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53
154.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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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엘프는 혼란에 빠졌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곤혹스러운 감정이었다.
‘아시프?’
불청객은 분명 민준을 아시프-666이라고 불렀다.
엘프가 알기로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을 칭하는 말이다. 갱생의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한 차원에서 자체관리를 못할 정도로 위험한 자들. 그런 죄인들은 위원회에서 직접 재갈을 채우고 노동교화형에 처한다.
굳이 죽이지 않고 부리는 이유는 그냥 ‘폐기’하기에는 지나치게 능력이··· 그 성능이 좋기 때문에.
다시 말해, 매우 유능하기 때문에.
레이크필드의 망막에, 등지고 선 민준이 맺혔다. 그동안 봐 온 그의 실력을 떠올린다. 저런 능력을 지닌 흑마법사를 그가 달리 또 알던가? 저 친구보다 강한 쿼터 엘프를 지금까지 목격한 적은 있던가?
하지만 한 가지가 맞지 않는다.
가장··· 흉악한 범죄자?
“레이크필드!”
상념에 빠진 머릿속에 민준의 목소리가 박혔다.
날카로운 울림.
“동철이 데리고 결계 안으로 들어가요. 당장!”
“······?!”
“이제 걸을 수 있잖아요! 어서!”
현역 시절, 첩보 공작 중 강력한 저주에 당했다가 겨우 살아난 그는 다리를 잃는 것은 면했지만 거동이 매우 불편해졌다. 민준이 주선해 준 성직자들이 입을 모아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을 정도였다. 이미 나이가 지긋하고 체내 생명력이 충분치 않았기에, 그것을 증폭시키는 신성 마법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런 그가 기적을 마주한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정확히는 민준이 독일로 출장을 다녀오고 나서부터였다. 자고 일어나면 굳었던 다리가 조금씩 움직였다. 매우 천천히 진행된 변화여서 레이크필드 자신도 알아차리는 것이 조금 늦었다.
교황급 성직자도 불가능하다고 장담했던 일이었다.
레이크필드는 여전히 더디지만 예전보다 훨씬 멀쩡한 걸음으로 동철에게 다가갔다. 지난 1년 넘게 그를 부축하여 거동을 도왔던 고블린이 거기 주저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엘프가 고블린을 부축했다. 핏속에서 깨어난 무언가 때문에 정신이 반쯤 나가 버린 고블린을, 늙은 정령사가 지탱하며 책장 뒤로 사라졌다. 절룩대는 걸음으로.
“쓸데없는 짓을.”
불청객들은 그 움직임을 보고도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다는 듯 민준을 볼 뿐이다.
어차피 소용없는 저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저 결계 역시 공간 응결 범위 내다. 밖으로 도망치거나 다른 누군가를 불러올 수 없다.
“아시프 666. 이 차원 주민과 공모하여 역외 탈세를 꾀한 혐의로 연행하겠다.”
민준은 그제야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조세징수사령부.
“사전 통보 같은 것은 없었는데?”
신분을 밝혔는데도 민준의 말투는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외계인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건방진.
“사태의 긴급성을 고려하여 통보는 생략했다.”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고?”
징수부대원은 같잖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위원회 관리 앞에서 영 버릇이 없군? 본부에 소환되는 일 없이 몇백 년 변방만 돌다 보니 중요한 걸 잊어버린 것 같은데.”
그와 동시에 허공에 빛이 모이더니 문자열을 그려 냈다.
카바이트 대위원 서명이 적힌 명령서.
“넌 위원회의 사유 재산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가축 같은 것이라고.”
불청객은 진정으로 그리 생각했다. 취급되는 방식을 고려하면 저들에게는 노예라는 단어도 아깝다.
가축이 적합하다.
“네가 신뢰하든 말든 상관없다. 이쪽 축사에 넣어 놓았던 짐승을 다른 축사로 옮기겠다는 거야. 넌 그렇게 할 때마다 가축에게 의사를 물어볼 텐가?”
그가 떠드는 말을 민준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대신 빛이 새긴 명령서를 읽어 내려간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저놈들은 지금 확실한 증거를 잡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차원계 중심부··· 즉, 위원회 본부로 연행해 가려 하고 있다.
‘델의 추측은 반만 맞았군. 내가 달란트를 급속도로 축적하니 경계심을 느낀 거야. 그래서 그녀에게조차 사전 통보를 하지 않은 것 같다. ···예측보다 훨씬 마음이 급해졌다는 거지.’
