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48
149.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 (21) >
***
목이 마르군.
예언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 민준이 한 생각이었다.
홍콩을 떠나기 직전 시작된 갈증은 진득하게 그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소용없을 것을 알면서도 오크에게 물을 한 잔 청해 보았다. 최판석은 비서나 가정부 등 고용인들을 모두 집에서 물린 상태였다. 의원은 더없이 공손한 자세로 직접 물 한 잔을 바쳤다.
벌컥! 단숨에 비웠지만 식도 언저리에 맺힌 목 탄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애써 그것을 억누르며 민준이 말했다. 건조한 어투였다.
“지난 엿새 동안 예언이 밀린 이유를 들어 볼까?”
민준은 하루에 한 번 예지한 내용을 업데이트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요 엿새 전달된 메시지가 영 탐탁지 않았다.
그전에도 최선아가 하루 이틀의 여유를 달라고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엿새나 미룬 적은 처음이었다. 민준은 세뇌된 최판석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틀어졌다면 최선아 쪽일 것이다.
예언자는 불안한 곁눈질로 양부를 보았다. 최판석은 민준을 다시 만난 게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새삼 다시 소름이 돋았다.
“명목 없습니다. 예언을 잘못 전해서 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딸아이와 둘이 머리를 싸매고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또, 미래의 장면 속 단서가 더 없는지 최대한 파악한 뒤 보고드리려고 했지요. 혹시라도 오도하여 요원님께 해를 끼치면 안 되니 말입니다.”
마지막 말은 아부나 빈말처럼 들렸지만, 민준은 그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경우에도 그에게 해가 될 행동을 금한다는 건 암시를 심을 때 함께 깐 행동 요건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힘든 부분은···.
“그 해석이 6일이나 걸렸다고?”
최선아가 대신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며칠 전부터 동일한 미래 장면만 보였다는 이야기. 민준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흐릿하게 보였기 때문에 이해가 힘들었어요. 점차 장면이 선명해졌죠.”
“아시겠지만 예언이라는 게 보이는 그대로 실현될 수도 있지만, 상징과 은유로 표현되는 경우도 상당합니다. 특히 이번 경우는 후자가 확실합니다.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되는 종류이지요. 여태 딸아이는 수천, 수만 종류의 예지를 보았고 저와 함께 그걸 해석했습니다. 지금까지 축적된 경험적 지식을 믿어 주십시오.”
기분 탓인지 민준은 갈증이 더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해석한 결과는?”
“며칠 보고를 지체하면서 노력했지만 그 이상의 디테일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본 장면만 토대로 해석한 결과···.”
오크는 목소리를 줄였다. 그리고는 어깨를 민준 쪽으로 기울인다. 민준 역시 저절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최판석은 엄청난 비밀을 털어놓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확하게 94일 뒤, 요원님께서는 막후에서 모든 권력자를 지배하는··· 이 세계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실 겁니다!”
“······.”
잠시의 침묵 뒤.
다시 말을 꺼내는 민준의 목소리는 약간 갈라져 있었다.
“···뭐?”
오크가 심각하게 말했다.
“당황스러우실 것을 짐작합니다. 저희도 그랬으니까요.”
최선아가 부친의 말에 동조했다. 자신이 뱉는 말임에도 믿기 힘들어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동시에 믿기 싫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도저히 다른 식으로는 해석할 수 없었어요.”
최선아는 민준이 최판석을 완벽하게 세뇌한 것을 이미 목격했다.
한 명이 가능하다면 여러 명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런 식으로 세계의 권력자들을 모두 세뇌한다는 게 가장 적합한 해석이었다. 물론 예지 영상대로 ‘진짜 드래곤’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아니, 잠깐. 잠깐.”
지독한 갈증에 이제 두통까지 더해졌다. 민준은 인상을 찌푸린다.
“더 자세히. 본 대로 다 이야기해 봐.”
“확실한 포인트가 세 가지 있습니다. 하나, 이 세계의 권력자들이 모두 요원님의 말씀에 복종하리라는 것. 둘, 그 지배와 통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을 것이며 아주 은밀하게 진행될 거라는 것. 셋, 그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94일 후라는 것입니다.”
94일 후.
‘이 세계의 지배자’라는 얼토당토않은 단어보다도 민준의 신경을 더욱 거슬리게 만드는 단어였다.
민준은 94일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다.
지구의 새로운 드래곤 로드가 선출되는 날이며, 로드의 직계들이 범인을 찾지 못하면 드래곤 하트의 소유권이 새 로드에게 넘어가는 날이다. 동시에 민준이 고인에게 물려받은 유산의 결계가 깨지는 날이기도 하다.
민준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세계의 지배자라고?’
