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52
153.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 (25) >
***
지구의 허파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화산이 폭발한 것 같은 장면이었다. 정글과 인접한 마을 주민들은 공포 속에서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물을 가득 머금었을 터인 열대 우림이 속절없이 불길에 휩싸인다. 초목의 타닥거리는 비명은 불 속에 묻혔다. 산더미 같은 화염이 넓은 대지를 집어삼키는 중이었다 지독한 열기 때문에 공간이 일그러져 보였다. 그 위에는 두꺼운 연기가 모든 것을 깔아뭉개듯이 위압적으로 퍼지고, 뜨거운 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때 독룡의 레어였던 장소가 있었다.
투명한 돔을 구성했던 장벽은 이미 깨지고 녹아 사라진 상태다. 이 불지옥을 만들어 낸 이들은 결과물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정신파를 통해 서로 시시덕거리기까지 했다.
=역시, 예상대로군.=
=알을 품은 어미를 연행한다 하면 반항할 것이 뻔하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주제에 말이야.=
눈매가 매서워지고 입가엔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부대원 중에는 옛날 용과의 전쟁에서 활약하고 여태 살아남은 자들도 있었다. 본래 고대 종족의 수명은 그렇게 길지 않으나 1차 전쟁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참전 용사들은 치열한 싸움을 기억했다. 비록 승리했으나 위원회 측 희생도 적지 않았다. 죽어 나가던 동족이 떠오른다. 참혹한 회상 속 드래곤은 골을 깨부숴 마땅할 적이었다. 전쟁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드래곤을 증오했다.
=저 용을 죽이고 공간 응결을 풀면, 아공간에 감춰 뒀던 것이 전부 쏟아져 나올 거다. 며칠 전 그 덩치 큰 녀석처럼.=
독룡은 마법을 펼쳐서 대응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토드족은 그녀가 주 무기인 독을 제대로 쓰지 못하리라는 것도 예상했다. 아직 부화 못 한 알은 극독에 완벽한 면역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종 독초를 몸에 심고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그래서 이나이스는 껍질을 뚫고 스며들 수 있는 독극물을 이곳에 풀지 못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지금 그녀는 불길 속에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혼란스러운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대체 어떻게 들킨 거지?!’
아무리 위원회라도 머나먼 변방 차원 드래곤의 대화와 거래를 전부 파악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 그런 전지(全智) 능력이 있었다면 용족은 진작 멸망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녀를 지목하여 적극적으로 먼지를 턴 결과다. 이나이스는 자신이 위원회의 타깃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일종의 표적 수사다.
하지만, 왜?
화르륵!
불길이 거세졌다. 마력 섞인 화염이 그녀의 방어막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비늘 대신 외피를 덮었던 각종 독초는 이미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독룡은 해츨링 시절 이후 처음으로 맨살을 바깥에 드러냈다. 그것도, 평범한 환경이 아니라 가혹한 불꽃 앞에 드러냈다.
그것은 가죽이 벗겨진 채 태워지는 처참한 광경처럼 보였다.
‘내 알, 지켜야 해!’
시간이 지날수록 드래곤의 생각은 단순해졌다. 절박함이 머릿속에 차오른다.
그리고 이나이스는 더 이상 그녀 곁에 없는 한 고룡을 떠올렸다. 이럴 때 의지할 수 있었을 단 한 명의 드래곤을.
‘로드!’
종족 보호를 위해 용들의 뜻을 모으는 자가 로드다. 로드가 없는 드래곤은 무리로서, 집단으로서 100% 구실을 하지 못한다. 사리사욕을 쫓는 개체들만 남을 뿐이다.
이나이스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관여하지 않는 것을 넘어, 일부는 오히려 반길지도 모른다. 그녀와 아이가 사라지면 유산을 나눠 가질 상속자가 하나 줄어드니까.
—!
알 속에서 사념파가 거칠게 엮여 새어 나왔다. 배아가 불안을 느낀 것이다. 겹쳐서 복잡하게 섞인 탓에 이나이스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알을 안심시키듯이 회답했다.
‘괜찮아, 내가 지켜 낼 거야.’
이나이스는 로드 대신 도움을 청할 누군가를 떠올렸다. 공간 응결 때문에 메시지를 보낼 수가 없지만, 밀림이 불타오르는 것은 외부에 알려졌을 것이다.
과연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서 줄 것인가?
하지만 희망을 걸 곳이 달리 없었다.
구원의 손길이 닿을 때까지 이대로 버텨야 한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알을 향해 속삭이며, 그녀는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막 대부분을 거기에 집중했다. 그녀가 품은 알에는 체온 이상의 온기가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대조적으로 이나이스의 등 위로는 자연 상태에서 발생할 수 없는 초고온과 화염이 만든 끔찍한 고통이 내달렸다.
자신의 껍질을 잃은 드래곤은, 알의 껍질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더욱 작게 웅크렸다.
***
정령사, 레이크필드는 갑자기 자신이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당혹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지만 서점 안 풍경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정령사의 감각은 명징한 변화를 포착했다.
