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217
217
# PMC Ⅱ
대통령의 아침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느렸다.
느지막이 일어나 가볍게 산책 겸 키우는 애완견과 함께 대통령 궁의 정원을 한 바퀴 걸은 후, 그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전용 식당에서 정찬을 즐기는 것이 코로마 대통령이 일과를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선호하는 굽기 정도는 미디엄 웰던.
양과 소는 괜찮아도 닭고기는 씹는 맛이 부족하다며 절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요리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성스러운 양고기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잘게 썰어 먹으며 코로나 대통령이 레드 와인을 한 잔 기울였을 때, 두테 장관이 식당 문을 열고 등장했다.
“식사 중이셨군요.”
마치 자기네 집 안방을 들락거리듯 아주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주변을 지키는 경호원과 수행원 들, 그리고 하다못해 옆에 대기하고 있는 집사마저도 이런 그의 행동이 무척이나 익숙한 듯 놀라지도 않는 표정이었다.
“자넨? 안 먹었으면 함께 들지.”
코로마 대통령은 냅킨으로 입 주변을 닦고선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모처럼 부지런을 떨었더니 배가 출출하던 참이거든요.”
“흐음. 요즘 자네가 바삐 다닐 일이 있는가?”
마치 대통령 궁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은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심드렁한 말투였다.
“각하께 긴히 보고드릴 일이 있어서 이리 일찍 찾아뵈었지요.”
“말해 보게.”
빈 스테이크 접시가 치워지고, 그의 앞에 레몬과 라임 즙을 곁들인 차가운 셔벗이 놓였다.
그리고 두테 장관에게도 양의 다리 살을 발라 와인에 졸인 요리, 그리고 대통령 궁에 올 때면 그가 항상 즐겨 먹는 캐비어가 함께 내어졌다.
두테 장관이 얼마나 대통령 궁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는지 요리사마저도 그의 취향을 꿰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라 할 수 있는 셈이었다.
“어제 솔 루시두스라는 회사 대표와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아주 흥미로운 제안을 하나 받았습니다.”
“뭔데 그래?”
“그들이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을 가지고 있는 시두에 용병 부대를 투입해서 반군들을 몰아내겠다는 겁니다.”
“뭐라고!”
막 셔벗을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집어넣던 코로마 대통령은 눈썹을 찡그렸다.
그걸 본 두테 장관이 얼른 말을 덧붙였다.
“지금 상황에서 어쩌면 저희한테 엄청난 득이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어째서 그렇지?”
아예 먹을 생각이 사라진 듯 숟가락을 옆에 내려놓은 코로마 대통령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물었다.
“어렵게 반군을 격퇴시키기는 했지만 여전히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시아카에 머물면서 호시탐탐 프리타운을 노리고 있지 않습니까.”
반군을 밀어낸 건 2군단을 지휘하는 움부야 소장이었지만 뻔뻔하게도 두테 장관은 마치 자신의 공인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사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내고 있었지만 코로마 대통령도 턱밑에 웅크리고 있는 반군의 존재가 항상 신경에 거슬렸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 왜 반군 놈들을 그냥 놔두고 있는 거야!”
코로마 대통령이 손바닥으로 식탁을 내려치면서 화를 내자 두테 장관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움부야 소장한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몇 번이나 공격을 지시를 내렸습니다만 움부야 소장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야!”
“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코로마 대통령이 언성을 높였다.
“감히 명령을 어기다니, 대체 무슨 꿍꿍이야!”
코로마 대통령 스스로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무력으로 정권을 잡았기에 움부야 소장의 행동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
“당장 움부야 소장을 불러들여. 아니, 그럴 것 없이 2군단장직에서 해임시켜 버려!”
“각하, 고정하십시오.”
“지금 내가 그러게 됐어!”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인 채 코로마 대통령이 씩씩거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자, 두테 장관은 내심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프리타운에 병력이 충분하지 않고 움부야 소장이 2군단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강수를 뒀다가 자칫 큰 반발을 사기라도 한다면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으음.”
불미스러운 일이 무엇인지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코로마 대통령은 얼굴을 구긴 채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움부야 소장을 건드려 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하지만 울분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기에 코로마 대통령이 입술을 질겅이며 기분 나쁜 티를 내자 두테 장관이 그제야 슬쩍 본론을 꺼냈다.
“움부야 소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솔 루시두스사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거하고 이게 뭔 상관이야?”
심기가 불편해진 코로마 대통령이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지만 두테 장관은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이었다.
“솔 루시두스사가 용병을 투입하겠다는 지역이 바로 코노 주입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 매장량이 풍부해서 반군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여기를 공격받아 뒤가 불안해진다면 마시아카에 있는 반군들이 퇴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면 자연히 움부야 소장이 지휘하는 2군단도 함께 움직이게 되지 않겠습니까.”
처음에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던 코로마 대통령은 두테 장관의 설명이 끝나자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그것 참 절묘한 방법이군!”
“EO 때와 달리 용병 부대를 투입하는 비용을 모두 솔 루시두스에서 부담하고 다이아몬드 광산을 개발하게 되면 일정액의 수익까지 거둘 수 있으니, 저희로서는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는 거래입니다.”
“듣고 보니 그렇구먼.”
머리를 끄덕이는 코로마 대통령을 보며 두테 장관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면서 잠시 고심을 한 코로마 대통령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
“회사 이름이 뭐라고 했지?”
“솔 루시두스입니다.”
“처음 듣는 걸 보면 그리 큰 곳은 아닌 모양이군.”
