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23
623
“그건 그렇고 회사가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한 것에 비해서 소속 연예인 숫자가 조금 부족한 거 같지 않나?”
현재 인터내셔널 매니지먼트에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은 소현을 포함해서 모두 네 명이었다.
중간에 주조연급인 은신영을 영입하기는 했지만 높아진 회사의 위상과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어쩌다 보니 매니지먼트보다 영상물 제작과 유통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훨씬 더 많아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수익이 늘어난 건 좋았지만 회사 구조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정동식 이사 역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진지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인을 뽑아서 원하는 수준까지 키우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테니, 당장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외부 영입밖에 없겠군.”
“마침 최근에 대어급으로 불리는 배우들 가운데 소속사하고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이들이 몇 명 있습니다. 그걸 노려보면 어떨까요?”
“흠…….”
혁권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나쁘지 않은 것 같군. 원래 있던 소속사에서도 재계약을 하려고 들겠지만, 월등히 높은 액수를 제의하면 흔들릴 사람이 꽤 있겠지.”
“그러려면 아무래도 계약금이 많이 들 겁니다만…….”
“내가 언제 돈 문제로 정 이사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만든 적이 있었나?”
거만하게까지 들리는 발언이었지만 명백한 사실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정동식 이사의 입을 틀어막은 혁권이 물었다.
“그래, 일단 몇 명 정도를 생각하나?”
“간판으로 내세울 A급 두세 명이면 괜찮을 듯합니다.”
“어차피 전부 다 끌어오는 건 무리일 테니 딱 적당하군.”
혁권은 한쪽으로 꼰 다리를 까딱거리면서 그래도 잊지 말라는 듯 덧붙였다.
“외부 영입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자체적으로 신인을 키우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해.”
“예. 안 그래도 수시로 연극이나 영화판을 돌아보면서 괜찮은 인물이 있는지 찾아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혁권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인재는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정 이사 알아서 하도록 해. 그리고 기존에 있는 연예인들을 잘 관리해 주는 것도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인터내셔널 매니지먼트를 나와 서초동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혁권은 만수르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상황이 다급하게 됐소.
심상치 않은 목소리에 혁권이 살짝 얼굴을 굳히면서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남부 저항군 주력부대가 리틀 에이든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서 움직였다가 정부군과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에 의해서 큰 피해를 입었소.
리틀 에이든은 바다를 가운데 두고 남부 연합의 근거지인 아덴하고 바로 마주 보고 있는 곳으로 대규모 정유 시설과 부두가 있는 전략 요충지였다.
여길 점령한다면 경제적인 이득은 물론이고 정부군을 척박한 사막 지역으로 완전히 밀어낼 수 있었다.
“피해가 많이 심각한 겁니까?”
-다수의 장비와 개조한 무장 차량 20여 대가 파괴되고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소.
병력과 장비가 충분하지 않는 남부 저항군 입장에서 이 정도면 전체 전력의 1할가량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향력을 넓히면서 동시에 정부군을 압박하려는 의도였겠지만 결과적으로 주도권을 내주며 아덴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악수惡手가 되고 말았다.
이맛살을 찡그린 가운데 만수르 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용병들을 계획보다 빨리 전장에 투입해야 될 것 같소.
아직 훈련이 다 끝나지 않았지만 상황이 다급해진 만큼 거기에 맞춰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서둘러서 용병들을 아덴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아닙니다. 그럼 구체적인 계획이 확정되면 다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존슨 씨만 믿고 있겠소.
부담스러운 말을 하며 만수르가 전화를 끊었다.
잠시 머릿속을 정리한 혁권은 함단한테 위성 전화를 걸어 급히 훈련 중인 용병들을 아덴으로 보낼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수송기에 태워 보내는 것이 제일 빨랐지만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이 예멘 지역의 제공권을 쥐고 있었기에 자칫 격추의 위험성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제일 가까운 주부티까지 수송기로 이동한 뒤에 거기서 배로 갈아타는 루트를 선택했다.
