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native American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자경단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내 귀에 들려왔을까?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봤다.
뭔가 억울하다는 듯 젊은 여자의 눈빛에서 절실함이 보였다.
‘뭔가 있어.’
난 각 행정기구 수장들을 뒤로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잠시 얘기하고 싶군.”
그녀를 막아선 친위대 전사들이 내 지시에 신속하게 양옆으로 물러나 다른 ‘하늘의 태양’ 사람들을 통제했다.
“황제 폐하! 저에게 축복을 내려주세요!”
“제 아이의 손을 잡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늘의 태양’ 사람들이 하소연하듯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며 손을 뻗었다.
“무슨 억울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제 간‥청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그녀는 내 앞에서도 뭔가 불안한지 연신 주위를 둘러봤다.
마치 사람들이 많아 여기서 얘기를 꺼내기가 곤란한 것처럼 보였다.
“이따가 조용한 곳에서 얘기를 나눌까요?”
“네, 그‥래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황제 폐하!”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보이는 그녀를 보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발 빠른 사슴!”
“네, 황제 폐하!”
뒤에 있던 ‘발 빠른 사슴’이 재빨리 뛰어왔다.
“이분을 데리고 가서 얘기 좀 나눠 봐.”
‘발 빠른 사슴’은 순간 눈을 빛내며 모히간 부족 출신 여자의 위아래를 훑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무척 신뢰하는 사람이니 이분을 따라가셔도 됩니다.”
간다한 말로 그녀를 안심시킨 뒤 난 각 행정기구 수장들과 함께 ‘아주 큰’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하늘의 태양’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식을 끝내고, 곧바로 관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무실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찬란한 노을’에게 간단히 보고를 받았다.
“…아쉽게도 ‘땅’ 상단이 마스코기(크리크 부족) 부족의 모든 일족을 다 설득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일단, 우리 ‘하늘의 태양’에 관심을 보이는 일족들만 꾸려 가을 축제가 끝날 때쯤 방문할 예정입니다.”
“잘했어. 일단, 첫 만남이 중요해. 다른 마스코기 부족 일족들은 차차 설득하면 되니까.”
“네, 황제 폐하!”
나와 같은 생각인지 ‘찬란한 노을’도 의미심장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보고로 넘어갔다.
“…체로키 부족과 카토바 부족은 한 차례 큰 충돌을 끝낸 후론 소규모의 전투만 있을 뿐 여전히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두 부족 다 땅으로 우리 ‘하늘의 태양’과 계속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부족이 우세하지 못하는 게 중요하겠군.”
“네, 그렇지 않아도 외교부와 상공부에서 무기와 식량을 적절하게 조절하며 팔고 있습니다.”
그 후로도 ‘찬란한 노을’의 보고는 계속됐다.
호청크 부족과 메노미니 부족이 새롭게 거래를 틀기로 했고, 또 교역소도 설치하기로 합의를 봤다고 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그 지역에 어마어마한 철광석이 묻혀 있으니 두 부족은 특별히 네가 더 신경 써줘.”
“그럼요. 지금도 두 부족에 원하는 물건이나 식량을 싸게 거래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그녀는 다코타 부족에 관해 얘기했다.
“다코타 부족 전사들이 간간이 우리 ‘하늘의 태양’ 영토로 진입해 약탈을 시도하는 게 골치 아프긴 하지만, 그것만 빼고 딱히 외부적으로 문제는 없습니다.”
난 고민에 잠기며 다코타 부족을 어떻게 할지 지시를 내렸다.
“지금은 내정에 집중할 때라고 본다. 다코타 부족과는 되도록 분쟁을 피하고, 대화로 원만하게 해결하면 좋을 것 같군.”
“그럼, 생포한 다코타 부족 전사들을 풀어주면서 그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겠습니다.”
“그래.”
아직 가족도 못 만난 나한테 눈치가 보이는지 ‘찬란한 노을’은 서둘러 보고를 끝냈다.
“대의원 정기회의와 가을 축제는 나중에 따로 보고 드릴게요. 그럼, 휴가 동안 푹 쉬세요.”
그녀가 나가자 집무실에 잠시 남아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보감찰부 부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관청 정보감찰부.
삼 층으로 올라가자 정보감찰부 소속 직원들과 전사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지나갈 때마다 정보감찰부 사람들이 조용히 가슴에 손을 대고 인사를 해왔다.
“충!”
한창 복도를 지나자 모히간 부족 여자가 있는 면담실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발 빠른 사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황제 폐하!”
따로 보고를 받긴 했지만, ‘발 빠른 사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와 자연스럽게 눈빛을 주고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힘없는 머리카락’에게 말했다.
“앉으시죠.”
“네, 황제 폐하!”
나도 편하게 자리에 앉았다.
“대충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나와 개인적으로 얘기하고 싶다고요?”
“남편이 그 누구도 믿지 말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황제 폐하!”
말하면서 그녀가 무척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그럴 수도 있죠.”
난 ‘발 빠른 사슴’을 보며 면담실을 나가라고 눈짓을 보냈다.
그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자 난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맞은편에 앉아있는 ‘힘없는 머리카락’에게 말했다.
“자, 남편분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한번 들어볼까요?”
그녀가 긴장한 표정으로 길게 한숨을 내뱉더니 자경단원이었던 남편이 실종되기 전 무슨 일을 했는지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출근하는 남편이 유난히 불안해하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남편은 그 일에 관련된 자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생각했나 봐요.”
한동안 ‘힘없는 머리카락’의 얘기는 계속됐다.
잠시 후, 할 말을 다 끝낸 ‘힘없는 머리카락’이 목이 마르는지 물잔을 들이켜 마셨다.