그 안에 숨어 있던 암시를 자각하기 전까지 민준은 막연하게 생각했다.
5백만 달란트의 퇴직금을 모으면 위원회가 석방해 줄 것이라고.
그것은 변하지 않는 약속이니까.
‘약속을 지킨다고? 그 배신자들이?’
그런 생각 자체가 암시에 휘말린 망상이었다.
위원회가 자신을 놓아줄 리 없다.
‘차곡차곡 모은 80만 달란트가, 오히려 내 발목을 잡는 덫이 된 거지.’
그것은 애초에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줄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이대로 끌려가면 무슨 짓을 할까?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들먹이며 심문하고, 없던 증거도 만들어 내겠지. 징벌로 내 영혼을 소거하는 대신 퇴직금을 몇천만 달란트 올리거나, 암시를 되살려 강화할 거다. 아니면 기억을 한 번 더 지울 수도 있겠지.’
혹은, 그 전부를 실행에 옮기거나.
“······.”
민준은 때가 왔음을 느꼈다.
‘이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기억을 되찾고 나서도 목에 사슬을 차고 산 건 더 나은 타이밍을 포착하기 위해서였다.
더 선명한 기억을, 더 강력한 힘을 되찾는 그 날을.
그 순간이 오기 전 움직임을 보이면, 위원회가 모든 가용 전력을 끌어 모아 제압하려 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노예 짓을 하며 기다릴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저들이 인식하는 바에 따르면 노예도 아니고 가축일까?
어이가 없어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조세징수사령부 소속이라면, 저 이종족은 아마 토드족일 가능성이 크다. 현시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위원회의 군사 조직이니까. 그 종족이 제일 선호하는 자리다.
토드에게 가축이라고 불린 감상은 매우 희한한 것이었다.
-팟!
“어, 어이. 너?”
토드족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당혹감이 배어들었다.
“지금 뭣 하는 거냐?!”
민준의 손에 묵빛의 검이 들렸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거군요?=
검의 형태를 빌린 후라이팬이 중얼거렸고.
‘그래, 때가 되었어.’
창조주가 정신파로 화답했다.
“이 미친 범죄자가!”
콰르르르!
지시를 받은 켄티우스가 몸을 띄웠다. 거칠게 포효한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하늘을 덮는 삼색룡. 그는 전의가 불타오르는 눈길로 아래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비로소 당신의 꿈속에서 우리는 당신을 꿈꾸나이다.=
읊조리는 기도문.
상가 지하에 숨어 있던 성직자가 힘을 끌어모았다. 그는 밖에 나오지 않은 채 지상의 둘을 지원하기 위해 준비했다. 모든 감각을 예리하게 깨운다.
“체포해!”
토드족이 폴리모프를 풀고 본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어깨 위에 금속 구체가 떠오른다. 1차 전쟁 때까지만 해도 손에 넣지 못했던 무기였다. 다른 작전 구역 부대원들처럼 여길 통째로 불태울 수 없기에 선택한 대인 저격 마도구. 그것을 본 민준은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훔친 것도 괘씸한데, 심지어 제대로 훔치지도 못했구나.
-파팟!
그들의 구체에서 일제히 백색 광휘가 쏟아지는 것과 동시에, 싸움이 시작되었다.
공기가 타는 냄새가 났다. 상가를 등진 채, 민준은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열기와 함께 레이저가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토드는 엔델리온의 무기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연신 주문을 외우며 움직임을 옭아매려 애쓴다. 생포 지시 때문인지 이 주변을 모두 날려 버릴 광역 주문은 없다. 민준은 그들이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사이 싸움을 끝내야겠다고 판단했다.
-지이익!
콰라라라라!
공간을 조각내는 레이저. 삼색룡의 비늘이 두부처럼 잘린다. 후두둑, 피가 쏟아지지만.
-화아앗!
어디선가 쏟아진 기운이 그의 상처를 바로 치료했다. 토드족이 당황했다.
“신성력?!”
그 원천을 파악하여 공격하려는 순간.
화르르르륵!
민준이 입에서 뿜은 핏빛 불꽃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스스로 손목에 낸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그것이 꿈틀거리며 민준의 몸을 감쌌다. 내달리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휘두르는 칼끝에 예기가 번뜩였다. 하지만 검날은 좀처럼 토드족의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이걸로는 부족해.
민준은 그림자 괴물이 간절해졌다. 그것은 본래 물질계에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공간 응결 때문에 엘프가 정령을 부를 수 없는 것처럼, 민준 역시 그 암귀(暗鬼)를 소환할 수 없었다.
