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46
147.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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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종자 드래곤으로 널리 알려진 레오가 평소 경로를 이탈했음이 알려졌을 때 큰 관심을 기울이는 동족은 없었다. 심지어 그 사실을 알게 된 용이 많지도 않았다.
폭 1km 정도 되는 좁은 바닷길을 경계로 북쪽의 구룡반도, 남쪽의 홍콩섬으로 나뉘는 홍콩 도심부에서 그 드래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은 홍콩섬이었다. 그가 궤도를 틀어 북으로 향하자 다른 이들은 변덕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드래곤이었으므로 의도를 가늠하는 일은 무의미했다.
그 중에서도 칼리에테르는 이렇게 평했다.
“오늘은 좀 다른 쇼를 펼치고 싶어진 건가?”
그녀는 옅게 한숨을 쉬었다.
“이런 어수선한 시기에도 남들 관심을 끌고 싶을까? 용도 아닌 종족의 시선을 끌고 칭송받고 싶은 심리라니··· 저것도 기형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굳어지는군.”
마지막 말은 그녀 자신은 몰랐지만 이미 로드를 통해 민준에게도 한 번 옮겨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민준이 그때 이해했던 말의 느낌과 지금 그녀가 입 밖으로 낸 어감은 달랐다. 레오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투는 희미했고, 대신에 씁쓸함이 짙게 느껴졌다.
칼리에테르는 묻는다.
“우리 같은 종족에게 기형아가 태어나는 확률은 왜 이리도 높은 것일까?”
그건 자문도 혼잣말도 아니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젠킨슨이 답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지. 우리의 선조들도, 그들의 선조들도 답을 내지 못한.”
소식을 전한 부하를 물리고 잠시 더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가 말했다.
“수수께끼는 풀어야 하고 문제는 해결해야 할 텐데. 아무도 적극적으로 이 현상을 해결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그 역시 먼 옛날부터 전해진 우리 문화 아닌가? 고결한 드래곤의 피를 가지고, 드래곤조차 함부로 장난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금언. 용혈은 연구 대상이 아니라는 관념. 지구에서는 굳이 드래고닉 코드로 금지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징벌하는 차원도 많지.”
젠킨슨은 생각한다. 예전 장태준이 많은 변방 차원 중 하필 지구를 고른 것은 용의 피를 관리하는 용족 사이 규정이 그나마 다른 차원보다는 덜 엄격하기 때문이리라고.
여차해서 자기 피를 가지고 뭔가를 하는 중임을 들켜도 잘 넘길 수 있으리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래 봤자 모든 드래곤을 감염시킬 바이러스를 연구했다는 걸 들키는 순간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지만.
“하지만 이래서는 영원히 문제를 해결할 수 없잖아?”
“해결 이전에, 문제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판단하는 이들도 많지.”
말장난 같았지만 젠킨슨은 진실을 전하고 있었다.
“높은 기형 발생률은 아마도 유전자 문제일 텐데 그걸 해결하려면 용들의 DNA에 손을 댈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 가능성을 입에 담기만 해도 질색할 고룡들 얼굴이 수도 없이 떠오르는군. 드래곤은 절대 개량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호통치겠지. 지금 이대로도 완벽하고도 아름다우며 고결한 생물이니까.”
꼭 DNA에 손을 대지 않고 분석만 해도 문제였다.
유전자를 연구해서 기형아 출산 가능성이 없는 드래곤만 선별하고 그 사실을 알린다면?
그래서는 잉태와 출산의 선택을 왜곡시킬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드래곤은 가축이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 선택하여 태어나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니까.
“드래곤이 완벽하다고?”
칼리에테르가 그의 말을 반박했다.
“그건 기형으로 태어난 이들을 모두 어둠 속에 묻어 버리고 난 다음에야 주창할 수 있는 주장이다. 부족하고 흠을 가진 이들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강요한 자들이 그리 말해.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
젠킨슨은 그녀의 말에서 묘한 느낌을 감지했다.
그는 또한 칼리에테르의 아이가 드래곤 기준으로도 유난히 오랫동안 해츨링 취급을 받는 사실 또한 생각해 냈다. 해츨링이니 피가 이어진 드래곤 외에는 누구도 본 적이 없다.
“내가 괜한 말을 했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지.”
칼리에테르는 젠킨슨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뒤 놀랄 만큼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다.
오늘의 만남도 다가올 선거를 위한 전략을 짜기 위해서였다.
두 드래곤이 화제를 막 바꾼 그 순간.
“젠킨슨 회장님!”
“칼리에테르 님!”
블레어와 칼리에테르의 권속이 동시에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들은 다시 한번 레오라는 이름의 드래곤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뭐라고?!”
그 순간, 두 사람 외 다른 드래곤들도 비슷한 소식을 접하고 경악하고 있었다.
레오가 구룡반도와 홍콩섬 사이의 좁은 바다를 완전히 건넜을 때 드러난 경로 때문이었다.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레오의 동선을 듣지 못한 드래곤은 거의 없었다. 대다수 용족의 부하들이 급히 전할 만큼 중요한 정보가 된 것이다.
