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24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4)
“알샤마리! 어디 계십니까?!”
아티크의 부하는 은신처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뒤 발목이 날아간 동료를 부축한다.
미리 연락을 받은 회복 마법사가 나왔다. 알샤마리는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이었다.
“이런! 라시드 형제가 당했군.”
“네, 치료를 부탁 드립니다.”
부상자를 침대에 눕힌다. 노인이 환부를 확인하더니 안타깝다는 듯 신음을 흘렸다. 발목 아래가 온데간데없고 절단면은 타고 찢겨서 엉망진창이었다.
“잘려나간 발목은?”
“못 찾았습니다. 아마 걸레가 됐을 겁니다. 땅이 폭발했으니까요.”
“봉합은 불가능하다는 뜻이군.”
알샤마리는 본인이 다치기라도 한 듯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내 능력으로 잘린 발이 다시 자라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상처의 회복과 사지의 재생은 완전히 다른 영역일세. 출혈을 멈추고 고통을 없애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영구적인 장애가 남을 거야.”
“상관 없습니다. 의족을 껴서라도 움직일 수만 있으면 됩니다.”
라시드는 염동력 능력자였다. 굳이 격하게 몸을 움직이며 싸울 필요가 없는 재능이다.
또한 그는 아티크가 지휘하는 이능력자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우수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데려와서 급히 치료할 필요가 있었다. 민준과 사하르가 대상을 잘 고른 것이다.
“그럼······.”
노인은 기도를 시작했다. 알라의 자비를 청하며 정신을 집중한다.
알샤마리가 이상을 느낀 것은 그의 손에서 황금색 빛이 영롱하게 맺힌 직후였다.
‘아니! 이건?’
노인은 당황한다.
그가 뿜어낸 빛은 환부를 감싸고 있었다. 알샤마리가 의도한 바는 이대로 절단면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나중에 그 위를 피부가 자연스럽게 감쌀 수 있게 조치를 해 두는 것까지였다.
그런데 지금 이 발목에서는 그의 뜻과는 다른··· 아니, 그의 목표를 넘어서는 기적이 보였다.
‘발이 다시 자라난다?!’
자신의 능력 밖 일이다.
금색 섬광이 발의 형태로 영글며 절단면을 따라 부풀었다. 빛이 스친 자리에는 뼈와 신경이 자라나고 근육이 돋더니 아기처럼 뽀얀 피부가 그 위를 덮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신의 회복 능력이 갑자기 몇 단계나 성장한 것인가? 그도 아니면 라시드 형제가 알라의 특별한 가호를 받은 것일까?
알샤마리는 기도문을 외우면서도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진실은 후자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형제의 몸 속에는··· 이미 누군가 베푼 세례가 가득 차 있었어!’
알샤마리도 치료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환자의 몸 속에는 영광스러운 힘의 덩어리가 씨앗처럼 심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동면을 하듯 숨죽이고 있다가 알샤마리의 기도와 공명하며 녹아 내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발휘된 힘은 노인을 훨씬 능가하여 원래 불가능했을 발의 재생까지 성공시킨 것이다.
‘대체 누구일까?’
빛이 완전히 사라진 뒤 알샤마리는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뒤에 서 있던 조직원이 환자의 발목을 보더니 경탄했다.
“아니, 알샤마리! 방금 전에는 재생이 힘들다고 했잖습니까? 이렇게 완벽하게 해 낼 수 있으면서 엄살을 떠신 겁니까?”
찢어진 바지 단 아래, 라시드의 발목은 다치기 전과 거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 사실에 처음에는 기뻐하던 조직원은 곧 의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 이런 게 가능했다면 예전에 다른 조직원들이 비슷하게 다쳤을 때는 왜 못 고친 거지요?”
“진작부터 가능했던 게 아닐세. 라시드 형제의 몸 속에 특별한 무언가 숨어 있었어.”
“라시드에게 재생 능력이 있다는 겁니까?”
“그건 아닐세. 내가 느끼기에는··· 나와 같은 믿음을 공유하는 누군가 이 친구에게 매우 강력한 ‘신성력’의 축복을 내린 걸로 보이네. 발목을 재생시킨 건 내 힘이 아니라 그 이름 모를 신자의 힘이야.”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알샤마리는 회복 마법을 신성력이라고 잘못 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맘이 들었다면 불호령을 내릴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말하는 알샤마리도 듣는 조직원도 그걸 따질 정신이 없었다.
“알샤마리, 당신보다 강한 능력자라뇨. 대체 누가?”
“당사자에게 물어 보게나. 라시드 형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고통이 사라졌는지 표정이 안정된 라시드는 눈만 꿈벅거리며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사실은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
라시드로 변신한 그는 지금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응이 없자 조직원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이 녀석도 놀라서 아직 멍 때리는 모양인데요? 어쨌거나 잘 됐습니다. 이 소식을 이맘께 보고해야···.”
