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47
148.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 (20) >
민준은 레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테러 자체가 무의미한 짓이다. 어린 용치고 대단한 기량을 보였지만 저 정도 번개로는 승객을 위한 시설이나 계류장, 조경 구역 정도에만 타격을 입힐 뿐.
민준의 눈엔 보였다. 가장 중요한 시설, 유도 장치가 있는 곳은 굳건했다. 주변이 열 폭풍에 휘말려 타오르는 중에도 말이다.
더군다나, 어차피 저지를 거면 왜 순순히 자수를 하는가? 도주 시도조차 하지 않고?
“맙소사!”
그때, 켄티우스가 비명을 질렀다.
“설마··· 내가 한 말 때문에?!”
“그건 또 무슨 뜻이야?”
레이먼드의 저택에서 그 고룡과 면담하기 직전 단둘이 이야기를 나눈 것은 민준도 알았다. 하지만 그 대화 내용까지는 알 수 없었다.
용은 더듬거리면서 설명했다.
“레오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몸을 영원히 버리고 싶다고. 드래곤이 아닌 어떤 종족이라도 좋다고.”
그의 상태는 단순한 종족 정체성 장애가 아니었다. 레이먼드가 설명한 대로 용체는 자기 것이 아닌 영혼을 밀어내고 빙의된 영혼도 그 육신을 혐오하게 된 것이다.
-이건 뭔가 잘못됐어! 난 용이 싫어! 내가 용이라는 게 싫다고!
한탄하던 레오의 음성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말했지. 죽지 않고 몸을 갈아타는 방법은 내가 아는 한 하나밖에 없다고.”
이어진 말을 듣고 민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수형자의 노동교화형?”
그는 한쪽 눈으로는 켄티우스를 보면서 다른 한 개의 눈동자로는 몇 킬로미터 밖 터미널 위 광경을 응시한다.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저런 짓을 했단 말이야? 용의 몸이 아닌 다른 육신으로 갈아타고 싶어서? 기억을 다 지우고 강제노역을 하면서라도?”
민준은 방금 전 레오를 평가했던 말을 수정해야만 했다.
그냥 미친놈이 아니었다.
최근 경험한 것 중에 가장 지독한 광기를 그에게서 느꼈다.
‘용에게 영혼을 빙의시킨 여파가 그 정도란 말인가? 하지만 하은성은 안 그렇잖아. 그 녀석은 좀 멍청하고 눈치가 없고 착각 잘 하고 어리숙하고 판단력이 안 좋고 상황 파악, 주제 파악을 못 하고 이상한 포인트에서 감정 기복이 심하긴 하지만··· 저런 광기는 보인 적이 없었는데?’
이건 수형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에 내릴 수 있던 선택이다.
목 바로 밑에 칼날이 들어온 상태에서, 손발이 쇠사슬로 묶인 채 불구덩이 위를 쉴 새 없이 뛰어야 하는 삶이다.
이건 산다기보다 끌려가는 것이다. 생(生)이라는 지옥에 갇힌 것이다.
민준은 연민마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레오는 거부 반응이 너무 심해서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혀를 찼다.
‘넌 최악의 선택을 한 거다.’
민준은 테오 크리스티안센을 기억한다. 수형자 한 명을 죽인 대가로 그에게 책정된 퇴직금은 20만 달란트였다.
죄목은 재물 손괴.
그리고 위원회는 수형자 한 명의 가치보다 터미널을 더 중하게 여긴다. 레오에게 책정될 퇴직금은 어비스에 집어 던져진 흑마법사의 그것을 능가할 것이다.
‘네게는 최악이고, 다른 드래곤들에게는 오히려 득이 되는 선택지라고.’
레오는 가장 성공에 근접한 실험체였다.
반대로 말하면 가장 우수한 실패작이었다는 뜻이다.
레이먼드는 그의 몸을 차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가 성장하면서 보이는 특성을 몰래 기록하여 다음 실험에 활용하려고 했다.
