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45
45. 탈세와 절세 사이 (2) >
***
세무조사 통보를 받고 그들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할 것은 지난 기록을 모아 검토하는 것이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혹시 꼬투리 잡힐 거리가 있는지 적(敵)들보다 먼저 파악하고 대응전략을 세우는 것이 좋다. 이건 털어서 먼지 한 톨 안 나온다고 자신하는 이들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청렴결백하더라도 상대가 내세우는 의혹을 반증하지 못하면 과세와 추징금을 때려 맞으니까.
그런데 지금 민준의 경우는···.
‘아니, 난 수형자잖아. 탈세를 하고 싶어도 그럴 방법이 제한되는데.’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아, 혹시?!’
특별증여세와 생존세는 수형자 계좌에서 자동 차감되니 이 과정에서 불법행위와 탈세가 끼어들 틈은 없다.
따라서 수형자를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는 한 종류의 의혹을 파게 된다.
‘차명계좌!’
수형자 명의가 아닌 계좌에 달란트를 굴리며, 그것을 수형자 이득을 위해 사용하는 것.
오늘 젠킨슨과의 대화를 토대로 가정하면 이런 거다.
세전금액인 300만 달란트와 세후금액인 30만 달란트 사이 특정 금액을 상호 협의 하에 다른 계좌에 입금하면?
드래곤 입장에서는 지출을 줄여서 좋고 민준 입장에서는 30만 달란트보다 많은 금액을 입금 받으니 좋다. 물론 해당 금액을 수형자 계좌로 옮기는 것을 포기하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는 범죄.
‘하지만 난 그런 짓 한 적 없는데. 앞으로도 할 계획이 없고.’
빼돌린 달란트를 투자해서 돈을 불리고 최종적으로 5천만 달란트를 만든 다음 민준의 수형자 계좌로 송금하면 해피엔딩일 것이다.
문제는, 그런 모험을 한 자들은 결국에는 들키고 처절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
애초에 수형자가 차명계좌를 굴리는 것도 불법이고 어떤 형식으로 돈이 오갔든 증여세를 안 내는 것도 불법이다. 감시망을 완벽하게 벗어날 확신이 없는 이상 함부로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없었다.
‘혹시 모르니 그래도 검토는 해 봐야겠군. 젠장, 조사 대상에 대한 기간 제한이 없다고? 그럼 800년 전 기록부터 봐야 하잖아. 독사 같은 새끼들.’
일곱 개의 차원에 걸친 800년 치의 기록을 뒤질 생각이 하니 머리가 아팠다.
또한.
‘타이밍이 너무 미묘한데?’
델과 젠킨슨이 각각 자신의 달란트 벌이를 위해 협조하겠다고 나선 이 상황에 세무조사 통지서가 날아들어왔다.
이런 것을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근데, 이런 행위도 세법에 걸리는 건가?’
이 방법을 처음 제안한 델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지만 그가 먼저 연락을 넣을 방법은 없었다. 민준이 접근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영계통신망은 위원회 감시를 받고 있으므로.
결국은 델이 자신들이 관리하는 통신망으로 연락을 주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웃기지도 않는군.’
전처의 연락을 목 빠지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혼남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그렇게 소파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디리리링!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설마?!’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 심리라는 것이 은근한 기대감을 품게 된다.
하지만 외부 액정에 뜬 이름은 그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 블레어 캠벨(젠킨슨 왕비서)
그는 투덜거렸다.
‘연락하라는 애는 안 하고··· 얘네들은 아주 상사랑 부하가 돌아가면서 사람 귀찮게 하네.’
막 보스랑 실랑이를 마친 참인데 이젠 비서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민준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뭡니까?”
– 네, 요원님. 블레어 캠벨입니다. 일전에는 감사했습니다.
콧대를 바짝 세우고 떽떽대던 옛날과는 달리 묘하게 태도가 고분고분해졌다. 여전히 사무적인 목소리이긴 하지만 말투의 차이가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터미널에서 공주가 튀고 화물 다 털렸으면 아무리 총애받는 비서라도 자리 보전하기 힘들었겠지. 보스 자리가 날아가는데 비서가 어떻게 버텨?’
잠시 후.
이어지는 말을 듣던 민준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나랑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고요?”
– 그렇습니다.
엘프는 의외의 용건을 꺼냈다.
이민국에 체포된 슈탄족 공주가 일주일 넘게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겨우 입을 열어서 한 말이, 예민준 요원 앞에서 진술하겠다는 으름장이었다고.
그는 짜증과 의문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젠킨슨이 직접 안 나섰습니까? ···아! 그렇지. 그래도 공주는 공주니까.”
오만식과는 상황이 달랐다. 인권연대와 공모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그는 젠킨슨이 직접 취조해서 정보란 정보는 다 빼냈고, 앞으로 평생 햇빛을 보지 못할 신세가 된 반면 베르미 공주에게는 같은 짓을 할 수 없었다.
