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22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2)
사타구니가 뭉개진 남자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레이크필드가 들었다면 ‘오크를 산 채로 불태우는 소리’라고 표현할 만한 절규였다.
그렇게 둘을 물리치고 정팔은 달렸다. 아랍인들에게서 최대한 멀어진다. 그러자 검은 차량에 탄 남자들의 사격은 더 거세졌다. 지금까지는 혹시 자신이 맞을까봐 자제한 것이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טיל זועם”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푸른 광선이 밤공기를 찢으며 트럭에 적중했다.
콰-앙!
컨테이너와 연결된 트럭 운전석이 폭발과 함께 화염에 휩싸인다.
“끄으···. 끄으으···!”
“오 알라··· 알라여···!”
정팔이 뒤틀거리며 일어났을 때, 그를 납치하려고 했던 아랍인들은 전부 죽었거나, 의식을 잃었거나,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아랍인들을 무력화시킨 그들 중 한 명이 정팔에게 다가오더니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는 다소 억양이 딱딱하지만 정중한 영어로 말했다.
“Are you okay, sir? We work for the Israel government. Let us escort you to the airport.”
***
“작전 성공입니다.”
“적 세력 무력화 완료. [Ason(אסון)]의 조력자 역시 무사히 구출했습니다.”
야킴은 탄성을 내질렀다.
“좋았어!”
그가 있는 곳은 숙소의 방 하나를 통째로 개조한 임시 상황실이었다. 야킴을 포함한 모사드 요원들은 이곳에서 작전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특수기동대의 헬멧에 장착된 카메라는 공항 근처 도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선명하게 중개해 주었다.
작전 책임자인 야킴은 통신기기를 통해 기동대장에게 직접 지시했다.
“공항 내에서도 만전을 기하도록.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마. 일단 그가 무사히 우리 권역을 떠나야 임무가 끝나는 거다.”
그렇게 당부한 뒤에야 헤드셋을 벗으며 한숨을 돌린다.
‘이걸로 그에게 빚을 하나 달아 두었군.’
아랍인들이 예민준의 조력자를 노린다는 첩보를 모사드가 입수한 것은, 그 요원이 오크를 만난 뒤 쿨라파로 돌아간 거의 직후였다.
중요 자산인 마법사들이 노출되는 것을 꺼린 무슬림들은 이능이 없는 인원들을 위주로 작전을 세웠다. 오크 하나를 납치하는 데에는 그 정도로도 충분하리라 여겼으리라.
덕분에 모사드 입장에서는 정보를 입수하기가 더 쉬웠다.
‘예민준을 꾀어낼 미끼로 삼으려 했다고?’
그 아랍인들의 우둔함 때문에 야킴은 실소가 나오려고 했다.
뒤늦게 그 오크의 존재를 알아차린 무슬림들과는 달리, 모사드는 정팔이 입국할 때부터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입국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정팔이 민준에게 연락을 하고, 민준이 다시 이스라엘 정부에 협조를 요청한 그 순간부터였다.
‘그의 조력자가 이 땅에서 죽거나 납치당했다간, 자칫 우리한테까지 불똥이 튀었을 거다.’
모사드 입장에서 이제 남은 것은, 이번 일의 여파로 쿨라파 자치구에 불어 닥칠 태풍을 여유롭게 기다리는 일이었다.
방금 전의 사건은 곧 예민준의 귀에도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야킴은 앞으로의 일을 예측한다. 인질을 잡는 작전에 실패한 무슬림들은, 민준을 두려워하여 더 필사적으로 숨을 것인가? 지하로 들어가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릴까?
‘아니, 그러지 않을 거다. 오히려 더 혈안이 되어 그를 잡으려고 하겠지.’
무슬림들은 아직도 민준의 진짜 정체를 모른다. 그저 광동 연방을 탈출한 흑마법사로만 알고 있다.
정보 교란은 모사드의 주특기 중 하나였다. 적에게 역정보를 흘리는 것 정도는 너무도 쉬운 일이다.
야킴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이 멍청한 이교도들. 너희는 스스로 너희 땅에 재앙을 불러들인 거다.’
***
외계인, 하비브의 취조가 마무리된 뒤.
