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372
372
미국 랭글리 CIA 본부 위성 중앙 통제실.
전면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서는 혁권이 탄 수송기가 MK-48 폭탄을 수십 발 투하해서 정부군 진지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이 첩보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었다.
뒷짐을 진 채 상황을 지켜보던 러셀 CIA 국장은 시리아 정부군 1개 대대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걸 보곤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폭탄을 넘겨주면서도 그렇게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이거 효과가 생각 이상인 것 같군.”
그러자 옆에 있던 샌더슨이 재빨리 말을 받았다.
“이대로 간다면 JAF(정복군)이 이들리브를 무사히 탈출해서 전력을 보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국내 정치 문제로 시리아 내전에 개입을 소극적으로 제한하고 있었지만, 원래 JAF는 러시아와 손을 잡은 아사드 정권에 대항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지원해 주던 반군 단체였다.
영구 군사기지를 설치하며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급격하게 확대시켜 나가는 걸 우려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있던 CIA는, 친서방 계열 반군 단체들의 세가 크게 쪼그라드는 것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찰나에 샌더슨을 통해서 들어온 혁권의 제안은 솔깃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래식 항공 폭탄 몇 발을 넘겨주는 걸로 전멸 위기에 놓인 JAF를 구출할 수만 있다면 아주 싸게 먹히는 장사였다.
더군다나 이쪽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더욱 구미를 당기게 만들었다.
어차피 실패하더라도 손해가 크지는 않았기에 반쯤은 포기하는 마음으로 실행한 작전이었는데, 의외로 성공을 거두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포위망을 완전히 뚫고 탈출한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상황을 두고 봐야죠.”
모두가 들떠 있는 분위기 속에 라이언 팀장만이 여전히 냉정했다.
옳은 말이긴 하지만 꼭 이런 타이밍에 저런 대사를 내뱉어야만 직성이 풀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샌더슨이 눈을 흘겼다.
“크흠.”
그는 헛기침을 터트리고 입을 열었다.
“포위망을 일부 무너뜨린 것만으로도 절반 이상은 작전이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설사 JAF 반군이 모두 다 빠져나오지는 못하더라도 지휘부와 최소한의 전력은 보존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러셀 국장이 작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샌더슨의 편을 들어 줬다.
“샌더슨 말이 맞아. 그것보다 앞으로가 문제인데…….”
말끝을 흐린 러셀 국장은 위성 화면 한쪽에 떠 있는 시리아 전체 지도를 힐끔 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지금처럼 정부군의 공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북부 국경 지역에 있는 친서방 계열 반군 점령지가 급격히 줄어들지 않겠어?”
라이언 팀장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이대로 간다면 친서방 계열 반군이 씨가 마를지도 모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터키와 쿠르드 계열 반군들이 IS와 전투를 벌이느라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군의 집중 공격이 이어진다면 JAF를 비롯한 친서방 계열 반군들이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겁니다.”
“흐음.”
러셀 국장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백악관에서는 여전히 시리아 내전에 적극 개입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인 겁니까?”
조심스럽게 샌더슨이 묻자 러셀 국장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시리아가 제2의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이 되는 걸 원치 않는다는군.”
9.11 사태를 일으킨 알카에다와 이슬람 극진주의 테러 단체들을 뿌리 뽑기 위해 두 곳을 침공했지만, 그 후 오랫동안 끔찍한 모래지옥이 되어 천문학적인 예산과 인명 피해를 강요하면서 미국인들에게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이 됐다.
그랬기에 또다시 중동 지역에서 새로운 수렁에 빠져드는 걸 극도로 경계했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단순히 시리아만 잃는 것이 아니라 중동의 세력 추가 크게 요동칠 겁니다.”
“나도 알고 있어. 그렇지만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들으려고 하질 않는데 난들 어쩌겠어.”
러셀 국장 역시 최근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거의 모든 테러의 근원지나 마찬가지인 시리아 내전과 발 빠르게 영향력을 넓혀 가는 러시아의 행보가 보통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백악관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상 CIA 단독으로 시리아 내전에 끼어들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일단 시리아 상황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관찰을 하도록 하고, 이번에도 일을 벌인 것이 블랙래빗이었지?”
“그렇습니다.”
“그자는 여기저기 안 끼어드는 곳이 없군.”
굵직한 일들마다 이름을 올리는 것이 러셀 국장의 흥미를 끌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샌더슨 자네하고 끈이 연결되어 있다고 그랬지?”
“예.”
“나중에 시리아 쪽 일과 연결돼서 쓸모가 있을 것 같으니까 관계를 잘 유지해 놓도록 해.”
“알겠습니다.”
샌더슨의 대답을 들으면서 러셀 국장은 이제 막 반군이 움직이기 시작한 위성 영상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혁권 일행이 탄 수송기가 아테네 국제공항에 도착한 때는 막 석양이 느릿하게 지는 늦은 오후였다.
“수고했어.”
혁권이 조종석에 앉아있는 이반의 어깨를 두드렸다.
“힘든 일도 많았는데 잘 해내 줬어.”
“아닙니다. 짜릿한 스릴이 느껴지는 게 오랜만에 살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성격답게 약간 거들먹거리는 말투였으나, 실제로 그가 해낸 일이 쉽지 않음은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당분간은 일이 없으니까 푹 쉬도록 해.”
이미 보너스도 두둑하게 주기로 약속한 바 있으니 이반의 얼굴이 밝아졌다.
“내리면 제일 먼저 뭘 할 거지?”
“글쎄요. 술이나 진탕 먹고 호텔방에 널브러져서 잠이나 잘까 싶습니다만…….”
“의외로군. 자네라면 제일 먼저 미녀들이 있는 바를 찾을 것 같았는데.”
