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43
244. 사람의 자격 (9)
***
대화를 재개하려던 대위원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멀리서 터져 나온 굉음 때문이었다.
콰쾅!
“뭐냐?!”
처음에는 라인에 이상이 생긴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경보음은 울리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침묵을 지켰다.
“설마?”
카바이트는 불길한 예감이 현실화되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
생산 라인을 막고 있던 결계가 폭발음과 함께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게이트 주변에 모여 있던 카바이트들 역시 충격에 휘말려 으스러졌다.
흩날리는 분진 너머로 나타난 민준과 아시프-1은 발을 차며 몸을 띄웠다. 체액 범벅으로 꿈틀거리는 카바이트들을 뒤로 한 채, 전방으로 몸을 쏘아 보냈다.
“막아라! 막앗!”
경비병들이 달려 들었다. 이번에는 웨폰 마스터가 주축이 된 무리였다. 명확하게 구분된 사지가 달린 종족과 달리, 환형 동물인 카바이트에게는 인간의 검 같은 무기가 적합하지 않았다.
긴 대롱 형태의 그들은 자신의 신체에 가장 적합한 무기를 만들어냈다. 그들 동체를 감싼 금속재질의 아티팩트는 갑옷인 동시에 무기였다. 몸을 오러로 감싸자 투구 끝과 동체 표면에 곡선의 날이 솟아올랐다.
쐐애애액!
그들은 침입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보이지 않는 손이 화살을 쉼 없이 쏘아내는 듯한 광경이었다. 웨폰 마스터들은 스스로의 몸을 철화살로 삼아 허공을 갈랐다. 이글거리는 청염(靑炎)이 궤도를 잔상처럼 덧그렸다.
자신을 향해 몰아치는 수십 가닥의 벼락 앞에서, 민준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전진하던 페이스를 유지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 순간.
파슷!
웨폰 마스터들은 민준 앞에 십자(十字)의 빛이 수십 개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몸을 날린 순간부터 충돌 직전까지 말 그대로 찰나에 가까웠기에, 그들은 인지하는 동시에 이미 거기로 몸을 들이대고 있었다.
빛무리는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달려드는 자들 머리 바로 앞에 소환되었다.
민준의 대응을 비유하자면, 날아오는 총알 궤적을 눈에 담고 각각의 경로 앞에 장애물을 소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빛은 웨폰 마스터들의 방어막을 종이장처럼 찢어버렸다.
쫘아아악!
살을 가르는 경쾌한 소리.
경비병 부대와 침입자는 서로를 등지며 교차한다.
전진하는 민준의 속도가 그대로인 것과 달리, 카바이트들은 그대로 포물선을 그리며 추락했다. 달려들 때보다 정확하게 네 배 불어난 채, 허공에 대충 던진 고무줄 다발처럼 뒹군다.
여기서 네 배란, 물론 중량이나 부피가 아니라 개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
비명을 대신하여, 의미가 붕괴된 정신파가 울렸다.
직각으로 교차한 빛의 칼날에 충돌한 카바이트들은 추진력을 유지한 채 스스로를 갈랐다. 세로로 네 동강이 나 버린 것이다. 날아오를 때와 길이는 같지만 두께가 사분지일로 줄어든 토막들이 떨어진다. 절단면을 따라 피가 격렬하게 분출되었다.
가로로 동강 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경이로운 생명력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 채찍처럼 얇아진 파편들이 바닥에서 미친듯이 꿈틀거리며 발악했다.
한편, 몇몇은 운 좋게도 민준 대신 아시프-1를 노렸다. 그들은 사분할이 되어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이 자식들이!”
예전에 누군가 고집한 것처럼, 아시프-1은 한 손에는 흑색 단검을 들고 다른 손에는 은색 후라이팬을 들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더 강력한 무기에 의존했다. 오리할콘 후라이팬을 쥔 손을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온 힘을 다해서.
카바이트의 대가리에 은색 팬이 직격한다.
콰콰쾅!
적은 분명 신장 이 미터가 넘는 생물이었으나, 후라이팬과 충돌한 순간 부피가 극적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콰지직!
카바이트는 갑옷째로 으깨지며 쭈그러들었다.
웅웅!
아시프-1은 여운처럼 진동이 남은 팬을 허공에 휘두르며 털어냈다. 그러자 덤프트럭에 깔린 소형차같이 납작해진 고철이 땅에 뒹굴었다.
그걸 입었던 생물의 흔적, 다시 말해 유기물은 온데간데없었다. 충돌한 순간 갑옷 안에서 증발해 버린 것이다.
“으··· 으··· 괴물!”
투지가 가득했던 카바이트들의 얼굴에는 점차 좌절과 공포가 서렸다.
성부가 나아가는 경로에는 사분할 된 살덩어리들이 꿈틀거리고, 성자가 걷는 길에는 피와 살이 증발하고 찌그러진 고철만 남아 뒹군다.
“악마··· 악마들이다!”
한 명씩 뒷걸음치기 시작하자 진형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두 침입자는 파죽지세로 용릉의 통제실로 나아가며, 마주치는 모든 것을 휩쓸어버렸다.