오크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어투로 말했다.
“그날이 오면 요원님이 어둠 속에서 각 국가를 손에 쥐고 흔들게 되는 겁니다!”
별로 흔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거.
민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위원회를 전복시킬 미래를 예지하라고 했더니 엉뚱한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설사 민준이 지구를 암후에서 지배한다고 해도 이런 변방 차원 하나가 위원회와의 싸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많은 달란트를 얻어서 기억과 힘을 되찾고 동족들을 깨우는 것이었다. 지구인들이 아무리 전적으로 협력해도 실천에 한계가 있는 일이다.
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그냥 본 내용 그대로를 말해 봐.”
“하지만, 이미 설명드린 대로 예언이라는 게···.”
“해석을 잘하든 못하든 내가 판단할 테니까 일단 필터 거치지 말고 그대로 말해 보라고.”
최선아가 떠듬거리면서 설명을 시작한 순간.
“······!”
민준은 말문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경악을 감추며 간신히 되물었다. 매우 지친 목소리로.
“그림자라고?”
“네. 그리고 그 그림자가 드래곤들의 뇌를···.”
민준은 자신이 확보한 예언자의 실력을 다시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렇기에, 대체 그 미래가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의혹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최선아는 과거에 민준이 애용하던 용 도축법을 세밀하고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
“젠킨슨, 바쁠 텐데 도와줘서 고마워.”
“자네를 위해서 이 정도 시간은 낼 수 있네. 더군다나 그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달려올 수밖에 없더군.”
민준은 예언을 확인한 뒤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젠킨슨의 연구실로 왔다. 친우에게 시간을 맞춘 것이다. 한창 바쁜 와중 자기 때문에 잠시 귀국한 고룡을 위해.
이해하기 힘든 예언, 지구가 용 도축장이 되는 미래는 잠시 마음 한편에 치워 둔다. 대신 지금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켄티우스와 함께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애도 한국에 와 있나?”
“그래. 오늘은 떼어 놓고 왔어.”
젠킨슨이 주저하며 물었다.
“그 성격에 자네 앞에서 얌전하게 굴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거래를 받아 줬다는 건··· 혹시 뒤통수를 거하게 후릴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건가?”
“······.”
민준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젠킨슨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부탁하네. 너무 가혹하게 굴진 말아주게. 본성이 나쁜 아이는 아니야.”
민준은 화제를 돌렸다.
“내가 말한 가설에 대해 생각해 봤어? 여전히 믿을 수 없나?”
젠킨슨은 콧방귀를 뀌었다.
“당연하지. 로드는 그럴 드래곤이 아니야. 확신할 수 있네. 다만, 숨겨 놓은 자식이 없을 거라고는 장담 못 하겠군. 생전 그리 많은 아이를 낳았으니 숨겨 놓은 애도 한둘 있을 법 하거든. 하지만 그 애가 로드의 새 몸이라고? 당치도 않은 소리.”
“곧 알게 되겠지. 누구 생각이 맞을지.”
“자네 부탁이니 시도는 해 보겠지만 제대로 찾아낼지 모르겠네. 그런데, 오늘따라 물을 참 많이 마시는군? 여기는 원래 나만 쓰는 공간이라 식수를 두지 않았는데.”
“아, 괜찮아. 이걸로 충분해.”
민준은 어느새 다 비운 생수통을 내려놓았다.
갈증은 정신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뭔가를 마시면 조금 가시기는 해서 민준은 계속 물을 들이켜는 중이었다.
흑마법 중에는 체내 수분을 갑작스럽게 증가시켜 전해질 균형을 깨뜨리는 저주도 있고, 흘린 피를 물로 바꾸는 저주도 있지만, 고작 목마르다는 이유로 흑마력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았다.
민준은 품에서 피 묻은 콘크리트 조각을 꺼냈다.
“로드의 혈흔이야.”
끄응, 침음을 흘리며 젠킨슨은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계기판을 만지고 몇 마디 주문을 중얼거렸다. 준비가 끝나길 기다리며 민준은 실험실 안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최근까지 용거미 연구에 할애되었던 공간이다. 실험 촉매로 쓰기 위해 젠킨슨은 자신의 용혈을 적당량 채혈하여 여기에 보관해 두었다. 벽면 가득한 투명 용기 안 액체가 그것이었다. 용 입장에서는 피 조금 뽑은 것이지만 인간이나 엘프 등 아담한 사이즈의 종족이 빠지면 익사하기 충분한 용량이다.
민준은 생각한다. 용혈에 빠져서 익사라··· 참으로 호화로운 죽음이군.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실험실에 들어서면서 부쩍 기승부리던 갈증이 더 심해졌다. 이제는 목이 따가울 정도였다.