‘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부정 축재에 관련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까지 오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전사들까지 동원해 최대한 빨리 실종된 남편을 찾을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부정 축재에 관련된 사람들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공평하게 처리할 것을 황제 폐하로서 약속드리겠습니다.”
실종된 자경단원 남편 때문에 ‘힘없는 머리카락’을 포함해 그녀의 가족들도 아주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죽을 각오로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난 남편을 잃은 그녀에게 위로를 건네며 철저한 조사를 약속하자 ‘힘없는 머리카락’이 기어코 참고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 * *
‘힘없는 머리카락’이 면담실을 나가자 그녀를 호위할 정보감찰부 소속 전사들이 뒤따랐다.
난 ‘발 빠른 사슴’과 이 사태에 대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대의원 임기가 몇 년 남았지?”
“올해가 끝이고, 내년에 각 지역에서 대의원을 선출하게 됩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
대의원 임기는 4년.
그 지역에서 ‘하늘의 태양’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대의원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황제 임기는 7년.
대의원과 마찬가지로 황제도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게요. 어쨌든 대의원 자리에 물러나기 전에 크게 한탕 할 수 있는 시간이죠.”
‘발 빠른 사슴’의 말이 맞다.
“아마 많은 사람이 관련되어 있을 거야. 증거도 이미 숨겼을 거고.”
“쉽지 않겠네요.”
‘발 빠른 사슴’이 머리가 아픈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보감찰부에 아낌없는 지원해 줄 테니까 증거를 찾을 때까지 최대한 은밀하게 모히간 부족 마을을 조사해 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다른 대의원들도 대대적으로 한 번 조사해 보고.”
“네.”
정보감찰부 인원을 충원시켜준다는 약속과 함께 ‘발 빠른 사슴’을 달래며 추가로 지시를 계속 내렸다.
잠시 후, 나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휴가를 보낼 마음으로 관청을 나섰다.
* * *
‘아주 큰’ 도시, 대회의장.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고 나서 며칠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오늘 가을 정기회의를 맞이해 각 지역에서 온 대의원들이 대회의장에 속속 도착했다.
“반갑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와이언도트 부족이 잘 해결돼서 정말 다행입니다.”
“올해는 어떤 걸 지원받을 생각입니까?”
“뒤늦게 소식을 듣긴 했지만, 살인 진드기가 그렇게 큰 병을 옮길 줄 몰랐습니다.”
회의가 시작되기 삼십 분 전.
대의원들은 그 시간 동안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
잠시 후, 대의원 수장인 ‘숲의 사냥꾼’이 단상에 올라가자 바로 회의가 시작됐다.
각 지역의 평의회에서 나눴던 안건과 문제점, 법안들이 계속 올라오며 대의원들끼리 논쟁을 벌였다.
“…우선 이로쿼이 연맹 지역과 일리노이 연맹 지역, 그리고 아브나키 연맹 지역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와이언도트 부족도 강제 노역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치료소와 약제소를 건설하는데, 찬성합니다.”
“…천재들의 교육 습득력을 감안해서 중등 교육 기관보다 한층 발전된 교육 시설을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임대주택법이 통과되었습니다.”
* * *
대의원들이 한창 회의하는 동안 나는 단상 뒤에서 ‘찬란한 노을’과 은밀히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자는 어때?”
“마지막 임기라서 그런지 발언도 열심히 하고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모히간 부족 마을을 대표해 나온 대의원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나는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마을에 부정 축재할 수 있는 이권을 편성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찬란한 노을’이 내가 말한 의미를 깨닫고 눈을 반짝거렸다.
“미끼를 던져 증거를 수면 위로 드러낼 생각이십니까?”
“그래. 세금과 곡물 장부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면?”
“네, 몇 번을 확인했지만, 아주 문제없이 철저하게 처리했더라고요. 어쨌든 잘 알겠습니다. 마침 치료소와 약제소도 통과됐으니.”
한동안 난 ‘찬란한 노을’과 부정부패에 관해 대책을 세우며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 후, 대의원 회의가 끝이 나고, 각 행정기구 수장들이 단상에 나와 차례대로 보고하기 시작했다.
국방부, 재무부, 건설부, 교육부, 농업부, 법무부, 상공부, 행정부 등등.
대의원들이 몇 가지 궁금한 점에 대해 질의·응답 시간만 가졌을 뿐, 딱히 큰 문제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젠 몇 가지 주요 내용만 남았다.
와이언도트 부족의 방문단으로 참석했던 ‘노래하는 물’이 처형당하고 난 뒤 공석이 된 상공부 새 수장으로 마이애미 부족 대추장 ‘들소 가죽’을 임명했다.
“…며칠 전에 상공부 수장으로 임명된다고 얘기를 듣긴 했지만, 지금도 얼떨떨하긴 합니다. 상공부의 새 수장이 된 만큼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파격적인 인사 임명에 대의원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단상에서 내려오는 상공부 새 수장을 향해 대의원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내가 단상으로 올라가 ‘하늘의 태양’의 발전 계획을 얘기했다.
“…대의원분들이 새로 선출되는 내년부터 5년을 주기로 ‘하늘의 태양’의 중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말하겠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5개년 발전 계획은 크게 세 가지.
수도와 각 지역 중심 마을의 도로 건설, 지금 기준에서 식량 생산량 다섯 배 증가, 인구 증가.
내 포부가 담겨있는 첫 번째 5개년 발전 계획이 발표되자 대의회장 안이 떠나갈 듯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상에 내려오면서 대의원들을 향해 속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곧 감옥에 갈 대의원들이 수두룩하겠군.’
* * *
‘하늘의 태양’, 모히간 부족 마을 자경단 건물.
자경단 책임자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실종된 자경단원의 가족들도 사라졌다는 게 말이 돼? 호위를 어떻게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아직 단서도 찾지 못하고. 아주 가지가지 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