콰콰-쾅!
아랍인의 말을 끊어 놓은 것은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충격과 굉음이었다.
“뭐, 뭐야?!”
그 순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라시드의 두 눈에 강렬한 빛이 번뜩였다. 그는 예고 없이 몸을 움직였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던 조직원은 등 뒤에서 공기가 거칠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아랍인이 고개를 돌리기 전, 라시드의 두 손에는 이미 사람 머리통 만한 불꽃이 맺혀 있었다. 남자가 경악하며 입을 벌렸다. 그가 무언가를 외치려던 순간.
펑-!
어찌 된 일인지 분간할 틈도 없이 불꽃이 폭발했다.
충격에 몸이 밀려 나간 그는 벽에 몸을 들이박았다.
“이 미친 놈이! 지금 대체 뭘···!”
그의 눈앞에 섬광이 번뜩이더니 얼굴을 익혀 버릴 것 같은 열기가 피어 올랐다.
아랍인의 온 몸이 불꽃에 휘감긴 것이다.
“크아아아악!”
섬뜩한 비명이 울려 퍼진다. 라시드로 변신한 하비브가 그를 멀리 튕겨 낸 것은 이어질 지금의 공격을 위한 준비였다.
화르르륵!
무시무시한 열기를 응축한 불꽃이 아랍인을 짓누른다.
뛰쳐 나가거나 반격을 할 여력도 없이, 고통 속에서 남자는 바닥을 뒹굴었다.
치이이이익!
거세게 타오르던 불은 놀랄 만큼 빨리 꺼졌다. 방 안은 인체를 태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지독한 악취와 연기가 가득했다. 방금 전까지 한 사람이 발버둥치던 자리에는 살과 뼈가 검게 변해 엉겨 붙은 소사체가 남았다.
“······.”
큰 충격을 받은 듯 알샤마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은, 라시드 형제가 아니군.”
“······.”
“그 축복은 누구에게 받았소?”
“······.”
“날 죽일 거요?”
하비브가 그 아랍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살려 달라는 말 보다도 축복을 내린 당사자의 정체를 먼저 질문한 사실에 묘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외계인이 노인을 본다. 방금 전 사람 한 명을 잔혹하게 태워 죽였으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차가운 눈빛.
알샤마리는 상대의 정체는 몰랐지만 자신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아수라장을 겪어 온 존재라는 걸 직감했다.
“나는 벌을 받는 것이로군.”
알샤마리는 체념한다.
이맘 아티크와 수하들의 악행에 대해서는 노인도 알고 있었다.
이맘들은 쿠란과 하디스의 모든 문장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형태로 해석하여 주민들에게 강요했다. 종교의 이름을 빌린 폭력과 억압의 정치였다. 바깥 세상에서는 하찮게 취급되는 죄도 이곳에서는 사형의 빌미가 될 수 있었다.
공포 정치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맘들에게는 이 나라를 지배할 정통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우디 왕조가 멸망한 뒤 유대인들의 식민지가 된 쿨라파에서는 제대로 된 정치 세력이 자라나지 못했다. 그 틈을 타 이맘들은 신정일치 체제를 구축하여 종교 지도자인 동시에 권력자로 자리매김을 했다.
그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알샤마리는 저항하지 못했다. 마법사가 이맘에게 불응한다는 이유로 즉각 처형 당할 것임을 알았기에. 신이 허락치 않은 사술에 손댄 자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맘에게 생사여탈권을 맡겨야 한다.
알샤마리는 죽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힘이 이 공동체에서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지 노인은 잘 안다. 그렇기에 자진하여 아티크의 부하가 되었다. 과거에는 자신을 셰이크라고 부르며 존중했던 자에게.
아티크가 부여한 최우선적인 임무는 이맘 및 수하들을 치료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일은 자주 발생하지 않았다. 알샤마리의 힘은 평범한 이들을 위해 더 많이 사용되었다. 주민들의 신망을 욕심낸 아티크도 그의 자선 행위를 막지 않았다. 사람들을 치료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아티크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걸 노인은 알았다.
그가 알라의 말씀을 제멋대로 취사선택하는 왜곡된 신앙인임을 알면서도.
“······.”
알샤마리와 하비브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노인은 자문했다.
‘나는 죽어서 어디로 갈 것인가?’
알라께서는 천국의 문을 허락해 줄 것인가?
자신할 수 없었다. 그 분께서 보시기에 덕이 모자라면 지옥에 갈 터이다. 혹시라도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면 죽어서도 그 분 가까이 머무는 복을 얻을 터.
노인은 되뇐다. 모든 것은 신이 결정하실 뿐.
오직, 신의 의지에 따라.
“알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인 샤 알라, ان شاء الل)”
알샤마리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두 눈을 감았다.
하비브는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 마법사 역시 이맘의 수하다.
