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23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3)
그는 마녀들과 함께 쉘터 밖으로 나왔다.
외부 경비를 서느라 안의 상황을 몰랐던 몇몇 마녀는 민준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쉘터 안에 있던 마녀들이 그러했듯, 그녀들 역시 서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후라이팬과 외계인은 왜 같이 묶어 놨지?’ ‘설마 저 고양이를 튀겨 먹기라도 할 셈인가?’ ‘사람을 태워 죽였으니 그 벌을 받으라는 뜻? 아무리 나쁜 놈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잔인하구나.’ ‘저 요원 역시 우리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이었어. 절대 적으로 만들면 안될 것 같아.’
사하르가 그녀들에게 계획을 설명했고, 더이상 쉘터에 호위가 필요 없으므로 전원이 함께 움직였다.
***
해가 뜨기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은 시각.
민준은 쿨라파의 한 예배당 앞에 와 있었다.
‘여기가 이맘 아티크의 구역이란 말이지.’
길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좋아, 딱 적당하군.’
예배당 안에 사람이 아무 것도 없는 것까지 확인한다.
여기까지 오는 사이 민준은 하비브와 계속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의 변신 능력의 범위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을 한 뒤였다.
‘인간처럼 눈에 익은 종족은, 한 번 본 것만으로도 그대로 흉내낼 수 있다고 했지.’
등에 짊어진 고양이에게 지시한다.
“풀어줄 테니 저 건물에 불을 내라. 최대한 천천히 태워. 놈들이 알아차리고 여기까지 모여들 시간을 줄 수 있도록.”
민준은 고양이와 후라이팬을 함께 묶은 그림자를 거두어들였다.
탓!
가벼운 몸짓으로 바닥에 내려선 고양이는 인간 남자로 변신했다. 고양이의 형태로는 발화 능력을 쓰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비브는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작은 불씨가 만들어지더니 예배당 첨탑까지 하늘거리며 날아갔다.
그 불씨가 첨탑에 닿은 순간.
화르르륵!
불길이 거세게 치솟았다. 순식간에 주변이 환해졌다.
탑은 쿨라파 자치구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봉화대처럼 선명한 빛을 내며 어둠을 밝혔다.
‘저 정도면 멀리서도 쉽게 발견하겠지.’
하비브는 민준이 지시한 대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불길을 천천히 넓혀 나갔다.
불을 내는 것 정도는 민준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민준이 피를 태워서 만드는 불꽃은 백린탄과 비슷해서 물 속에서 타오를 정도라 쉽게 끄기 힘들다. 또한 저런 건물쯤은 몇 분 안에 다 태워버리는 게 문제였다.
그에 비해 하비브는 불꽃을 말 그대로 수족처럼 다룰 수 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야금야금 화재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거리 한 가운데 우뚝 선 첨탑은 등대처럼 보였다. 저 등대는 날벌레를 유혹하는 불빛처럼 민준의 표적들을 꾀어낼 것이다.
“꺄아악!”
“불이야! 불!”
인근 민가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이 곧 화재를 알아차리고 비명을 질렀다. 짐도 챙기지 못하고 급히 뛰쳐나오더니 예배당으로부터 멀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 어서 도망들 가시라고. 괜히 엮이지 말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주변에 민간인은 없는 편이 좋았다. 불의 속도를 조절한 것은 그들이 대피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도망친 것을 확인 한 뒤, 민준은 한 손에 흑요석 단검을 쥐었다.
그리고는 단호하게 손목 위로 내려 긋는다.
쉬익!
검이 스친 상처에서 피가 흘러 나오더니 곧 안개 형태로 증발되었다. 그것은 붉은 운무처럼 사방에 퍼지다가, 민준이 주문을 몇 마디 중얼거리자 투명하게 바뀌었다.
민준은 자신의 혈액으로 만들어낸 그 안개의 농도를 조종하며 주변 공간을 채웠다.
그런 다음 주변에 잠복한 마녀들과 전언 마법을 주고 받는다. 모두 제 위치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 정도면 준비는 끝났고.’
급하게 달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들린 것은 그 무렵이었다.
‘딱 좋은 타이밍이군.’
부릉-!
끼이이익!
급하게 정차하는 차량들.
덜컥! 문이 열리더니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 나온다.
‘어이쿠, 저게 다 몇 명이야?’
얼핏 세어봐도 4~50명은 되어 보인다. 저번에 민준이 상대했던 마법사들 중 아직 전투에 복귀할 수 없는 이들이 많을 텐데도.
저 정도면 자치구의 마법사들을 다 끌어 모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흩어져! 어서 마녀를 찾아라!”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아랍어로 외치자 이능력자들은 산개하여 추적을 시작했다. 그 중 몇몇 마법사들은 서로 거리를 두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팟!
