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72
72. 용성애자, 용혐오자, 용도축자 (6) >
***
괴물은 사회에 풀려난 뒤에도 오랫동안 진짜 거미와는 달리 새끼를 낳지 않았다. 수컷이든 암컷이든 간에.
오베르 거미는 원하면 자가생식으로 암컷을 낳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거미는 자신의 몸을 혐오했다.
=이런 흉측한 돌연변이를 또 낳고 싶지 않았어요··· 나도 이런 몸으로 태어나길 바란 게 아니니까.=
수컷을 낳지 않은 이유 역시 분명했다.
자연 상태에서 오베르 거미가 낳은 병정들은 먹이를 잡아오고 둥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21세기에 그런 병정들은 불필요했다. CCTV와 마법수사가 일반화된 현대 도시에서 들키지 않고 사냥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병정 거미를 동원하는 대신 여왕이 직접 나서서 유혹하는 것이었다. 둥지를 지키는 역할은 관리사무소와 사설경비업체가 맡았다.
그렇기에 힘만 소모할 뿐인 출산을 오랫동안 미뤄오던 괴물의 생각이 어느날 바뀌었다. 도난당한 달란트의 존재를 뉴스에서 봤기 때문이다. 문명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 택한 ‘비출산’의 다짐이 무너진 것이다.
=바깥으로 나오기 전에 그 사람들이 대화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자세한 내용까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실험에 달란트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기억했다.
당시에는 그게 화폐인지도 몰랐지만 달란트가 있으면 영혼을 추출하여 다른 몸으로 옮길 수 있다는 내용은 또렷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 기억을 되살린 괴물은 환희와 기대에 젖었다.
어쩌면, 이 저주받은 몸을 버리고 정상적인 몸으로 옮겨 갈 수 있는 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성체의 고기를 산 채로 뜯어먹지 않아도 지속 가능한 삶.
마력이 소모되는 폴리모프를 동원하지 않고도, 고문당한 고기조각 같은 몸 대신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환호할 몸으로 살 수 있는 삶.
‘도난을 당했으니 한국의 암시장 같은 곳에서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머릿속이 꽃밭이군.’
달란트가 통제하기 얼마나 힘든 물건인지 배경지식도 없고, 그걸 사실은 영혼에 결합된 상태로 민준이 쥐고 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없었던 괴물은 무작정 서울에 왔다.
그리고 나름 머리를 짜내어 적절한 목표를 찾았다. 경찰 못 찾는 도난품을 확보 가능할 정도의 돈과 권력을 지닌 상대.
에드워드 미첨.
그를 협박하기 위해 움직였다. 유혹해서 씨를 확보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은 일년이 지나면 죽어 없어지지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모를 것이라고 판단했다. 어떻게든 1년 안에 달란트만 받아 내면 목적은 달성하는 거니까.
‘허황된 계획이었군.’
달란트를 확보한 다음 단계도 구상하지 않은 허술한 계획이지만, 결정적으로 민준이라는 변수가 개입한 것이 패착이었다.
젠킨슨과 민준은 그 외에도 괴물이 기억하는 것을 모조리 털어놓게 한 뒤 취조실을 나왔다.
레드 드래곤은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일도 고대 종족이 개입한 것이 틀림없어.”
멸종된 외계 생물과 용의 유전자를 결합할 역량을 지닌 자들을 달리 떠올릴 수 없었다.
“돌아오는 용족회의에 이 안건도 올려야겠네.”
베르미 공주를 사주한 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심상치 않은 일이 연달아 지구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민준 역시 최근에 자신이 품었던 의문을 공유하며 젠킨슨의 말에 동의했다.
괴물이 진술했던, 처음으로 ‘바깥’에 나왔던 장소의 조사 역시 레드 드래곤이 맡기로 한 뒤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런데 민준이 레어를 떠난 뒤에도 젠킨슨은 쉴 수 없었다.
– 띠링!
전화를 받는다. 상대는 블레어였다.
– 회장님, 지목하신 전원이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알겠네. 금방 가지.”
젠킨슨은 어지간하면 부하 직원들을 레어로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지금부터 그는 젠킨슨 컴퍼니의 회장이 아니라 한국을 영지로 삼은 레드 드래곤으로서 행동할 생각이기에.
그의 눈빛이 사나워진다.