민준은 그 내용을 사하르를 비롯한 마녀들에게도 알려주었다.
그녀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사하르는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채 입으로 손을 틀어막았다.
“맙소사. 그럼 기숙사의 그 소녀들을 구한 건···.”
“마리얌의 능력도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지만, 사실상 이 외계인이 그녀들을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현장에서 마리얌은 이능력자로 의심받을 일도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경찰에 잡혀간 이유는 마녀들도 알고 있었다.
야라가 나디아에게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기숙사의 소녀들 전부 마리얌이 마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양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마리얌이 마녀가 되는 길도 생각하고 있었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억지로라도 데려오는 건데.”
사하르는 비틀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 아이가··· 나를 믿어 주었다면.”
마리얌은 자신에게 신성력이 있다는 사실도 사하르에게 말하지 않았다. 바로 마녀가 되겠다고 따라 나서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사하르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마리얌과 이야기 할 때 본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 패밀리어를 통해 소통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따라 나설 정도로 경계심이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비극인지···.”
마리얌은 친구들을 너무도 사랑해서 기숙사에 1년 더 남으려고 했다.
하지만 정황을 볼 때, 그 친구들이 마리얌을 밀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중 누가 종교 경찰에게 진술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상 누구라도 밀고자가 될 수 있었다.
이 끔찍한 아이러니에 마녀들이 충격과 실의에 빠진 그때.
“음?”
민준에게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잠시만요. 이건 받아야 하는 전화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오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 형님.
“어, 정팔아. 공항에는 잘 도착했냐?”
마녀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기에, 그녀들은 다음에 이어진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으득!
“······?!”
방 안의 공기가 급변한다. 그림자 채찍에 묶여 있던 고양이는 위기감에 털을 부풀렸다. 마녀들은 보이지 않는 칼날이 자신의 목 아래를 겨냥하고 있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무시무시한 살기가 공기를 짓누른다. 마녀들 중 가장 능력이 뛰어난 사하르마저 순간 그것에 압도되어 호흡을 멈췄을 정도였다.
“요··· 요원님?”
갑작스럽고도 경이로운 기운의 소용돌이. 그 예리한 살기의 중심에는 민준이 있었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흡사 귀신과 같은 얼굴로 변한 민준을 보며 마녀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래, 그랬구나. 고생 많았군. 내가 미안하게 됐다.”
그 후로 몇 마디 사과의 말을 한 뒤, 민준은 그때부터는 영어로 이야기했다. 정팔이 곁에 있던 기동대원에게 전화기를 바꿔줬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더 자세히 파악한 뒤, 민준은 전화를 끊었다.
“······.”
그 후 지하실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민준에게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침묵을 간신히 깬 것은 사하르였다.
“······무슨 일이신가요?”
민준은 질문을 질문으로 답했다.
“이맘 다르하비와 이맘 아티크. 이 둘의 소재를 알고 있습니까?”
“네?”
갑작스럽게 거론되었지만, 마녀들에게는 절대 낯설지 않은 남자들의 이름이었다.
“왜 그들을 찾으시죠?”
“아, 별 거 아닙니다. 여기 의뢰도 이 정도면 마무리 된 것도 같으니··· 떠나기 전에 개인적인 용건 하나를 처리하려고 말입니다.”
“그렇군요. 안타깝지만 그 이맘 둘은 안전을 이유로 계속 은신처를 바꿔요. 알아내는 게 쉽지 않아요.”
실제로 모사드조차 테러리스트들의 수장인 그들을 추적하여 암살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들은 휘하에 많은 마법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근접 호위는 로테이션으로 인원을 계속 바꿔요. 호위를 맡지 않은 인원은 이맘의 위치를 알 수 없죠. 이맘에게 연락은 할 수 있지만,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함부로 찾아갈 수도 없어요.”
“고정으로 곁에 두는 인원이 정말 한 명도 없습니까?”
사하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아! 이맘 아티크의 경우는···.”
그녀의 말을 들은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찾아내야 할지 알겠군요.”
빠른 속도로 머릿속에서 작전 하나를 구상한다.