***
“왜 여기까지 접근하는 사이 경보가 울리지 않았던 거냐?!”
대위원의 머리에는 복잡한 상념이 회오리쳤다.
방금 전 충격은 생산 라인 결계가 붕괴되었다는 신호다.
용릉 내 결계 중 가장 거대하고도 원시적인 형태로 제조된 방어막.
침입자들이 그걸 우회하는데 시간을 소모하는 대신, 은닉을 포기하고 파괴하는 걸 선택할 정도로 우직하게 몇 겹이나 쌓아 올린 설계물이었다.
덕분에 대위원도 이제 침입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정황 때문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대피하셔야 합니다, 대위원님. 여기로!”
호위병들이 그를 데리고 텔레포트를 시도했다.
하지만.
“······?!”
다들 얼음 동상처럼 굳었다.
“부, 불가능합니다. 공간 좌표가 전부 뒤틀린 상태···!”
불길한 실마리가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이 행성을 둘러싼 함대를 따돌리고 침입했으며 지상의 모든 관문까지 돌파한 침입자.
텔레포트가 불가능할 정도로 공간을 통째로 왜곡시킨 능력.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존재는 아마도···.
“아시프-666!”
대위원이 그리 읊조리자, 관리인이 발작하듯 몸을 꿈틀거렸다.
“맙소사! 그가 왔다고요? 어떻게 여기에··· 진심이십니까?!”
쾅! 콰쾅!
충돌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침입자가 가야할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순간, 대위원은 결단을 내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용릉의 관리인에게 무언가를 지시한다.
관리인은 기겁을 하며 거부했지만 대위원은 난폭한 어조로 으르렁거렸다.
“시간이 없소!”
대위원은 호위 병력 중 절반가량을 관리인에게 붙여주었다. 그들은 침입자가 오는 쪽 반대 방향의 문으로 빠져나갔다. 그 너머는 용릉의 가장 깊숙한 곳과 맞닿은 통로였다.
그들이 모습을 감춘 뒤 대위원은 남은 호위들과 필사적으로 텔레포트를 시도했다. 마지막까지 도주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잠시 후, 불안을 좌절로 바꾸는 굉음이 들렸다.
콰콰쾅!
폭발음과 함께 문이 날아갔다. 대위원이 근래 매일 용릉을 방문할 때마다 사용했던 문이었다. 카바이트들은 방금 전 관리인이 도주한 쪽의 게이트를 등지고 버텼다.
마침내 두 명의 침입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한 명에게 먼저 시선이 닿는다.
“······!”
직접 대면하는 것은 약 800년만인가? 그에게 아시프-666이라는 수형자 번호를 준 그 날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젊은 육신과 간극이 큰 노쇠한 정신으로, 대위원은 과거를 떠올린다.
“오랜만이군.”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카바이트였다.
마주한 두 남자 모두 대위원에게는 초면이 아니었다.
그는 아시프-666과 아시프-1 앞에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았다.
존엄과 명예를 지키고, 평정심을 연기하며 카바이트가 뭐라고 말을 이으려던 순간.
콰직!
대위원은 시야가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온몸을 찢고 긁어 내는 통증은 풍경의 반전보다 조금 늦게 찾아왔다.
카바이트는 그것이 자신의 비명소리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로 한참 동안 소리를 질렀다.
마음만 먹으면 단번에 숨통을 끊을 수도 있었겠지만 침입자는 그러지 않았다. 덕분에 대위원은 살면서 이런 고통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상상 못했던 감각 속에서 발버둥쳤다. 자신이 흘린 피에 잠겨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통증 다음으로는 그것에 짓눌려 제쳐졌던 다른 느낌과 깨달음이 따라왔다. 그는 꿈틀거리는 자신의 몸이 평소보다 가벼우며 무게 중심이 허리 위로 쏠린 사실 역시 알 수 있었다.
그의 몸이 본래와 비교하여 절반밖에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고통에 겨워 바닥을 기는 사이, 호위병과 침입자 간의 싸움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두 명이 겪은 것 중 가장 오랜 시간이 소모된 전투였다.
하지만 결과는 다를 것이 없었다.
콰지직!
마지막 경호원이 고깃덩어리로 변해서 쓰러진 순간 대위원은 간신히 비명을 멈출 수 있었다. 초인적인 인내를 짜 낸 결과였다. 아시프-1이 의외라는 듯한 눈빛으로 카바이트를 보았다. 부자 간에 짧은 대화가 오갔다. ‘세뇌할까요?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아니. 대신에 넌 저쪽으로 가라.’
짦은 명령 후, 아시프-1은 용릉 관리인이 사라진 방향으로 향했다. 대위원의 눈동자에 순간 짧은 절망이 서렸다가 사라졌다. 민준은 그 찰나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첨벙. 첨벙.
카바이트가 쏟아낸 자색 체액이 가득한 바닥 위로 발걸음을 옮긴다. 대위원의 머리를 발치에 둔 채 민준은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손등에 쌀알 크기의 수포가 부글거렸다.
잠시 후.
톡! 톡!
그것들이 터지기 시작한다. 살껍질이 찢어져서 드러난 속살 위에는 진액에 적셔진 작은 벌레들이 꿈틀거렸다.
