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733
733
#잠수함 밀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표현구 원장은 이내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해 보라는 듯이 도병진 3차장을 쳐다봤다.
“사실상 북한 해군 전력이 거의 와해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이 바로 연어급 소형 잠수함이지 않습니까. 실제로 천안함 폭침을 비롯한 여러 도발에 사용됐고 말입니다.”
100톤이 채 되지 않은 소형 잠수함이지만 533mm 어뢰 발사관 2문을 갖춘 데다 해군의 해상 감시망을 뚫고 남쪽 깊숙이 침투해 들어올 수 있어 한국군 입장에서는 상당히 골치 아픈 존재였다.
“그동안 정보로만 파악하고 있던 연어급 소형 잠수함의 실물을 온전히 확보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이득이 될 것입니다.”
“흐음. 1차장 생각은 어때?”
팔짱을 낀 채 묻자 백정선 1차장이 잠시 고심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표현구 원장도 작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문제는 어떻게 소형 잠수함을 손에 넣느냐 하는 건데······.”
유엔 재제 문제도 있고 국정원이 직접 나서기에는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았다.
그러자 의견을 낸 도병진 3차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도 북한처럼 대리인을 내세워 일을 처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대리인이라고?”
눈을 치켜뜬 표현구 원장이 도병진 3차장과 시선을 맞췄다.
“예. 정보를 알려 준 자가 때마침 무기상이라고 하니 우리로선 일을 맡기기 딱 좋은 조건입니다.”
“그렇지. 그걸 깜빡하고 있었군.”
눈을 번득인 표현구 원장은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면서 차분히 머릿속을 정리했다.
혁권을 내세운다면 상대를 속이기에도 좋고 만약 문제가 생기더라도 돈만 손해 보고 꼬리 자르기를 해 버릴 수도 있어 부담이 없었다.
결정을 내린 표현구 원장은 어느새 거의 다 타들어 간 담배를 탁자에 놓인 크리스털 재떨이에 비벼서 말했다.
“좋아. 내일 청와대에 들어가서 각하께 보고를 할 테니까 두 사람이 함께 구체적인 작전 계획을 세워 봐.”
“옛.”
“알겠습니다.”
혁권이 심인성의 연락을 받고 논현동에 위치한 안전가옥에 도착한 건 나흘 뒤 늦은 저녁이었다.
넓은 정원에 높다란 돌담으로 둘러싸인 안전가옥은 바깥에서 내부를 전혀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고 곳곳에 CCTV를 비롯한 방범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안면이 있는 국정원 요원인 최기혁을 따라 이층집 안으로 들어가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심인성이 몸을 일으켰다.
“어서 오시오.”
“강남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니 역시 국정원이군.”
가볍게 악수를 나눈 혁권은 무표정한 얼굴로 실내를 둘러봤다.
“중정 시절부터 있던 거요.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우리라도 이렇게 땅값이 비싼 곳에 안가를 만들기가 쉽겠소.”
어깨를 으쓱이는 심인성의 말대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지만, 건물 구조를 비롯해 대체적으로 오래된 느낌이 났다.
두 사람은 가죽 소파로 가서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동행한 백성균은 최기혁과 함께 약간 거리를 두고 나란히 현관 입구 쪽에 섰다.
안주머니에서 국산 담뱃갑을 꺼낸 심인성은 한 개비를 입에 물고는 앞에 있는 혁권을 보며 말했다.
“마누라 등살에 끊으려고 금연 패치도 붙이고 했는데 잘 안 되는군. 김 대표도 한 대 피우겠소?”
혁권은 한쪽 팔을 앞으로 뻗어 상대가 내민 담배를 건네받았다.
찰칵, 하고 엄지로 라이터 뚜껑을 연 혁권이 먼저 담뱃불을 붙이고 심인성에게도 쓰겠냐는 듯 가볍게 던졌다.
어렵지 않게 라이터를 받아 낸 심인성은 손 안에 쥔 물건을 슥 보더니 오호 하면서 입을 동그랗게 말았다.
“좋은 걸 들고 다니는군.”
그가 준 건 명품으로 불리는 듀퐁 라이터였는데 그중에서도 1개에 5천 달러가 넘는 한정품이었다.
“원하면 가져가시오.”
“그래? 그럼 사양 않고.”
심인성은 고맙다는 뜻으로 라이터를 한 번 들어 보이고 그대로 제 주머니에 쓱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담배 연기를 한 모금 천천히 내뱉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 일 이후로 지금까지 호텔에 머물고 있는 것 같던데, 계속 그렇게 지낼 거요?”
“내가 어디서 묵건 그쪽에서 상관할 일이 아니지 않소.”
눈썹 끝을 치켜 올리며 불쾌한 듯 쳐다보자 심인성이 미소를 띤 얼굴로 능청스럽게 말을 받았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알다시피 김 대표가 큰 소동을 벌인 지 얼마 안 되다 보니까 관심을 가지는 눈이 많은 걸 어쩌겠소.”
감시를 받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지만 딱히 심인성의 잘못은 아니었기에 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다행히 정보기관에서 재빨리 손을 써서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서울 한복판에서 총격전을 벌이며 그 난리를 쳤으니 정부의 집중 감시 대상에 올라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경에 거슬렸지만 당분간은 그냥 참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
“조만간 새로운 거처를 구해서 옮길 거요.”
“그렇다면 여긴 어떻소?”
“······.”
뜻밖의 제안에 그는 미간을 좁혔다.
“대지도 넓고 서울 시내에서 이만한 집을 구하기도 힘들 거요. 뭐, 건물이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그건 리모델링을 하거나 아예 부수고 새로 지으면 간단히 해결되지 않겠소.”
