보니 자네의 영력이 음한기의 속성을 띠고 있는데 우리 시음종의 수련 공법 역시 그렇다네. 시음종에 가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야. 왜냐하면 시음종 안에는 속세와 단절하고 수련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는 지음의 품질을 가진 음한기가 있거든.”
한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입을 열었다.
“시음종 본부에 지음 품질의 음한기가 있는데 당신은 왜 여기에 온 거죠?”
오태우는 한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굉장히 신중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눈앞의 청년은 어떤 방법을 통해 구슬린다고 해도 쉽게 응할 것 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