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44
44. 탈세와 절세 사이 (1) >
미국에서 존경받는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런 말을 했다.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세금과 죽음.’
민준이 지구에 오기 전 태어나고 죽은 양반이라 마주칠 기회는 없었지만, 그는 저 위인의 무덤 앞에서 박수라도 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너무도 절실하게 공감하는 글귀였기에.
입장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살아있는 대가로 세금을 내야 하며, 그 세금을 내지 못하면 죽음을 맞이하는 수형자였으니까.
외원회는 세금을 오직 달란트 형태로만 수취하기에 모든 수형자처럼 민준도 그 문제에 있어서는 매우 예민한 편이었다.
그런 예민함은 날이 선 눈빛과 말투로 표현되었다.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본론은 이거잖아? 깎아 주고, 미뤄 달라는 거지?”
마법 화면 너머의 용은 보기 드물게도 위축된 표정을 지었다. 평범한 인간이나 엘프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변화였지만 민준은 달랐다.
=아··· 저, 그게. 그러니까···.=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민준은 드래곤의 입가에서 미처 다 지우지 못한 핏자국을 발견했다. 화제를 돌리기 싫었지만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너 고기 끊었다며?”
=?!=
뭘 말하는지 눈치챈 용은 바로 불꽃을 일으켜 입술과 턱의 선혈을 지워버렸다.
단백질을 멀리했던 수백 년 동안 젠킨슨이 비건 드래곤이 되었던 것은 물론 아니고, 주치의 권고에 따라 특별한 종족에게만 가능한 식단을 유지했다. 오랫동안 대기의 정순한 마나를 흡수하여 에너지원으로 삼았던 그는 요즘 놀랍게도 스트레스성 폭식을 일삼고 있었다. 헌데, 그 사실을 토로하는 건 무척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상대가 오랜 친우라고 해도.
“설마 부하 잡아먹은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용들이 아프리카 대륙에 공동으로 운영하는 코끼리 목장이 있다. 그가 요즘 그곳을 하루에도 두세 번씩 드나드는 통에 가축들이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킬 지경임을 고백하는 대신, 젠킨슨은 얼른 말을 돌려 버렸다.
=아무튼, 내가 요즘 대출을 알아보고 있는데 말일세···.=
베르미 공주 건을 해결한 뒤 민준은 젠킨슨에게 내용증명을 송부했다. 품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백지수표를 현금화할 때가 온 것이다.
그가 제시한 액수는 30만 달란트였다.
재물손괴범 테오 크리스티안센을 척살하고 전략시설 테러를 막은 대가로 위원회에게 받은 금액이 20만 달란트이니, 젠킨슨에게는 더 요구해도 된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룡의 체면이 추락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을 면한 것은 민준 덕이었다. 그가 없었으면 장태준의 유품을 위원회에 안전하게 넘길 수 없었을 터다.
“위원회한테 물건 넘기고 받은 돈 있을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3백만 달란트는 만들 수 없다네. 자네도 알잖는가?=
이번에도 특별증여세는 드래곤이 부담하는 조건이므로 민준 통장에 30만 달란트를 꽂아 주기 위해서는 300만을 입금해야 한다.
위원회가 수형자에게 부과하는 이 세금은 금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말도 안 되는 형태가 되었다.
생각을 해 보면, 애초에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만든 제도인 것이다. 수형자에게 어떤 형태로든 금전적인 지원을 하지 말라는 으름장.
=은행과 이야기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내 신용으로도 300만 달란트는 못 빌릴 것 같네.=
용이 말하는 은행은 당연히 지구의 것이 아니다. 위원회가 직접 운영하는 이계의 은행.
민준은 생각했다.
‘뭐, 예상은 했지만.’
위원회는 인프라 이용료, 배당금, 각종 세금 등을 모두 달란트로만 징수한다.
대표적인 예가 터미널이다. 한국 터미널은 젠킨슨과 위원회가 지분을 나눠 소유하므로 이용료 명목으로 징수한 달란트를 양쪽이 나눠 가진다. 여기까지는 얼핏 보면 공평한 수익 배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면을 보면, 차원도약기술 특허를 위원화가 보유한 탓에 젠킨슨은 엄청난 금액의 로열티를 그들에게 별도 지불해야 했다. 이런 식의 계약 및 거래 형태는 찾아보면 수도 없이 많다.
