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52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른 화염의 회오리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타지아의 눈빛이 무겁게 변했다. 문제는 주작의 각성이 아니라 고신의 몸이었다. 그는 은근한 두려움마저 느꼈다.
‘왕족 고신과 주작의 융합이라니⋯⋯ 저자는 대체⋯⋯?’
그 무렵, 배이라 역시 한제의 주작이 두 번째로 각성하여 화염 회오리를 형성한 틈에 마기의 화염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그에게 더는 고마와의 싸움을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최대한 빨리 계외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타지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배이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번 일로 그는 너무도 큰 손상을 입었다. 고요의 몸 반절을 뜯어 먹혔고 방금 마기의 화염에서 벗어나느라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생각을 정리한 배이라는 위쪽을 향해 번개처럼 돌진했다.
그 순간, 타지아의 눈이 번득였다. 그에게 있어 배이라는 절대로 놓아줄 수 없는 존재였다. 이에 그는 한제에게서 시선을 거두더니 곧장 배이라를 뒤쫓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청림의 육신을 더욱 잘 통제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더욱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속도 역시 이전의 몇 배로 빨라진 상태라 고요와의 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줄어들었다.
도저히 타지아로부터 달아나기 어렵다고 생각한 배이라는 이를 악물더니 오른쪽 눈동자의 세 번째 별을 무너뜨렸다. 그렇게 쇄성의 힘을 발휘한 뒤에야 선제의 동굴 여섯 번째 층으로 솟구쳐 오를 수 있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 고요의 빛은 앞서 도망치고 있던 두 여인에게 고정됐다.
배이라는 곧장 두 여인 중 분홍 옷의 여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여인은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곧장 침착함을 되찾고는 미간에서 눈꽃 모양의 표식을 번득였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여인의 몸에서 한 줄기 눈꽃의 회오리가 휘몰아치며 고요의 손을 막아섰다.
펑! 펑!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고요의 손이 튕겨 나왔다. 그 순간, 분홍 옷의 여인은 눈꽃을 향해 피를 한 움큼 토해내더니 곧장 몸을 물렸다.
“크으, 이 망할 것이…”
고요는 낮게 신음하더니 이번에는 번개처럼 손을 뻗어 중년 여인의 정수리를 잡아챘다.
아직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중년 여인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붙잡힐 수밖에 없었고 배이라는 곧장 요력으로 그녀의 모든 경맥을 봉쇄했다. 동시에 여인의 눈에서 요력의 빛이 번득였다.
바로 뒤에서는 타지아가 금방이라도 따라잡을 듯 달려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배이라는 곧장 후퇴하면서 결인을 그리더니 여인의 몸 곳곳을 두드렸다.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한 줄기 요기가 그녀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안 돼!”
분홍 옷의 여인이 다급히 외쳤으나, 그녀로서는 손쓸 도리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중년 여인은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켰고 순식간에 온몸에 푸른 핏줄이 툭툭 불거지며 기이하게 교차하면서 거대한 문양을 형성했다.
타지아에게 거의 따라잡혔을 때, 배이라는 쥐고 있던 여인을 힘껏 내던지며 두 눈으로 요기를 번득이면서 크게 외쳤다.
“요령변(妖靈變)!”
그 순간, 온몸에 불거졌던 푸른 핏줄이 폭발하면서 그녀는 피 안개로 변해버렸다.
육신도 원신도 순식간에 소멸해버렸고 그 순간 거대한 문양이 나타나 순식간에 그 여인의 피와 살, 원신까지 남김없이 흡수했다.
그러더니 눈부신 요력의 빛을 번득이며 다섯 번째 층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이 무렵, 배이라는 무척 지친 기색이었고 오른쪽 눈에 남은 네 개의 별도 어두워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맹렬히 몸을 틀더니 광기 어린 눈으로 타지아를 노려보았다.
‘저 녀석을 최대한 오랫동안 붙잡아 요령이 도망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요령변은 고요족이 목숨을 보전할 때 쓰는 신통력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다. 반드시 다른 존재를 제물로 삼아야만 발휘할 수 있는 신통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술법이 성공한다 해도 수준은 대폭 떨어지게 된다. 배이라 역시 막다른 지경에 몰린 상황인 데다가 제물로 삼을 수 있는 여인들을 발견했기에 사용한 것뿐이었다.