“그래도 자신들이 먼저 용병들을 동원해 광산을 개발하겠다고 나서는 걸 보면 어느 정도 규모는 되지 않겠습니까. 또 메이저급 다국적 광업 회사보다는 아무래도 상대하기도 편하고 말입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 좋아.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해 보라고 해.”
“잘 생각하셨습니다.”
코로마 대통령의 입에서 원하던 말이 나오자 두테 장관은 얼굴 가득 탐욕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날 오후 혁권은 대통령 궁 근처에 위치한 국방부 건물 앞에 멈춰선 SUV에서 일행과 함께 내렸다.
호텔에 머물고 있다가 두테 장관의 연락을 받고 바로 달려온 거였다.
미리 지시를 내려 뒀는지 신분 확인만 간단하게 거친 뒤 혁권은 김덕현 전무와 하킴만 대동하고 국방부 장관실로 곧장 안내됐다.
장관실은 방 주인의 위세를 보여 주듯 혼자 쓰기에는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넓었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응접세트가 놓여 있고, 한쪽 벽에는 사냥을 한 걸로 보이는 기다란 코끼리 상아가 전리품처럼 걸려 있었다.
커다란 집무실 책상 뒤로는 시에라리온 국가와 함께 코로마 대통령의 사진이 액자로 만들어져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사다 대령과 같이 소파에 앉아 있는 두테 장관을 본 그는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를 했다.
“좋은 소식이 있다는 말씀에 바로 달려왔습니다.”
악수를 나누며 혁권이 하는 말에 두테 장관은 턱을 약간 치켜들며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후후후. 내가 잘될 거라고 하지 않았소.”
“그럼 승인이 난 겁니까?”
혁권의 물음에 두테 장관이 소파에 앉은 채 한쪽 다리를 반대편 무릎에 올리면서 말했다.
“그 전에 한 가지 요구 조건이 있소.”
“말씀해 보시죠.”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몰랐기에 그는 내심 살짝 긴장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오. 알아보니까 광산을 개발한 이후 수익 분배 비율이 7 : 3으로 되어 있던데, 맞소?”
“그렇습니다.”
순이익을 기준으로 시에라리온 정부가 30%를 가져가기로 계약이 맺어져 있었다.
전적으로 혁권이 자금을 투자해서 광산을 개발하는 걸 고려한다면 국제적 기준에서도 공평한 수익 분배 비율이었다.
혹시라도 비율을 조정하자고 요구할까 봐 그는 미리 못을 박았다.
“이번에 용병들을 투입하는 걸 포함해서 막대한 투자금과 위험부담을 생각한다면 70%도 결코 많은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소.”
의외로 순순히 수긍을 한 두테 장관은 살짝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이야기를 했다.
“원하는 건 수익 분배 비율 조정이 아니라 우리 몫 가운데 절반을 따로 빼서 국고가 아니라 스위스 은행 계좌로 입금시켜 달라는 것이오. 물론 회계장부에 기록을 남기지 말고 비밀로 말이외다.”
“……!”
눈치가 빠른 혁권은 코로마 대통령이 비자금을 조성하려고 한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만 그렇게 하려면 회계상 문제도 있고 일이 꽤 까다로워집니다.”
“그렇게 해 준다면 인근에 위치한 보크사이트Bauxite 광산 채굴권을 동일한 조건으로 솔 루시두스 사에 넘겨주겠소.”
바로 제안을 받아들이면 너무 쉽게 보일까 봐 슬쩍 한번 튕겼던 혁권은 뜻밖의 이야기에 눈을 치켜떴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물론이오. 하지만 그곳 역시 반군 점령지라서 용병들을 투입해 주변을 정리해야 될 거요.”
코노 지역 전체가 반군 손안에 들어가 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보크사이트는 철반석이라고도 불리는 수산화알루미늄 광물의 집합체로 알루미늄의 가장 중요한 원료였다.
그리고 LED 칩의 주원료인 희귀 금속 갈륨도 함유하고 있어 상품성이 높은 광물이었다.
물론 다이아몬드와 달리 제련을 해서 운반하는 데 약간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 부분을 해결한다면 상당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슬쩍 옆을 돌아보자 김덕현 전무가 재빨리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도록 하지요.”
“그쪽도 손해는 아닐 거요.”
“따로 계약서를 써 드릴까요?”
“됐소. 그런 종이 쪼가리보다는 서로 간의 믿음이 더 중요하지 않겠소. 대신 보크사이트 광산에 관한 건 내가 말해 놓을 테니 담당자를 만나 계약서를 새로 작성해야 될 거요.”
“알겠습니다.”
신용보다는 마땅히 국고로 들어가야 될 돈을 따로 빼돌려서 코로마 대통령이 뒷돈을 챙기는 것을 감추기 위한 거였다.
다 알았지만 혁권은 모르는 척했다.
비리에 동조하는 거였지만 그런 걸 하나하나 신경 쓴다면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할 수 없었다.
혁권이 눈짓을 하자 옆에 있던 김덕현 전무가 발밑에 놔둔 가방을 조심스럽게 탁자에 올려놨다.
“약속한 사례금 가운데 절반입니다. 나머지는 용병들을 투입할 때 드리겠습니다.”
얼른 가방을 앞으로 당긴 두테 장관은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러자 100달러짜리 지폐 뭉치가 안에 가득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탐욕이 가득 찬 얼굴로 지폐 뭉치들을 손바닥으로 쓸어 본 두테 장관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가방을 닫았다.
“앞으로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날 찾아오시오.”
“그러겠습니다.”
서로 원하는 걸 얻었기에 두 사람 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거래를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