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61
262. 사람의 자격 (27)
***
정팔이 블레어 캠벨의 전화를 받은 것은 늦은 오후의 일이었다.
“네, 비서님.”
엘프는 정팔과 최판석이 기다리던 소식을 전했다.
“이제 회장님과 면담이 가능하실 것 같습니다.”
“아,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저는 언제라도 상관없으니 시간과 장소만 알려주시면 늦지 않게 가 있겠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외부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는 소문이 도는 레드 드래곤이, 드디어 다시 활동을 시작한 모양이다.
또한 그간 쌓였을 수많은 면담요청을 뒤로 하고, 이 오크 의원과의 만남을 제일 먼저 잡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블레어의 목소리에는 영 석연찮은 기색이 섞여 있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우려를 수화기 너머로 전하지 못한 채, 블레어는 속으로 삭였다.
젠킨슨이 깬 것은 맞다. 신성력을 각성한 막내의 시도가 도움이 되기는 한 모양이다.
그런데, 깨어난 후의 상태가···.
‘마음 같아서는 외부 접촉 없이 좀 더 요양을 권하고 싶지만.’
블레어는 무거운 추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느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회장님은 이미 용언으로 약속하셨어. 예민준 요원의 친구들이 무언가를 청할 때, 거기에 응하는 일을 1순위로 두겠다고.’
악용되기 쉽기에 평범한 드래곤이라면 용외종족에게 이런 공을 들이지 않지만 젠킨슨은 과감하게도 용언을 읊었다.
요원이 행방불명되기 전, 그 ‘벗’에 대한 의리와 믿음을 담보로.
따라서 블레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용언을 깬다고 용이 죽기까지야 하지 않지만, 심신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는다.
젠킨슨이 지금 같은 상태에서 그런 충격을 받는 일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회장님을 속이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런 면담 요청이 아예 없었다고 숨기는 방안.
하지만, 고룡 앞에서 거짓말을?
상대가 평범한 용이라도 성공률 100%의 자살과 다르지 않으며, 신의를 중요시하는 젠킨슨은 다시는 블레어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죽음보다도 두려운 일이었다.
‘어쩔 수 없어. 설마 오크 한 명이 위원님에게 해가 될 일은 없겠지.’
블레어는 시간과 장소를 전달했다.
***
=꺄아아아아!=
민준이 인지한 심상 풍경이 바뀌었다.
사방이 짙은 어둠에 잠기고, 정신을 꿰뚫는 비명이 들렸다.
고개를 든다.
아드키엘을 가둔 감옥은 과거와 달라져 있었다. 그림자가 가득한 공간 위로 예전엔 없던 망령의 강이 흘렀다.
지룡을 사냥할 때 소환한 구성과 비슷하게, 대다수는 고대 종족이었다. 처참하게 찢기고 뭉개진 모습으로 서로의 꼬리를 물고 치달린다.
하지만 망령들이 그 아래에 넘실거리는 어둠에 섞이거나 흡수되는 일은 없었다. 일전 악어를 닮은 종족들의 차원에서 그림자 괴물이 귀신들을 흡수한 것은, 어디까지나 민준이 그걸 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망령들이 절규했다.
=아아··· 그만! 그만!=
=보내줘! 나를, 여기서 빼내 줘!=
=아파. 아파. 아파. 제발···!=
그쪽으로 잠시 정신이 팔린 찰나.
— !
어둠이 범람했다.
그림자는 산과 파도의 형상으로 민준을 덮쳤다.
콰아아아!
그를 깔아뭉갤 듯 내려치고 누른다.
하지만 여태까지 그랬듯, 그림자 괴물은 상대에게 어떤 충격도 전달하지 못했다.
스승에게 속삭이는 어조는 평온했다.
“이런 건 이미 질리도록 해 봤을 텐데요.”
그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 터이고.
=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은 포효를 참지 못했다.
괴물과 사람의 경계에 선 그녀가 울부짖었다.
=너는 날 이대로 미치게 만들 셈이냐?!=
기껏 이성을 되찾게 방치해 놓고 다시 미치게 만들 셈이냐고 묻고 있다.
민준은 그 ‘불평’의 원인을 안다. 이 공간의 나머지 반쪽을 채운 귀신의 격류, 죽음이 흘러 만든 강을 다시 본다.