파팟-! 팟!
스펠이 완성될 때마다 마법사들 주변으로 반투명한 빛의 돔(dome)이 퍼져나간다.
‘마력 탐지.’
주변에 그들 말고 다른 이능력자가 숨어 있는지 체크하려는 것이다. 불을 지른 마녀든 아직도 잡지 못한 이교도 마법사든 이 방법으로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며.
하지만 곧 마법사들의 얼굴은 당황으로 일그러진다.
“왜 그래?”
리더가 묻는다. 마법사들은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마, 마력이··· 탐지가 안 됩니다. 아니, 반대로 너무 잘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헛소리 하지 말라는 듯 리더가 추궁한다.
그러자 방금 마법사들이 애써 항변하며 방금 벌어진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주변 공간에 마력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밀도가 너무 높아서 구분이 안 됩니다!”
“이 주문은 마력이 비정상적으로 고여 있는··· 그러니까 물로 비유하면 물웅덩이를 찾아내는 원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통째로 바닷속에 잠긴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밀도가 얼마나 높냐면··· 지금 아군들의 마력도 서로 구분이 안 될 정도입니다. 전부 그냥 하나로 연결된 것 같습니다!”
리더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괴한 소리에 얼굴을 찡그렸다.
멀리서 그 대화를 듣던 민준은 생각했다.
‘마법사를 견제하는 아주 기본적인 교란술이지.’
마력을 담은 매개를 사방에 잔뜩 뿌려서 상대의 탐지 능력에 장애를 일으키는 술수.
지금 그 매개가 된 것은 민준이 안개 형태로 옅게 뿌린 혈액이었다.
저들 중 수형자가 섞여 있었다면 바로 상황을 알아차리고 대비책을 펼쳤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 대부분은 지구 밖을 나가 본 적 없는 순혈 지구인들이었다.
“젠장, 그럼 발로 뛰어서 찾아!”
그들은 결국 마력 탐지로 상대를 추적하는 걸 포기했다. 이맘의 수하들은 불타오르는 예배당 주변으로 흩어져 이 사태의 원흉을 찾기 시작했다.
모습을 숨긴 채 민준은 그들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이능력자들이 충분히 깊숙히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
마녀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거의 동시에, 마법사 몇 명이 골목 안쪽으로 꺾으며 들어섰다. 민준은 그들이 어떤 지점을 지나치려는 모습을 보았다.
한 명이 그곳에 발을 딛은 순간.
민준이 작게 중얼거린다.
“빵.”
폭발과 함께 굉음이 울려퍼졌다.
콰-쾅!
지축이 흔들릴 듯한 충격파. 그들이 서 있던 반경 2미터의 바닥이 그대로 내려 앉는다. 뿌연 먼지 아래, 몸 일부가 산산조각이 난 남자들이 보였다.
“으아아악!”
“내··· 내 발··· 내 발···!”
“살려줘! 살려줘어어어!”
처참한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무슨 일이야?!”
폭발음이 들려온 곳으로 달려간 마법사들은 경악했다
폭탄이라도 터진 듯 땅이 패여 있고, 하체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동료들이 곳곳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본래 그들의 하반신을 구성했을 뼈와 살점은 곤죽이 되어 바닥과 벽 등에 철퍽 붙어 있었다.
그것을 본 아랍인들은 이를 악물었다.
“젠장! 함정이 깔려 있다! 전부 조심해!”
남자들이 방금 들어선 골목 바닥에는 마녀들이 사전에 설치한 마법진이 은밀하게 새겨져 있었다.
밟으면 폭발하는 일종의 마법 지뢰.
하비브가 예배당에 불을 내기 전부터 이 주변에 잔뜩 설치해 놓은 것.
‘아주 간단한 부비 트랩이지.’
마력 탐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저 함정을 찾아내긴 힘들다.
마법사들은 우왕자왕하며 움직였다. 그들 중, 또 몇 명이 마법진이 숨겨진 곳을 지나쳤다.
민준이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빵.”
콰쾅!
“으악!”
“커어어억!”
사방에 돌 파편이 튀고 남자들이 바람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튕겨져 나간다. 방금 전 당했던 것처럼 그들의 하체도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였다.
“젠장···!”
리더를 맡은 아랍인은 이를 악 물었다.
지금까지의 화재 현장과는 전혀 다르다.
노골적인 함정.
쾅!
콰쾅-!
그 사이에도 사방에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밟고 지나온 자리인데, 지금은 발을 딛으면 폭발했다. 그들이 충분히 산개한 뒤에야 진을 활성화했기 때문이다.
