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34
135.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 (7) >
***
민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나이스와 손을 잡았나?”
그녀의 아이, 정확히는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 속 노른자도 로드의 상속자다.
고룡들이 손을 잡고 드래곤 하트를 나눠 먹기로 약조한 것처럼, 직계 상속자 사이에서도 비슷한 공모가 진행 중인 걸까?
켄티우스는 멍한 눈빛으로 끄덕였다.
“그녀가 먼저 제안하더군. 이나이스의 아이는 해츨링은커녕 아직 부화도 못 한 알이잖아. 범인을 찾으러 돌아다닐 형편이 못 되는 거지.”
그렇기에 (그녀가 주장하기로) 자식들 중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켄티우스에게 온 것이었다.
‘하긴,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다른 보호자들은 굳이 그 여자와 연대할 유인이 없겠지.’
켄티우스가 말했다.
“네게 거래를 제안하라고 아이디어를 낸 것도 이나이스였다. 탈세 방법이 뭔지 궁금해서라도 손을 잡을 거라고.”
하지만 그 뒤의 계획은 드래곤답게도··· 지극히 용족 중심적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민준은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찼다.
“일단 날 부려 먹고 나서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그제서야 이나이스가 방법을 알려 주는 계획이었다고?”
날 아주 호구로 봤구만?
‘내가 미치지 않은 이상 수락할 리 없는 제안이지. 하지만···.’
민준은 생각에 빠졌다.
물론 이나이스가 거짓으로 아무 말이나 둘러댔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애초에 민준을 속여 먹을 생각이었으면 공모자인 켄티우스에게도 말하지 않을 이유는 무얼까?
그리고 하필이면, 대가를 골라도 그런 걸 들이밀었다. 평범한 드래곤이라면 착안하지도 못할 것을.
어차피 거짓말을 할 거면 더 그럴싸한 선택지도 있을 것이다.
‘이유가 뭘까?’
민준의 생각이 깊어졌다.
***
하은성은 오랜만에 바빴다.
그는 지금 유체이탈 상태로 뉴욕시 곳곳을 누비고 있다. 표적은 민준이 대략적으로 찍어 준 근방이었다. 그중 희한할 정도로 강력한 퇴마진이 설치된 장소를 골라 탐색한다.
‘살아서도 못 가 본 곳을 죽어서 이렇게 돌아다니네.’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와 보는 해외였다. 어떤 의미에서도 ‘자유 여행’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음? 여기도 좀 이상한데.’
고급 펜트하우스에 도달한 하은성은 건물 벽에 영체를 접촉했다.
짜릿-! 날카롭게 관통하는 느낌. 이 정도면 드래곤급 주문이다. 이제 그도 퇴마 주문의 레벨을 구분할 수 있었다. 아무리 정교해 봤자 그를 막을 수는 없지만.
하은성은 건물을 뚫고 진입한다.
그곳에는 마주 앉은 두 남녀가 있었다. 하은성의 시선에 둘의 영혼이 잡힌다. 평범한 종족과는 격이 다른 무게감.
‘역시, 드래곤이야. 둘 다.’
하은성은 민준의 지시에 따라 충실하게 주변을 수색 중이었다.
요원은 뉴욕에 도착한 뒤 곳곳에서 마법적 시선을 느꼈다. 주제에 드래곤이라고 역추적을 교란하려 애썼지만 꼬리를 완전히 감추지는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도시에 유령 하나를 풀어 놓았다. 모든 드래곤이 창천처럼 영체 감응력자를 부하로 두진 않는다. 또한, 퇴마진을 펼친 뒤엔 영체 스파이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는 점을 노린 것이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 정도 방비로 충분하기에.
‘자, 여기도 체크 완료.’
하은성은 바로 떠나는 대신 천장 속에 숨어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린다.
“···할리, 어때?”
그렇게 묻는 것은 남자 목소리였다.
그와 마주한 여자는 정신을 집중하는 듯 눈을 감고 있다가 잠시 후에 떴다.
그녀가 말한다.
“숙소에 틀어박혀 있는데, 내 사역마 시선으로는 안까지 꿰뚫어 볼 수 없어.”
“그럼 어떡해?”
“더 기다릴 여유는 없어. 예민준이 금고를 나선 순간 따라붙는 시선이 늘었어. 이러다 누군가 선수 칠지도 몰라.”
여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꾸물거리지 말고, 일단 치자.”
친다고?
하은성의 표정이 굳었다.
“보아하니 다들 눈치만 보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같아. 그러니 지금이 기회야.”
사설 금고가 사라지는 장면을 많은 드래곤들이 목격했으나, 민준이 무얼 얻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신중한 드래곤들은 그걸 확인한 뒤 움직여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드래곤들이 그리 조심스러운 편은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서 대화를 나누는 남녀가 그랬다.
엘프 여성으로 폴리모프한 드래곤, 할리스나임이 말했다.