=꺄아아아악!=
강은 그들에 앞서 이 공간에 갇힌 첫 번째 수인, 아드키엘과 절대 섞이는 일이 없이 흘렀다. 그녀와 귀신들 사이를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민준이 안배한 것이다. 스승은 모르겠지만, 민준에게도 쉽지 않은 대공사이자 복잡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 벽은 망령들의 악다구니까지 막지는 못했다. 수천, 수만의 신입들이 내지르는 절규가 고참 죄수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뭐, 이런 걸 가지고 벌써부터.
“걱정마세요. 당신이 저 망령들 때문에 미치지는 않을 겁니다.”
용 한 마리도 미치게 만들기 충분한 정신파였지만 아드키엘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 정도에 정신이 흔들리기에는 너무 긴 시간을 존재해 왔다. 괴물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또한.
“이미 미친 사람이 또 한 번 미치기는 쉽지 않죠.”
민준은 사람 비슷하게 사고하는 힘을 되찾되, 광기는 떨치지 못한 아드키엘의 내면을 본다.
오로지 민준을 망가뜨리기 위해 나머지 동족들을 몰살시키려고 한 날것의 광기를.
=너!=
그 불평불만에 더 귀를 기울이는 대신 민준은 본론을 꺼냈다.
“당신에게 앞으로 시킬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내가 가장 하기 싫은 일들.
— ?!
아드키엘은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는 것을 넘어 순수한 분노를 느꼈다.
콰르르르!
어둠이 붕괴하며 거인의 형상을 빚었다. 그녀의 손톱이 공간을 거칠게 찢어발겼다.
하지만 민준 주변에 보이지 않는 원이 그려지며 공격을 막아냈다. 그 벽에 튕겨나간 그림자는 검은 불티처럼 스러지며 사방에 흩날졌다.
“저것.”
상대의 시도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그림자와 섞이지 않고 흐르는 망령들의 행렬.
“지금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나와 내 후계가 앞으로 더 많은 망령들을 여기로 보낼 겁니다. 지금 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많은 귀신을.”
=······?!=
아드키엘은 잠시 공격을 잊고 그 말을 곱씹었다.
그녀가 긴 시간 독점하던 감옥을 갑작스럽게 공유하기 시작한 저 귀신들의 공통점은, 전부 민준의 뜻에 의해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가 고대 종족이다.
아드키엘은 민준이 앞으로 얼마나 더 죽일 것인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저것들을 왜 하필 이곳에 가두는지, 그 의도가 너무도 불길하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이어진 말은 스승을 너무도 혼란스럽게 했다.
“심지어 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유입이 계속될 겁니다.”
=···무슨 뜻이냐?!=
“이곳은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본보기로 사용할 거니까요.”
=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당신에게 맡길 첫 번째 과업입니다. 노역이라 말해도 좋겠죠. 당신은··· 이곳을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될 겁니다. 일종의 수문장 역할도 겸하여.”
아드키엘은 그 말을 비웃을 수도 없었다.
적합한 반응을 떠올리지 못할 만큼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그녀의 정신이 부글거리며 끓어올랐다.
=사람이 오만하게 신 행세를 하면서, 사람 같지 않은 짓만 하다 보니 너도 정신이 나간 모양이구나. 진정 모든 것이 네 마음대로 될 것 같나? 내가 순순히 협조할 것이라 생각했더냐?!=
민준은 그 말에 답하는 대신 차분하게 설명했다.
화자는 분명 두 명이나 서로 자기 할 말만 하는 자폐적 상호 방백이 이어진다.
“미래의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더 많은 규율을 강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규칙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징벌로 이어지지요.”
아드키엘은 듣기 싫다는 듯 정신적인 욕설과 팽창한 그림자를 쏟아부었다.
언어와 행동으로 표현된 그 견해를 축약하면, 나는 네 말에 관심이 없으니 너도 네 생식기의 형태적 양상에나 집중하여 그것으로 네 자신을 즐겁게 하라는 거친 제안이었다.
하지만 민준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다른 종족들을 어떻게 할지 이제 겨우 큰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아시프-1을 통한 세뇌와 종교 규율에 근거한 통제를 병행하는 계획은 그대로다.