드래곤을 혐오하는 드래곤이 저대로 계속 나이를 먹고 고룡 정도 연령이 되었다면?
제2의 장태준이 탄생하는 것이다.
민준은 동족 혐오에 물들어서 다른 용을 모두 지우고 이 세상을 정화하려고 한 드래곤을 안다. 그 작자는 대체 어떤 성장 배경 때문에 그 지경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레오는 장태준과 달리 드래곤에 대한 혐오를 마음껏 펼칠 능력과 배경을 갖추기도 전 위원회에게 체포되었다.
‘더군다나 노동교화형을 위해 무슨 종족 몸을 받을 줄 알고?’
드래곤이 아니면 뭐든 좋다고 했지만, 다시 태어나고 나면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었다.
수형자들도 자주 몸을 교체할 경우 거부 반응을 느낀다. 그들의 정신이 쉽게 무너지는 이유 중 하나였다.
민준은 레오를 향해 안타까움을 느꼈다.
***
파앗!
터미널 상공의 델은 허공에 빛의 가루를 소환했다. 그것은 동전 비슷한 크기로 뭉치더니 무수히 증식했다. 각각의 빛 뭉치는 서로를 엮으며 날카로운 체인 형태로 드래곤을 둘러쌌다. 용의 뼈와 비늘을 찢어 발기기에 충분한 힘을 품은 채.
그것을 본 레오는 힘없이 몸을 늘어뜨렸다. 항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델은 상대가 완전히 제압된 것을 확인한 뒤 다시 터미널과 주변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화내고 있다는 사실에 의아함과 낯섦을 느꼈다. 분노는 레오의 테러 때문만은 아니었다. 델은 방금 벌어질 뻔한 사고를 생각했다. 비행기 한 대가 도심에 추락하기 직전이었지만, 지금 이 도시에 와 있는 무수한 드래곤들 중 단 하나도 나서지 않았다.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ICC 빌딩과 달리 터미널은 위원회 소유다. 테러를 오히려 반기는 드래곤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지금 이 순간 홍콩을 지배하는 드래곤이 아마도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그마저 나서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나머지 용들 입장에서는 남의 영지에서 인간이 좀 죽는 정도는 나설 일이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더욱 화가 났고 더 큰 어색함을 느꼈다.
자신이 언제부터 ‘징그러운’ 포유류의 안위에 이리도 신경을 썼던가?
그 위화감에 오랫동안 집중하는 대신 델은 자기가 할 일을 하기로 했다.
***
“엇?”
델이 결심을 한 그때, 호텔 방의 켄티우스가 눈을 찌푸렸다. 민준이 의아한 듯 묻는다.
“왜?”
“방금 엔델리온의 공주가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네게?”
일대일로 연락을 해야 할 정도로 켄티우스가 그리 대단한 드래곤은 아닐 텐데?
민준의 의혹은 곧 해소되었다.
“로드의 모든 직계 상속자들과 증인으로 나선 고룡들에게 동시에 전한 모양이다. 드래곤 로드의 시신 관리인으로서.”
“이 와중에?”
이 어수선한 타이밍에 위원회의 관리가 아니라 드래곤의 시신 관리인으로서의 일에 집중한단 말인가?
“아, 그렇군.”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늘 테러를 당한 그곳 지하에는 로드가 안치되어 있다.
물론 레오의 공격 때문에 시신이 영향을 받지는 않았겠지만 그 인공섬에는 지금부터 대규모 공사가 시작될 것이고 각종 건축 마법이 펼쳐질 터다.
오직 위원회만 손댈 수 있는 공사이므로 각종 외계인들과 고급 장비도 많이 유입될 것이고.
그것들이 가동하는 도중에 결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더이상 고인을 조용하고 은밀하게 모셔 두기에는 맞지 않는 장소가 된 것이다.
‘시신을 옮기겠군.’
낭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일 시신을 살피려고 했는데 레오의 돌발 행동 때문에 그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디로?”