“하하, 물론 그건 둘째 날 일정으로 착실히 적어 뒀지요.”
이반이 히죽 웃으며 답했다.
잡담을 나누는 사이 활주로를 천천히 굴러가던 수송기의 날렵한 동체가 완전히 멈췄다.
아래로 내려진 후방 램프를 통해 밖으로 나오자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꾸벅 머리를 숙였다.
모두 짙은 색 양복 차림에 아테네로 이주해 온 이후로 훈련을 꾸준히 받아 건장한 체격이었다.
선글라스를 낀 채 둘러보자 앞에 서 있던 부하가 한 걸음 다가오면서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보스.”
“함단이 안 보이는군.”
“이스켄데룬에 쌓아 둔 화물을 관리해야 돼서 계속 현지에 남아 있는 중입니다.”
“그렇군.”
차후에 JAF 반군한테 넘겨줄 물자들로 외부에 노출돼서 좋을 것이 없었기에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못하고 함단이 직접 챙기고 있었다.
“차량을 대기시켜 놨습니다.”
“짐부터 싣도록 해.”
“예.”
수송기로 가져온 유물 상자를 트럭에 다 옮겨 싣는 걸 확인한 혁권은 일행과 함께 SUV 차량을 타고 공항을 떠났다.
원칙대로라면 밖으로 나가기 전에 세관 검사를 받아야 했지만, 미리 뇌물을 찔러 주고 손을 써 놓은 덕분에 곧장 공항 구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출퇴근 시간이라 조금 막히기는 했지만 시가지를 빠져나온 차량 행렬은 오래지 않아 본거지로 사용하고 있는 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 콘도를 매입했을 때만 해도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만들어진 콘도를 중심으로 주위에 이주해 온 부하들의 가족을 위한 주택이 마치 성벽처럼 둘러싼 채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차량 행렬이 진입하자 콘도 입구를 지키고 있던 인원이 이쪽을 확인하곤 철제 대문을 열어 줬다.
입구를 통과한 차량 행렬은 넓은 공터를 지나 본관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많이 피곤했는지 혁권이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자 조수석에 있던 자말이 몸을 뒤로 돌리고는 조심스럽게 그를 깨웠다.
“보스, 다 왔습니다.”
“으음. 깜빡 졸았군.”
한쪽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눈을 뜬 혁권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차문을 열고 내렸다.
날이 어두워져서 그런지 쌀쌀한 날씨에 바람이 제법 매섭게 불었다.
“화물은 어떻게 할까요?”
유물 상자가 실린 트럭을 힐끔 쳐다보며 혁권이 대답했다.
“일단 지하 창고에 넣어 놔.”
“알겠습니다.”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주머니에서 위성전화기 벨이 울렸다.
그 자리에 멈춰선 혁권은 위성전화기를 꺼내 발신 번호를 확인했다.
별다른 번호 없이 0만 여러 개 찍혀 있었다.
“여보세요.”
-날세.
위성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압둘라흐만의 목소리에 그는 다시 발걸음을 떼면서 입을 열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사지死地에서 빠져나온 걸 환영해 주려고 전화를 걸었네.
“고맙습니다.”
-이들리브 소식은 들었나?
“방금 도착을 해서 아직 확인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카바트 사령관을 비롯해서 JAF 반군 대부분이 포위망을 뚫고 도시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네.
“그렇군요.”
할 일을 다 하고 나왔기 때문인지 혁권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혼자 탈출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그 상황에서 한 건 제대로 하고 나오다니, 역시 대단해.
“부하들이 잘 움직여 준 덕분입니다.”
-다음번에는 또 무슨 일로 날 놀라게 할지 정말 기대가 되네.
그러자 혁권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는 좀 쉬운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 괜히 내가 고생을 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소득을 올릴 수 있었지 않습니까.”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지난번에 넘겨준 물건들이 전부 다 처분됐네.
압둘라흐만의 말에 그는 눈에서 이채를 띠었다.
“시간이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거래가 이루어졌군요.”
-이런 물건을 찾는 수요는 항상 많다고 하지 않았나. 돈은 지난번 그 계좌로 넣어 놨으니 나중에 확인해 보게.
“그러지요.”
짧게 대답한 혁권은 방 앞에서 수고했다는 듯이 자말한테 손을 까딱이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들리브에서 나올 때 더 챙겨 온 물건이 있는데 그것도 처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해 줘야지. 물건이 많나?
창문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활짝 열면서 혁권이 말했다.
“수량은 많지 않지만 전부 다 국보급들입니다.”
-호오. 그래. 이거, 자넨 그 상황에서도 빈손으로 그냥 나오지 않는구먼.
“저보다는 본거지를 잃은 카바트 사령관이 다급해진 거지요.”
-하긴 다시 조직을 재건하려면 군자금이 필요할 테니 이것저것 가릴 형편이 아니겠지.
“맞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지원이 끊긴 데다 정부군에 밀린 카바트 사령관은 수송기 화물칸에 여유만 있었다면 이들리브 국립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유물을 몽땅 다 꺼내서 넘겨줬을 거였다.
-지난번처럼 스위스로 가져오게. 그러면 내가 알아서 처리를 해 주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당분간은 아테네에 있을 건가?
“조금 쉴 생각입니다.”
-그것도 좋지. 나중에 화물을 보내면 다시 연락해 주게.
“그러지요.”
혁권은 통화를 끝낸 위성전화기를 탁자에 올려 두곤 피곤한 듯 고개를 뒤로 젖혔다.
후, 짧게 한숨을 쉬면서 눈을 감으니 캄캄한 어둠이 몰려왔다.
제대로 자려면 일어나서 침대로 가는 편이 낫겠지만, 귀찮음이 가득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