외계의 공주라는 신분 때문에.
– 지금도 연합왕국은 그녀의 신변 인도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이민국은 철저하게 묵살하는 중이구요.
덕분에 양계 교역이 삐걱거리자 어부지리로 금값이 폭등했고, 연금술사들만 환호를 지르며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젓는 중이다.
– 이런 상황에서 ‘다소 거친 방법’을 동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온건하게 대해줬더니 입을 꽉 다물고 있다가 이제 와서 나를 찾는다고요?”
이 사실은 분명 젠킨슨에게도 보고가 되었을 터다.
‘뻔히 알면서, 아까 나랑 이야기할 때는 이거에 대해 한 마디도 안 꺼냈단 말이지? 얌체 같이 비서한테 따로 전화하게 시키고.’
– 그리고··· 사실 지금 상황이 좀 급한 감이 있습니다.
“왜요?”
– 위원회에서 본 사건에 대한 사법권 이전 및 용의자 인도를 요청했습니다.
“?!”
위원회와 각국 정부가 체결한 수많은 조약은 그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면 을사조약에 버금가는 불공정계약이다.
지구 입장에서는 까라면 깔 수밖에.
‘절차 때문에 며칠 걸리긴 하겠지만 결국에는 넘기겠지.’
– 위원회가 나설 정도로 그녀의 범죄가 중하게 여겨진다는 것이겠지요. 배후에 누가 있는지 철저하게 캐겠다는 의도구요.
이민국은 금번 레어 털이 사건과 인권연대 간 직접적 연관이 없는 것으로 잠정결론을 냈다.
그 인간우월주의자들은 정말로 순수하게 베르미 공주를 테러해서 죽이려는 생각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목표물이었던 공주는 제3자와 결탁하여 보물을 빼돌리려고 했고 말이다.
– 그간 관행을 보면, 위원회는 공주를 데려간 뒤 수사 결과를 우리에게 공유 안 해줄 가능성이 커요.
그럼 지구인들은 손가락만 빨게 되는 것이다.
– 정보를 얻지 못하면 향후 비슷한 사건에 또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만큼은 피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또 귀찮은 일과 얽히게 되었다.
“······알겠습니다. 내일 정도에 찾아 가죠.”
– 감사합니다.
그러더니 바로 전화를 끊지 않고 머뭇거린다.
“?”
엘프는 어렵게 한 가지를 물었다.
– 저, 요원님 죄송합니다만···.
“또 뭡니까?”
당장 세무조사 때문에 마음이 바쁜 터라 자연스레 목소리가 뚱해졌다.
– 저번에 터미널에서 만나 뵈었던 그 분 말입니다.
누굴 말하는지 뻔히 알면서 그는 능청을 떨었다.
“누구요?”
– 배면부에 자유롭게 신축 가능한 돌기물을 조형하는 독특한 신체변형능력을 지닌 여성분···.
‘등에 촉수 달린 여자’를 최대한 점잖게 표현한 엘프는 이어서 묻는다.
– 그분께서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며 제게 편지와 선물을 남겼는데···.
엘프의 목소리에 근심과 시름이 가득했다.
–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립니다. 혹시 연락이 닿으신다면 이걸 다시 회수해 가실 수 있도록 부탁 좀 전해주실 수 없을까요? 정체도 모르겠고, 혹시 제겐 너무 과한 물건이 아닐까 싶어서.
“뭔데 그럽니까?”
요약하면 ‘게거품 물고 기절하게 만들어서 미안했다. 사과의 의미로 선물을 남긴다. 위험할 때 딱 한 번은 당신을 구해줄 것이다.’ 라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남겨진 선물은 엄지 손톱 만한 젤라틴 비슷한 물질이었다고 한다.
정체를 짐작도 못한 엘프는 그것을 만졌고, 그러자 읽을 수 없는 글자로 쓰인 수천 장의 문서가 빛의 장막을 그리며 사방을 덮었다고.
문서는 그 뒤로 어딜 가든 그녀를 따라다녔고 당황한 블레어는 이리 저리 손을 휘젓다가 무언가에 닿았다나? 그러자 즉시 모든 문서가 사라지고 점액질이 빛으로 화하며 그녀의 손가락에 감겼다.
– 이게 지금 평범한 반지 형태가 되어서 제 손가락에 남았는데, 무슨 방법을 써도 벗겨지지가 않습니다. 회장님께도 부탁드려봤지만 실패하셨어요.
여기까지 들은 민준은 물건의 정체와 엘프가 본 빛의 문서가 무엇인지 짐작했다.
‘저 엘프가 얼떨결에 ‘사용자 약관’에 동의한 거군. 그건 그렇고, 손가락에 감기는 반지 형태? 대체 몇 세대가 진화한거야··· 아무튼 저건 이제 죽어도 못 빼겠네.’
