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00
101. 부부싸움은 칼로 목 베기 (8) >
***
“여기, 받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어. 결계로 보호되어 있더군. 하지만 너라면 쉽겠지.”
아샤민이 건넨 좌표를 들고 민준은 고민했다. 이어진 동료의 말 때문에 고뇌가 더 깊어졌다.
“정말 가 볼 거야? 부부 사이라도 프라이버시는 지켜야···.”
불쌍한 아샤민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부탁 때문에 델의 흔적을 추적하면서도 그는 수상한 게 나올 거라고는 상상 못 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았으니까.
하지만 추적해 보니 민준의 예상이 맞았다. 동선이 끊긴 곳에 심상치 않은 비밀의 문이 있었던 거다. 평범한 사람들은 발견할 수도 들어갈 수도 없는, 뚜렷한 의도 없이 만들 수 없는 결계가.
아샤민은 애써 위로한다.
“곧 81주년 기념일이라면서? 그 안에 깜짝 놀랄 선물을 감춰 놓은 거 아니겠어?”
민준은 그간 봐 온 아내의 표정을 떠올렸다. 그리고 급변한 그녀의 분위기를 복기했다.
그리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네.”
델이 모함으로 잠시 복귀한 날 민준은 비행선을 몰고 사막을 가로질렀다. 아샤민이 알려 준 경로를 따라서.
황량한 들판을 내려다보며 그는 생각했다. 이 길을 델은 지금까지 몇 번이고 오갔던 것일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저 끝에 뭘 숨겨 놓은 걸까?
그리고 도착한 곳은 아샤민이 말한 것처럼 결계로 보호되어 있었다. 대단해 봤자 민준의 손길 한 번이면 깨질 결계였다.
그는 손을 내밀다 말고 주저했다. 불길한 느낌이 엄습했다. 열어서는 안 되는 문 앞에 선 것 같았다. 이 선을 넘는 순간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돌아갈 것인가?
“······.”
그는 마음을 굳게 먹는다.
혹시라도 델이 말 못 할 위험에 빠져 있다면.
그리고 그 비밀이 이 너머에 있다면···.
자신이 바로잡아야 한다.
민준의 눈에 단호한 빛이 번뜩였다.
파직!
민준은 결계를 찢어발겼다.
그리고 닫힌 문을 여는 순간 민감한 후각이 뭔가를 감지했다.
‘···피 냄새?’
코끝을 자극하는 그것은 지독한 혈향이었다. 그것도 아주 익숙한 종류의.
설마 그럴 리가.
애써 고개를 가로저으며 발을 딛는다. 그러자 심연이 그를 반겼다.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피 냄새도.
그리고 어둠을 관조하는 마법을 읊은 순간.
“······.”
민준은 얼어붙었다.
그 상태로 얼마나 서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정신을 다시 차릴 수 있었던 것은 폐를 도려낼 듯한 통증과 현기증이 함께 느껴졌기 때문이다. 민준은 자신이 오랫동안 숨을 멈춘 상태였음을 깨달았다.
황야를 쓸어내는 바람 소리가 멀리 들렸다. 현실감 없는 울림이었다.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민준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창고와 연구실을 섞은 듯한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둘이 사는 숙소보다도.
밀폐 공간 특유의 공기가 비릿한 냄새와 섞여 두개골 안쪽을 찔렀다. 인기척은 없었다. 아샤민이 잔류 사념을 추적한 결과 이곳에 델 말고 다른 사람이 들른 흔적은 없다고 했다. 이곳은 오롯이 델의 공간이다.
다시 말해, 이 모든 짓거리는 델의 소행이다.
민준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살갗을 파고든 손톱 아래 피가 흘렀다. 재생력은 정직하고도 빠르게 발동된다. 그 결과 손톱이 박힌 채 살이 아물었다.
그 상태로 드넓은 실내를 바라보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수조와 배양액. 유리 벽 너머엔 사람 형태의 생물이 수백 개체 담겨 있다. 민준은 이 광경을 다른 차원에서 본 적 있었다.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도 알았다.
“호문쿨루스···.”
쩌억! 그는 옅게 떨리는 손을 편다. 아물었던 살이 다시 찢기고 손톱 끝에 살점이 붙은 채 떨어졌다. 민준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발견한 것이 평범한 호문쿨루스였다면 이런 발작적인 공포는 없었을 것이다. 머릿속이 텅 빈 감각 속에서 민준은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모두 똑같다.
매일 아침 거울 속에서 보던 얼굴이 녹색 배양액 속에 잠겨 있었다.
수백 개의 민준이, 수백 개의 그가 그곳에 있었다.
