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36
한제의 육신이 모습을 드러내자 곁에 있던 문정기 수련자는 두려움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 한제의 육신은 그 수련자의 몸을 걷어차 버렸다.
“크아아!”
그 엄청난 힘에 수련자는 경련을 일으키며 세상에 녹아들어 사라져버렸다. 한제는 곧장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다른 수련자를 걷어찼다. 그 수련자도 허공에서 사라져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한제와 청년은 직접 맞붙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은 수련자를 숨기고 다른 한 명은 수련자를 삼키며 속도를 겨루기 시작했다.
도망치던 신공호는 순간이동을 발휘하려던 순간, 누군가의 방해를 받아 다시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짙은 살기를 풍기는 흑발의 청년이 나타나 신공호의 정수리로 오른손을 뻗었다.
기겁을 한 신공호는 곧장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손바닥에서 한 줄기 번개를 소환해냈다. 암적색 번개는 곧장 허공에 파문을 일으켰다. 셀 수 없이 많은 미세한 번개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번개는 신공호에게 단 하나뿐인 것으로 필살기와도 같은 최고 수준의 번개였다. 당시 한제에게서 깨달음을 얻고 이 번개를 갖게 된 그는 지난 몇 년간 그 번개의 본원을 찾으려 거슬러 올라가면서 끊임없이 제련했다.
사실 이 번개 덕분에 그는 한제를 더욱 숭배하게 됐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천둥번개에 관한 한제의 지적은 정확했기 때문이다.
신공호는 오랜 시간 동안 이 번개를 제련한다면 언젠가 정말로 그 번개의 본원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쳤으나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 번개는 그가 가진 가장 큰 비밀이었다. 흑발 괴인과의 전투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생사의 위기에서 깊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번개를 내뿜었다.
“오호라, 멋진 번개로군!”
짙은 사기를 풍기던 청년도 그 번개를 보고는 감탄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 번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죽어라!”
신공호는 크게 외치면서 번개를 내던졌다. 그의 손을 떠난 번개는 짙은 암적색 빛을 번득이면서 폭발했다.
허나 청년은 차게 코웃음을 치며 오른손을 움켜쥐어 폭발하던 번개를 잡아채더니 손에 힘을 주어 부숴버렸다.
신공호는 그 틈을 타 곧장 뒤로 몸을 물렸다.
그때, 먼 곳에 있던 한제는 이 모습을 보고는 곧장 정체불명의 노인에게 외쳤다.
“저자를 구해!”
이에 노인의 원신은 작게 코웃음을 쳤지만 곁에 있는 수련자를 걷어찬 뒤 곧장 세상에 녹아들었다가 신공호 곁에 나타났다. 뒤이어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린 그는 신공호를 향해 달려들고 있던 청년과 충돌했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짙은 사기를 풍기던 청년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한제 역시 밀려났으나, 그 와중에도 신공호를 걷어찼다.
신공호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세상에 녹아들다가 이내 사라졌다.
짙은 사기를 풍기는 청년은 한제를 냉랭하게 노려보다가 몸을 훌쩍 날리며 분신을 소환해냈다. 분신들은 계속해서 분열해 서른두 개가 되더니 곧장 퍼져나가 도망치고 있는 수련자들을 뒤쫓았다.
한제의 육신에 깃든 노인의 원신은 흠칫 놀라더니 분노한 듯 외쳤다.
“당장 멈추지 못하겠느냐!”
노인은 한제의 육신을 통제해 곧장 솟구쳐 오르더니 두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흘러넘칠 듯한 짙은 원력이 체내에서 흘러나와 세상에 녹아들었다. 한제가 곧 세상이 된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그는 두 눈을 기이하게 번득이며 낮게 외쳤다.
“선술, 소멸!”
그 순간, 사방에서 도망치고 있던 수련자들의 몸에 노인의 원신이 발휘한 원력이 응집됐다.
“선술, 해산!”
한제의 입에서 다시 거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삽시간에 모든 수련자가 그 몸에 응집된 원력에 의해 억지로 세상에 녹아들었다. 이어서 그들은 빠르게 하나하나 사라져, 이제 한제와 서른두 개의 분신으로 나뉜 청년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한제는 노인의 원신이 상당히 허약해진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흩어져 사라질 듯했다.