그의 오른쪽 눈에서 별들이 회전하더니 순식간에 네 개 모두 붕괴했다. 그 순간 배이라의 몸은 부풀어 올랐고 그의 눈에서는 더욱 짙은 광기가 번득였다. 그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크게 외쳤다.
“타지아! 내가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은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다!”
배이라는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돌진했고 그의 몸은 순식간에 갈라지기 시작했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여덟로⋯⋯.
눈 깜짝할 사이 사방 곳곳에서 배이라가 나타나더니 모두 타지아를 향해 몸을 날리면서 자폭해버렸다.
펑! 펑!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냥 죽지는 않겠다!’
요란한 폭발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고요의 분신들이 모두 폭발했고 그 충격은 선제의 동굴 일곱 번째 층 전체로 퍼져나가면서 공간을 무너뜨렸다.
한편, 분홍 옷의 여인은 슬픔과 분노로 몸을 떨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도망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처 멀리 벗어나기도 전에 뒤쪽에서 엄청난 충격이 훅 끼쳐왔다.
그 무렵, 한제는 선제의 동굴 첫 번째 층에 있었는데 그의 뒤에서 울려 퍼진 주작명(朱雀鳴)은 보이지 않는 불길이 되어 퍼져나갔다.
좀 전의 화염 폭풍이 선제의 동굴의 모든 층을 꿰뚫으면서 생겨난 통로를 바라보며 그는 두 손을 끊임없이 움직여 수많은 금제를 형성했다.
그 금제들은 끊임없이 통로 안쪽에 찍혔고 하나가 찍힐 때마다 그 통로 깊은 곳에서 대량의 돌조각이 떨어졌다.
통로 안쪽에서 솟구쳐 오른 운선 부부는 곧장 한제를 도왔다. 금제의 대가라 할 만한 세 사람의 끊임없이 금제를 찍어내면서 대지가 진동했다. 마치 온 요령의 땅 안에 강력한 지진이 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그때 사도환이 그 통로에서 튀어나왔다.
“젠장, 이 빌어먹을 곳! 빠져나가자마자 해독을 하고 폐관수련을 할 테다!”
통로에서 튀어나온 사도환은 더 욕설을 내뱉으려다가 한제를 발견하고는 곧장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공으로 날아올라 아래쪽을 향해 신통술을 발휘했다. 그는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한제와 통하는 사이인 만큼 한제의 의도를 바로 알아채고 힘을 보태기 시작한 것이다.
사도환까지 가세하자 대지는 한층 더 강력하게 흔들렸고 갈수록 격렬해졌다. 마치 선부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때 두 번째 층에 있던 대두, 진도삼자 뇌길, 곤허경 중년 여인의 두 제자 부풍자가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이들은 통로 밖으로 나오자마자 얼떨떨한 표정으로 분분히 흩어졌다. 그중 부풍자는 한제의 의도를 눈치 챈 듯했지만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이들은 저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는 고마가 얼마나 두려운 자인지는 둘째 치고 그 존재조차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선제의 동굴
지면의 진동이 절정에 달한 순간, 한제는 기이한 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결인을 그린 두 손을 아래로 뻗었다.
그 순간, 그의 뒤에서 거대한 주작이 주위를 한 바퀴 돈 뒤 지면의 거대한 구덩이와 같은 통로로 돌진했다.
“캬오오오!”
끝없는 화염이 사방을 맴돌며 광기 어린 충격과 함께 아래로 돌진했다. 동시에 두 눈이 충혈된 이오가 결인을 그려 소환한, 하늘을 뒤덮을 듯한 바다도 주작을 뒤따라 깊은 구덩이로 달려들었다.
호연과 사도환도 자신들의 가장 강한 신통술을 그 구덩이로 쏟아 부었다.
그때, 깊은 구덩이에서 짙은 한기가 몰아치면서 온몸을 무수한 눈꽃으로 뒤덮은 분홍 옷의 여인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몸을 뒤덮은 눈꽃은 갖가지 공격을 급속도로 회전하며 막아냈다.
