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534
534
상대편의 시야를 가리기 위해서 일부러 조명을 꺼 어두컴컴한 1층에는 함단과 부하들이 건물 안에 있던 집기들을 끌어와 엄폐물을 만든 채 힘겹게 적을 막아 내고 있었다.
어둠을 가르면서 섬뜩한 예광탄 줄기가 허공에서 서로 교차했고 투박한 소음을 울리며 벽돌을 쌓아서 만든 벽에 적이 쏜 총탄이 날아와 박혔다.
진열장으로 창문 일부를 가린 채 권총을 쏘고 있는 함단에게 다가간 혁권이 한 손으로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함단, 여길 빠져나간다. 준비해!”
“뒤쪽도 놈들이 막고 있어서 쉽지가 않을 겁니다.”
“알아. 그렇다고 이대로 당할 수는 없잖아.”
“후우. 알겠습니다.”
한쪽에 옮겨 놓은 부상자들을 힐끔 쳐다본 함담은 정색을 한 채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혼자 움직이기가 어려운 부상자가 둘이나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부상자를 데려가려면 최소 한 명은 옆에 붙어서 부축을 해 줘야 되는데, 가뜩이나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칫 별장을 탈출하는 데 큰 부담이 될 수 있었다.
무슨 뜻으로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바로 알아차린 혁권은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함께 빠져나간다. 이미 죽은 인원은 어쩔 수 없지만 단 한 사람도 뒤에 남겨두고 떠나지는 않을 거야!”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가혹한 행동일 수도 있었으나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을 때 부상자들을 놔두고 움직이는 것이 맞았다.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어려운 방법을 택한 혁권의 결정에 함단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로는 끝까지 부하들을 버리지 않는 모습에 믿음이 더욱 깊어졌다.
일단 명령이 떨어진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다들 여기서 철수한다. 부상자들부터 챙겨!”
“옛!”
함단의 외침에 부하 두 명이 뒤로 빠져 거실 바닥에 누워 있던 부상자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사이 손재주가 좋은 라미가 아미르와 함께 만약을 위해 아껴 두고 있던 수류탄을 꺼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줄 부비트랩을 재빨리 설치했다.
반면 이미 숨이 끊어진 부하들은 짧은 나이프로 머리카락을 잘라 서로 섞이지 않도록 주의해서 주머니에 넣었다.
시신을 챙길 여유가 없는 상황이니 관에 넣을 신체의 일부라도 가져가기 위함이었다.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그럼 가자고!”
창문 밖으로 권총을 몇 발 갈긴 혁권은 부하들과 함께 집 안을 가로질러 뒷마당과 연결된 반대편 후문으로 이동했다.
그쪽 역시 알아바디가 동료 한 명과 함께 적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막 탄창을 새로 갈아 끼우고 있던 알아바디가 그를 발견하곤 입을 열었다.
“보스!”
“적이 몇 놈이나 돼?”
다짜고짜 질문부터 던지자 알아바디는 뒤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동료들을 슬쩍 쳐다보고는 얼른 대답했다.
“다섯입니다. 저쪽 돌담과 우물 뒤에 숨어 있습니다!”
한쪽 팔을 들어 알아바디가 가리킨 곳을 살펴본 혁권은 한가롭게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었기에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밖으로 치고 나가서 적들을 제압하고 여길 탈출한다!”
부상자들까지 다 데려온 걸 보고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던 알아바디는 약간 가라앉은 얼굴로 그를 봤다.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기고 있어서 쉽지 않을 겁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지금 우리가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잖아.”
“알겠습니다.”
“시간이 없어. 내가 신호를 하면 총을 쏘고 일제히 밖으로 뛰어나가서 적을 쓸어버리는 거야!”
“예.”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길이 하나뿐이라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었기에 전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콰쾅!
기척이 없자 적들이 본채 안으로 밀고 들어오려다가 설치해 둔 부비트랩을 건드렸는지 둔중한 폭음이 등 뒤에서 들렸다.
이제 정말 지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전의를 불태우며 눈을 번들거리고 서 있는 부하들을 둘러본 혁권이 손짓을 하자 함단이 음료수 캔처럼 생긴 휴대용 연막탄을 굴리듯 바깥으로 집어 던졌다.
푸쉬쉬쉬~!
시야를 가리는 희뿌연 연막이 뿜어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적들이 총을 마구 쏴 대기 시작했다.