“숙소 밖으로 나온 순간, 텔레포트로 바로 낚아채는 거야.”
할리스나임은 나이에 비해 복잡한 주문을 설계하는 재주가 괜찮은 편이었다. 그녀는 다른 관찰자들 시선을 피해 먹잇감을 납치하고 흔적을 지울 자신이 있었다. 정체도 모를 유산을 노리는 자들 중 고룡은 없다는 가정하에 내린 판단이었다. 직계 상속자들끼리 아웅다웅하는 이 판은 고룡이 체면을 버리고 끼어들기엔 너무 소소하니까.
단, 그 외계인을 납치해서 이동하는 장소가 너무 가까우면 다른 경쟁자들이 금방 따라잡을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꽤 먼 거리로 가는 편이 좋았는데, 그녀의 마력은 그 수준은 못 되었다. 또한 그 외계인이 단신으로 에델리네스를 체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약간 우려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할리스나임은 배다른 형제 보고르와 손을 잡았다. 하은성이 이미 눈치챈 것처럼, 트롤 남성으로 폴리모프한 그 역시 드래곤이다.
“주문은 내가 짤 테니까 너는 마력만 보태 주면 돼.”
보고르가 다소 어눌한 말투로 묻는다.
“그런데··· 우리는, 진짜 로드 죽인 범인 안 찾아도 돼?
할리스나임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 멍청아, 내가 이미 설명해 줬잖아!”
“이해가 잘 안 가.”
보고르는 용족 기준으로 경계성 지능 장애에 가깝다.
바람직한 기준에 못 미치는 모든 것을 비정상적인 것, 수치스러운 것으로 치부하는 용족은 낮은 지능 역시 기형으로 여긴다. 그리고 기형 드래곤은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해츨링 딱지를 뗄 수 없다.
보고르의 경우에는 좀 아슬아슬했다. 그의 모친은 보고르를 성년으로 인정해야 할지 한참 고민한 끝에 결국 독립을 허락했다. 덕분에 그는 평생 레어에 갇히는 대신 자유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다.
다만 그런 그를 이용하려는 드래곤은 많았다. 여기, 할리스나임처럼.
“왜, 너도 드래곤 하트가 탐나? 그건 욕심내지 마.”
“···왜 욕심내면 안 돼? 가지고 싶어. 그걸 가지면··· 나, 더 강해질 텐데.”
할리스나임은 한숨을 쉬었다.
“생각을 좀 해 봐.
이미 한 번 했던 설명을 반복한다.
그 시작은 얼핏 들으면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였다.
“위원회 지구 대표소 자리가 최근 다시 채워졌지. 오랫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었는데 말이야.”
보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파견된 고대 종족 신분이 엔델리온의 공주였다니까? 그래서 고룡들이 뒤집어졌지.”
“···그래?”
설사 공주 신분이 아니라도 촉수 괴물을 기꺼이 여길 드래곤은 없으며, 초대받은 고룡 대부분 대면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이었다.
“차라리 카바이트가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 그 지렁이들은 용족과 한 장소에 있지도 못할 테니, 초대도 안 할 거잖아?”
카바이트의 극심한 드래곤 알레르기는 유명하다. 전쟁 막바지, 위기에 몰린 드래곤들이 자존심을 누르고 용혈로 생화학 무기를 만들었을 정도.
“아무튼 내가 듣기로··· 고룡들 일부는 그녀가 요즘 지구에서 벌어진 사건에 깊게 관여했다고 의심하고 있어.”
“무슨··· 사건?”
“원래대로면 홍콩에서 우리가 회의하고 있을 안건 말이야! 불법체류자 드래곤 사건과, 관련 증거 밀반출 시도 사건, 창천 사건, 그리고 돌연변이 드래곤 사건까지.”
천장에 숨은 하은성은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최근 홍콩에 나타난 촉수 모양 부유 섬의 정체가 외계인임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괴물이 창천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고?
“영장류 혐오로 유명한 종족이, 영장류가 득시글대는 차원에 공주를 보내다니. 검은 속셈이 있는 거 아니겠냐는 거지.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거든.”
할리스나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다른 고룡들도 할 수 있는 생각을 로드가 못 했을 리는 없지.”
“하지만 로드는 시신을 그 촉수한테 맡겼잖아.”
“일부러 그런 게 아닐까?”
“···왜?”
“여기서부터는 의견이 갈려. 내가 추측은 이거야. 자, 생각해 봐. 적군에게 스스럼없이 맡길 수 있는 게··· 과연 보물일까?”
할리스나임은 로드의 시신에,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드래곤 하트에 비밀이 숨어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여기까지는 젠킨슨의 의견과 비슷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가면 결이 완전히 달라졌다.
“로드는 죽기 전 드래곤 하트에 무슨 짓을 해 놓은 게 분명해. 하필 99일이나 기다리라고 당부한 것도 이상하고. 내 생각엔 그만한 시간이 지나면 드래곤 하트에 뭔가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아. 그 심장은 아마도··· 일종의 시한폭탄 아닐까?”