그는 담담하게 손을 털었다. 카바이트의 상처에 벌레들이 스며든다. 그 중 일부는 대위원의 눈 앞에서 기어다녔다. 그 생김새를 본 카바이트는 자신이 아는 흑마법을 연상했다.
애써 도발하듯이 말한다.
“해피 버그···? 그런 저급한 주술이 내게 통할 것 같나?”
아시프-1의 세뇌도 바로 통하지 않는 상황에, 저런 벌레가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한 것인가? 거부할 수 없는 행복감을 줘서 노예로 만드는 방법은 자신에게는 통하지 않을 터다.
상대가 대화에 응하지 않고 의도를 알 수 없는 일에 전념하자, 대위원은 마음이 급해졌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이해할 수 없군.”
반 토막이 난 채 피 끓는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기울어진 시선 속에 민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보라색으로 적셔진 발과 무릎이 그가 볼 수 있는 전부였다.
카바이트는 계속 시간을 끌 듯 질문했다.
“왜 그때처럼 하지 않지? 영혼만 간편하게 빼내는 방법도 있을 텐데.”
뒤늦게 깨닫고는, 조소를 담아 중얼거렸다.
“······그렇군. 달란트가 충분치 않은 거군.”
그 말은, 앞으로 이어질 전쟁에서는 그때와 같은 ‘기적’에 가까운 공격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상대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카바이트는 계속 말을 엮어보려고 시도했다.
“혼자서 잠입이 가능하다면, 왜 채굴기지를 먼저 노리지 않았지?
여전히 대답은 없다.
“당신의 능력을 실감한 이상, 채굴기지의 경비는 더욱 삼엄해질 거다. 이번처럼 우주 모함의 방어선을 뚫고 지상에 나타나더라도, 이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원들이 기다릴 거야. 그런데 왜 이런 짓을···?”
그때, 대위원은 몸속에서 벌레들이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몸의 통제권이 사라져간다. 이제는 자의적인 약간의 꿈틀거림도 불가능했다.
벌레들이 그의 신경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세뇌도 아깝다는 것인가?”
상대는 자신의 정신을 건드리려는 의도가 없다. 하물며 죽이려는 의도는 더더욱 없는 것 같다.
꿈틀!
절반이 소실되어 운동 능력을 잃은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실에 매달린 꼭두각시처럼. 절단면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보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안구를 굴릴 통제력마저 잃어버렸다.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부위는 오로지 조음 기관 뿐인듯 싶었다.
대체 어떤 원리인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무게 중심이 아래로 쏠리며 머리가 위로 올라갔다. 의도와는 상관 없이 몸을 일으켰다.
카바이트는 그제서야 민준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침입자의 낯에 서린 표정을 본 순간.
“···아!”
전율하는 카바이트를 민준은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태와 마찬가지로.
“당신은··!”
대위원은 민준의 표정에서 답을 얻었다.
태초의 종족은 이번 전쟁에서 단순한 승리 이상의 것을 원했다. 그의 목표는 자신의 것과 영역을 되찾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돌아온 초월자는 징벌보다 복수를 갈망했다. 상대의 고통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되갚음을.
“······!”
민준은 미래에 모든 종족들의 신으로 군림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준이 인지하는 자신은 항상 사람이었다.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신을 흉내 내고자 하는 사람이다.
또한 민준은 이렇게 생각한다. 복수는 사람의 원초적인 욕구다. 복수는 울타리를 향한 위협을 억제한다. 당한 만큼 돌려주는 것은 사람 사는 곳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관습법이며, 누구나 잠재적인 복수자로 태어난다.
“뭘 할 작정이지?”
머릿속이 불탈 듯한 불길함 속에서, 카바이트는 순간 이성의 끈을 놓아 버렸다.
“대체 우리 종족에게 뭘 할 작정이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냐!”
민준의 표정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종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을 카바이트는 너무도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환희, 경멸, 만족, 흥분, 고통, 권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정의 결 속에서··· 카바이트는 그 모두를 압도하는 한 가지 색을 읽어냈다.
그것은 격렬한 증오였다.
또한 그가 본 것은, 그런 증오의 표출을 즐길 준비가 끝난 자의 얼굴이었다. 앞으로 펼쳐질 복수의 과정과 열매를 충분히 즐기려는 기대감에 찬 눈빛이었다.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눈 앞에 두고, 저것을 어떻게 발골하고 정육해야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의 희열이 배어나왔다.
역설적이게도 그 표정을 본 순간, 대위원은 자신들이 과거에 배신하기로 한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민준은 모른다. 잠에서 깬 그를 발견한 뒤, 저 지렁이 같은 짐승들 사이에 오간 논의를.
“우린 그럴 수밖에 없었어.”
오랜 기억을 떠올리며 카바이트는 악에 받쳐 외쳤다.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신 흉내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 흉내를 내는 신이니까. 바로, 당신 같은!”
민준의 자기 인식과는 달리, 카바이트는 민준을 사람인 척하는 신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신의 힘을 지녔으나 사람의 수준에서 사고하는 종족 앞에서 카바이트는 공포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