피슝! 퍼퍼퍽!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총탄이 건물 벽과 흙바닥에 박히면서 내는 소음이 귓가를 어지럽게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가 온통 연막으로 뒤덮였고 탄창에 든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쏟아지던 총탄 세례가 한풀 꺾이자 숨을 죽인 채 가만히 기회를 노리던 혁권은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지금이야!”
함단과 자동소총을 든 부하들이 먼저 총격을 가하면서 용기 있게 앞으로 뛰어 나가가자 나머지도 뒤를 이었다.
투타타탕! 타탕! 탕! 탕!
갑작스러운 공격에 크게 당황한 적들이 허둥지둥 대응했지만 연막 때문에 시야가 가려진 데다 다급한 나머지 조준을 제대로 못 해 총탄이 크게 빗나갔다.
사방이 희뿌연 연막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번쩍이는 총구 화염과 비명이 심장박동을 더욱 빠르게 만들었다.
불과 30~40미터도 안 되는 돌담까지의 거리가 어쩐지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어디선가 날아온 탄환이 쌩 하는 바람 소리를 내면서 귓불을 스치고 빠르게 지나갔다.
자칫 조금만 방향이 옆으로 가까이 붙었다면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그대로 즉사해 버렸을 터였다.
갑자기 머릿속을 엄습해 오는 두려움과 공포에 두 다리에서 힘이 쑥 빠져나가는 것 같았지만 혁권은 이를 악물며 앞으로 내달렸다.
그러자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면서 앞이 확 트였다.
정신없이 뛰다 보니 어느새 연막이 퍼져 있는 공간을 뚫고 나온 거였다.
그러자 허리 높이까지 오는 돌담 뒤에 서 있던 사내가 갑자기 튀어나온 혁권과 부하들을 보고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허억!”
반사적으로 총구를 들어 올리려고 할 때 간발의 차이로 그가 더 빨리 방아쇠를 당겼다.
타탕!
“크윽!”
시뻘건 피가 튀며 사내가 돌담 위로 엎어지자 혁권은 바로 옆에서 허둥거리고 있는 적을 향해 지체 없이 총을 쐈다.
하지만 날카로운 총성 대신 탄창에서 빈 쇳소리가 났다.
하필이면 이때 총알이 다 떨어지고 만 거였다.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린 혁권과 달리 상황을 눈치챈 상대는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총을 겨눴다.
절체절명의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짧은 총성이 울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하킴이 무표정한 얼굴로 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하킴!”
“매번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런 일은 저희한테 맡기고 뒤에 계십시오. 너무 위험합니다.”
“후후후. 자네처럼 든든하게 뒤를 지켜 주는 부하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능청스러운 혁권의 말에 하킴은 고개를 절래 흔들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탕! 탕! 타탕!
부상자를 데리고 뒤로 빠져 있던 부하들이 건물 안을 보면서 총을 쏘고 있자 혁권은 미간을 좁혔다.
“제길. 쉴 틈을 안 주는군.”
권총을 허리에 찔러 넣은 혁권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AK-47 자동소총을 집어 들면서 외쳤다.
“함단, 부상자들을 어서 차에 태워! 나머지는 나하고 함께 그동안 적을 막는다.”
“옛.”
다시 뒷문 쪽으로 달려간 그는 힘겹게 싸우고 있는 부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했다.
“여긴 우리가 맡을 테니까. 빨리 가!”
“네.”
짧게 대답한 부하들이 부상자를 부축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비켜 주자 혁권은 건물 안쪽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시커먼 그림자를 향해 자동소총을 난사했다.
타타타탕!
하킴과 다른 부하들도 총격에 가세하자 적들은 쉽사리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그때 뒷마당에 세워 둔 차량 두 대에 부상자들을 태운 함단이 경적을 울리면서 크게 고함을 질렀다.
“이리로 빨리 오십시오!”
고개를 돌려 시동이 걸려 있는 자동차를 본 혁권은 엄폐해 있던 벽에서 등을 떼면서 말했다.
“모두 차에 타!”
적들이 바로 쫓아오지 못하도록 총구만 내밀어 몇 발을 더 쏜 혁권과 부하들은 재빨리 뒷마당을 가로질러 차량이 있는 곳으로 뛰었다.
