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68
68. 용성애자, 용혐오자, 용도축자 (2) >
***
예상치 못한 말을 뱉은 에드워드의 눈은 이미 결단을 내린 자의 것이었다. 하지만 희미한 불안은 숨기지 못했다.
‘날 살인청부업자 따위로 생각하고 온 건가?’
캐시도 이 도련님의 의뢰 내용을 사전에 듣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알았다면 그녀 선에서 잘라냈을 것이다.
무척 불쾌했지만 민준이 그를 바로 쫓아내지 않고 이야기를 더 들어 보기로 한 것은 어디까지나 캐시를 생각해서였다.
“요원님, 비밀은 지켜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민준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뢰를 수락하든 거절하든 말을 퍼트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들고 오신 이야기가 설마 제가 생각하는 뻔한 스토리는 아니었으면 좋겠군요.”
대기업의 후계자가 여자와 아이들을 살해해달라고 요청한다. 민준이 떠올릴 수 있는 시나리오는 하나 밖에 없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정부와 혼외자를 한꺼번에 처리하려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들이나 꾀할 더러운 짓거리.
그런데 에드워드는 바로 부인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민준은 더 불쾌해졌다.
“부탁드립니다.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그럼 요원님도 절 이해하실 겁니다.”
그는 타블렛 PC를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의뢰 대상인 외계인입니다.”
사진의 여성은 금발의 엘프였다. 귀의 길이를 보니 에드워드와 달리 타종족 피가 안 섞인 순혈이다.
당연히 엘프 외계인도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이라도 지구시민권이 없으면 외계인이고 털북숭이 개불도 시민권이 있으면 지구인이니까.
“이 여자를 죽여 달라고요?”
“네.”
“어째서?”
그는 우울한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이야기는 두 사람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열흘 전입니다.”
‘열흘? 그럼 혼외자식을 처리해달라는 의뢰는 아니군.’
그래서 더욱 이해할 수 없지만 일단 더 들어 보기로 한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그만 한눈에 빠져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정중하게 거절했죠.”
“타이밍이 잘 맞지 않은 모양이군요.”
“네, 그녀는 앞으로 백 년 정도는 남자를 만날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순혈 엘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단순한 희망이나 예감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느끼기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런 걸로 생각했고요.”
오래 살면 천 살도 넘기는 엘프가 일찍 죽는 오크 대비 인구를 빠르게 못 늘리는 이유는 장생종(長生種) 특유의 저조한 번식력 때문이다.
엘프 대비 상대우위를 취한 부분이 힘과 번식력밖에 없는 걸 잘 아는 일부 오크는 열등감 해소를 위해 그들을 고자라고 비웃지만 옳은 표현은 아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간헐적 유성욕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순혈 엘프는 무성욕자 상태가 디폴트고 천 년에 달하는 생애에서 그런 욕구를 느끼는 순간은 정말 드물게 찾아온다. 짧으면 1년 주기이고 길면 몇백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한 번 불타오르면 오래 연소하긴 하지만 점화가 영 힘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집단이민 초기, 엘프의 긴 수명을 자손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부유한 인간들은 난항을 겪었다. 신분 상승을 위해 결혼에는 동의한 엘프들이 남녀 가리지 않고 잠자리는 거부하며 ‘자기가 그럴 기분이 들 때까지 기다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 기다림이 백 년을 넘길 수도 있기에 인간들은 당연히 순응할 수 없었고 처음에는 술의 힘을 빌리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후각이 예민한 엘프들은 예나 지금이나 알코올을 입에 대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들이 궁여지책으로 찾은 것은 코카인과 헤로인이었다. 옛날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인공수정 기술이 발달된 지금은 모든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눈 앞의 하프 엘프도 그렇게 태어났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초조했습니다. 정말 일생에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사람이었거든요. 그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털어놓기에는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다.
민준은 그가 그런 부분까지 공개하는 것이, 다음에 나올 고백을 정당화하려는 수작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선글라스를 벗고 다가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에드워드 미첨은 털어놓는다.
‘어쩌다 보니’ 상호 동의 하에 그녀와 관계를 맺었다고.
민준은 그런 개소리를 믿지 않았다.
“상대에게 당신이 뱀파이어 특성자라는 것을 밝히고요?”
“······아니오.”