-우우웅!
피를 담은 유리 용기의 하단부가 개방되고.
쏴아아아!
대량의 혈액이 허공으로 분사되었다. 민준은 마른 침을 삼켰다. 목젖이 갈라지듯 아팠다.
용혈은 바닥에 떨어져 피바다를 만드는 대신 허공에 구체처럼 뭉쳤다. 민준이 충분하다는 손짓을 보내자 젠킨슨은 분출을 멈췄다.
핏방울을 수만 배 확대한 듯한 구체를 향해 민준은 주문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제례 단검을 힘껏 쥔다.
푹!
소매를 걷은 왼팔에 검은 칼날을 내려찍었다. 팔이 축 늘어지고 공기가 불길한 파동을 그렸다. 피부가 마른 나무껍질처럼 변했다. 순식간에 미이라처럼 비틀어지는 왼팔.
-우웅! 우우웅!
허공의 붉은 구체가 움직인다. 표면에서 피로 빚은 돌기 같은 것이 돋아나더니, 조각에 묻은 혈흔에 다가가서 닿았다.
그 뒤 벌어진 일은 육안으로 구별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민준은 의도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이것 역시 일종의 저주다. 피의 성질을 다른 사람 것으로 바꿔 버리는 저주.
이 마법은 추적자를 따돌리기 위한 거짓 증거를 남기는 데 활용하기도 하고,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쓰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는 혈관 안에 흐르는 피가 갑자기 엉뚱한 사람 것으로 바뀌었을 때 몸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잘 되고 있나?
젠킨슨이 물었고.
“완벽해.”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목적 말고 다른 이유로 이 마법을 택했다.
돌 조각에 묻은 로드의 혈흔은 매우 작았고 이미 말라서 생기를 잃은 상태였다. 저 상태로는 마법 촉매로 쓸 수 없다. 그래서 민준은 그 피를 양호한 상태로 재생산하기로 결심했다.
베이스가 되는 신선한 용혈은 젠킨슨의 것으로 골랐다. 혈흔에 남은 정보는 염료에 비유할 수 있고 젠킨슨의 생혈은 물 역할을 한다. 전자를 후자에 풀어 로드의 색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예상되는 결과는 간단했다. 생명력이 남아 있는 젠킨슨의 피를 드래곤 로드의 피로 바꿔버린다.
“지금.”
성질이 변한 용혈 앞에서 젠킨슨은 주문을 외웠다.
오로지 드래곤만 쓸 수 있는 스펠.
-파앗!
마법이 완성된 순간 주변에 은은한 힘이 퍼져 나갔다. 민준은 그것이 느릿한 시간 동안 땅과 바다를 훑으며 나아가 결국은 행성 전체를 덮을 것을 알았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이 피의 진짜 주인이 아니라서 효과가 완벽하지 않을 거야. 제일 확실한 건 드래곤 로드가 직접 이 주문을 외우는 건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젠킨슨은 방금 드래곤 로드의 직계 후손을 찾는 마법을 발동시켰다. 시전자의 한계 때문에 다소 불완전한 주문이었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단서라도 좋아.”
“결과가 나오면 알려 주지. 자네가 원하는 만큼 깔끔한 형태로 나올지는 모르겠군. 그럼···.”
젠킨슨은 크기가 부쩍 줄어든 피 뭉텅이를 바라보았다. 방금 주문으로 소모되고 난 뒤에도 조금 남은 것이다.
“이건 어떻게 할 건가?”
그 말을 들으며 민준은 새삼 젠킨슨이 얼마나 독특한 드래곤인지 되새겼다.
여기에서 자기 피를 뽑아 실험하고 있었던 것부터, 아무리 장태준을 보고 발상의 전환을 했다곤 하지만 드래곤다운 행동은 아니다.
더군다나 로드의 용혈 처분을 용이 아닌 종족에게 묻다니.
민준은 자기가 보관하고 있겠다고 답하려다가.
“······.”
문득 뭔가를 떠올리고는 생각을 바꿨다.
“혹시 시간 괜찮으면 그거 가지고 실험 하나 더 해 봐도 될까?”
“무엇을?”
민준은 실험실에 배치된 기기 중 하나를 가리켰다. 얼마 전 이곳에서 젠킨슨은 저 마도구를 가동하는 장면을 보여 주었다.
“아아. 자네도 관심이 있었군?”
그것은 용거미의 혈액에 다양한 마력 패턴을 투사하여 그 결과를 분석한 장치였다.
민준은 그날 피에 새겨진 흔적을 읽어 냈다. ‘축산물 이력 관리 시스템 정보 열람’이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먼 옛날의 데이터.