막 차에 올라타려고 할 때 건물 왼편에서 시커먼 인영들이 불쑥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총구 섬광이 번쩍였다.
타타탕! 탕! 탕!
길이 막히자 적들이 건물을 우회해서 온 거였다.
총탄이 공기를 가리며 날아오는 섬뜩한 소리에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아래로 숙였다.
티팅!
“크윽.”
신음에 고개를 돌리자 아미르가 피를 흘리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런. 어딜 맞은 거야!”
“괘, 괜찮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극심한 통증에 아미르는 이를 악물었다.
당장은 해 줄 것이 없는 데다 일단 여기서 탈출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그는 손바닥으로 출혈 부위를 꾹 누르고 있게 하고는 차문을 열고 아미르를 뒷좌석에 태웠다.
마지막으로 탄창에 있는 총알을 다 갈겨 버린 혁권은 손에 든 자동소총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는 차에 올라타면서 외쳤다.
“출발해!”
그러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부하가 기다렸다는 듯이 가속페달을 밟았고, 다른 한 대도 엔진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면서 출발했다.
“잡아! 놓치지 마.”
뒤늦게 나타난 게라슈첸코가 벌게진 얼굴로 소리치자 적들이 차량을 향해 마구 총격을 가했다.
티티팅! 퍼석.
앞뒤 유리창이 힘없이 깨져 나가고 날아온 총탄이 차체에 박히면서 불꽃이 튀었다.
끼이익. 끽. 끽.
운전을 하던 부하가 순간 핸들을 놓치는 바람에 차체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크윽.”
하지만 다시 필사적으로 핸들을 움켜쥔 덕분에 차량은 바로 균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더 밟아!”
시트가 온통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피를 많이 흘린 아미르를 살피면서 혁권이 소리를 지르자 부하는 있는 힘껏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러자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엔진이 으르렁거리면서 차량이 어둠 속을 질주했다.
탕! 탕! 탕! 철컥.
탄환을 모두 쐈는지 슬라이드가 후퇴하면서 쇳소리가 나자, 다 잡았던 혁권을 눈앞에서 놓친 게라슈첸코는 분을 참지 못한 채 손에 든 권총을 바닥에 내팽개치면서 버럭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어둠 사이로 멀어지는 붉은 후미등 두 쌍이 그를 놀리는 것처럼 보였다.
“어떡할까요? 지금이라도 뒤쫓으면…….”
“붙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아무리 액셀을 밟아도 저 정도 거리까지 멀어졌으면 닿을 수조차 없을 것이 뻔했다.
게라슈첸코는 목에서 끓는 소리를 내며 잔뜩 독기가 서린 눈빛으로 이젠 거의 보이지도 않는 붉은 점 두 쌍을 노려보면서 큭, 하고 입술을 짓씹었다.
높은 천장에는 호화스러운 샹들리에.
들려오는 것은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의 우아하면서도 섬세한 음악.
그리고 만찬회에 어울릴 법한 크고 긴 식탁에 홀로 앉아 있는 것은 저택의 주인인 이안 파블로프였다.
한쪽 벽에는 시중을 드는 하인과 건장한 조직원 두 명이 정승처럼 입을 굳게 다문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는 잘게 썬 스테이크를 한 입 먹고 레드 와인으로 살짝 입가심을 했다.
어린 송아지의 여린 살만을 골라 구운 스테이크는 부드럽고 육즙을 가득 머금어 감칠맛이 있었는데, 입이 까다로운 이안을 위해 요리사가 매우 고심한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평상시보다 조금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짙은 색 양복을 입은 다셰바가 약간 굳은 얼굴로 식당에 들어섰다.
“회장님.”
옆에 놓인 냅킨을 들어 입가를 가볍게 닦으면서 이안이 물었다.
“일이 다 끝났나 보지?”
“……예.”
“놈은 처리했나?”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다셰바는 이안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보고를 했다.
“은신처를 찾아내 습격하는 것까진 성공했으나, 그만 존슨을 놓치고 말았다고 합니다.”
고개를 돌린 이안은 눈썹을 치켜 올린 채 옆에 서 있는 다셰바를 쳐다봤다.
“지금 놓쳤다고 했나?”
“그, 그렇습니다.”
화가 난 이안은 주먹으로 앞에 있는 식탁을 세게 내려쳤다.
“그런 쉬운 일도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다니. 멍청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