이쪽 역시 공격받을 위험성이 없지는 않았지만 수송기를 타고 가는 것보단 훨씬 안전했다.
그리고 무작정 움직인 것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정부군의 눈을 회피할 패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
바로 구호물자를 실은 수송선으로 위장하는 거였다.
갑판에 커다란 적신월Red Crescent 깃발을 내걸고 실제로 구호 물품까지 일부 선적해서 아예 대놓고 아덴으로 향했다.
이렇게 하자 가뜩이나 내전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와 기아, 그리고 전염병 확산 때문에 국제 사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중이었기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수송선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덕분에 수송선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은 채 무사히 아덴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천히! 왼편이 너무 기울었잖아. 정신 똑바로 차려.”
칠흑같이 어두운 밤 간간이 켜 둔 조명 몇 개만이 주위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아덴 부두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주변 시선을 의식해 낮 동안 배 안에 숨어 있던 용병들이 각자 큼지막한 군용 배낭을 등에 짊어진 채 줄을 지어 하선했고 한쪽에서는 커다란 나무 상자에 든 군수품들이 내려졌다.
1개 대대 병력이 쓸 군수품이었기에 물량이 적지 않아 금방 선착장 주위가 화물 상자들로 가득 찼다.
이어서 수송선에 탑재된 자체 크레인에 매달려 육중한 Oplot-M 전차가 하역됐다.
무게가 50톤 가까이 됐기에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는데,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수십억짜리 전차가 그대로 고철 덩어리가 될 수도 있었다.
위이이잉. 덜컹.
조심스럽게 전차가 선착장에 내려지자 대기하고 있던 용병들이 직접 차체를 단단히 고정시켜 둔 강철 케이블 고리를 해머로 세게 내려쳐서 뽑아냈다.
어렵고 위험한 작업이었지만 경험 많은 루마니아군 출신의 전차병들을 용병으로 고용해서 그런지 다들 능숙하게 움직였다.
이내 결박을 모두 풀어내자 그대로 전차에 탑승한 용병들은 시동을 걸고 혼잡한 선착장을 빠져나와 바로 옆에 있는 공터로 이동했다.
구르르르르.
예전 남예멘군 소장 출신으로 남부 저항군 사령관을 맡고 있는 알자딘은 눈앞을 지나가는 전차를 잔뜩 들뜬 얼굴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언제 정부군 놈들이 도시를 공격해 올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증원군을 이끌고 오다니, 존슨 씨, 당신이야말로 우리 남예멘 독립의 진정한 영웅이오.”
옆에 나란히 선 혁권은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전 그냥 의뢰를 받은 대로 일을 끝냈을 뿐입니다.”
“그게 쉽지 않으니까 이런 말을 하는 것 아니겠소. 정부군과 사우디아라비아 놈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고 있는 걸 구호물자를 실은 배로 위장해서 뚫어 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소.”
“운이 좋았습니다.”
“하하하. 분명 알라께서 존슨, 당신과 우리 남부 저항군을 돕고 계신 것이 틀림없소.”
알자딘 사령관이 호탕하게 웃으며 두툼한 손으로 혁권의 등을 두드렸다.
딱히 신을 믿지 않는 혁권은 그의 말에 동의하기 힘들었으나, 구태여 입으로 꺼내 사령관의 기분을 망칠 만큼 무신경하진 않았다.
한편 알자딘 사령관은 그가 가져온 행운을 그대로 호기로 이어 가려는 듯 정부군을 향한 투지가 잔뜩 깃든 얼굴로 이를 부드득 갈면서 말했다.
“이걸로 얼마 전에 당한 복수를 해 줄 수 있게 됐소.”
“사방이 탁 트인 벌판으로 나가면 공중 폭격을 피하기가 쉽지 않으니 신중하게 움직이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지난번 리틀 에이든 전투 때도 성급하게 ZSU-23-4 쉴카 대공 자주포 한 대만 끌고 공격에 나섰다가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의 공습에 제대로 싸움도 해 보지 못하고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말았다.
