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67
667
곽병창 소장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굳이 운송 비용이 훨씬 더 비싼 수송기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고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채경식 지사장까지 나서며 곽병창 소장의 의견에 힘을 실어 줬다.
“3군단도 프리타운에서 탈출한 코로마 대통령과의 싸움에 집중하느라 이쪽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겁니다.”
머리를 작게 끄덕인 혁권은 이내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들며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일단 시험적으로 바지선을 띄워 보도록 하지. 채 지사장.”
“네. 말씀하십시오.”
“몬로비아 지사하고 상의를 해서 일을 진행시키도록 해.”
“알겠습니다.”
기대하는 대로 무사히 수로 운송이 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했지만, 물자 보급과 광석 운반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자 곽병창 소장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혁권은 캔에 남아 있는 음료를 입에 다 털어 넣고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국경 쪽은 분위기가 좀 어때?”
곽병창 소장이 고개를 돌려 눈짓을 하자 광산 경비를 맡고 있는 태영준 과장이 작게 헛기침을 하곤 대신 대답했다.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쿠데타 이후로 기니공화국 병사들이 수시로 국경선을 넘어와 접경 마을 주민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국경 침범은 그 전에도 간간이 있었잖아.”
비무장지대처럼 국경선이 명확하게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닌 데다 대부분이 울창한 밀림 지대였기에, 의도한 거든 아니든 양쪽 군과 주민들이 국경을 침범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그러자 시선을 받은 태영준 과장이 정색을 한 채 말했다.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합니다. 어제도 광산하고 가까운 국경 초소에서 양국 병사들 간에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그게 정말이야?”
미간을 좁히면서 혁권이 묻자 태영준 과장이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예. 다행히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양측에서 십여 명이나 되는 부상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으음.”
병사들끼리 총격전이 벌어졌을 정도면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었기에 혁권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교전이 벌어진 이유가 뭐야?”
“시에라리온 병사들이 국경을 넘어와서 목재로 쓸 나무를 베어 갔다는 걸로 시비가 붙었다고 하더군요.”
“겨우 나무 몇 그루 때문에 서로 총질까지 했다는 거야?”
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자 태영준 과장이 신중한 태도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벌목을 한 장소가 평소 중립 지역으로 여겨지던 곳인 걸 생각하면, 의도적으로 사건을 만들 핑계를 만들었다고 봐야 될 겁니다.”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는 뜻이야?”
눈을 가늘게 뜨며 쳐다보자 태영준 과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설마······.”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그가 눈가를 찡그리자 태영준 과장이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코노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할 때 국제사회에 내세울 명분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됩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아니, 그게 분명해.”
혁권의 안색이 흐려짐에 따라 주변 분위기 또한 어두워졌다.
각자 생각에 잠겨 아무런 말도 없이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혁권이 팔짱을 끼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만약 기니공화국 군대가 국경을 넘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속수무책으로 코노 지역을 빼앗길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지?”
“쿠데타로 인해 시에라리온 군 병력 대부분이 프리타운 인근에 몰려 있어 기니공화국 군대가 국경을 침범한다고 해도 막아 낼 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경 지역에 남아 있는 시에라리온 병력을 다 합쳐 봤자 1개 대대 남짓밖에 안 될 겁니다. 그나마도 전차나 장갑차 같은 중화기는 전무한 상태이고요.”
광산에 오기 전 확인한 정보에 의하면 기니공화국이 국경에 1개 사단을 집결시켜 놨다고 했으니까 만약 공격해 들어온다면 막아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코노 주에서 광산을 두 곳이나 운영하고 있는 혁권 입장에서 주변이 분쟁 지역이 되는 건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가장 좋은 건 쿠데타가 빨리 마무리돼서 기니 공화국에 침범의 빌미를 주지 않는 건데. 이것 참 쉽지가 않군.”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이건 국가 단위의 문제였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혁권은 더욱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당분간 광산 주변 경계를 강화하고 상황 변화를 주시하도록 해.”
“예.”
다들 개운치 않은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딱히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머리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대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는 듯 곽병창 소장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벌써 정오가 훨씬 넘었는데 식사부터 하시지요.”
“그게 좋겠군.”
중요한 이야기는 다 한 데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움직여서 그런지 약간 출출했기에 혁권은 바로 머리를 끄덕였다.
식사가 준비될 동안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하킴이 가지고 있던 위성 전화기 벨이 울렸다.
얼른 액정에 뜬 번호를 확인한 하킴은 눈을 크게 뜨고는 고개를 돌려 혁권을 봤다.
“보스, 두테 장관입니다.”
“뭐!”
프리타운이 쿠데타 군에게 함락되면서 행방이 묘연해졌던 두테 국방부 장관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하자 혁권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노련한 혁권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는 한쪽 팔을 내밀어 하킴한테서 위성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나요. 두테.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지 위성 전화기를 타고 들리는 두테 장관의 목소리가 아주 건조하게 느껴졌다.