지금까지 온갖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고 지독한 짓을 당해 왔지만 이런 충격은 처음이었다. 숨이 찼다. 잠시 벽에 붙은 채 서 있었다. 그 상태로 민준은 수조에서 뻗은 케이블을 보았다. 그것이 어디로 연결되는지, 어떤 기계 장치와 연동하는지 살폈다.
보면 볼수록 부정할 수 없었다. 이건 델의 솜씨다.
또한 저들은 단순히 민준의 유전자만 복제한 것이 아니었다. 마법적 방법으로 채혈한 피가 없으면 이렇게 만들 수 없다.
피를 얻은 방법은 짐작할 수 있었다. 민준은 흑마법을 쓸 때 몸에 상처를 낸다. 그 과정에서 흐른 피는 대부분 제물로 바치지만, 일부는 현장에 흩뿌려진다. 그걸 민준 몰래 회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터다. 델이라면.
하지만 더 중요한 의문이 남는다.
‘대체, 왜?’
호문쿨루스는 아직 배양이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아직 유리관 밖에 나온 적이 없다는 뜻이다. 민준은 다음 방으로 향했다. 공간을 잠식한 피비린내는 그곳에서 풍겨 왔다.
끼이익!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
배양이 끝난 호문쿨루스는 어떻게 소모되는가? 그 답의 일부가 눈앞에 있었다.
“···아.”
차가운 공기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그곳은 일종의 냉장고였다.
고기와 피가 가득한.
수형자는 넋이 나간 얼굴로 보았다. 수많은 민준이 해체된 채 널려 있었다. 수납 상태는 다양했다. 투명한 상자에 담겼고 갈고리에 걸렸다. 넓게 펼쳐 놓은 것도 있었고 조밀하게 뭉쳐 놓은 것도 있었다. 머리와 팔다리는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가죽 안을 채우던 것은 투명한 관에 따로 담겼다.
생명력을 보는 민준은 알았다. 그들은 살아 있거나, 죽어가고 있거나, 죽어 있었다.
기계 장치와 수없이 많은 ‘민준들’ 사이를 바삐 오가는 마력 흐름을 통해 민준은 몇 가지를 더 알아냈다. 알고 싶지 않은 정보가 머릿속에 흘러들었다.
어떤 수형자는 재배치될 때마다 새 몸을 받지만, 민준은 800년 전 처음 눈 떴을 때 육신 그대로다. 몸을 바꿀 때 소모되는 달란트 낭비를 막으려는 의도 같았다. 민준의 의체는 인간종을 기초로 제작되었으며 본래 트롤을 능가하는 재생 능력이 없다. 그러니 그것은 영혼에 깃든 능력이다.
하지만 영혼이 한 육신에 오래 머문 결과 육과 영이 동조하며 몸이 변했다. 따라서 그의 의체는 민준의 영혼이 빠져나가도 재생 능력이 다소 유지될 것이다. 그런 의체를 유전적, 마법적으로 복사한 호문쿨루스 역시 불완전한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델은 이곳에서 그 재생 능력을 없앨 방법을 찾고 있었다.
민준은 몸이 더욱 크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같은 질문이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왜? 도대체 왜?
삐익-!
그는 실험실 컴퓨터에 접속한다. 암호화된 데이터를 진피층에 심은 컴퓨터에 옮겼다. 이미 삭제된 흔적이 보였다. 그것도 몇 달 전에. 델은 실험 결과 대부분을 한참 전에 소거한 것이다. 그녀의 머리가 어떤 매체보다 뛰어난 저장 장치이므로 백업은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아직 방이 하나 더 있었다. 민준은 또 하나의 문을 연다.
그곳에는 해체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소모되는 호문쿨루스들이 있었다.
그들은 첫 번째 방 안 ‘민준들’처럼 유리관에 들어가 있었다. 비슷한 배양액도 보였다.
차이점이라면, 그들의 목에는 투명한 관이 하나씩 박혀 있다는 것이다.
관은 호문쿨루스의 혈관과 연결된 것 같았다. 그들 수백이 흘리는 붉은 피가 튜브를 채운다. 그리고 중앙부의 처리 장치로 몰려들었다. 그곳에서는 복잡한 마법이 발동 중이었다. 뽑아낸 피를 쉴 새 없이 재처리하며 화학적, 마법적 반응을 이끌어 낸다. 그 과정의 데이터는 컴퓨터에 차곡차곡 입력되고 있었다.
그리고 민준은 더 이상 그 장면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린 순간 그는 이 거대한 실험실을 불태우고 있었다. 기계 설비가 녹아내리고 수조가 깨진다. 배양액이 수증기와 함께 증발하고 안에 들어 있던 호문쿨루스가 전소되었다.