‘부족해.’
민준의 코를 자기 것이 아닌 혈향이 자극했다. 켄티우스가 만든 피 웅덩이에서 나는 냄새였다.
다시금 목이 아팠다. 타들어 간다. 하지만 저걸 마시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민준이 원하는 것은 더 오래 숙성된··· 훨씬 진한 종류다.
아아, 목이 마르다.
“잡아라! 새파랗게 어린 용과 수형자 하나다!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냐?!’
지휘관이 애가 타는 듯 외쳤다. 하지만 둘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수십 가닥의 레이저가 다시 한번 공간을 가로지르는 순간.
‘지금이다!’
민준이 허공에서 은빛 후라이팬을 꺼냈다. 그리고 방패처럼 펴서 몸 앞을 가로막는다. 표면에 직격하는 광선들.
-파파팟!
반사된다.
후라이팬은 공격을 그대로 튕겨냈다. 민준이 인도한 방향을 따라, 레이저는 한 방향으로만 쏟아졌다.
이어지는 굉음.
——!
눈이 멀 듯한 섬광 속에서, 순식간에 토드 셋이 증발되었다.
민준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였다.
“쳇!”
살아남은 토드 중에는 지휘관도 있었다. 그는 방금 벌어진 일을 믿을 수 없는 듯한 얼굴이었다. 후라이팬이 반사한 레이저가 훑은 지면이 처참하게 녹아내렸다.
“이런··· 미친!”
엔델리온의 방어구를 뚫은 공격.
이런 걸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는, 같은 촉수 생물의 창조물일 수밖에 없다.
마도구를 노려보는 토드족 시선이 더 예리해졌다. 민준은 저들 모두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없는 이유가 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혀를 찼다.
‘일시에 다 죽였어야 하는데. 한번 봤으니 이제는 경계하겠군.’
예상대로였다. 적들은 그전처럼 정직한 궤도로 날리는 레이저 대신, 교묘한 주문으로 민준을 잡으려고 했다. 대신 레이저는 켄티우스를 향해 집중되었다. 민준이 중간에 개입하고 뒤에서 윰투스가 엄호하지 않았다면 드래곤은 이미 몇 조각으로 토막 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대로는 안 돼. 무슨 방법이···.’
그림자 괴물이 봉인된 것은 타격이 크다.
그리 중얼거리는 찰나, 다시 한번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 것 같은 갈증이 그를 괴롭혔다.
목이 말랐다.
‘젠장, 이런 때에도?!’
어차피 정신적 갈증에 불과할 터다.
지금은 이런 감각 때문에 집중을 잃을 타이밍이 아니라···.
‘아니, 잠깐.’
순간 머릿속에 한 줄기의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토드족 공격을 피하며, 빠른 속도로 생각한다.
‘정말 이게 정신적인 것이 맞나?’
태초의 종족은 용의 피로 목을 적셨다.
그리고 그들 가슴 속에는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수형자로 깨어나서 지난 8백 년 동안··· 몇 달 전 창천과 싸우던 그 순간까지 단 한 방울의 용혈도 마시지 않았어.’
수형자에게 지급된 몸, 이 의체에 영혼이 담겼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어차피 진짜 몸도 아니기에 용 피를 안 마셔도 문제가 없었다고.
다만 오랫동안 이 몸을 쓰다 보니 고유한 재생력이 발현되었다고만 여겼다.
그런데···.
‘모순이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이야기인가?’
뒤늦게 의문을 품는다.
‘먹어야 할 것을 먹지 않아도 재생력은 유지된다? 그것도, 가짜 몸에서 능력이 발현된다고?’
다시 한번 자문한다.
이 갈증은 과연, 순전히 정신적인 것이 맞는가?
‘그전까지 못 느끼던 갈망이 갑자기 정신을 지배하는 이유는?’
진정으로 몸이 갈증을 느끼고, 용혈을 필요로 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더 많은 힘을 쓰게 되어, 그전까지는 원치 않던 용혈이 이제 필요해진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이 몸은?
-파팟!
그 순간, 주문이 허공에서 충돌하고 토드 족이 뒤로 튕겨 나갔다. 지휘관은 민준보다도 더 당황한 상태였다. 이 구성원이라면 고룡 몇 마리를 때려잡을 전력인데도 애를 먹고 있다.
“정말 끈질기군!”
그가 이를 악물고 덤비는 사이, 민준은 차분하게 지난 기억을 되새기고 있었다.