하은성의 안전가옥에 대한 정보를 흘려서 그를 골탕먹인 스파이에게 처벌을 내릴 시간이었다.
***
“뭐? 반려되었다고?”
위원회 본부에서 자료를 검토하던 카바이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본부의 중간 간부 역할을 맡은 이 외계인의 이름은 게드윅이다.
게드윅은 얼마 전 직속 부하인 도테스에게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노동교화 명목으로 극오지 4급 차원인 지구에 파견된 수형자 ‘아시프-666’의 동향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라는 것.
그리고 최근 보고서에는 믿기 힘든 내용이 적혀 있었다.
– 해당 차원에 영주권을 획득한 뇌룡속(屬) 드래곤(추정 연령: 5,300세)의 죽음에 아시프-666이 깊이 관여한 정황이 있음.
그 사건은 해당 지역을 영지로 삼은 화룡속 고룡이 직접 펼친 단죄의 결과로 알려졌다고 한다.
그런데 도테스의 보고서에는 시신의 두부(頭部)가 너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으며 용끼리 싸울 때 생기는 상처로 볼 수 없는 부분도 지나치게 많았다는··· 지구의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은 중요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그럴 리가.’
신상명세 자료에 따르면 아시프-666에게 배정된 육신은 분명 인간의 것이었다.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든 고룡 간의 싸움에 끼어들 뿐만 아니라 의미가 있는 기여까지 했다?
‘이건 좀 위험한데.’
게드윅은 이것이 봉인된 기억의 회복 징조가 아닌가 의심했다.
최근 세무조사를 빙자하여 그 차원으로 사람을 보내 확인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는 눈치채지 못한 조짐이 지금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고 해도 억지는 아닐 것이다.
게드윅의 생각에, 대위원들은 아시프-666를 변방 차원에 뺑뺑이 돌리며 알아서 죽어 없어지길 기다리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방식을 더 이상 이어 나가는 것은 곤란했다.
변방 차원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파견을 자청하는 고대 종족이 없어서 수형자를 보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한계로 실시간 감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각종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중심부로 불러들여 24시간 감시하는 것보다 나은 대안은 없었다.
‘애초에 보석금이 5백만 달란트나 걸린 흉악범을 왜 극오지까지 보낸 거지?’
가끔 대위원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다.
게드윅은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건의했다.
아시프-666의 극오지 파견을 중단하고 본부로 불러들여야 한다고.
그래서 더욱 철저한 정밀검사를 진행하고 혹시 문제가 발견되지 않더라도 한동안은 본부 인근 차원에서 임무를 수행하도록 재배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반려되었다.
게드윅은 반려 통지서를 빠른 속도로 읽어 나간다. 그에 따르면 대위원 중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한 자는···.
‘엔델리온의 대위원이군.’
게드윅의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 차오른다. 대위원들은 대체 무슨 속셈을 품고 있는가? 굳이 반대할 이유를 게드윅은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그는 아시프-666에 대한 자료를 다시 띄운다. 대부분 항목이 뿌연 빛으로 가려져 있거나 해당 권한을 얻은 뒤 열람하라는 메시지로 대체되어 있었다.
혹시라도 어떤 단서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는데 집무실 문 밖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 식사를 준비해 왔습니다.
“들어오도록.”
문이 열렸다. 인간의 몸을 지닌 여인이 트레이를 들고 걸어온다. 게드윅은 잠시 시선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
수형자 및 그들을 관리하는 위원회 소속 인원만 볼 수 있는 문자가 인간의 머리 위에 반짝였다.
– 베즈니-945,770,133
인식번호가 ‘아시프’로 시작하는 수형자는 어비스에 던져 넣기에는 아까운 능력 때문에 굴리는 쪽이 경제적이라고 판단되는 이들이다. 게드윅이 골머리를 썩히는 원인을 제공한 수형자처럼.
반면 지금 들어온 형노(刑奴)처럼 ‘베즈니’로 시작하는 경우는 경제성이 없어서 어비스로 추방했어야 하나 그걸 유예할 정당한 사유가 존재하여 노동교화형으로 대체한 케이스.
그렇게 공급되는 형노는 주로 고대 종족의 시중을 들며 자질구레한 일을 맡는다. 골렘이나 안드로이드로 대체할 수 있는 그런 업무에 수형자를 동원하는 것은 사실 노동교화형에 드는 달란트를 생각하면 낭비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형노는 사치품이다.