미친 듯이 날뛰는 불꽃 속에서 생각한다. 민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짓을 꾸미는 델의 의도를.
그리고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장면보다, 목에 관이 박힌 채 피를 뽑히는 호문쿨루스들의 모습이 자신을 이토록 격노하게 만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며칠 후 델이 집에 돌아왔을 때 민준은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딱 1년 전 오늘 선물을 교환했던 그 장소였다.
“나 왔어.”
민준은 그쪽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델을 외면하고픈 충동과 직시하며 화를 터뜨리고 싶은 욕망이 그를 양 갈래로 당기며 싸웠다. 그는 결국 고개를 돌렸다.
그가 델을 어떤 표정과 눈빛으로 봤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아내가 뭔가를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봤구나?”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제3자가 본다면 싸움이라기보다는 민준이 델을 일방적으로 추궁하고 몰아붙이는 장면으로 여겼을 터다. 하지만 민준은 이것이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델은 그의 질문에 답변을 피하는 방식으로 그와 싸우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민준이 지독한 정신적인 피로를 느끼며 수백 번 반복한 질문을 다시 던졌을 때였다.
“대체 왜 그랬어? 거기서 뭘 한 거냐고!”
석상처럼 굳은 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과거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차가운 얼굴로.
“방법을 찾고 있었어.”
민준은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무슨 방법!”
주먹을 움켜쥐며 쏘아본다. 정적인 델과 반대로 민준은 어느 때보다 감정이 고조된 상태였다. 며칠 전 본 풍경이 환영처럼 흔들렸다. 목에 관이 꽂힌 채 피 뽑히던 수백의 민준이.
그가 다시 외쳤다.
“잘라도, 찢어도, 저며도 재생하는 나를 완벽하게 죽일 방법?!”
그때 얼음장 같던 델의 얼굴에 미미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잠시 열린 문을 다시 굳건하게 잠그듯 감정의 기색은 사라졌다.
훗날 민준은 회상할 때 그 표정을 이렇게 해석했다. 그건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얼굴이었다고.
아마도 그에게 진실을 털어놓겠다고 결심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뒤에도 델은 명확한 언어로 계획의 전부를 털어놓지는 않았다. 아내가 남긴 공백과 여백은 민준이 채워 넣었다. 델은 “고백했고” 민준은 추측했다. 그렇게 완성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난 당신을 자유롭게 만들고 싶었던 거야. 당신이 본 그건··· 전부 그 방법을 찾기 위한 거였어.”
그리고 그곳에서 연구한 것은 그의 재생을 멈출 방법, 다시 말해 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민준은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물하기 위해 죽이려 한 것이다.
“내 계획을 수형자인 상태에서 실행할 생각은 없었어. 노동교화 중 죄를 저지르면 영혼 소거를 당할 테니까. 내가 바라는 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신과 나, 두 사람 영혼이 모두 건재해야 해.”
그래서 델은 일단 그녀가 먼저 석방되고 나서 민준을 죽이려고 지금부터 준비하는 중이었다.
민준은 이를 갈면서 물었다.
“내가 죽어서 영혼 상태가 되어도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당신··· 그런 미신을 믿었던 거야?”
델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형자는 아내를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가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을 본 델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선물한 단검이었다. 민준이 거친 손으로 델의 두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녀의 작은 손바닥 안에 핸들을 욱여넣는다. 그의 두 손으로 델의 주먹을 위에서 감싸 쥔 채 칼날을 치켜세웠다.
그대로 찌르면 그의 목을 관통할 각도로.
민준은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았다.
“날 죽이고 싶었어? 그럼 기회를 주지. 죽여!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이라고!”
“···이러지 마.”
“왜? 네가 바랐던 거잖아. 죽이고는 싶지만 영혼 소거는 두렵다고?”
민준은 무시무시한 약력으로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델도 염동력으로 버텼다. 그러자 민준의 몸에서 검은 그림자가 분출했다. 동시에 칼끝은 점점 민준의 목으로 기울었다. 칼날이 수형자의 살갗에 닿고 피가 한 방울 흘러내렸다.
그는 저주와 같은 말을 외쳤다.
“궁금했던 것 같으니 알려 주지. 그렇게 애써서 실험할 필요도 없었어! 난 심장이 뚫려도 살아났지만 아직 누구도 내 목을 벤 적은 없어. 머리를 도려낸 자는 없다고! 그러니 그 방법밖에 없지 않겠어? 날 죽이려면 말이야. 자, 바로 여기야. 정확하게 노려. 내 목을 찌르라고! 그리고 길게 베어 내!”
그 순간 델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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