머지않아 그는 정령과 자신을 잇는 연결고리가 끊겼음을 깨달았다.
‘공간 응결!’
고블린, 동철이 문밖을 바라보았다. 레이크필드와는 다른 이유였다. 그는 인기척을 느꼈다.
“어? 사장님··· 손님···.”
출입문을 향해 몇 걸음 걷던 동철은.
“어··· 어···?”
털썩.
그대로 주저앉는다.
유동 인구가 꽤 있는 동네 한복판에 위치한 이 서점을 향해, 상가를 향해 다가오는 이들은 모두 인간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철은 알 수 있었다. 저들은 인간이 아니다.
저런 것이··· 인간일 수가 없다.
부들, 부들.
얼마 전 이 고블린은 에델리네스라는 이름의 젊은 드래곤과 마주한 적 있다. 그는 그때 인간으로 변신한 그녀가 피어를 뿜어낼 때까지 그 정체를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것은 사실 동철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해 본 드래곤 피어였다. 당시 느낀 절박한 공포는 그 속에 잠든 무언가를 깨운 것 같았다. 그 후로 동철의 감각은 몹시 예리해졌다.
한 번도 티를 낸 적은 없지만, 이제 동철은 알고 있다. 이 상가를 보유한 ‘주인님’이 평범한 쿼터 엘프가 아니라는 것을. 언젠가 그를 찾아온 단발머리 여성 손님이 평범한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지금 2층에 방문한 자가 사실 드래곤이라는 것도, 그가 피어를 흘린 적이 없음에도 그냥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드래곤이 말 그대로 그의 ‘머리 위’에 있지만 그전처럼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저 용은 위험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다가오는 저들은?
“아아, 아아···!”
머릿속이 타올랐다. 동철은 처음 드래곤 피어를 마주한 그날을 능가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용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연습하고 노력했던 것이 헛수고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세상에는 용보다도 무서운 생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자각하지 못했던 내면의 무언가 그에게 알려 주었다.
고블린은 극심한 혐오와 거부감을 느꼈다.
-팟!
갑자기 나타난 존재가, 불청객을 향한 고블린의 시선을 가렸다.
동철을 등지고 선 채 등장한 민준이었다.
“···뭐야?”
그는 방금 전 공간 응결을 감지했다. 민준에겐 상대의 영혼이 보였다. 인간과 비슷한 격이지만 뭔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종족이지만 정체까지는 불확실했다.
경계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며 불청객이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나지막한 목소리.
그 순간 레이크필드는 엘프의 민감한 귀로, 이 자리에서 거론될 거라 상상 못 한 단어를 들었다.
“아시프-666.”
***
게드윅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태초의 종족은 무엇을 먹었는가?
“우리는 생각했지. 그들의 식생활을 흉내 낸다면, 마찬가지로 완벽한 영생을 손에 쥘 수 있을 거라고. 어떤가? 참으로 멋진 이야기이지?”
“네,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게드윅은 진심으로 흥분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동족의 어른들은 여기까지 안배하여 계획을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조될 때부터 완전한 존재였다면 다른 무언가를 섭취할 필요도 없겠지. 그 자체로 영생의 씨앗을 품고 태어났다고 간주할 수 있을 터야. 그런데 우린 알아냈단 말이지. 그들에게는 주식이 있었어. 그리고 먹는 행위는 그들 문화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행위였다더군. 어느 정도냐면, 그들이 먹을 고기와 피를 준비하는 자들이 고귀한 계층으로 여겨질 정도였어.”
“아아!”
“그럴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 싶네. 그들 영생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였기 때문이지. 그들에게 있어 도축업자는 영원한 삶을 보장해 주는 은인이었던 거야.”
“그게 사실이라면··· 그럴 수 있겠군요!”
게드윅은 되뇐다.
‘고기’와 ‘피’라고?
둘 다 생물의 부속물이다.
그는 대위원이 결정적인 단어를 내뱉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영생을 약속하는 그 동물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참.”
그런데 기대와는 어긋나게도 대위원은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
“아시프-666을 대상으로 한 세무 조사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게드윅은 이해할 수 없었다. 도축업자 이야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주제가 거기로 튀는가?
하지만 궁금한 부분의 답을 얻고 싶었기에 지체 없이 대답했다. 그래야 빨리 본래 이야기로 돌아갈 것 같았으므로.
“원체 그쪽도 비밀주의가 심한 기관이라서 정보 공유를 잘 해 주지 않지만··· 제가 아는 토드족이 슬쩍 정보를 흘렸습니다. 꽤 굵직한 것을 낚았다고 합니다.”
“충분히 굵직한가? 그의 퇴직금에 2천만 달란트 정도를 새로 얹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 말을 들은 게드윅은 다시 한번 확신했다.
상관은 아시프-666이 말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를 바라고 있다.
그 수형자가 영원토록 위원회가 채운 족쇄에 묶여 움직이기를.
“네, 아마도··· 곧 움직임이 있을 겁니다.”