‘당했다!’
아군만 계속 다치고 죽어나갈 뿐 이교도 마법사도 마녀도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 이상 이곳에 남아봤자 소중한 자원인 이능력자만 더 잃을 것이 뻔했다.
리더는 외쳤다.
“후퇴! 후퇴한다!”
그의 외침을 들은 마법사들이 다시 차량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에도 폭발은 이어진다.
그 모습을 보며 민준은 한 명을 골라냈다.
‘저 녀석이 적당하겠군.’
다른 동료들과 멀리 떨어져서 달리는 아랍인. 사방에 연기가 피어 올라 시야를 가리고 있다.
숨어 있던 사하르가 이맘 아티크의 직속 부하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민준은 하비브에게 지시했다.
“따라와.”
탓!
민준은 땅을 차며 몸을 날린다. 목표로 삼은 이능력자 쪽으로 접근하더니, 벼락처럼 뒷목을 후려쳤다.
퍽!
“커억!”
이능력자는 그대로 기절했다. 민준은 그의 옷깃을 움켜 잡고는 골목 더 깊숙한 곳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하비브를 보며 말한다.
“이 녀석으로.”
사전에 작전을 설명했기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울렁!
하비브는 변신을 시작했다. 몇 초만에 그는 기절한 아랍인의 외모를 그대로 흉내냈다.
민준은 이능력자의 옷을 벗겨 하비브에게 입혔다. 완벽하게 위장까지 끝낸 그를 보며 민준은 말했다.
“이 정도면 못 알아보겠군.”
하지만 마지막 절차가 남아있다.
그는 사하르가 이맘 아티크에 대해 했던 말을 떠올렸다.
– 아티크는 자신의 안전에 병적으로 집착해요. 그래서 신성력 능력자를 항상 곁에 두고 다니죠. 다른 호위 인원은 계속 로테이션이 되어도, 알샤마리라는 이름의 노인만큼은 무조건 그와 같은 장소에 있을 거에요.
이능력자들은 매우 중요한 전투 요원이다.
죽지 않을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면 무조건 치료를 하려고 할 터.
그 부상은 당장 죽거나 불구가 될 정도로 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지도 않아야 한다.
지뢰를 밟은 다른 마법사들은 대부분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게 다치거나 이미 죽었다. 적의 세력을 줄여 놓기 위해 일부러 그리 만든 것이다. 그들은 여러 이맘들의 수족으로서 이 구역의 숨은 종교 경찰 노릇도 했다. 희생자들의 원한을 깊이 새긴 마녀들은 마법을 펼칠 때 인정을 두지 않았다.
그런 무자비한 마법 지뢰와 달리 민준은 부상의 크기를 조절할 생각이었다.
하비브가 약간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내 발목을 날려 먹을 차례인가?”=
“그래.”
하비브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심호흡을 하는 그를 보며 민준이 말했다.
“셋을 세고 날리겠다. 하나···.”
펑-!
“캬아아아악!”
한쪽 발목이 날아간 하비브는 눈을 뒤집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짓이겨진 단면에서 피가 철철 쏟아진다.
그가 고래고래 내지르는 외계어를 후라이팬이 통역했다.
=셋까지 센다며! 이, 개새끼! 라는 뎁쇼?=
“그딴 말은 해석 안 해줘도 돼.”
민준은 데굴데굴 구르는 하비브를 붙잡은 뒤, 건물 옥상 사이를 점프하며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그리고 시체가 나뒹구는 폭발 현장에 하비브를 던져 놓았다.
“크아아아아아악!”
사실 민준이 하비브에게 부상을 입힌 데에는, 해피 버그를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있어도 도주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하비브는 격통 속에 발버둥을 친다. 따로 연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만큼 아팠기 때문이다.
아랍어로 ‘살려달라,’ ‘도와달라’ 등의 말도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비브의 처참한 비명은 후퇴 중인 마법사들 누구나 들을 수 있었다.
“아니?! 라시드다. 아직 살아 있어!”
하비브가 모습을 본딴 아랍인의 이름이 라시드인 듯 싶었다.
주변에 널린 시체들 사이에서 발버둥치는 그를 보고 리더가 말했다.
“이 정도면 치료할 수 있겠다. 라시드는 챙겨라!”
리더는 부상자를 자신이 타고 온 차에 태웠다.
하비브는 아랍인들에게 둘러 싸였지만, 발목이 날아간 사람에게 유창하고도 정확한 발음의 대화를 요구할 동료는 없었다. 리더는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하더니 운전석의 부하에게 주소를 일러줬다. 차량은 살아남은 다른 마법사들이 탄 차들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준과 마녀들은 그 뒤를 조용히 추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