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731
731
한편 이번 사건과 연결돼 발칵 뒤집힌 곳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김성균 사장 측이었다.
꽝!
앉아 있던 소파 팔걸이를 주먹으로 세게 내려친 김성균 사장이 비서실장인 고동욱을 사납게 노려봤다.
“아직도 놈이 어디로 종적을 감췄는지 찾아내지 못한 거야!”
잔뜩 어깨를 움츠린 고동욱 비서실장은 연신 눈치를 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족들까지 몽땅 다 데리고 출국한 걸 보면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거 하나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뭘 한 거야!”
얼굴을 벌겋게 붉힌 김성균 사장의 고함을 들으면서 고동욱 비서실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처음 뭔가 잘못 됐다는 걸 알아차린 건 나흘 전이었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스마트폰까지 꺼 놓은 채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자 불길한 느낌에 급히 거주하는 아파트로 사람을 보냈지만 이근홍 변호사를 찾을 수 없었다.
집안 살림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활짝 열려 있는 붙박이장과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 있는 옷가지에 이근홍 변호사가 딴마음을 품고 도망쳤다는 걸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당연히 보고를 받은 김성균 사장은 노발대발했고, 곧바로 이근홍 변호사를 잡기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했다.
그러나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다는 것만 알아냈을 뿐 어디로 숨었는지 지금까지 오리무중인 상태였다.
김성균 사장은 좀처럼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거칠게 숨을 내뱉으면서 이를 부드득 갈아붙였다.
“으드득. 감히 이딴 식으로 내 뒤통수를 치다니.”
자신이 속았다는 것도 화가 났지만 무엇보다 그룹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긴 것이 그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수천억 원 가까이 되는 거액인 걸 생각하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움직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모든 수단을 써서 뒤지고 있으니 곧 어디에 숨겼는지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짜증 가득한 얼굴로 말한 김성균 사장은 답답한지 한쪽 손을 들어 목에 맨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버진 아일랜드에 만든 페이퍼 컴퍼니로 옮긴 차명 지분들은 어떻게 됐어?”
“아직은 그대로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비자금도 그렇지만 차명 지분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되찾아야 돼!”
경영권 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태일산업을 비롯한 그룹 핵심 계열사 지분은 돈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김성균 사장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 올리고는 사무실 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큰소리를 내질렀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지껄이지 말고 당장 찾아 놓으란 말이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바로 해내라는 억지에 비서실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척 흥분한 상태라 도저히 이성적으로 설득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기에 그는 마지못해 머리를 숙이며 알겠다고 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잔잔한 수면 위에 한 마리 새가 날아들었다.
그 뒤를 이어 같은 무리인지 몇 마리의 새가 더 날개를 펄럭이며 옆에 내려앉더니 먹이를 찾는 것인지 열심히 부리를 움직여 댔다.
한가로운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혁권은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창문 밖에 있는 테라스 자리라면 훨씬 더 나은 풍광을 만끽할 수 있겠지만 혹시 모를 저격을 우려해 이렇게 가장 안쪽에서 멀리 봐야만 하는 것이 다소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보스.”
“도착했나?”
“예.”
혁권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하들에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일렀다.
잠시 후 수행원으로 최기혁 하나 만을 대동한 심인성 과장이 계단을 올라와 그에게 슬쩍 눈짓을 하며 알은체를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숙련된 동작으로 몸수색을 끝낸 정지택은 심인성 과장을 따라온 수행원에게도 똑같은 과정을 반복한 후 그제야 들어가라고 길을 비켜 주었다.
“부하들의 경호가 전보다 훨씬 엄해졌군그래.”
“지난 번 일도 있으니 아무래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소.”
“하긴.”
심인성은 이해한다는 듯 별말을 하지 않고 선선히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며칠 사이에 시리아 국경 상황이 잠잠해진 걸 보니 일이 잘된 모양이오?”
정보를 캐내려는 듯 슬쩍 찔러보는 물음에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직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은 최악의 상황은 넘긴 걸로 알고 있소.”
“그렇군.”
이야기를 들은 심인성의 눈빛이 반짝였다.
경제뿐만 아니라 국가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는 핵심 전략 물자인 원유를 100% 수입하는 입장인 만큼, 주요 산유국들이 밀집해 있는 데다 대부분의 물량을 가져오는 중동 지역 정세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들은 정보만으로도 심인성은 오늘 혁권을 만나서 충분한 소득을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건 그렇고 갑자기 보자고 한 용건이 뭐요?”
심인성의 물음에 혁권은 옆자리에 놔둔 서류철을 집어서 탁자에 올려놨다.
“열어 보시오.”
“······.”
잠시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던 심인성은 이내 팔을 뻗어서 서류철을 펼쳤다.
그러자 압둘라흐만한테서 받은 연어급 잠수함에 대한 팜플릿과 북한 당국이 판매를 위해 대리인으로 내세운 중국인에 대한 서류가 들어 있었다.
국정원 간부답게 심인성은 몇 장만 훑어보고는 이게 뭔지 바로 알아차렸다.
“설마 이건······.”
“북한이 거기에 있는 연어급 소형 잠수함을 소말리아 해적과 남미 마약 카르텔Cartel에 팔려고 시도 중이오.”
“그게 정말이오?”
정색을 하며 물어보는 모습에 혁권은 국정원이 북한의 움직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런 팜플릿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지 않겠소.”