켄티우스는 메시지에 집중하다가 말했다.
“위원회가 지분을 가진 알맞은 부지 중 가장 가까운 곳은··· 한국에 있다는군.”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상해 터미널이 여기서 가장 가까웠다.
하지만 한때 중국 제1의 상업 도시였던 그곳은 광동 독립 선언에서 촉발된 중국 내전 때문에 현재는 좀비들이 득시글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다. 위원회는 자연스럽게 그곳의 터미널을 폐쇄했다.
민준은 기억을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터미널은 젠킨슨도 지분을 좀 가지고 있을 텐데?”
“그도 동의했다. 오늘 바로 옮긴다는군.”
“흐음, 그럼 일단은···.”
“어?”
민준이 말을 끝맺기 전 켄티우스가 무언가를 느낀 듯 중얼거렸다.
“또 메시지가 들어왔다.”
“이번에도 델이야?”
“아니.”
켄티우스가 고개를 돌리며 한 드래곤의 이름을 말했다.
민준이 홍콩으로 돌아와서 레이먼드를 가장 먼저 만나야 했던 이유.
그의 의뢰주 이름을.
“이나이스다.”
***
마법 영상 속 독룡은 여전히 피곤해 보였다.
-그간 진척된 상황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해요. 방금 전 엔델리온의 공주가 보낸 정신파 내용 때문에 놀라기도 했고.
그녀의 아이 역시 로드의 직계 상속자이므로, 보호자인 그녀에게 델이 연락을 넣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켄티우스, 대체 홍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레오 그 애는··· 갑자기 거길 왜 공격한 거예요?
그러더니 중얼거린다. ‘아무리 관심에 목마른 아이였다고는 해도 그 정도로 물불 못 가릴 줄은. 생각보다 심각한 정신병인가?’
민준과 켄티우스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는 이나이스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의뢰를 받을 때 약조한 바와 같이 진행 상황을 공유할 필요는 있었다.
민준은 켄티우스가 대신 설명하도록 했다. 이나이스 입장에서는 믿기 힘든 설명이 될 것이니 드래곤 입을 빌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레오 이야기는 차치해 두고 일단 레이먼드 이야기부터 하지요. 우린 오늘 그를 만났습니다.”
이나이스의 두 눈이 커졌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묻는다.
– 그렇게 대놓고? 그가 눈치채지 않을까요?
“아니, 우리가 요청한 것이 아니라 그가 초대한 것이었습니다.”
켄티우스는 그간 일을 적당히 각색하여 설명했다. 물론 민준이 레이먼드와 싸우고 세뇌했다는 내용은 쏙 뺀 상태였다.
듣고 있던 이나이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 그럼, 결국 당신들이 지금 추측하는 건···.
“물론 레이먼드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니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레이먼드의 진술을 100% 믿을 수 있는 이유를 이나이스에게 설명할 방도 역시 없었다. 그렇기에 애매모호한 영역으로 남겨 둔다.
켄티우스는 머릿속 대본을 따라 그대로 읊는다.
“이나이스, 당신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요? 로드가 많은 자식을 연이어 낳는 행동은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아이를 낳기 위한 시도로 보였다고.”
켄티우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면 모두 맞아떨어집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그가 자살했다는 증거를 찾을 생각입니다.”
이나이스는 한참을 침묵했다.
민준과 켄티우스는 그녀가 큰 충격을 받았을 거라고 짐작하고 그녀가 그것에서 빠져나오길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녀는···.
– 정말, 이건··· 정말이지.
무슨 그런 개 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내가 지구에 와서 들어 본 이야기 중 가장 어처구니가 없는 헛소리군요.
“이나이스.”
켄티우스는 그녀가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현실을 부정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그럴 뻔했으니까.
– 로드가 자살했다구요?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을, 자기 새 몸으로 쓰기 위한 목적으로 생산했다고요?!