민준은 경멸의 눈초리로 상대를 쏘아보았다. 그럴 기분이 들지 않는 엘프를 유혹하기 위해 능력을 쓴 것이다.
“그건 강간입니다.”
뱀파이어의 매혹 능력은 악용하기 시작하면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법리적용에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아 처벌을 피하는 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후회하고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어두운 안색으로 되뇌듯 말했다.
“정말로,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하고 있습니다.”
민준은 혐오감을 감추지 않으며 물었다.
“옆 건물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는 그 양반들이 그때는 안 말렸습니까?”
에드워드가 몸을 흠칫했다.
대기업의 후계자가 혼자 돌아다닐 리가 없다. 민준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아래에 대기시켜 놓은 경호원들은 그 여자를 만날 때도 동행했을 것이다.
“역시 대단하시군요.”
에드워드의 얼굴이 약간 더 파리해졌다.
“다 제 잘못입니다. 수행원들이 만류했지만 제가 고집을 부렸죠. 그 결과 전 이런 걸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타블렛을 만지며 영상 하나를 틀었다.
“다음날 연락처를 교환했지만 그녀와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그리고 딱 3일 뒤··· 제게 이런 영상이 전송되었습니다.”
장소를 짐작할 수 없는 곳에서 금발의 엘프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품에는 아이를 안고 있다. 아이의 귀는 순혈 엘프보다는 짧고 인간보다는 길다. 전형적인 하프 엘프의 특성.
여자는 영상이 촬영된 당일 신문기사 1면을 펼쳐 보인다. 두 사람이 헤어진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향해 말한다.
이 아이가 에드워드 미첨의 자식이라고.
아기는 뱀파이어 능력자인 에드워드가 그녀를 강간한 결과로 태어났으며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이 사실을 언론에 제보함은 물론이고 친자로서 상속권을 주장할 것이라고.
민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잠깐만. 분명 처음 만난 것은 열흘 전이라고···.”
엘프의 임신기간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화면 속의 아이는 생후 백일은 넘긴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 사실을 지적했을 때 에드워드는 초조하게 마른 세수를 하고 있었다.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계속 봐 주십시오···. 요원님.”
화면 속의 엘프가 갑자기 커다란 가위를 손에 쥔다.
그리곤 그것을 천천히 아기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
민준이 숨을 낮게 들이켜는 사이 여자가 날카로운 가위날로 아기의 배냇머리를 한 움큼 잘라내 별도의 용기에 넣었다.
그리곤 차분하게 계속 손을 움직인다. 발버둥치는 아이의 입에 면봉을 집어넣어 단호하게 긁었다. 그것 역시 용기에 들어갔다.
“저것들 역시 제게 배달되었습니다.”
그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비밀리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다고 한다. 물론 익명으로.
“결과는요?”
그는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답했다.
“제 자식이 맞답니다. 99.99% 확률로요.”
친자감정까지 마쳤다는 소리다. 민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임신과 출산을 3일만에 해치운다고요?”
그렇게 되묻던 민준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착각한 거 아닙니까? 1년도 전에 저 여자를 따로 만났다거나?”
“그런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꼭 저 여자가 아니더라도요. 다른 사람이 낳은 당신 자식을 데리고 저런 짓을 꾸미고 있는 걸 수도 있잖습니까.”
“다음 영상을 봐 주십시오, 요원님.”
그는 동영상 하나를 새로 틀었고.
민준은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맙소사.”
그것은 그로부터 다시 삼일 후에 배달된 영상이었다.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복장으로 여자가 카메라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다. 당일 아침 신문을 펼치는 것도 똑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등장인물이 한 명 더 늘었다.
“쌍둥이?”
여자는 비슷하게 생긴 두 명의 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다.
이어지는 장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기의 몸 곳곳에서 DNA 샘플을 채취한다.
“저것도 배달되었습니까?”
“네. 그리고 저 애도··· 제 아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는 핼쑥한 얼굴로 말했다.
“더 무서운 건 영상 말미에 저 여자가 하는 말입니다.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삼일 후에 또 아이를 하나 낳겠다고요.”
“?!”
저건 또 무슨 말인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낳겠다는 건, 들어주면 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더 터무니없는 건 3일이라는 시간이었다.
아니 무슨 아이 낳는 기계도 아니고···.
“처음부터 쌍둥이를 낳은 거겠지요.”
하프 엘프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맞다면 적어도 세 쌍둥이일 겁니다.”