그러더니 외계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애초에 의뢰 내용은 저 외계인을 사살하거나 생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얌으로 변신한 상태로 불을 내고 다녀서 마녀들의 활동을 더 어렵게 만들었으니까요. 또한 당신들이 알고 싶어했던 정보는 모두 알아낸 것 같은데, 처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약 조건 상 죽이든 살리든 마녀 조합의 권리입니다.”
사하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민준은 차갑게 내려앉은 눈동자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혹시 당장 처분할 것이 아니라면, 제가 잠시 이 외계인을 빌려도 되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이번에도 이유를 먼저 여쭤봐도 될까요?”
“방금 말한 개인적인 용무에 이 녀석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용무라뇨?”
“이맘 다르하비와 이맘 아티크가 제 사람을 노렸습니다.”
사하르는 아직 모른다. ‘자기 것’과 ‘자기 영역’에 대한 민준의 집착이 얼마나 깊고도 지독한지.
“한 번 노렸다면, 그 뒤로 몇 번이고 더 노릴 수도 있죠. 다시는 그럴 시도를 할 수 없게 만들어 줄 생각입니다.”
그러자 사하르가 말했다.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뭐죠?”
“저희도 당신을 돕게 해주세요.”
“?”
민준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굳이 위험을 무릅쓰려고 합니까?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그 두 이맘은 저희 마녀들에게도 철천지 원수나 마찬가지에요. 마리얌을 죽인 원흉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이곳에서 활동하던 마녀 여럿이 그와 그의 수하들에게 붙잡혀서 사형당했죠. 마녀의 길을 걷지 않고 단순히 이능력을 개화시켰다가 들킨 여자들 역시 그들 때문에 희생당했고요.”
사하르는 단언한다. 그 두 이맘에게 쌓은 원한은, 자신들이 더 깊었으면 깊지 덜하지는 않을 거라고.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상관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저 외계인을 제어할 방법이 필요했다.
민준은 손에 작은 상처를 만들더니 주문을 외운다. 그의 손가락에 작은 물집 하나가 부풀어 오르더니 터졌다. 수포가 터진 자리에 동그랗게 드러난 연분홍 진피. 그 위에 조그만 벌레가 꿈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본 고양이가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그래. 해피 버그다. 너도 알고 있나보군.”
민준은 고양이가 반항할 사이도 없이 그것을 고양이의 콧구멍 가까이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벌레는 놀랍도록 빠르게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대로 놔두면 벌레는 고양이의 뇌를 완전히 제압하여, 마약 물질을 분비할 터였다. 하지만 민준은 그것이 뇌에 접근하기 직전에 주문을 외웠다.
“=······왜 멈춘 거지?=”
“해피 버그를 쓰면 널 내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능력이 없는 꼭두각시가 되겠지. 이 벌레는 사람을 완전히 망가뜨려버리거든. 지금은 그 움직임을 임시로 봉인해 두었다. 하지만 네가 반항하는 순간, 즉시 벌레를 다시 움직일 거다.”
하비브는 민준이 원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좋다. 협조하겠다.=”
민준은 이 고양이를 어떻게 데리고 가야할지를 고민했다.
지금 단계에서는 아직 그림자 채찍을 풀어줄 수는 없다. 그리고 의사소통을 하려면 후라이팬과 민준, 고양이가 동시에 접촉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내 두 손이 자유로우려면··· 그래, 이 수밖에 없겠군.’
민준은 그림자로 만든 밧줄의 형태를 바꾼다. 그것은 뱀처럼 탄력있게 움직이더니, 민준의 가슴을 얽어 매는 동시에, 요원의 등 뒤에 후라이팬과 고양이를 바짝 붙이듯 묶었다.
“······.”
그렇게 해서 완성된 모습을 본 마녀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기묘하게도, 그것은 얼핏 보자기로 갓난아이를 등 뒤로 업은 것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후라이팬과 고양이를 업고 다니는 청년이라니. 길을 걷다 마주치면 미쳐도 그냥 미친 게 아니라고 몸서리를 치며, 수근거리는 것을 넘어 뒷걸음질을 치기 충분한 모습이었다.
말하는 고양이와 말하는 후라이팬을 아기처럼 등에 업은 채, 민준은 차갑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했다.
비장한 목소리.
“그럼, 출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