단, 통제에 응하지 않는 이들에게 어떤 벌을 내릴 것인가? 그들마저 모두 세뇌할 것인가? 하지만 죄인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면?
“공포보다 효과적인 족쇄는 없지요. 그들은 자격을 입증 못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악독한 죄인의 말로를 볼 겁니다. 이곳에서.”
민준은 자신을 둘러싼 그림자의 결을 무심히 어루만졌다.
상대를 찢어발기고 분쇄할 의도를 담은 힘임에도 민준의 손장난에 속절없이 흔들린다. 부드럽게, 유도를 따라 어둠이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잔잔한 물결처럼.
아드키엘은 역겨움을 느꼈다.
“그들은 죽음이 죄사함을 보장하지 않음을 알게 될 겁니다. 죽음이 형벌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요. 신의 율법을 어긴 극악한 죄인들은 사후에도 영겁에 가까이 고통 받는다는 걸, 순례자들이 보고 증언할 겁니다. 바로 이곳에서.”
민준이 서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당신은 이곳의 첫 번째 수인이자, 간수가 될 겁니다.”
징벌이 엄중할수록 사람들은 죄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아드키엘은 그것을 이해했지만, 자신에게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민준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어찌 감히 그것을 기대하는가?
민준이 그 답을 말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 일해야 당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뭐?!=
“지금 당신의 자아를 견인하는 가장 큰 욕망은, 나를 처참하게 파멸시키는 것이죠.”
그녀의 시도는 이미 실패했다.
“하지만 직감했을 겁니다.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내가 당신에게 일말의 부채라도 남겨 놓았으면 모를까, 난 이제 빚이 없어요. 더 이상 내 옛 스승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나는 죄를 갚기 위해 내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을 겁니다. 당신을 여태처럼 방치하지 않을 겁니다.”
당당하게 선언하는 제자 겸 원수를 향해, 아드키엘은 증오를 넘어선 어떤 감정을 느꼈다.
“그렇다면, 당신은 애초에 왜 나를 파멸시키고 싶었는가? 약속된 평온을 빼앗았기 때문이지요.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소외되어 영겁의 시간 이곳에 갇혔기에, 당신은 자유를 원합니다. 소멸이라는 방식의 자유를.”
아드키엘은 소멸을 원한다.
더 이상 그녀가 아닌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 갈망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입니다.”
민준이 허공을 향해 무신경스럽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바로 변화가 일어났다.
망령들과 그림자 괴물을 격리시켰던 투명한 벽. 그곳에 매우 주의 깊게 안배한 균열이 생겨났다. 민준이 지금까지 전념한 작업의 결과였다.
콰아아아!
다음 순간, 망령들의 절규에 아드키엘이 내지르는 비명이 섞여 들었다.
물이 가득 찬 욕조의 마개를 뽑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드키엘을 구성한 그림자가 둥글게 소용돌이쳤고, 그 일부가 망령의 강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과거와 정 반대의 상황. 영적 차원의 삼투압 현상이 역전된다. 예전에는 그림자 괴물이 망령들을 먹어 치웠다.
하지만 지금은···.
=이··· 미친 악마가!=
정교하게 분배되어 흘러 든 그림자를 향해 망령들은 환호하며 달려들었다.
귀신들은 그림자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상대가 순수한 영체가 아닌, 영육이 일그러져 봉합된 것이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민준이 그것을 허락했기에 가능했다.
절규하던 아드키엘은 곧 어떤 가능성을 떠올린다.
설마?
이대로 나를 망령들의 먹이로 던져줄 셈인가?
실로 비참한 형태의 최후이긴 하나, 그녀가 원하는 결말에 닿아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완전한 소멸.
하지만 그 과정이 이리도 고통스러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리도 길게 이어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현상은 아드키엘이라는 바다를 수납한 제방에 바늘구멍을 뚫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망령들의 포식은 그 작은 틈을 따라 바닷물이 흘러 나가는 속도로 이루어졌다.
=이런 방식으로···?!=
하지만 그 순간 아드키엘은, 자신의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참으로 오랜만에, 그림자 괴물은 다시금 공포를 느꼈다.
민준이 손짓을 한 순간 망령과 그림자 사이의 벽에 또 한 개, 균열이 생겨났다. 처음 생겼던 균열과는 꽤나 멀리 떨어진 위치였다. 그리고 그 틈으로 분출되는 물결은 직전과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망령들이 그림자 쪽으로 스며든다.