그녀는 더 이상 이 주제로는 말도 섞기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켄티우스가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받아들이기 힘들 거라 짐작합니다. 당신은 아직 로드의 알을 품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알잖아요? 로드는 항상 알이 부화하기 전 배우자 곁을 떠났어요. 배란과 착상과 발달과 산란에는 관심이 있지만 정작 부화할 때는 그들 곁에 없었다고요. 항상 그런 식이었죠.”
이나이스는 허탈한 바람을 뿜으며 웃었다. 그녀의 턱에 매달린 덩굴 식물이 흔들렸다.
– 내가 낳은 알이, 이 안의 아이···.
이나이스는 ‘아이’라는 단어를 읊다 말고 잠시 멈췄다. 민준은 그것이 말실수를 하기 직전 중단하는 모양새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나이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 ···가 로드의 새 몸을 위해 설계되었다고요? 맙소사, 켄티우스.
그녀는 이제 실소를 숨기지 않았다.
– 당신은 로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요.
켄티우스가 샐쭉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 기회도 시간도 없었지요. 애초에 제 곁에 있었던 적이 없으니. 하지만 객관적 증거는 이미 충분합니다.”
– 그 증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더 듣고 싶지도 않군요. 하지만 이거 하나는 당신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로드가 자신을 닮은 아이를 최대한 많이 만들고 싶어 한 이유는···.
이나이스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 이 우주에 자신을 닮은 드래곤이 더 많이 생겨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어요. 그의 유전자를 가능한 많이 뿌리고 싶었던 거라구요.
수컷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본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 로드는 자신이 특이한 드래곤이라는 걸 알았어요. 용 기준으로도 괴물로 분류될 정도로 강력한 개체였죠. 그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 드래곤이 늘어나면 언젠가 위원회와의 파워 게임에서 판을 뒤집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예요.
“······.”
켄티우스는 신통치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나이스는 말을 이어나갔다.
– 또한 그는 용이 아닌 종족과 함께 이 세상을 걸어 나갈 의향을 지닌 드래곤이었어요. 그들을 지배하고 찍어 누르는 대신 대등한 눈높이에서 연계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나 역시 이 부분은 공감이 잘 안 되지만··· 로드는 그게 앞으로의 드래곤을 위한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지요.
그 말에는 민준이 이해한 로드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 전쟁 때 우리가 지배하던 종족이 대다수 용을 배신하고 위원회 쪽에 붙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아무튼 로드는 자신의 그런 특성을 후천적 기질보다 타고난 무언가로 판단했어요. 그런 성향의 드래곤이 이 세상에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뭐? 자기의 새 몸을 만들어? 어처구니가 없군요.
이나이스는 켄티우스의 말을 믿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민준과 켄티우스 역시 그녀의 말이 깊게 와 닿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고인의 유지에 대한 엇갈린 견해만 드러내고, 대화는 결국 큰 소득이 없이 끝나 버렸다.
이나이스는 의뢰를 거두어들이지는 않았다. 어떤 종류든 단서를 쫓아 계속 따라가다 보면 뭔가 나오리라 기대한다면서.
통신이 종료된 뒤 민준은 생각했다. 그는 이나이스의 말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전부 추측과 가설에 불과하다.
거기에 집중하는 대신 민준은 당장 다음 스텝을 생각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로드의 시신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한국에 들어가야 할 모양이다. 생각보다 귀국이 빨라졌다.
‘가는 김에 최선아를 만나서 그간 쌓인 예언도 들어야겠군. 그리고 젠킨슨의 개인 실험실도 좀 빌려 쓰고.’
민준은 아공간에 넣어 둔 돌조각을 떠올렸다. ICC 빌딩 붕괴 현장에서 업체가 빼돌린 것으로 표면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캐시가 구해 온 것이었다.
그는 여전히 로드의 숨겨 놓은 자식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95일 뒤 아공간 큐브가 열리고 안에 든 물건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과는 별개로, 민준은 그 나름대로 찾아볼 생각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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