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732
732
지분 상당수를 가지고 있는 비트체크재팬은 불법 도박 사이트와 함께 김인철의 자금원 노릇을 하는 곳이었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이번 일로 피해가 심각한 데다 신뢰에 상처를 입어 영업을 재개해도 가입자들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해킹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많은 가입자들이 비트체크재팬 본사 앞에 몰려와 투자금을 내놓으라고 항의하고 있었기에 결코 과한 우려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 인터넷에 유출된 증거 자료들만으로도 경영진과 직원들이 대거 사법 처리가 될 확률이 높은데, 자칫 불똥이 이사님한테까지 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으음.”
멈칫한 김인철은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차민성 대리가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면서 재차 그를 설득했다.
“지분을 차명으로 해 뒀지만 서버가 털리며 기밀 자료들이 다 새어 나간 상황에서 그중에 이사님과 관련된 것이 튀어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김인철은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면서 차민성 대리의 이야기를 천천히 곱씹어 봤다.
“그래. 여기서 발목을 잡힐 순 없지.”
목 어딘가가 꽉 막힌 것처럼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그리 말하고는 꽉 다문 입술 끝을 굳히고 차민성 대리를 보았다.
“일단 준비만 해 놓고 상황이 더 나빠진다면 그때 발을 빼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으면서 몸을 가죽 소파 깊숙이 파묻은 김인철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머리가 자꾸 지끈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신경을 너무 많이 쓴 나머지 두통이라도 생긴 것 같았다.
가뜩이나 돌아가는 사정도 안 좋은데 몸까지 말썽이니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기분에 김인철은 속으로 울화통을 삼켰다.
결정을 내려야 될 순간은 예상보다 더욱 빨리 찾아왔다.
바로 다음 날 비트체크재팬이 여러 가입자들이 믿고 맡긴 가상화폐를 동의도 받지 않은 채 무단으로 빼내 매매를 했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이 추가로 폭로되면서 다시 한 번 큰 비난을 받게 됐다.
더 이상 회생 가능성이 없어지자 김인철은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그동안 돈주머니 노릇을 하던 비트체크재팬에서 손을 떼고 자신이 경영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서둘러 지울 수밖에 없었다.
한편 혁권은 오랜만에 제주도로 내려와 리조트 부지 내에 있는 카지노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예정대로 내년에는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높다랗게 가림막을 세워 둔 공사장 안에는 여러 건설 기계와 인부 들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한창 기초공사를 하고 있었다.
안전모를 머리에 쓴 혁권은 곳곳에 박혀 있는 굵직한 H빔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엇보다 부실공사가 없어야 되니까 각별히 신경을 써 주시오.”
그러자 옆에서 설명을 하던 중년의 현장소장이 얼른 머리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른 현장보다 더 꼼꼼하게 챙기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상당히 큰 공사인 데다 네고Nego 없이 공사비를 넉넉하게 책정해 줘서 그런지 태도가 아주 깍듯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혁권은 샹그릴라 리조트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박종호 지배인한테 시선을 줬다.
“가림막을 쳤다고 해도 소음을 완전히 다 차단할 수는 없을 텐데 투숙객들이 불편해하진 않나?”
“카지노 공사 현장과 본관 사이에 거리가 어느 정도 있는 데다 야간에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별다른 크레임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작게 머리를 끄덕인 혁권은 현장을 조금 더 둘러보고는 소장의 배웅을 받으며 가림막 밖으로 나왔다.
슬쩍 주위를 둘러본 박종호 지배인은 일행 말고 다른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살짝 낮춘 채 말했다.
“조만간 서문종 지사가 대표님을 만나 부탁을 하나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이야?”
“지난 도지사 선거 때 주요 공약으로 내건 제주 테마파크 건립에 기대했던 국비 지원이 무산되면서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게 나하고 뭔 상관이지?”
의아한 얼굴을 한 혁권을 보며 박종호 지배인이 말을 이었다.
“민간투자를 받아 부족한 건립 비용을 충당하려는데 대표님께도 투자를 부탁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투자라고?”
“네. 알고 보니 이미 여러 곳에 비슷한 제안을 했던 모양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혁권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도 아직 투자를 다 유치하지 못한 걸 보면 대부분 거절했나 보군.”
“맞습니다. 예전과 달리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 숫자가 크게 줄어든 데다 요청하는 액수가 크다 보니까 다들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액수가 얼마나 되기에 그래?”
“총사업비 3,500억 원 가운데 3천억 원을 민간투자로 채울 계획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혁권이 찌푸린 얼굴로 박종호 지배인을 봤다.
“그게 사실이라면 사업비 대부분을 민간투자로 해결하겠다는 건데 수익성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무리수가 분명하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걸음을 천천히 옮기면서 그가 말했다.
“아무리 공약이었다고 해도 그쯤 되면 사업을 재검토하거나 잠시 미뤄야 되는 거 아니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자 박종호 지배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다음 선거를 위해서 도지사 임기 내에 테마파크를 완공해 개장하려면, 늦어도 내년 안에는 착공을 해야 되니까 이렇게 무리해서 일을 추진하는 걸 겁니다.”
“그런 것 같군.”
속사정을 모두 이해한 혁권은 짧게 혀를 차며 리조트 본관 건물로 들어갔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제일 윗층에 자리한 펜트하우스에 다다르자 박종호 지배인이 문가에 서서 인사하고 돌아갔다.