“한 번 한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는 않으니 염려하지 마시오.”
좀 더 조언을 해 줄까 하다가 상대가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고, 이제부터 용병들을 지휘하는 건 남부 저항군의 몫이었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말이 나왔으니 이걸 받으시오. 추가로 필요한 군수품과 무기 목록이오.”
건네받은 쪽지를 펴 보자 각종 탄약과 의약품, 연료 그리고 SA-18 그로스 대공미사일 보충분까지 목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물량이 꽤 되는군요.”
“그동안 소모된 것도 있고 지난번 전투에서 잃은 장비가 많아서 그렇소.”
허겁지겁 도망치기에 바빴을 테니 장비를 챙겨 올 여유 같은 건 없었을 터였다.
“화물을 가져오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서 지난번보다 가격을 올려 받아야 됩니다.”
사우디아라비아군이 군함을 아덴 해역 주변에 배치해 두고 해상을 통제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알자딘 사령관은 순순히 머리를 끄덕였다.
“가격은 UAE 쪽하고 상의를 해 보시오. 그것보다 중요한 건 곧 정부군이 아덴을 공격해 올 것이 분명하니, 최대한 빨리 보급을 해 줘야 된다는 거요.”
리틀 에이든에서 승리를 거둬 전세를 역전시켰으니 여세를 몰아 아덴까지 탈환하려고 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알자딘 사령관은 번들거리는 눈으로 혁권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해군이 언제 바닷길을 막아 버릴지 모르니까 서둘러 주시오.”
그는 쪽지를 접어 안주머니에 넣으면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저쪽하고 먼저 이야기를 한 다음에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 보도록 하지요.”
“부탁하겠소.”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 반대쪽에서 혁권의 부하 둘이 손에 철제 박스를 들고 다가왔다.
전체가 짙은 녹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고 짧은 손잡이가 달린 것이었는데, 안에 꽤 무거운 것이라도 든 듯 박스를 든 부하들의 손목에 힘줄이 솟아 있었다.
혁권의 발아래 내려놓고 부하 둘이 뒤로 물러서자 눈짓을 받은 하킴이 무릎을 구부려 열쇠로 잠금장치를 풀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진행되는 동안 알자딘 사령관은 박스 안에 든 물건의 정체를 짐작한 것처럼 말없이 시선을 아래로 고정시켰다.
이윽고 내용물이 잘 보이도록 몸을 옆으로 비켜선 하킴이 박스의 윗부분을 활짝 열어젖히자 비닐 포장도 채 뜯지 않은 새 달러 뭉치가 한 치의 틈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 드러났다.
“500만 달러입니다.”
알자딘 사령관의 눈동자가 한순간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안 그래도 새로 병사들을 고용하고 지급해 줄 돈이 부족했었는데, 고맙소.”
“저야 전달만 해 드리는 것뿐입니다.”
부관한테 손짓을 해서 돈이 든 박스를 자신의 군용 차량에 싣도록 한 알자딘 사령관은 그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하역 작업이 끝나면 바로 돌아가는 거요?”
“오래 머물러서 괜히 시선을 끌어 봤자 좋을 것이 없으니 해가 뜨는 대로 아덴을 떠날 계획입니다.”
“아쉽지만 상황이 그러니 어쩔 수 없겠구려.”
머리를 끄덕인 알자딘 사령관은 한쪽 팔을 내밀면서 먼저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조심해서 돌아가고 다음에 또 봅시다.”
“사령관님도 곧 있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시길 빌겠습니다.”
“꼭 그렇게 될 거요.”
악수를 나눈 알자딘 사령관은 이내 몸을 돌려 자신의 차량에 올라탔다.
앞뒤로 호위 차량을 세운 채 알자딘 사령관이 부두를 떠나자 그는 이제 하역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는 걸 지켜보면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