눈앞에 있는 팜플릿은 누가 봐도 소형 잠수함을 팔기 위해서 제작한 거였기에 심인성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뢰도 함께 팔 뿐만 아니라 소형 잠수함을 운용할 인원을 교육시켜 주는 건 물론이고 돈을 주면 필요한 인원을 파견해 준다고 할 정도로 판매에 적극적인 모양이오.”
“으음.”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심인성은 미간을 찡그린 채 낮게 침은성을 흘렸다.
위협적인 무기인 잠수함을 불량 세력에 판매하려고 하는 건 둘째치더라도,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북 압박을 가하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외화가 유입되는 구멍이 생기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굳은 얼굴을 좀처럼 펴지 못하는 모습에 그는 찻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로 지난번에 진 빚은 다 갚은 거요.”
“큰 도움이 됐소.”
작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한 심인성은 건네받은 서류철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하지만 난 이만 먼저 가 봐야 될 것 같소.”
“북한 소형 잠수함에 관심을 보이는 곳이 많다고 하니까 손을 쓸 거라면 빨리 움직이는 것이 좋을 거요.”
“충고 고맙소.”
심인성이 몸을 돌려 카페를 나가자 혁권은 고개를 돌려 테라스 너머로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봤다.
“보스.”
임시로 묵고 있는 호텔로 가기 위해서 벤츠 뒷좌석에 앉아 있던 혁권은 앞에 탄 백성균의 목소리에 살짝 감은 눈을 떴다.
“인터넷 매체를 시작으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봐.”
상체를 바로 세운 혁권은 백성균이 내민 태블릿 PC를 건네받았다.
화면에는 일본에서 가장 이용자가 많은 포털의 뉴스 페이지가 띄워져 있었는데, 해킹 사고로 시끄러운 비트체크재팬에 대한 기사로 가득 차 있었다.
혁권은 손가락으로 기사들을 천천히 올리면서 내용을 훑어봤다.
그렇게 기사를 확인하는 그의 입가에 조금씩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든 혁권은 태블릿 PC를 돌려주면서 말했다.
“이걸로 비트체크재팬은 끝이군.”
“거액의 해킹 사건에 이런 기사까지 나왔으니 아마도 더 이상은 거래소를 운영하기 어려울 겁니다.”
“맞아.”
작게 머리를 끄덕인 혁권은 눈을 반짝이면서 말을 이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탔을 때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놔야지. 오늘 안에 두 번째 자료를 뿌리라고 해.”
“지시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이걸로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될 김인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떠올리면서 그는 기분 좋은 얼굴로 다시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댔다.
태일정유 이사실 소파에 앉은 김인철은 핏발이 선 눈으로 팔걸이에 올린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제길. 완전히 당했군.”
그러자 심복인 차민성 대리가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미 비트체크재팬 서버와 사무실에 압수 수색이 실시됐고 담당 직원은 물론이고 핵심 경영진까지 일본 경찰에 긴급 체포되어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끄으응.”
인상을 찌푸린 채 앓는 소리를 내뱉은 김인철은 한쪽 뺨을 실룩이면서 말했다.
“이 자식들.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거였어!”
퍼뜩 놀란 차민성 대리가 고개를 들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이게 전부 다 우연이라고? 그거야말로 터무니 없는 헛소리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김인철의 말대로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톱니바퀴 돌아가듯 이쪽이 꼼짝하지 못하도록 딱 맞춰서 일이 터질 수는 없었다.
오늘 아침부터 일본 주요 포털과 언론에서는 속보로 비트체크재팬이 그동안 불법 자금 세탁은 물론이고 세금 회피 그리고 외환 불법 반출에 깊숙이 관여됐다는 폭로 기사가 우후죽순처럼 마구 쏟아졌다.
당연히 비트체크재팬에서 잘못된 기사라고 반박을 했지만 증거로 내놓은 자료가 워낙 확실했기에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오히려 잘못을 덮으려고 거짓말을 한다며 큰 비난이 쏟아졌고, 일이 커지자 일본 경찰도 이례적으로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하면서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했다.
“미리 계획해 둔 게 아니라면 어떻게 불법적인 자료만 찾아내 퍼트릴 수 있겠어! 그것도 서버에 저장된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들 가운데서 말이지. 이건 분명히 의도적인 거라고.”
언성을 높인 김인철이 잔뜩 화가 난 낯빛으로 중얼거렸다.
“이놈들.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차민성 대리가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캔들을 터트려서 해킹에 집중된 수사력을 흐트러뜨리려는 꼼수가 아닐까요.”
“맞아. 그런 걸 거야.”
실제로 폭로 기사가 나온 이후로 해킹보다는 비트체크재팬이 그동안 저지른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고작 해커 따위에게 내가 놀아나고 있다니.”
“경찰 수사에 이어서 인터넷 포털을 중심으로 이번 해킹 사건이 비트체크재팬의 자작극일지도 모른다는 헛소문까지 빠르게 퍼지고 있는 상황이라 송구스럽습니다만, 최악의 경우를 미리 생각해 놓으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김인철이 눈을 치켜뜨고는 차민성 대리를 쳐다봤다.
잠깐 머뭇거리던 차민성 대리는 이내 사뭇 진지한 얼굴로 입을 뗐다.
“비트체크재팬을 폐업시켜야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절대 안 돼!”
말을 듣기 무섭게 김인철이 정색을 하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