“설마?”
영상은 또 하나 있었다.
“······.”
현재로서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화면 속 아이는 세 명으로 늘어났고, 이번에도 친자로 확인된 DNA 샘플이 배달되었다.
‘아니, 잠깐만.’
마지막 영상에서 민준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나머지 아기 두 명이 다른 영상 속 모습보다 좀 더 자랐잖아?’
겨우 며칠 만에 보일 수 있는 성장세가 아니었다.
그가 영상을 노려보는 사이 에드워드는 말했다.
“유전자 감식 결과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저 아이들이 호문쿨루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감식을 맡은 랩에서는 아니라고 합니다. 유전자를 단순복제해서 배양한 아이들이 아니에요. 두 사람의 유전자가 조합되어 만들어진, 정상적인 방법으로 태어난 생명체입니다. 심지어 아이들 간의 유전자도 완전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복제인간이 아니라는 거에요.”
“잠시만요, 그럼···.”
부계로부터 물려 받은 유전자는 에드워드의 것이 맞다고 했다.
그렇다면 모계는?
에드워드의 입에서 답이 흘러나왔다.
“모계 DNA는 지구에 알려진 적이 없는 종족이라고 합니다.”
그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저 여자는 순혈 엘프가 아니었어요. 불법으로 폴리모프를 하고 제 앞에 나타난 겁니다.”
민준은 기억을 더듬어 본다.
딱 한 번의 교접을 통해 확보한 남성의 정자를 여성이 몸 속에 오랫동안 보관하고 계속 그것을 ‘재활용’하며 아이를 생산하는 종족은 드물지만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다른 종족과 교접해서 3일만에 임신과 출산을 끝낼 수 있는 종족은?
슈탄 인의 과거 생태까지 떠올린 적 있는 그이지만 이 키워드에는 아무 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어서 찾아내야 합니다. 저 여자는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3일 후 또 한 명의 아이를 낳겠다고 협박하고 있어요. 네, 압니다. 물론 네 쌍둥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다음은요?”
“왜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한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저 여자는 최대한 많은 아이를 낳아서 친자소송을 진행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원하는 만큼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추측이 사실인 경우에 말입니다.”
민준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한국 민법에는 유류분 제도라는 것이 있다.
에드워드의 유산이 만약 2백만원이라고 하면, 그 중 최소한 백만원은 무조건 자식들 몫으로 배정된다. 유언장을 어떻게 썼든지 간에 말이다.
그리고 자녀가 다섯 명이라면? 백만원을 다섯으로 나눈 20만원이 한 명의 자식이 최소한 확보할 수 있는 유산이 된다.
그런데···. 만약 자녀가 백 명이라면?
에드워드가 원해서 낳은 자식은 단 한 명인데, 저 외계인이 낳은 자녀가 백 명이라면 그 배분은 어떻게 될 것인가?
“확실히 현재 법률로 따지면 모두 자식으로 인정이 되긴 하겠군요.”
모친 종족이 뭐든, 그녀가 불법체류자든 영주권자든 간에 상관없다. 아이가 강간을 통해 태어났든, 다른 의도를 위해 잉태되었든 법리해석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두 부모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면 친생자로 분류되며 상속권을 가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애들을 다 잡아 죽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더군다나 꼼수를 쓰면 상속을 피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언론이 꽤나 시끄러워지겠지만 말이다.
여기까지 고려한 민준은 에드워드를 쫓아낼 준비를 했다.
“전··· 저런 애들을 바란 적이 없습니다. 저런 기괴한 방식으로 태어난 애들은 제 아이가 아닙니다. 아무리 유전자가 일치한다고 하더라도요! 저런 애들을 낳는 외계인도, 저런 식으로 낳음 당하는 애들도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돼요!”
민준은 그 말을 흘려들었다.
축객령을 내리기 전 마지막으로 이것을 물어본 것은 그저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 여자 대체 뭘 요구하는 겁니까? 기대 상속분에 버금가는 막대한 돈이요?”
“네, 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제가 도저히 동원할 수 없는 돈입니다.”
“얼마나 많길래?”
이어진 말에 민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지구에서 구할 수 있는 돈도 아니고··· ‘달란트’인가 뭔가 하는 우주 화폐를 실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
민준은 일단 의뢰를 맡겠다는 확답은 하지 않은 채 에드워드를 돌려보냈다. 그는 매우 불안해하는 눈치였지만 비밀은 지키겠다고 재차 약속을 하며 일단 내보냈다.