“지금 나보고 국정원에서 쓰던 안가를 매입하라는 거요?”
“그렇소.”
너무나도 태연한 모습에 혁권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내 정색을 하고는 비꼬듯이 말했다.
“국정원에서 부동산 매매 일까지 하는 건 오늘 처음 알았군.”
“서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돕는 거 아니겠소. 김 대표는 새 거처를 구해서 좋고 우린 최근 몇 년간 거의 쓰지 않고 있는 유휴 재산을 처분할 수 있으니 양측 모두한테 득이 되는 일이지 않소.”
잠시 말없이 상대를 지그시 쳐다보던 혁권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시선을 마주친 심인성은 미소를 지우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본론을 꺼냈다.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하나 있소.”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혁권은 반도 피우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끄고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지난번 빚은 다 갚은 걸로 아는데, 아니었소?”
“아,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부탁을 하는 거요.”
심인성이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말했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오. 그냥 우리 대신 북한 당국이 팔려는 연어급 소형 잠수함 한 척을 은밀히 구매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요.”
놀란 혁권은 눈썹을 찡그리며 심인성을 봤다.
“지금 뭐라고 했소?”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북한 잠수함의 성능을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 윗선의 판단이오.”
“그럼 날 끼워 넣지 않고 직접 움직이면 되겠군.”
선을 그으면서 거부의사를 밝히자 심인성이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그를 설득했다.
“우리가 나서기에는 여러 가지로 걸리는 것이 많아서 말이오. 그리고 가능한 한 보안을 유지해야 되는 작전이니, 이미 이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김 대표가 맡아 줬으면 좋겠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곤 있지만 결국 심인성 아니 국정원의 의도는 하나였다.
언제든 꼬리를 자를 수 있는 손쉬운 도구로써 그를 이용하겠다는 거다.
얄팍한 수작을 금방 알아챈 혁권은 눈매를 날카롭게 만들고 심인성을 노려보았다.
“거절하겠소.”
말 한마디 붙이기도 힘들 정도로 매몰찬 반응이었다.
“이거 왜 이러시나? 김 대표에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잖소.”
“나하고는 하등 상관도 없는 이야기인데 당연한 거 아닌가. 그리고 당신 같은 공무원과 내 입장은 다르지. 돈도 안 되는 일에 굳이 나서기 싫군.”
“너무 그러지 말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소.”
“당신들에게만 좋은 거겠지.”
혁권에게선 여전히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한동안 그의 기색을 살피듯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심인성 과장은 작게 한숨을 내뱉곤 짧아진 담배 끝을 재떨이에 비벼서 껐다.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군. 이번 부탁을 들어주면 주성철 남매와 서은하가 관계된 일을 모른 척해 주지.”
“······!”
순간 눈썹 끝을 찡그린 혁권은 이내 표정을 바로 하며 말했다.
“무슨 말이오?”
“며칠간 세 사람을 데리고 뭔가 일을 벌였다는 건 알고 있소. 깊이 파고들어 가 보면 꽤 흥미로운 것이 나올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겠소?”
겉으로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내심 혁권은 국정원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한 걸 자책했다.
북한 고위층 자녀에 중요한 해커 부대 출신이었기에 세 사람 모두 국정원의 관리 대상 명단에 올라 있었다.
나름 신경을 쓴다고 상하이로 가서 작업을 끝냈는데, 국정원에서 그걸 놓치지 않고 주시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입을 다물고 있는 혁권을 보며 심인성이 구슬리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미리 말해 두지만 김 대표하고 불편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소.”
콧방귀를 뀌며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흥.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군.”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주시오.”
이야기를 하면서 심인성은 계속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일을 맡아 준다면 세 사람 일을 덮어 주는 건 물론이고 이 안가도 함께 넘겨주겠소.”
이까짓 집이야 그가 가지고 있는 재력이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못하는 건 주성철 남매와 서은하 세 사람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세 사람을 외국으로 빼내 새 신분을 만들어 주면 됐지만 아무리 증거를 철저하게 없앤다고 해도 국정원에서 작정하고 뒤를 캐다 보면 해킹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된다면 여러 가지로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조심했었어야 됐다고 뒤늦게 자책을 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끌려가는 것이 짜증 났지만 지금으로써는 국정원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혁권은 가만히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심인성을 지그시 노려보다가 말을 내뱉었다.
“호의를 보인 것이 후회가 되는군.”
“미안하게 됐소.”
그냥 건네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 느껴졌지만 불쾌한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잠수함만 가져다주면 되는 거요?”
싸늘한 태도에 심인성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연어급 잠수함에 사용되는 최신형 어뢰들을 함께 구해다줬으면 좋겠소.”
“그거면 되는 거요?”
상대가 손짓을 하자 최기혁이 한쪽에 있던 검은색 가방을 하나 가져와 탁자에 올려놓고는 물러났다.
“2,800만 유로요.”
잠금장치를 풀고 가방을 열자 500유로가 발행 중단 되면서 이제 최고액권이 된 200유로 지폐 뭉치가 차명으로 된 외국계 은행 통장 5개와 함께 비닐도 뜯지 않은 채 가득 들어 있었다.
“집은 최대한 빨리 명의를 넘겨주도록 하겠소.”
어차피 일을 맡기로 했기에 굳이 준다는 걸 마다하진 않았다.
혁권은 가방을 다시 닫으며 입을 뗐다.
“기한은 언제까지요?”
“가능한 한 빨리 일을 끝낼수록 좋소.”
혁권은 작게 머리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더 할 이야기가 없으면 이만 가 보겠소.”
그러자 백성균이 얼른 다가와 돈이 든 가방을 챙겨 들고는 현관문을 나서는 혁권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