이 지식을 털어놓는 대신 대충 얼버무리며 말했다.
“음··· 혹시 연락이 닿으면 이야기를 전달은 해 보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민준의 눈빛이 약간 변했다.
‘놀래켜서 미안하다는 이유로 저런 물건을 막 뿌리고 다닌다고?’
아무리 엔델리온이라도 쉽게 보일 수 있는 재력이 아니다. 이쯤 되니 델의 신분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디 자그마한 행성 하나 정도 영지로 굴리는 수준은 되었나 보지? 그냥 금수저도 아니고 백금수저 정도는 되겠네. 그런 애가 대체 무슨 짓을 하다가 50만 달란트짜리 죄를 지은 거야?’
***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님! 오늘은 어떤 메뉴로 모실깝쇼?!=
캐시는 에고 후라이팬을 손에 쥔 채 잠시 고민에 빠졌다.
민준은 본래 그녀가 이 상변태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었으나, 레이크필드는 물론이고 동철, 정팔까지 한번씩 빌려 썼다는 것을 알고는 캐시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천상의 맛을 맛보았다는 증언을 한 터라 손이 근질거려서 견딜 수 없었다.
이 후라이팬이라면 왠지 모르게 ‘한끗’이 모자란 그녀의 요리에 응급조치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항의와 설득 끝에 결국은 오늘 대여에 성공한 것.
“그러게. 재료는 이것 저것 많이 사 놨는데···.”
일전 민준네 주방에서 생닭 2.5마리를 화장시킨 사건 이후 그는 캐시를 주방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덕분에 그녀는 오늘은 자기 집 부엌에서 새 요리에 도전하려는 참이었다.
“민준 씨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해보려고 하거든?”
가까운 친우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 때문인지 요즘 무척 울적한 눈빛을 자주 보이고, 큰 한숨을 쉬기도 해서 신경이 매우 쓰이던 참이었다.
=그분이 좋아하는 메뉴가 있습니까?=
“대충 다 잘 먹는 것 같던데··· 식재료로 따지면 구황작물을 좀 좋아하는 편이야.”
=싫어하는 음식은요?=
“아, 최근에 알았는데 샌드위치는 싫어하더라. 그리고 원래부터 고사리는 입에 안 댔어.”
=그렇군요. 그럼 이번에는, 누님이 선호하시는 음식은요? 그리고 싫어하시는 음식은?=
“나도 안 가리는 편인데··· 생선 종류는 피했으면 좋겠어. 특히 등푸른 생선은 절대.”
=그래요? 호오··· 아! 그렇군요.=
후라이팬은 뭔가를 눈치챘다는 듯 말한다.
=하긴, 어지간히 비위가 강하지 않은 이상 어렵겠죠. 누님은 인간 중에서도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니···.=
“?!”
그 말을 들은 캐시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가볍게 들으면 생선 비린내를 싫어할 법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었으나, 그 텔레파시에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생략된 말을 짚어내며 캐시는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너, 설마 안 거야? 어떻게? 민준 씨가 말했어? 그럴 리가 없는데···. 설마 언어 해석 수준을 능가하는 독심술?”
그러자 후라이팬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 딥 레벨의 독심술은 아니고요! 그냥, 제 소소한 부가기능 중 하나입니다. 제 손잡이를 잡으면 어지간하면 알 수 있어요! 제 주인님이 어떤 이능을 가지고 계신지 말이에요. 전주인님처럼 의식적으로 꼭꼭 숨기지만 않으면 됩니다.=
“민준씨도 이걸 알아?”
=아뇨. 제가 워낙 수줍음을 많이 타서 자기 PR 같은 걸 잘 못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입을 모아 헛소리로 치부할 발언이었다.
캐시는 기적적인 요리도구이자, 비접촉식 통역마도구이자, 이능력자 판별기라고 주장하는 후라이팬을 의심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세상에 어떤 변태가 후라이팬에 이런 기능을 넣어 놓지? ···하긴 애초에 변태니까 이런 후라이팬을 만들긴 했겠지만.’
생각해보면 암광철 주물제품이라는 것도 이상하다. 원래 검 같은 것을 만들 때 쓰는 금속인데, 그 귀한 걸로 후라이팬을 만들다니.
‘하긴, 외계인들 취향을 내가 어떻게 짐작하겠어?”
후라이팬을 반납하며 민준에게 오늘 알아낸 사실을 알리리라 마음먹으며 캐시는 말했다.
“아무튼, 다 같이 먹을 수 있게 이 기준에 부합하는 요리를 만들어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재료는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준비해 주시구요. 볶음 요리의 첫 단계는 팬 예열이죠. 그러니, 저를 좀 달궈주시겠어요? 불은 가장 센 화력이면 좋겠습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