주작이 그 깊은 통로를 관통한 순간, 선제의 동굴 두 번째 층에서부터 동굴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콰르릉! 쾅!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사이 지면 여기저기가 함몰되면서 모든 출구가 막혔고 이에 각자가 발휘한 신통술들로 뒤덮여 버렸다.
“크아아아!”
저 아래에서 음울하고 먹먹한 소리와 함께 고마의 포효가 전해져왔다.
한제는 두 손으로 다시 결인을 그려 수많은 금제를 쏟아 부었고 호연과 이오 역시 함께 금제들을 소환해냈다.
세 사람이 엄청난 속도로 발휘한 금제들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지면의 폐허 위로 쏟아져 내렸다.
빽빽한 금제들은 마치 거대한 그물처럼 서로 얽히고설켰다.
한편, 아래쪽에서는 계속해서 음울하고 묵직한, 광기 어린 포효가 울려 퍼졌고 대지는 더욱 격렬하게 진동했다.
이 포효에 고마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수련자들의 얼굴도 급변했다. 특히 부풍자는 저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한없는 포악함에 심신이 떨려왔고 곧장 금제들을 발휘해 그쪽으로 쏘아 보냈다. 이를 시작으로 조금이라도 금제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음울한 포효는 점점 가까워졌고 지면의 진동은 갈수록 매서워졌으며, 땅은 계속해서 함몰되었다.
‘늦었어!’
한제는 이를 악물며 끊임없이 움직이던 손을 멈추더니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청상의 육신이 그의 앞에 떠올랐다.
그는 이오와 호연의 눈길에도 아랑곳 않고 한 손으로 청상의 미간을 두드려 그녀를 소멸시키지 않을 한도 내에서 최대한 많은 피를 뽑아냈다.
청상의 피가 분출된 순간, 한제는 손을 휘둘러 피 안개를 형성해 지면의 모든 금제를 뒤덮였다.
그리고 그 순간, 대지 아래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뒤이어 강력한 마기가 뿜어져 나오며 돌과 자갈들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마기 안에서 타지아가 날아올랐다.
하지만 그렇게 솟아오른 마기는 빽빽한 금제에 닿은 순간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한데 기이한 것은 타지아 뒤에 나타난 네 사람이었다, 천운자 능천후, 허공자 그리고 장선지 내 고신의 머리에서 튀어나온 인영까지.
인영은 수염과 머리카락을 남실거리며 온순하게 타지아의 곁에 떠 있었다. 마치 타지아를 주인으로 모시기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 광경에 한제의 머릿속에 번개가 번쩍 스쳐갔다. 이전에는 그 인영과 고마 사이의 어떠한 연관성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금은 뭔가 짚이는 부분이 있었다.
고신의 체내에 망월이 있듯이 고마의 체내에도 그런 존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저 인영이 바로 그런 존재일 터였다.
아마도 고신이 죽고 이곳에 버려졌을 때 고마와 선제의 전쟁 중에 이 동굴에 들어왔을 것이다.
어떻게 장선지 안에 있던 고신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제의 추측으로는 이 외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허공자는 기이한 상태였다. 두 눈에는 광기가 어려 있었고 미간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며, 온몸에서 음산한 마기가 발산되고 있었다.
타지아에 의해 봉인되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다만 한제는 허공자의 기운이 거의 흩어져 죽음 직전에 이르렀음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능천후의 표정은 무척 복잡해 보였는데 애써 한제의 시선을 피했기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 중 가장 짐작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천운자였다.
그는 선제의 동굴에 들어왔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침착해 보였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예측했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는 한제에게 살짝 미소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청상의 피는 오직 타지아에게만 유효할 뿐 천운자 등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행히 이곳은 선제의 동굴 첫 번째 층이었다. 밖으로 나가기가 상대적으로 쉬울 터였다.
한데 한제는 뭔가가 석연치 않았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불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천운자가 타지아의 뒤에 서 있는 모습에 그 불길함은 더욱 커졌다.
모든 일이 워낙 순식간에 벌어졌던 터라 깊은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모든 사람의 모든 행동이 마치 타지아의 뜻에 따라 착착 진행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모든 것이 고마의 의도대로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
천운자의 예측이 모두를 두렵게 만드는 것처럼 그 불길한 느낌은 시종일관 한제를 불안하게 했고 그는 곧장 몸을 뒤로 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