인공지능에게는 불가능한, 실제로 영혼이 깃든 생물에게만 가능한 반응을 선호하는 고대 종족이 이런 형노를 부린다.
가짜와 진짜의 리액션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조리 도구에 이식된 인공지능은 요리 이야기를 할 때면 청산유수로 말을 쏟아내겠지만 그 외 주제에 대해서는 대화를 이어 나가기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런 단점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진짜 지성체 밖에 없었다.
“음? 이게 무슨 냄새야?”
게드윅이 못마땅한 눈초리로 노예를 쏘아보았다.
“뭐야, 왜 너한테서 용냄새가 나지?”
그러자 여인은 얼어붙었다.
“죄, 죄송합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이 움츠린다.
“오전에 일손이 모자라다고 해서 조식 만찬 서빙 지원을 갔었는데··· 거기에 참석하신 사절단 종족 중에 드래곤이 있었···.”
게드윅은 벌컥 화를 냈다.
“뭐라고?!”
그는 온 몸의 털을 떨면서 짜증을 냈다.
“아무리 경력이 짧은 수형자라고 해도 위원회 본부에서 일하면 필수적인 상식은 챙겨야 할 거 아니야! 우리가 용이라면 질색을 하는 거 모르나?!”
카바이트는 고대 종족 중에서도 대표적인 드라코포비아(Dracophobia)다. 그리고 그들의 반향은 정서와 신체 양쪽으로 모두 나타나곤 했다.
게드윅은 몸을 꿈틀거리며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용이 있는 자리에서 서빙을 했으면 몸과 의복 전체를 깨끗하게 소독한 다음에 왔어야 할 거 아니야! 내가 알러지 반응 보이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지?”
노예는 고개를 숙이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게드윅은 영 못마땅했다.
‘내가 알기로는 카바이트 향우회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노예인데··· 그런 년이 내 앞에 용 냄새를 풍기면서 와? 젠장, 대가리가 비어도 저렇게 텅텅 빌 수가.’
그는 냉랭하게 말했다.
“이거 다 가져가서 새로 해 오도록. 아니, 올 때는 다른 형노를 보내.”
“네, 알겠습니다!”
노예는 울상이 되어서 내려 놓았던 트레이를 다시 회수해가려고 했다.
그 순간 그녀는 지금까지 눈길을 주지 못했던 부분을 보았다. 허공에 뜬 한 수형자의 사진과 길게 나열된 문자. 그녀는 그곳에 적힌 글을 읽지 못했지만 사진은 볼 수 있었다.
“······어?”
카바이트는 날카롭게 외친다.
“뭐 하나? 안 가져 가고!”
“네, 네!”
카바이트는 형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곧 알아차렸다.
‘왜 저래?’
아시프-666과는 달리 저 노예의 신상정보 중 본래 종족은 무엇인지 공개되어 있었다. 그녀가 처음 이 구역에 배치되었을 때 서류를 살펴보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서 기억났다.
당시에 그가 의문을 품을 이유가 있었다. 슈탄의 영혼을 굳이 인간의 몸에 옮겨 담을 사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신체조건을 고려하면 슈탄이 훨씬 우수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의체와의 싱크로율도 높을 테니까.
다만 그녀가 그전까지 뭘 하면서 먹고 살던 슈탄 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해당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건 대상이 아시프-666급의 위험 인물이거나, 검거 과정에서 다소 불법적인 방법이 동원된··· 일종의 ‘노예사냥’의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분명 후자에 속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드윅은 퉁명스럽게 말을 뱉는다.
“왜, 설마 잃어버린 기억이라도 떠올렸나? 위원회에 붙잡히기 전 저 남자와 인연이 닿았나 보지?”
그럴 확률이 전혀 없음을 알기에 하는 소리였다.
“아, 아닙니다!”
‘베즈니-945,770,133’는 황급하게 트레이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수형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그녀는 아직도 이렇게 실수가 잦았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온 노예는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방금 잘못을 저지르고 질책을 당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화면 속에 구현되어 있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처음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러면 안 돼. 빨리 움직여야지.’
대응이 늦다고 추가로 질책이 들어오지 않게, 그래서 오늘 일당으로 책정된 0.000000025달란트에 징벌적 공제가 가해지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면서도 머릿속에서 도무지 얼굴을 지워낼 수가 없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가슴 속에서 밀려 올라온다.
그녀는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존재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