그럼, 정부나 드래곤이 막대한 달란트를 필요로 할 경우 어떻게 조달하는가?
비슷한 신세인 다른 차원과 교역을 해서 얻거나, 위원회 계열 은행에서 쓰레기 같은 환율을 각오하고 합법적으로 환전하는 방법이 있지만 금액이 클수록 선호되지 않는다. 그들이 거액을 조달할 때는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는 방식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계 은행에 ‘빚’을 지는 것이다.
결론을 이야기하면, 위원회는 각종 사용료 명목으로 지구로부터 달란트를 징수하는 한편 그 돈을 낼 자금을 대출해 줘서 이자까지 받아먹는다.
그들은 총과 칼로 다른 차원을 점령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내가 생각을 좀 해 봤네.=
드래곤이 민준을 설득하듯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270만 달란트라는 거액을 세금으로 위윈회에게 내는 건 미친 짓이네! 억울하지 않나? 그 놈들이 나한테 뭘 해 줬다고!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짓이야!=
민준이 눈썹을 찌푸렸다.
‘위원회가 뭘 해줬냐고? 나야 그렇지만, 드래곤이 할 말은 아닌데. 더군다나···.’
그는 비아냥거렸다.
“지금 탈세라도 하자는 거야? 저기 조세징수사령부 특수부대 몰려오는 소리 들리네. 용 모가지 날아가는 비명도 들리고.”
=탈세라니!=
레드 드래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선에서 세금을 좀 줄이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지!=
민준은 삐딱한 시선으로 묻는다.
“어떻게?”
그러자 드래곤이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큰 틀에서 보면 델의 제안과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결국 이거네. 증여세를 피할 유일한 방법은 위원회로부터 직접 보상을 받는 거니까 그걸 돕겠다는 거 아니야?”
재주는 용이 부리고 돈은 범죄자가 먹으라는 것이다.
이미 비슷한 제안을 훨씬 끗발 잘 날리는 상대로부터 입수했으므로 민준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됐고, 빨리 돈 내놔.”
=민준! 우리 사이에···.=
그들의 실랑이는 그 후로도 한참 이어졌다.
***
드래곤과 대화를 마친 뒤 민준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의 수형자 계좌 잔고는 유례없이 풍족했고, 앞으로 들어올 돈도 있었으며, 더 아름다운 숫자를 만들도록 돕겠다는 자들도 생겼다.
이 페이스로만 간다면 근무지 이동 발령을 받기 전에 자유를 손에 넣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준은 그저 행복할 수만은 없었다. 늘어난 잔고를 들여다보고 있음에도 그러했다.
저 숫자에는 브래들리의 핏값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삑!
민준은 구형 컴퓨터 전원을 켠다. 모니터 및 본체와 일체형으로 연결된 키보드를 만지작거리자, 까만 화면에 하얀 글자가 주르륵 나열되었다. 영계를 경유한 통신망을 접속하여 그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한다.
브래들리가 죽은 날 그는 직전 차원에서 함께 일했던 수형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위원회가 그 소식을 은폐하지는 않겠지만 굳이 널리 알리지도 않을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그 사실을 가장 빨리 접한 수형자가 메신저 역할을 맡았다.
직속 교도관리에게 약식 보고를 할 때처럼 생각의 속도와 형식으로는 불가능했다. 쪽지라고 불러도 좋고 편지라고 해도 좋을 메시지를 그들에게 뿌렸더니 답신이 그새 몇 통 와 있었다.
– 발신인: 아시프-26,188,280
– 메시지: 연락 고맙다. 잘 지내지? 솔직히 놀랐어. 그리고 안타깝다. 오늘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 정신이 딴데 팔리다 보니, 생포해야 할 수배범 대가리를 깨버리기도 했다. 300달란트 날린 거지. ······아 참, 나 어쩌면 그쪽 차원으로 임시파견이나 이동발령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브래들리의 자리를 채워야 할 거니까. 결과가 어떻게 되든 반길 수도 울 수도 없는 처지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씁쓸하네.
의외로 담담한 답신은 아직 정신이 충분히 마모되지 않은 동료의 것이었다.
‘얘는 아직 살 만 한가 보군.’
열심히 일하면 자유를 손에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상태다.
민준은 다음 메시지를 읽었다.