고대 종족의 귀신들은 믹서기 내용물처럼 회오리치고 갈리며, 작은 파편으로 변해 그녀 쪽으로 흘러들었다.
아드키엘은 그 움직임을 통제할 수 없었다. 스스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망령들은 그녀에게 흡수되었다.
회백색 망령들과 칠흑의 아드키엘은 두 개의 균열에 엇갈린 방향으로 몰린다. 그대로 태극과 흡사한 형태를 그렸다. 한쪽 끝에서는 아드키엘이 망령들에게 먹히고, 반대쪽 말단에서는 망령들이 그녀에게 흡수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포식자인 동시에 곧 피식자였다.
서로가 서로를 먹고 먹히는, 순환 속에 고정된 지옥.
아드키엘은 그제서야 민준의 계획을 직감했다.
=이··· 미친 놈이!=
미친 귀신에게 광인이라 비난받은 남자는, 그 사실에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필요하다면 세상의 모두를 희생시켜서라도 영생을 얻고자 했던 짐승들과, 필요하다면 단 한 명을 희생시켜 세상을 구원하려던 왕. 양쪽 다 바라던 바를 얻을 겁니다.”
영생을 얻고자 했던 자들은 영겁에 가까이 고통 받고, 누군가를 희생시키려 했던 자는 스스로를 희생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 유입되는 망령들은 더 많아질 겁니다. 그들을 주시하고 감시하며, 나중에는 내가 없더라도 자의적으로 벌을 줘야 할 거에요. 그게 당신의 자유를 보장하는 유일한 열쇠니까.”
=···뭐라고?=
“내면을 관조해 보십시오.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
그러고 싶지 않은 충동과의 싸움에서 진 괴물은, 민준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녀는 즉시 이변을 자각할 수 있었다.
=아···!=
망령에게 먹힌 자리를 다시 망령을 먹어서 채웠다.
그리고 빼앗겼다가 다시 복구한 부분만큼 아드키엘의 자아는 희미해져 있었다. 그녀는 그 전보다 아주 조금 더 묽어졌다. 상실된 부분을 타인의 영체로 복원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계속되다보면 아드키엘이라는 자아는 사라지고,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망령들과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영적 기계가 하나 남을 겁니다. 그 기계에게 입력된 목표 의식은 오로지 여기 갇힌 죄인들에게 반영구적인 고통을 주는 것이지요. 당신에게 다행인 것은, 그 기계가 완성된 순간 더 이상 그것을 아드키엘로 간주할 수는 없다는 점이지.”
이대로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아드키엘은 자신이 기계로 전락하기를 미친 듯이 갈망하게 될 것이다.
그는 스승이 자신을 수십 년 만에 다시 본 것으로 체감할 것을 안다. 실상은 수십 일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녀는 모른다. 민준이 지배하는 공간이 아드키엘의 감각을 뒤틀어 놓았기 때문이다.
“오래 버틸수록 견디기 힘들어 질 겁니다. 시간 만큼 효과적인 고문 도구는 드물지요. 시간 만큼 지독한 감옥도 또 없고 말입니다. 훗날엔 차라리 생각을 멈추길 기원할 겁니다. 그런 당신이 염원을 이룬 순간, 갈망과 감정을 잃고 기계로 변한 그때 비로소 이 공간은 영속성을 얻습니다.”
반영구적으로 지속 가능한 고문실.
“많은 종교에서 천국과 지옥의 개념을 논하지요.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아직 이 세상에 천국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쪽은 근미래에 가능할 것 같더란 말입니다.”
이 세상엔 아직 형벌 도구로서 창조된 차원이 없다.
혹자는 위원회와 드래곤이 압제하는 작금의 현실이 사실상 지옥이 아니냐고 묻겠지만, 징벌이라는 목적성이 부재하는 이상 완벽하지 않다.
“누군가는 어비스를 지옥이라고 부르지만, 그곳은 우주의 파편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긴 쓰레기장에 가깝습니다. 거기에도 형벌론적 목적성이 결여되어 있지요. 다시 말해, 전 우주를 통틀어 진정한 지옥은 존재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민준은 담담한 어투로 선고했다.
“그래서, 내가 하나 만들어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