“좋아, 아주 좋군.”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대위원은 말했다.
“자네는 항상 궁금해했지. 내가 아시프-666에게 왜 그리 깊은 관심을 두는지.”
“그리고 대위원님께서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의 죄목 때문이라고요. 우주 역사상 최악의 테러리스트, 아시프-1의 창조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흑마법의 종사이지만, 흑마법을 창조했다는 이유로 수형자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시프-1을 창조한 행위는 그에게 5백만 달란트가 넘는 퇴직금을 부과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 차이는 창조물이 지니는 목적성에 기인했다. 아시프-1은 위원회를 붕괴하기 위해 창조되었으며,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서만 움직였던 최악의 범죄자다.
“하지만 그것은 아시프-666을 말살하지 않을 근거가 못 되지. 거기에 대해 생각해 본 바가 있나?”
“네.”
게드윅도 당연히 머리를 굴려 보았다.
“아시프-1의 창조주이니만큼 변방에 흩어진 그의 영혼 파편을 수집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기억을 제거한 자들은 엔델리온이었습니다. 그 어떤 종족보다 아시프-1에 깊은 관심을 지닌 위선자들,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들 말입니다. 그 작업을 할 때 추가적인 암시를 심어 놓았을 것 같습니다. 변방 차원을 돌면서 자기가 창조한 범죄자 조각을 수집하거나 거기에 저절로 끌리도록···.”
“그렇다면 우리, 카바이트가 아시프-1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겉으로는 큰 관심이 없는 척 연기까지 하면서 말이야.”
“잘 모르겠지만 엔델리온의 목적과는 다르리라 짐작합니다.”
“맞네, 그들이 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지.”
대위원은 더 위험한 비밀을 공유하려 하고 있었다.
“아시프-666과 그가 수집할 아시프-1은 우리 계획에 있어 중요한 열쇠네. 최종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징검다리지.”
완벽한 영생을 얻는 계획.
대위원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태초의 종족은 드래곤을 먹었다네.”
툭 던지듯이 너무도 가볍게 언급하여 게드윅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네?”
“태초의 종족에게 영생을 가져다준 주식, 그것이 드래곤이었다는 말이네.”
게드윅은 혼란스러웠다.
저것은 동음이의어인가?
드래곤이라는 이름을 지닌 생물이 달리 또 있던가?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명확한 의미를 품고 있었다.
“드래곤. 용족. 우리가 익히 아는 그 괴물들. 두 차례 전쟁을 통해 마침내 굴복시킨 주적 말일세.”
“···맙소사!”
비명 비슷한 게드윅의 감탄사에는 환희와 경악이 버무려져 있었다.
그는 이 계획 끝에 괴물들의 파멸이 있음을 깨우쳐 기뻤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괴물들을 식량으로 삼은 종족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카바이트 역시 그 길을 향해 나아가려는 계획임을 깨닫고 압도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럼 계획이라는 건 결국···.”
“그 짐승들은 주제넘게도 너무 오랜 세월 이 세상을 누볐어. 필요 이상의 자유를 누렸지.”
대위원은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는 태초의 종족이 밟았던 길을 따라가려고 하네. 아시프-666이 인도해 줄 길을. 하지만 용과 우리 사이 관계를 재설정하기 위해서는 카바이트도 변해야 해.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네. 지금 이 상태로는 안 되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어. 달란트가 있으니까.”
게드윅은 그들의 몸이 용혈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달란트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생각했다.
강제로 몸이 바뀐 수형자의 정신이 결국에는 으스러지고, 붕괴하고, 광기에 물드는 현상도 떠올렸다. 용체에 빙의될 때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엔델리온이 제안한 수형자 시스템에 우리가 동의한 이유는··· 이 또한 일종의 실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위원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드래곤도 변해야 하고. 그걸 위해 우리는 변방 차원에서 비밀리에 많은 일을 진행 중이라네. 심지어 몇몇 실험은 드래곤의 손을 빌려 하고 있어. 용의 육신을 바꾸거나, 영혼을 바꾸거나, 서로 갈아 끼우거나, 섞어 보거나. 그들은 상상 못 하겠지. 자기들이 하는 짓이 결과적으로 용족에게 어떤 운명을 가져다줄지. 자기 자신이 드래곤의 파멸에 기여하는 것도 모른 채 협조하는 걸세. 알 턱이 없지. 이 모든 것은, 카바이트가 드래곤을최대한 다양한 형태로 소유하기 위한 실험이라는 걸.”
“다양한··· 형태라구요?”
“그래. 짐승은 짐승다워야 하니까. 그렇게 되돌리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네. 착한 피를 남기고 나쁜 피는 솎아내고, 더 편하게 기를 수 있는 형태로 바꿔야지. 그리고 목적과 기능에 맞게 다분화할 걸세.”
대위원이 강조하듯 말했다.
“가축을, 가축답게 말일세.”
그제서야 게드윅은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대위원은 지금 드래곤의 재(再)가축화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