혁권은 윗도리를 벗어 백성균에게 넘긴 후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커다란 통유리 너머로 바깥 풍경이 환하게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편하게 두 다리를 쭉 뻗었다.
“목이 마르군.”
그 말을 들은 백성균이 재빨리 미니바에 비치되어 있는 생수를 따서 그에게 건넸다.
찬 기운이 물씬 풍기는 생수병을 들고 한 모금 마신 혁권은 후우, 깊은 숨을 내쉬며 통유리 아래 리조트의 전체 전망을 쭉 눈으로 훑었다.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조경이 잘 어울려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얼마쯤 있었을 때 백성균이 윗도리에 넣어 둔 스마트폰을 가져왔다.
“보스, 전화가 왔습니다.”
“누구야?”
“스텐저 변호사입니다.”
상체를 바로 한 혁권은 스마트폰을 받아 귀에 가져다 댔다.
“연락을 한 걸 보니 거래가 다 이루어진 모양이오?”
유창한 영어로 묻자 스텐저 변호사가 유쾌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사흘 전 고점보다 40% 하락한 가격에 1억 달러어치를 매입했습니다.
“수고했소.”
두 종목은 여러 종류의 가상화폐들 가운데서 가장 가격이 비싸고 많이 활용될 뿐만 아니라 김인철이 관련된 비트체크재팬에서 주력하던 것들이었다.
당연히 이번 해킹 사건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고 그 여파로 가격이 급락해 버렸다.
처음부터 이럴 걸 예상한 혁권은 스텐저 변호사한테 거액의 자금을 맡겨 저점에서 두 종목을 매입하도록 했다.
-연이어서 터진 악재에 겁을 먹은 투자자들이 물량을 마구 투매를 해 버린 덕분에 기대했던 것보다 더 싼 가격에 매입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시세는 어떻소?”
-1억 달러나 넣었지만 매도세가 워낙 커서 그런지 계속 하락세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매입 시점을 조금 더 기다릴 걸 그랬습니다.
아쉬운 듯한 스텐저 변호사의 이야기에 그는 고개를 가볍게 내저으면서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저렴하게 매입을 한 데다 이 정도 되면 저가 매수가 들어올 타이밍이 됐으니 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나을 거요.”
-항상 투자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으셨으니 이번에도 그러시겠지요.
이번 폭락 사태에 혁권이 일부 개입한 걸 어느 정도 눈치챈 듯한 말투였지만, 혁권은 딱히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다.
수십 개나 되는 가상화폐 종목들 가운데 정확하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2개를 콕 찍어 폭락 시점까지 예측하고 매입을 지시했으니 의심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거였다.
이미 몇 차례 이런 경우가 있었기에 아마 모르긴 해도 스텐저 변호사가 속한 L&S코퍼레이션에서 그를 따라 두 가상화폐 종목에 투자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전 고점을 회복하면 물량을 전부 매도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변동사항이 있으면 또 연락시오.”
-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혁권은 다시 푹신한 가죽 소파에 등을 붙였다.
워낙 안 좋은 악재가 연달아 터진 만큼 당분간은 가상화폐 가격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겠지만, 투자 수요가 많기에 그리 오래지 않아 고점을 회복할 거라 확신했다.
그렇게 된다면 간단하게 두 배의 수익을 올리게 되는 거였다.
어차피 투자한 돈도 김인철의 차명 계좌에서 나온 자금이었기에 한동안 가상화폐에 묻어 둔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이 없었다.
남산. 국정원 원장실.
“그러니까 이게 다 사실이란 말이지?”
상석에 앉은 표현구 원장이 표정을 찡그린 채 손에 든 기밀 보고서를 탁자에 내려놓자 해외 파트를 맡고 있는 백정선 1차장이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CIA 쪽에서도 첩보를 입수하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인 것 같았습니다.”
몸을 뒤로 기댄 표현구 원장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다들 알고 있는 걸 가장 큰 이해관계자인 우리만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거군.”
“면목이 없습니다.”
앉은 채 머리를 숙인 백정선 1차장을 보며 표현구 원장이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질책했다.
“무지막지하게 돈질을 해 대는 CIA를 따라가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북한에 대한 정보만큼은 남들에게 뒤처져서는 안 되지 않겠어. 이번 한 번은 넘어가지만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 알겠나.”
“······예.”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문 표현구 원장은 하얀 연기를 빨아 당겼다가 천천히 내뱉으면서 말했다.
“청와대에 보고해서 지시를 받아야 되겠지만 이걸 그냥 놔둘 수는 없겠지?”
그러자 백정선 1차장이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면서 단호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이건 심각한 유엔 제재 위반일 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에 추적이 되지 않는 외화外貨가 들어간다면 핵 개발 비용으로 쓰일 수 있기에 어떻게든 막아야 됩니다.”
표현구 원장 역시 같은 생각인지 동의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하느냐는 건데······.”
왼편에 앉아 있던 도병진 3차장이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슬쩍 끼어들었다.
“관점을 바꿔서 이걸 북한이 보유한 연어급 잠수함의 실체를 직접 파악하는 기회로 삼는 건 어떻겠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의견에 표현구 원장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세히 설명해 보게.”
그가 귀를 기울이며 관심을 보이자 도병진 3차장이 크흠, 하고 목을 고르고는 말했다.
“북한이 대리로 내세운 중국인에게 접촉해서 저희가 연어급 소형 잠수함을 구매하는 겁니다.”
탁자에 둘러 앉아 있던 두 사람이 각자 놀란 반응을 보였다.
“뭐라고?”
“그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