다르하비든 아티크든, 하비브의 머릿속에서 전부 똑같은 존재들이었다. 마리얌이 죽어야 했던 부조리하고도 폭력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강요한 남자들.
그리고 이 노인은 시스템의 유지에 일조했다.
태울 것인가? 그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지금 당장 의지를 발하면 저 노인은 지옥불에 휩싸여 고통 속에 죽어 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비브는 선뜻 힘을 펼치지 못했다.
– 난 이 힘을 가장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쓸 거야.
마리얌이 했던 말이 귓가를 스친다.
– 알라께서 이 능력을 주신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어. 난 이곳, 쿨라파 사람들을 위해 신성력을 써야 해.
이 노인은 신성력 능력자다. 아마도 마리얌과 같은 믿음을 공유할 터다.
이 사람을 죽이면 몇 안 되는 이 땅의 능력자 중 한 명이 사라지게 된다.
그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을 이들은 누구일까? 이맘일까? 아니면···.
“······.”
과연 마리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라면 어떻게 했을까?
소녀가 죽은 뒤 복수에 미쳐 방화와 살인만 되풀이해 온 외계인은 차분히 생각할 기회를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런 하비브가 지금, 처음으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눈감은 노인의 귀에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하비브의 인기척이 멀어졌다. 문이 열리고 다시 닫히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알샤마리는 눈을 떴다.
방에는 노인 혼자 남겨져 있었다.
***
하비브는 폭음이 울린 쪽으로 향했다. 그것은 일종의 신호였다. 민준과 마녀들이 이곳까지 성공적으로 추적해 와서 내부를 휩쓸기 시작했다는 뜻.
그는 완벽하게 재생된 발목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도망칠까?
“······.”
이곳까지 오면서 민준의 등에 묶인 채 나눈 대화 내용을 떠올린다.
상대는 마리얌의 죽음에 얽힌 관련자들에 대해서, 언어가 능숙하지 않은 하비브 보다도 많은 내용을 알고 있었다.
하비브는 함께 기숙사를 썼던 소녀들을 냄새로 추적할 수 있었다. 그녀를 끌고 간 종교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형을 판결한 의사결정자인 이맘의 냄새까지는 몰랐다. 다르하비라는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민준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자에게 복수하기 전에는 도망갈 수 없다.’
그리 결심하며 하비브는 도주를 포기한다.
그가 가는 길 곳곳에 다치거나 죽은 이능력자들이 쓰러져 있었다. 이맘의 호위들이었다.
잠시 후.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벙커에서 하비브는 그들을 발견했다.
“왔나?”
민준이 흘깃 보며 말한다. 주변에는 막 싸움을 마친 마녀들이 있었다.
바닥에는 목이 뜯겨 나간 시신 하나와, 피부가 검게 변한 채 부풀어 오른 시신 하나. 그 둘은 마지막까지 이맘의 곁을 지키던 자들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의자에는 알샤마리 보다 어려 보이는 중년의 남자 한 명이 묶여 있었다.
“이 더러운 카피르(كافر ,불신자) 새끼들··· 알라의 분노가 두렵지 않느냐?!”
핏발이 선 눈으로, 아티크는 이곳에 모인 이들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라시드! 네가 나를 배신했나?!”
라시드로 변신한 하비브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오는 장면을 보고 오해한 것이다.
그의 광포한 시선은 마녀들 쪽으로 넘어갔다.
“감히 사술에 손을 댄 더러운 년들이 여기 다 모였구나! 지옥불에 태워 죽일 배교자들! 너희들의 영혼은 죽어서도 안식을 찾지 못할 것이다. 내 수하들이 가족과 친지까지 모두 찾아 무딘 칼로 조각낸 다음 짐승 밥으로 던져줄 것이야!”
살면서 처음 들어본 소리도 아닌지, 대부분의 마녀들은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도발에 동요하는 기색도 없다.
꽁꽁 묶인 아티크에게 사하르가 다가가서 물었다.
“다르하비는 어디에 있지?”
“음란한 계집이 주제도 모르고 남자 앞에서 혀를 놀리는구나!”
이맘의 눈은 가리지 않고 드러낸 사하르의 머리와 얼굴에 꽂혀 있었다.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지금 상황 안 보여? 아티크, 당신은 끝났어.”
“퉷!”
아티크가 뱉은 침이 마녀의 얼굴에 닿기 직전, 그녀가 손을 펴서 막아냈다.
사하르는 손바닥을 잠시 보더니, 어깨를 들어 올린 다음 힘차게 이맘의 뺨을 후려 갈겼다.
철썩!
힘이 어찌나 셌는지 이맘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빨갛게 부어 오른 뺨에 자신이 뱉었던 침을 묻힌 채, 아티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사하르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발작하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는 시간낭비입니다. 벌레를 쓰죠.”
민준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