레오는 카이탁 차원 도약 터미널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긴 대체 왜?”
그들은 고민했지만 바로 움직임에 나서는 이는 없었다.
“홍콩 터미널은 위원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시설이잖아?”
“바로 옆 공항은 이 도시의 영주 소유다. 레이먼드는 이 사실을 이미 보고받았을 거야.”
더군다나 레오는 레이먼드의 아들이다. 그 사실까지 감안한 드래곤들은 개입하지 않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레오가 터미널 내의 사람들에게 소개 명령을 내린 그 순간까지도.
***
=다시 말하겠어. 모두 터미널 밖으로 나가! 죽고 싶지 않으면!=
레오의 정신파가 그곳의 모든 사람들 뇌리에 파고들었다.
이글거리는 번개를 입고 바다를 건너온 뇌룡은 터미널에 도달하기 전부터 명령을 내렸다.
시간은 밤중이었고 오늘은 외계에서 홍콩으로 들어오는 도약선도, 나가는 도약선도 없었다. 승객이 없기에 직원 대부분은 퇴근한 상태였고 건물에도 불이 꺼진 터미널 부지에는 경비 인력만 남아 있었다.
시설과 부지는 위원회 소유지만 위탁 운영하는 주체는 지구 회사이며 일하는 자들도 지구인이었다. 그들은 분노와 악에 받쳐 도망가라고 종용하는 드래곤과 맞서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근무 윤리에 용과 싸워서 이기라는 미덕은 없었다. 목숨을 바칠 정도로 고용주를 향한 충성이 투철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경비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도망쳐 버렸다.
파직! 파지직!
지지지직!
사슴을 닮은 뿔 사이로 스파크가 튀었고, 거기에서 튀어나온 번개는 비늘 위를 달리며 위세를 키웠다. 그가 두른 번개가 점차 두터워지고 강렬한 빛을 번뜩였다.
용은 아래를 내려다본다. 미리 경고했기에 그가 도착했을 때 터미널은 텅 비어 있었다.
레오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누군가와 온 힘을 다해 싸워 본 적이 없었다. 해츨링 때는 당연히 그럴 기회가 없었고 성체가 되고 나서도 극소수의 드래곤과 교류했다. 그는 드래곤다운 의견 충돌(주로 보물의 소유권을 두고 일어나거나 자기가 틀리지 않았다고 우기기에 발생하는) 때도 양보하는 쪽이었다. 욕망과 전투 의지에 들끓는 드래곤들 성정이 불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오는 오늘 난생 처음으로, 전력을 다하여 번개를 뿜어내 보았다.
콰르르릉!
그 결과는 스스로가 경악할 정도였다.
카이탁 도약 터미널 상공에서, 푸른 빛으로 빚은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홍콩 시민들은 여태 저리 굵은 번개를 본 적이 없었다.
“꺄아아악!”
“···맙소사!”
터미널 부지를 번개가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때렸다.
위원회는 테러 대비 결계를 준비해 두었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위협에 대한 준비였다. 그리고 드래곤은 언제나 비현실적인 위협이다. 전쟁 후 드래곤들 목에 돈으로 재갈을 채웠다고 장담한 위원회에도.
인공섬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폭발이 이어지고 건물과 땅이 조각나며 붕괴했다. 벼락이 동반한 무시무시한 열이 폭풍을 만들며 대지 위를 휘몰아쳤다.
레오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도취감과 혐오감을 동시에 느끼며 번개를 쏟아 부었다. 그 나이대 용이 저지른 짓이라고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용이 아닌 종족이 가까이서 보았다면 눈이 멀 섬광이 작렬했다. 물론 시력을 잃기 전 몸이 먼저 튀겨졌겠지만 말이다.
콰르릉!
콰쾅! 콰르르릉!
사나운 빛이 터미널을 중심으로 산개했다.
드래곤 로드의 임시 무덤이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노출되는 순간이었다.
레오가 저지른 짓 때문에 대피 중이던 터미널 종사자들도, 바로 옆에서 근무하던 공항 관계자들도, 홍콩에 남아 있던 다른 드래곤도, 일반 시민들도, 민준도, 켄티우스도 경악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느낀 경악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끔찍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이 시각 KE681편을 조종하는 파일럿들과 거기 탑승한 승무원 및 승객들이었다.
***
“Out of control! Out of control!”
기장은 침착을 잃지 않으려고 했지만 콜 아웃은(Call-out)은 이미 비명에 가까웠다.
항공기는 거센 파도 위에 뜬 조각배럼 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고도가 빠르게 떨어졌고 나아가는 궤도도 불안정했다.
비행기는 지금 추락하고 있었다.
모든 계기판이 먹통이었다. 착륙을 준비하던 KE681편에 관제탑이 회항을 지시할 때부터 조짐이 있었다. 기장은 그냥 착륙하겠다고 주장했지만 관제탑은 완고했다.
그때 공항 바로 옆 터미널에서 산더미 같은 번개가 쏟아져 내렸다.
“젠장! Gear up! Gear···!”