“안 좋은 소식을 듣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무사히 프리타운을 빠져나왔나 보군요.”
-운이 좋았소.
쿠데타군에 밀려 언제 나라 밖으로 쫓겨날지 모르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아직은 세력을 다 잃은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마음에도 없는 위로를 했다.
“어찌 됐건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권력은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쥘 수 있는 거니까요.”
-맞는 말이오.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존슨 씨가 우릴 좀 도와줘야 되겠소.
“무슨 말씀이신지······.”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탈취하려는 배은망덕한 쿰부야를 프리타운에서 몰아내려는 데 필요한 무기와 군수품을 가져다주시오.
뜻밖의 이야기에 그는 눈썹을 살짝 위로 치켜 올렸다가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
“프리타운을 되찾으려는 겁니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소.
세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기에 지금껏 누렸던 권력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대로 쫓겨난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부와 권력이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거였으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필요에 의해서 코로마 대통령과 손을 잡기는 했어도 언제든지 배를 갈아탈 수 있는 입장이었기에 그는 머릿속으로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통화를 계속했다.
“뭐가 얼마나 필요한 겁니까?”
-소총탄과 박격포탄부터 대전차 미사일까지 가져다줘야 될 것이 아주 많소. 물론 공짜로 달라는 건 아니오.
당연한 일이었다.
쿠데타 세력에 밀려 수도까지 잃고 밀려난 코로마 대통령한테 외상으로 물품을 공급할 수는 없었다.
-전화로는 길게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우니 일단 마케니Makeni로 오시오.
마케니는 시에라리온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로 중부 지역에 위치해 있었는데, 현재 코로마 대통령을 지지하는 움부야 소장의 2군단 사령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일정을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을 하지요.”
-시간이 없으니 최대한 빨리 와 주시오.
체면을 다 버리고 상당히 조급해하는 모습에 정부군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통화를 끝내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채경식 지사장이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보면서 물었다.
“두테 장관이 무슨 용건으로 대표님께 연락을 한 겁니까?”
사무실 소파에 둘러앉은 이들은 자신이 어떤 사업을 하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혁권은 감추지 않고 방금 나눈 통화 내용을 이야기해 줬다.
“나보고 정부군에 필요한 무기와 보급 물자를 조달해 달라고 하는군.”
다들 크게 술렁이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무 무리한 요구 아닙니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직 세력이 남아 있다지만 쿠데타군 쪽으로 저울추가 많이 기울어진 상황에서 구태여 저들끼리 싸우는 데 개입해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맞습니다. 쿠데타 이후도 생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세 사람 모두 코로마 대통령 쪽에 서는 거 반대했다.
그가 봐도 프리타운을 장악한 쿰부야 참모총장이 유리한 상황이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혁권 역시 코로마 대통령이 쿠데타 세력을 진압하고 다시 정권을 쥐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닌데 그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코로마 대통령을 먼저 버리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던 혁권은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들면서 ‘일단.’ 하고 운을 띄웠다.
“두테 장관을 만나 보고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 지금 여기서 뭐라 말하기엔 정보가 너무 부족해.”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려면 직접 내 눈으로 보는 게 제일이야.”
아무리 부하들이 일을 잘해 줘도 몸으로 느껴야만 깨닫는 게 있는 법이었다.
한번 말을 꺼내면 절대 무르지 않는 혁권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말리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걱정되는지 다들 표정이 밝지 못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채굴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보크사이트 광산에도 가서 현장을 꼼꼼하게 둘러본 혁권은 다음 날 오후에 타고 왔던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에 올랐다.
탑승 인원은 혁권과 하킴을 비롯한 수행원 여덟 명이었다.
안전을 우려한 태영준이 경비대 대원을 차출해서 더 데려가라고 했지만, 그가 그럴 필요 없다고 잘랐다.
함께 왔던 채경식 지사장과 프리타운 지사 직원 두 명은 하루를 더 머물다가 내일 보급품을 가득 실고 날아오기로 되어 있는 수송기를 타고 몬로비아로 돌아가기로 했다.
좁은 비행기 좌석에 앉은 채 고심에 찬 표정을 짓고 있던 혁권은 앞자리에 탄 하킴을 보면서 말했다.
“마케니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했지?”
“1시간이면 도착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오늘 하루는 마케니에서 묵어야 되겠군.”
“야간 비행을 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안전을 생각하면 그게 좋을 겁니다.”
몸을 뒤로 돌려 대답하던 하킴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잠깐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두테 장관의 요청을 받아들이실 생각입니까?”
“글쎄. 어제도 이야기를 했지만 일단 직접 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릴 거야.”
“코로마 대통령과 관계를 정리하실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침몰하는 배라면 굳이 함께 타고 있을 필요가 없겠지.”
냉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코로마 대통령과는 돈으로 묶인 사이였기에 그 이상 지켜야 될 의리 같은 건 없었다.
잠시 뒤. 일행을 태운 쌍발 프로펠러기는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뿌연 흙먼지를 피워 올리면서 임시 활주로를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