그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기 전 정보가 더 필요했다.
‘대체 무슨 종족이지?’
의뢰 성격만 따지면 민준이 나설 급은 아니었다.
불법으로 폴리모프 한 것은 분명 범죄이고 에드워드를 협박한 것 역시 그렇다.
그리고 확인된 출산 방법이 진짜라면 지구에 등록된 외계인이 아니므로 불법체류자로 간주할 수 있다.
다만 인간이나 엘프와는 다른 방법으로 출산할 능력이 있고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죄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물론 협박 수단으로써 출산을 이용하는 걸 도의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이 정도면 그냥 나 말고 아무 요원이나 골라서 넘겨도 될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신경쓰고 있는 것은 외계인이 대가로 요구했다는 달란트 때문이었다.
‘설마, 뭔가를 알고 있나?’
하지만 현재로서는 단서가 너무 없었다.
그래서 민준은 일단 상대의 종족부터 특정하기로 했다. 이미 파악한 것 말고 또 어떤 능력이 있는지, 행동양식은 어떠한지 파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정보가 없는 종족. 이럴 때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가?
민준은 컴퓨터 전원을 켠다. 영계 통신망을 통해 오랜만에 전체 메일을 돌렸다. 수신자는 여러 차원에 배치되어 임무를 수행 중인 다른 수형자들.
에드워드로부터 들은 특성을 나열하고 이런 종족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 내용을 송신한 후.
겨우 몇 분이 흘렀을 찰나.
띵!
‘음, 벌써?’
빠르게도 누군가 회신을 보냈다.
– 발신인: 아시프-26,188,280
– 메시지: 뭐야, 발신인만 보고는 착각했잖아! 다른…(후략)
‘아직 쌩쌩한 그 녀석이군.’
수형자 생활을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직 의욕이 팔팔한 옛 동료였다. 민준은 메시지를 열어서 나머지 내용을 확인했다.
–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한테 메시지가 왔길래 내 소식을 듣고 연락한 줄 알았지. 그런데 전체 메일이었군. 아무튼 겸사겸사 알려주자면, 나 결국 지구로 발령이 났다!
임무 수행 중 사망한 브래들리의 후임으로 지구에 오는 모양이었다.
민준은 시큰둥하게 이어지는 내용을 휙휙 넘겼다.
– 그런데, 지구에는 어떤 종족들이 살지? 넌 지금 무슨 종족 몸을 받았어? 제발 저번처럼 인간만 아니면 좋을 텐데··· 인간종 육신은 너무 약해 빠져서 임무 뛸 맛을 못 느낀단 말이야. 기왕 줄 거면 드래곤 같이 튼튼하고 기능이 다양한 몸을 주면 좀 좋아? 그래서 말인데···(후략)
계속 메시지를 넘겨보지만 정작 민준이 문의한 내용의 답은 없었다. 영양가 없는 말만 이어지기에 민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차피 부임지도 미국이니 지구로 와도 나랑 엮일 일은 좀처럼 없겠지.’
그 상태로 메시지를 닫으려는데 한 줄이 눈에 다시 들어왔다.
– 기왕 줄 거면 드래곤 같은 튼튼하고 기능 좋은 몸을 주면 좀 좋아?
민준은 피식 웃었다.
‘수형자에게 드래곤의 육체라니.’
노동교화형 생활이 짧은 게 드러나는 문장이다. 민준이 알기로는 가짜 몸으로 용체(龍體)를 받은 수형자는 없다. 단 한 명도.
‘이 친구, 꿈이 너무 크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메시지를 닫는데.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왜 없지?’
수형자에게 강한 몸을 주면 임무 수행도 수월할 것이다.
꼭 고룡 급이 아니더라도 백 살을 갓 넘긴 어린 용의 육신만 줘도 그 자체로 인간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별의 별 종족 몸을 받은 동료들을 다 봤는데, 그 중에 드래곤 몸은 없었다.’
수형자의 전력이 지나치게 상승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인가?
그럴 리 없다.
노동교화형에 돌입한 몇 명이 설사 고룡의 육신을 가진다고 해도 위원회는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왜지? 왜 하필 용만 예외지?’
민준의 상념이 깊어졌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