‘젠장, 이번에는 내가 밑졌구나!’
그때, 흑발 청년이 두 눈을 광기로 번득이며 달려들었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그리 해주지!”
청년이 휘두른 창은 한 줄기 검은 빛이 되어 돌진해왔다.
한제는 머리가 저릿해졌다. 그때, 노인의 원신이 가까스로 몸을 통제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악한 기운을 풍기는 청년이 뒤를 바짝 쫓아오며 압박하는 사이 노인은 한제의 몸을 통제해 세상에 녹아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청년은 곧장 추격해왔다.
두 사람은 엄청난 속도로 순식간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조각을 지나쳤다. 슬그머니 냉소를 드러낸 사악한 청년이 말했다.
“네가 나타난 순간부터 네 본체가 있는 곳으로 유인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좋아, 따라가 주지. 네 본체를 삼키는 것이 아까 그런 자들을 몽땅 흡수하는 것보다 나의 회복에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야.”
한제는 노인의 원신이 자신의 몸을 통제해 법술을 발휘할 때, 직접 사용하는 원력은 매우 적고 나머지는 모두 세상에서 얻어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는 만물의 영혼을 뽑아내는 신통력과 무척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확실한 건, 그보다 훨씬 오묘하다는 점이었다.
허나 이 신통술은 한제의 수준으로는 파악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마치 한 층의 막 너머로 그 신통술을 접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더구나 지금 그에게는 깊이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자신의 육신에 깃든 노인의 원신이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흩어지고 있는 것이 걱정이었다.
1각도 지나지 않아 노인의 원신은 반 이상이 흩어졌다.
하지만 노인은 원신의 일부를 잃는 대가로 속도를 더욱 높였다.
어찌나 빠른지, 한제는 온 세상에 녹아든 채 한달음에 세상 끝까지 나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또한 눈앞의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해 끝없이 늘어난 듯했다. 그가 발을 딛는 곳곳은 더 이상 허공이 아니라 세월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착각이었다. 하지만 한제는 다른 방법으로는 자신이 느낀 속도의 변화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이는 한제가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들만이 익힐 수 있는 축지성촌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보통 양의의 수련자라면 축지성촌을 파악하지 못해 노인이 이를 사용했을 때 그 격렬한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원신이 무너져 내렸을지도 몰랐다. 허나 비록 노인처럼 순식간에 사용할 수는 없지만 한제도 어느 정도 준비만 갖춘다면 세상으로 녹아들 수 있었다.
허나 축지성촌의 문턱에 발을 들인 상태이긴 했어도 오랜 시간 견디기에는 원신의 부담이 상당했다.
그의 육신은 노인의 통제 아래 줄곧 세상에 녹아든 상태였다. 원신과 온몸이 셀 수 없이 많은 낱알로 변해 그 상태로 세상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염뇌자
한제에게는 지난 1각이 백 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긴 세월의 폭풍에 부서지지 않기 위해 그는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허나 그 과정에서의 극심한 고통은 한제에게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이 됐다. 그의 원신은 이 폭풍에 끊임없이 맞서면서 세상에 점점 녹아들었고 결국 그의 심신 깊은 곳에 남은 그 느낌은 오래도록 흩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 단계에 이르기 위해 중요한 것은 원력뿐만 아니라 규칙에 대한 깊은 연구와 파악, 그리고 통제였다. 허나 이 모든 것은 너무나 묘연하고 모호해 명확히 설명할 수가 없는데 세상에 녹아드는 것은 이 규칙을 이해하는 가장 정확하고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세상과 밀접하게 녹아들수록 규칙의 힘을 모색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는 쉬워지는 것이다.
지금 한제의 원신은 정체불명의 노인으로부터 본의 아니게 도움을 받고 있는 셈이었다. 고통스러웠지만 좋은 기회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의 원신은 점점 세상과 밀접하게 결합했다. 마치 그가 본래 세상의 일부인 것처럼 구분할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그의 경지는 추진력이 생긴 듯 점차 원신을 따라 인과의 도와 더불어 치솟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육신 역시 도움을 받고 있었다.