젠킨슨 같은 현대의 드래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 반응이었다.
‘로드는 가장 늙은 드래곤 중 하나였지.’
그는 드래곤 로드의 유언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떠올린다.
-유언자 ‘아게르-피쉬코-코이스-할레키아-류브라이-아젤-아젤-세크나트-코이스-아게르’(주거지: 로스 파드레스 국립공원, 6750 산타 마리아, 캘리포니아, 미합중국)는 위대한 선조의 명예와 의지를 이은 드래곤이며, 완전하고도 온전한 정신으로 본 유언장을 작성하였다. 나는 부당한 외압이 적용되지 않는 순수한 개인적 희망과 소망에 근거, 다음과 같이 뜻을 남긴다.
그의 길고 긴 본명을 구성하는 낯선 단어들.
드래곤들은 그것을 고대의 용족들 이름이라고 추측한다. 선조의 이름을 중간 이름으로 나열하는 명명법은 범차원적으로 드물지 않으니까.
하지만 민준은 진실을 알고 있다.
저 단어들은 누군가의 이름이 아니라, 먼 옛날에 쓰이던 숫자다.
진법이 좀 다르기 하지만···.
‘아게르-피쉬코-코이스-할레키아-류브라이-아젤-아젤-세크나트-코이스-아게르’.
요즘 드래곤들은 선호하지 않는 이 긴 이름을 현대 언어로 치환하면 대충 이렇다.
‘1-7-3-4-5-2-2-9-3-1’.
아무래도 로드의 이름은 먼 과거에 그들을 분류하던 축산물 품번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 희미한 기억이 사회 문화적 관습으로 남아 있을 정도의 시절에 태어난··· 지금 기준으로는 고룡 중의 고룡이었던 거지.’
-파앗!
젠킨슨이 로드의 피로 변한 용혈을 용기에 넣고 뭔가를 하자 그때와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마력파가 한곳에 집중된다. 로드의 피는 그것에 반응하며 왜곡된 마력파를 반사해 냈다. 기기는 파동을 읽고 모니터에 띄운다.
두 사람의 시선이 거기에 집중되었고.
“호오?!”
젠킨슨이 탄성을 질렀다.
그는 자신과 용거미의 피 말고 다른 용혈을 분석해 본 적이 없었다. 자원할 드래곤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내심 새로운 뭔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그는 눈을 빛냈다.
“이건 그때 실험체의 반응과 비슷하군!”
“······.”
“내 데이터베이스에는 이번에도 매칭되는 것이 없어.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여전히 읽을 수 없는 문자인가?”
민준은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모니터를 집중하여 응시했다.
화면에 도식화되는 마력파.
용거미 때와 마찬가지다. 민준은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시작은 비슷했다.
축산물 이력 관리 시스템 정보 열람
-개체 식별 번호: 미상
-원산지: 미상
-도축장: 미상
-도축 종료일: 미상
-가공장: 미상
-유전 정보: 화룡-241형 (품종 개량사: 라투마, 등록연도: 6,210년) / 순혈 검증 완료
※유전자 훼손이 심각하여 정확한 정보 열람이 제한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먼 옛날에 동족들이 새겨 두었을 정보 다음에는 새로운 문자열이 이어졌다. 젠킨슨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용거미 때보다 정보량이 훨씬 많군. 로드는 제대로 된 용이라서 그런 건가? 그런데 왜 나는 이런 반응이 없었던 것이지?”
중얼거림을 귓가에 흘리며 민준은 파동의 형태를 읽었다.
그것은 앞선 것과 달리 매우 조악했다. 비유하자면 글자를 막 배운 어린아이가 글쓰기 솜씨를 뽐낸 듯한 삐뚤삐뚤한 서체에 문법과 정서법이 틀린 부분도 많이 눈에 띄었다. 또한 태초의 종족처럼 선명하게 새기지 못해서 흐릿하게 일그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읽고 해석할 정도는 되었다.
“잠깐. 여기 중간중간 섞인 마력 패턴,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데.”
젠킨슨은 어렴풋이 기시감을 느꼈지만 정확하게 짚어 내지는 못한다.
축산물 정보 다음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마력 파동에는 누군가의 지문이 묻어 있었다. 민준은 그것이 누구 것인지 똑똑히 기억했다.
‘드래곤 로드!’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민준은 저 파동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일종의 편지였다.
스스로 유전자 속에 숨겨 둔 전언.
이것을 자극하여 내용물을 확인할 ‘누군가’에게 드래곤 로드는 이런 질문을 던지며 편지의 서두를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민준은 그것을 읽는다. 귓가에 로드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겹쳤다.
로드의 질문은 간결했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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