– 발신인: 아시프-5,523,694
– 메시지: 살아계셨군요. 발신인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어요. 원체 연락을 잘 안하는 분이니까. 그런데 이런 소식일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당신을 탓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가슴이 너무 아파서 그래요. 오늘 하루 종일 울었어요. 그 불쌍한 사람 생각을 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못 했고요. 계속 이러다가는 생존세 납부 기한 못 맞출 것 같은데··· 이젠 뭐 어떠냐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는 대체 무슨 끔찍한 죄를 지었길래 이런 신세가 된 걸까요? 아마 당신도··· (후략)
그 후로 12만 5천자에 달하는, 쪽지나 편지라기 보다는 책 한 권에 해당하는 문자가 이어졌지만 민준은 다 읽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이 양반은 이미 정신이 조금씩 붕괴되기 시작했군.’
애석했지만 그로서 도울 방법이 없었다.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일.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전 메시지와 비교해서 확연하게 짧았다.
– 발신인: 아시프-100,970
– 메시지: 뭐야, 너 살아 있었어? 이상하네. 델이 퇴소했다는 이야기를 분명 들었는데.
이 한 줄이 끝이었다.
‘이 새끼가?’
동료의 죽음에 대한 슬픔 같은 것은 표하지 않는다. 민준이 살아 있는 이유가 궁금할 뿐이고, 그것을 숨김 없이 아무렇지 않게 뱉는다.
기대(?)와 달리 델이 살해계획을 포기했음을 굳이 설명하며 답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메시지를 지우면서 민준은 잠시 전처에 대해 생각한다.
바빠서 빨리 돌아가야 한다더니 델은 결국 하루를 더 지구에 머문 다음 돌아갔다. 위원회를 통해 브래들리의 죽음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었다. 민준이 고의로 그 자리에서 언급을 피했지만, 수형자에게는 전달되지 않는 소식을 엔델리온은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헤어지고 몇시간 뒤 엉망이 된 얼굴로 민준을 다시 찾아온 그녀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울었다.
그리고 다음 날 어떤 결의를 얼굴에 새긴 상태로 돌아갔다.
‘음, 또 있네?’
내용을 열기 전 발신인부터 확인한다.
‘이 양반이 웬일이야?’
– 발신인: 아시프-1,892
델, 브래들리와 함께 일했던 그 차원에 파견되었던 수형자이긴 하지만 서로 엮일 일이 거의 없던 자였다. 그 세계는 거주 가능한 행성이 지구 보다 훨씬 많았고 파견된 수형자도 엄청났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래도 브래들리와는 안면이 있었던 것 같아서 메시지를 보내긴 했지만 회신이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민준은 내용을 확인했다.
단 한 줄.
– 메시지: 조심해라.
‘뭐지?’
이 통신망은 당연하게도 위원회에게 감시당하고 있다. 저 말은 가볍게 해석하면 브래들리와 같은 신세가 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이라는 뜻으로 여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왠지···.
‘뭔가 있는 것 같은데.’
회신을 보낼까 잠시 머뭇거리던 민준의 눈에 또 하나의 메시지가 수신된 것이 보였다.
‘위원회?!’
발신인이 위원회 계정이었기에 하려던 것을 멈추고 그 메시지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그 발신자의 풀네임과 메시지 내용을 동시에 눈에 담은 순간.
“!”
민준의 동공이 급작스럽게 수축되었다.
주륵.
등에 한기가 흐르고 땀 한 방울이 흘러내린다.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메시지 내용을 속독하며 자신이 뭔가 저지른 일이 있는지를 되새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일이 없었다.
아직은.
‘뭘 노리고 있는 거지?’
그의 시선이 고정되어 움직일 줄을 모르는 그 서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메시지: 비정기 세무조사 사전통지서.
0. 귀하(아시프-666)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기 앞서 아래와 같이 알려드립니다.
1. 조사대상 세목: 수형자 관련 법령에 따라 신고 및 납부의 의무가 있는 모든 항목.
2. 조사대상 과세기간: 제한 없음.
3. 조사 기간: 파견지 시각 20XX년 X월 X일부터 부대장이 적합하다고 인정하는 종료일까지.
4. 어떠한 사유에도 세무조사의 연기는 수락될 수 없으며 수형자의 성실한 협조가 따르지 않을 경우 즉시 처분될 수 있음을 유의 바랍니다. 조세징수사령부 역외탈세추적대장 응고이 센헬리. 관인생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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