순식간에 계기판이 멈췄고 조작 계통도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저 벼락에 기기가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아니면 수십 년 전 이미 항공유를 대체한 마정석이 외부의 거대한 마법과 간섭 작용을 일으켜 더 이상 동력을 전달하지 않는 것일 수도.
무엇이 진실이든 기장은 그 이유를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비행기의 동선은 통제를 완전히 벗어났다.
“We’re down! We’re down!’
관제탑은 대답이 없다. 통신 계통도 망가진 것이다.
“······!”
기장은 각오를 한 듯 이를 악물었다. 벼락이 떨어졌을 때 비행기는 막 급커브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방향 전환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그 결과, 비행기는 활주로나 바다가 아니라 홍콩 도심 한복판을 향하며 추락하고 있다.
머릿속에서 불이 난 것 같았다. 기장은 최악의 사태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추락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명 피해라도 최소화해야 한다.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조종간을 필사적으로 붙든다. 그는 비행기를 바다 쪽에 추락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기장의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부기장 역시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려는 표정이었지만 파르르 손을 떨고 있었다. 조종실 문 너머에서 승객들 비명 소리가 들린다. 기내가 요동치고 시야가 계속해서 흔들렸다. 어지럽게 회전하는 유리창 너머, 뒤집힌 하늘처럼 셀 수 없는 별을 품은 도심이 보인다.
“안 돼, 틀렸어!”
기장이 마지막을 직감한 그 순간이었다.
“······.!”
무언가 변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변화라서 처음에는 기장과 부기장 모두 인지하지 못했다.
문 너머 이어지던 승객들의 비명이 멎었다. 비현실감이 비행기를 타고 있던 모두의 뇌리를 채웠다.
“···이건?”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 창밖에 펼쳐져 있었다.
아래로 보이던 모든 사물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들을 향해 다가오던 도시 풍경이 더 이상의 확장을 중단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마주하고 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항공기는 멈춰 있었다.
비행기가 추락하던 속도를 생각하면 기나긴 감속이 이어지고 나서야 가능한 현상이었다. 이렇게 허공에 ‘붙잡힌 듯’ 멈춰 버리면 막대한 반발력으로 기체가 산산조각나기 마련.
기장은 다급하게 창밖을 관찰했다. 고개를 연신 돌리며 육안으로 시야를 확보한다.
그때 곁에 앉은 부기장이 뭔가를 보았다.
“헉, 선배님?!”
기장은 고개를 돌리고 부기장과 같은 것을 보았다.
그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아?”
그것은 청동색 섬 한가운데에 박힌 커다란 눈이었다.
잠시 후 기장은 자신이 섬이라고 생각한 것이 어떤 생물의 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에서 뻗어 나온 길쭉한 촉수가 시야가 닿지 않는 기체 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비행기는 지금 어떤 상황인가?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쉬웠다.
그리고 그 시각, 홍콩 시민들은 기장이 상상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던 광경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있었다.
그들은 며칠 전 이미 그녀를 보았다. 다만 이런 식으로 재회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늘을 뒤엎은 거대한 촉수 생물이 상대적으로 가는 한 가닥을 뻗어, 추락하던 비행기를 휘감은 상태였다.
여객기가 왜 부서지지 않았는지, 아무도 없었던 허공에 저런 거대한 생물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저 경악할 뿐이었다.
=대체···.=
그들 대다수는 또한 알지 못했다.
촉수 덩어리 한가운데 달린 거대한 눈이 막대한 분노에 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게 무슨 짓입니까!=
격노한 촉수의 정신파가 하늘 가득히 울려 퍼졌다.
엔델리온의 공주는 며칠 간격으로 연이어 대참사가 벌어질 뻔한 홍콩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추락하기 전에 낚아챈 비행기를 조심스럽게 공항에 내려놓았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모로 누운 빌딩이 탄력 있게 움직이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 과정에서 공주는 잠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회상을 떠올렸다. 한때 인간들이 타고 대피하는 우주선을 ‘벌레’로 인식하고 격추시킬 뻔했던 과거를. 수형자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고작 백년이 조금 넘었던 그 세월이 그녀의 일부를 확실히 바꾸어 놓은 모양이다. 본체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델은 염동력을 쓰는 대신 반사적으로 촉수를 뻗어서 여객기를 구했다. 그만큼 상황이 급하게 느껴졌다는 뜻이다.
그 상념을 털어 버리고, 촉수 생물은 다시 어마어마한 분노를 담은 채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터미널은 엉망이었지만 제일 중요한 도약선 유도 장치는 멀쩡했다. 그곳만큼은 고룡이 떼로 몰려오지 않는 이상 파괴 불가능한 결계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 건물을 제외한 나머지는···.
=위원회의 사유 재산을 파괴한 죄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그녀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레오가 입을 열었다.
촉수 괴물과 드래곤의 눈이 마주친다.
그 순간 델은 저 어린 용이 매우 지쳐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눈동자에 광기에 가까운 무언가 맺혀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용이 선언했다.
“자수하겠습니다.”
***
“저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그 시각, 민준이 그 장면을 보며 기절초풍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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