“폭탄?!”
“난 엔델리온의 맹세 같은 거 믿지 않아. 공주는 시신에서 심장을 이미 빼돌렸을 거야. 폭탄인지도 모르고 말이지.”
“···헉!”
“로드는 위원회가 자기를 죽일 거라고 생각했고, 자기 시신으로 스스로 복수하려는 계획을 세운 거지.”
억측이 뒤섞인 추측이었다.
젊은 드래곤들은 엔델리온의 맹세 역시 깰 수 있는 언약으로 여겼다.
더 큰 이익과 권력을 위해서는 용언도 깰 수 있는데, 다른 종족의 약속이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로드는 자식들을 위해 유산을 남기기보다 위원회에 피해를 입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거야. 자기 죽은 뒤 세상의 일에 집착하다니 정말 이상한 드래곤이지.”
그렇게 말하는 할리스나임에게 부친을 잃은 애석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튼, 드래곤 하트는 포기해. 그건 우리가 건드릴 물건이 아니야. 대신 예민준이 가지고 있는 로드의 유산을 가로채는 데에 집중하자고.”
그녀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그 노인네는 자식을 왜 이렇게 많이 낳은 거야? 드래곤 하트도 못 챙기는데 남은 재산을 17등분이나 하면 먹고 죽을 것도 없잖아. 심지어 직계도 아닌 드래곤은 물론이고, 별의별 쓰레기 같은 종족에게 부스러기를 뿌리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안 들어.”
두 드래곤은 이동할 채비를 했다. 목적지는 민준이 있는 곳이었다.
보고르가 말했다.
“그냥··· 간단하게 죽여 버리고 빼앗으면 안 돼? 꼭 납치까지 해야 해?”
“안 된다니까!”
드래곤들은 그가 수형자임을 안다. 죽이거나, 긴 시간 임무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하면 재물손괴죄로 수배될 것이다.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난 다소의 험한 취급에도 위원회가 나서지는 않음을 파악한 상태였다.
한편, 숨어 있던 하은성은 더 이상 탐색을 포기했다. 바로 민준의 숙소로 돌아가서 이 사태를 알려야 한다. 숙소에 켄티우스가 침입한 사실을 알렸을 때처럼 말이다.
그는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로지르며 생각했다.
‘아무튼 드래곤들이란··· 와, 극혐!’
이미 억만장자라는 수식어로도 부족한 이들이며, 그 이상의 유산을 상속받을 예정이다.
그런 풍요를 누리는 부자들이 예민준이 손에 넣은 무언가마저 빼앗으려고 기를 쓴다.
저 끝없는 탐욕은 어디에서 솟구치는 걸까? 그 많은 걸 가지고도, 더 많이 못 가지면 성이 안 풀리는 듯 군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가 품은 드래곤 혐오가 더욱 짙어지는 것을 느끼며 하은성은 순식간에 레지던스에 도달했다.
***
“흐음, 그래?”
민준은 하은성의 설명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하나씩 나설 거라고는 생각했지.”
여전히 펭귄 옷을 입고 목에 단검이 박힌 영체 상태로, 하은성은 걱정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요원님, 어떡해요? 제가 본 그 두 마리 말고도 사방에서 지켜보는 드래곤이 많아요. 아직 요원님이 말한 머릿수만큼 다 찾지도 못했는데도요.=
요원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떡하긴.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다 잡아 죽이시게요?=
그는 민준이 창천을 죽인 데 ‘일조’한 걸 안다. 하지만 그때는 다른 고룡이 그 자리에 함께했다.
=젠킨슨 회장님을 부르실 거예요?=
민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양반 지금 바빠. 그리고 이런 일 때문에 어린 용을 다 잡아 죽이면 어떡하냐? 아깝게.”
=······?!=
“그거야말로 황금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르는 짓이지. 원래 낚시를 할 때도 새끼는 바닷속에 다시 풀어 주는 법이야.”
민준의 과거와 현재 자아가 섞인 말 때문에 하은성은 혼란에 빠졌다.
뭐? 아까워?
황금알··· 거위? 그리고, 낚시?
그제서야 민준은 말실수를 깨닫고 정정했다.
“내 말은 이 뜻이야. 용 함부로 죽이면 뒤처리가 아주 귀찮아진다.”
드래곤들이 민준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는 것처럼, 민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 어떡해요?=
“죽이지는 않되 제대로 밟아 줘야지.”
계속 이대로 방치하면 여러 놈들이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굴 것이다.
사전에 싹을 잘라 버리는 게 낫겠지.
하지만 그 과정을 자신이 직접 할 필요는 없었다. 민준은 손 안 대고 코 풀 방법을 떠올렸다.
“마침, 적당한 선수가 손안에 굴러들어왔거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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