한제의 육신은 이전에 한 차례 세정되면서 이미 원력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노인의 통제 아래 오랜 시간 동안 세상에 녹아들면서 그의 육신 역시 원신과 마찬가지로 끝도 없이 세상과 섞여드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녹아드는 과정에서 모습이 사라지는 것은 실제로 죽음에 이르지는 않은 상태에서 육신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이런 상태가 되어야만 원하는 곳에서 육신을 다시 응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동안 이런 상태를 유지한 한제의 육신은 자연스레 세상의 힘에 녹아들면서 모든 근육과 피에 그 힘을 품게 된 것만 같았다.
한제, 정확히는 그의 육신을 빌린 정체불명의 노인과 흑발 청년의 추격전 끝에 그들은 결국 뇌의 선계 북방 조각의 상공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흩어질 것 같았던 노인의 원신이 한제의 체내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동시에 한제는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았다.
그 순간, 한제는 짙은 위기감을 느끼고는 곧장 온몸의 원력을 뿜어냈다. 밖으로 분출된 그의 원력은 소용돌이를 이루었다가 곧장 자폭했다.
쾅!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한제는 그 폭발의 힘을 이용해 튀어나갔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곧장 한 줄기 빛을 그리며 나아갔고 동시에 저물대에서 선검을 꺼내 주위에 여덟 갈래의 참라결(斬羅訣)을 소환했다.
쩌적!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는가 싶더니 사방의 허공에 크게 균열이 일었다.
보이지 않는 형태로 그를 막던 힘은 참라결에 부서져 버렸다. 뇌의 선계를 빠져나가려다가 상대가 만든 투명한 막에 낭패를 본 터라 이번에는 먼저 손을 쓴 것이다.
흑발 청년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곳은 당시 뇌의 선계의 핵심이었던 조선대(朝仙臺)였지. 원고 시대의 선역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가장 가까웠던 곳이기도 하다. 선역이 존재했을 당시 원고 시대 선인이 내려와 처음으로 밟은 곳이라는 소문도 있었지. 한데 선군과 같은 힘을 가진 그자가 날 여기로 유인한 목적이 뭐지?”
잠시 고민하던 청년은 저 멀리 한제의 인영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가락 끝에서 붉은 공이 하나 나타났고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미세한 선들이 나타나 그 공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 빛의 공은 붉은 빛을 강렬하게 번득이면서 번개처럼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한제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정체불명의 노인이 아니었다면 일찍이 도망쳤을 터였다.
허나 혈조로부터 빼앗은 혈신의 반쪽까지 써버린 지금, 그에게는 더 이상 도망칠 수단이 없었다.
그 순간, 한제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억지로 몸을 돌려 거대한 인장을 토해냈다.
콰르릉!
붉은 공과 인장이 충돌하며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인장이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비록 무너져 내릴 기색은 없었으나, 강력한 힘이 그 안에서 뿜어져 나와 한제에게 떨어졌다.
“쿨럭!”
그 순간, 한제는 창백해진 얼굴로 피를 토해내며 인장과 함께 몸을 물렸다.
허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인장 안에서 전달된 강력한 힘은 성난 파도처럼 층층이 한제의 몸을 꿰뚫었고 한제는 뒤로 밀려나면서 세 번이나 연달아 피를 토해냈다. 그러나 표정만은 날카로웠다.
“날 죽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한제는 한손으로 인장을 쥔 채 다른 손으로 저물대에서 병풍을 꺼냈다.
병풍이 나타나자 그 위에 그려져 있던 산수도가 사방으로 펼쳐지면서 세상을 흑백의 그림으로 바꾸어버렸다.
넘칠 듯한 힘이 산수도에서 흘러나왔고 한제는 그 산과 강 위에 서서 자신의 체내로 침범했던 강력한 힘이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산과 강에서 흘러나온 힘은 끊임없이 인장으로 흘러들어 한제를 공격했던 그 끔찍한 힘을 상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