수형자들을 기다리는 운명은 비슷하다. 임무 도중 변사하거나, 오랜 세월 버티고 정신이 붕괴되어 버린다. 최근 브래들리의 죽음을 전할 때 동료들 회신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개체의 차이가 있고 델처럼 백 년도 되지 않아 미치는 이도 나타나지만, 보통은 오래 버틸수록 광기에 심하게 물든다.
하지만, 민준은?
‘나보다 오래 버틴 수형자는 없어.’
광기에 물든 수형자들은, 자기 영혼을 가둔 몸을 감옥이라고 여긴다. 육(肉)의 철장.
하지만 민준은 수형자로서의 생(生)을 감옥이라고 여겼을 뿐, 이 몸에 대한 역겨움이나 반발감, 증오를 느낀 적은 없다.
이 육신에 스스로의 손으로 수도 없이 상처 내고 피를 흘렸지만, 그것은 소중하고 값진 것을 바친다는 흑마법의 원칙에 충실한 행동이었으며 ‘자기희생적’이라는 단어처럼··· 말 그대로 희생이었다.
희생되는 대상이 무가치한 것일 수는 없다.
이 몸은 민준에게 무가치한 것이 아니다.
=···그렇군요.=
쥐고 있던 묵빛 검이 그 생각에 동조했다.
민준은 어느새 창조물을 향해 둘렀던 두터운 심리방어막이 무너져 내린 걸 발견했다. ‘블레이드’라고 불린 영혼 조각을 흡수했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었다.
=어쩌면.=
생각을 읽었기에, 아시프-1이 창조주에게 제안한다.
가능하지 않을까요?
“······.”
창조주가, 아시프-1에게 답했다.
가능할 것 같군.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푹!
그리고 이어진 행동은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저, 미친놈이?!”
공기가 얼어붙었다.
켄티우스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민준을 바라보았다.
숨어 있던 윰투스 역시 비명 같은 정신파를 내질렀다.
=화, 화신이시여, 제가 바로···!=
민준이 급히 만류했다.
‘아니, 하지 마!’
윰투스는 신성력을 거두어들였다.
민준의 손은 단검 형태의 아시프-1을 굳게 쥐었다. 그리고 그 날은 자신의 목덜미에 꽂혀 있었다.
그곳은 엘라후-프라가 교인들이 세례를 위해 성물로 상처 입히는 부위였다.
그리고 하은성이 죽은 원인이 된 상처, 영체에 단검이 박힌 그 장소였다.
또한 민준이 오크를 세뇌할 때 검날을 찔러 넣은 바로 그곳이었다.
“······.”
자기 손으로 목을 찔러 놓고도 민준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멍청한 놈!”
이제 와서 자살 시도인가?
토드족은 어림없다는 듯 웃었다. 위원회의 가축에게는 스스로 죽을 자유조차 없다. 정신이 가루가 되어 무너질 때까지 끊임없이 부려 먹혀야 한다.
그들의 공격이 다시 쏟아지던 찰나.
눈에서 기이한 빛을 쏘아내며, 민준이 목에서 칼을 뽑아냈다.
꿀렁!
그러자 그곳에서 흘러나온 것은 검붉은 액체가 아니었다.
또한 꿈 속 세계에 잠든 동족이 쉴 새 없이 흘리는 그것과도 달랐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 거룩한 서광이 아니었다.
대신 그곳에서 나온 것은···.
스륵!
꿀렁, 꿀렁!
그것은 칠흑같이 어두운 무언가였다.
민준의 기억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달란트와 대조되는, 어두컴컴한 진탕.
“···어?”
사방을 무저갱처럼 물들이는 그것을 보고 토드족은 어떤 존재를 떠올렸다.
“그림자 괴물?!”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공간은 철저하게 차단된 상태였으니까. 소환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은 민준이 평소에 소환하던 그림자 괴물처럼 선명한 형태를 취하지 않았다. 특정한 형태로 응집되지도, 두 팔을 대신할 거대한 기둥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저 자욱하게 흘러나온다. 새어 나온 밤처럼 주변을 감싸며 덮었다. 끝도 없이 쏟아져 내린다.
“아아!”
실로 엄청난 속도였다. 찰나의 순간, 토드족과 드래곤은 이미 시야를 잃어버렸다. 그것은 그림자라기보다는 순수한 어둠처럼 보였다. 빛이 미치지 못한 상대적 영역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성되는 존재.
민준의 몸을 집어삼킨 어둠이, 사방에 범람하며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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