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81
81
모함메드 장관은 슬쩍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가지고 있는 무기도 권총 하나뿐이라 크게 도움이 안 될 테니 난 그냥 여기에 있겠소.”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어차피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혁권은 순순히 머리를 끄덕였다.
잠시 뒤 엄폐해 있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 저격 위치를 잡은 하킴이 총을 쏘는 걸로 공격을 시작했다.
타아앙!
강한 총성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픽업트럭 화물칸에 서 있던 기관총 사수가 피를 뿌리면서 쓰러졌다.
“커헉!”
이때까지만 해도 주둔지에 있는 정규군과 싸우는 데 집중하던 적들은 혁권 일행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가만히 타이밍을 재고 있던 혁권은 바로 이어서 RPG 사수가 저격을 당해 넘어지는 걸 보곤 총을 쏘며 뛰어 나갔다.
“지금이야!”
타타탕! 타탕! 탕!
총구에서 불꽃이 튀며 발사된 총탄에 등을 보이고 있던 적 서너 명이 제대로 저항도 못 해 보고 죽음을 맞이했다.
“아악.”
“윽!”
그때서야 상황을 알아차린 적들은 크게 당황했다.
“뭐, 뭐야!”
“제길! 뒤에 적이야!”
배후에서 나타난 혁권과 함단을 발견한 적이 황급히 기관총을 돌리려고 했다.
그 순간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먼저 날아온 총탄이 기관총 사수의 머리를 박살 냈다.
퍼걱.
둔탁한 소음과 함께 머리에 총알구멍이 난 기관총 사수는 그 자리에 허물어지듯 힘없이 주저앉았다.
“어딜.”
한 번에 기관총 사수를 저격해 버린 하킴은 총구를 돌려 다음 목표를 겨냥하고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이 울리자 쓰러진 사수 대신 픽업트럭 위로 올라가 기관총을 잡으려던 적병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이렇게 하킴이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상대의 중화기를 무력화시키는 사이 혁권과 함단은 모퉁이를 뛰쳐나가 도로 한쪽에 버려져 있는 수레 뒤에 몸을 숨긴 채 적을 공격했다.
타타타탕!
혁권이 쏜 총탄에 픽업트럭 옆에 서 있던 적이 앞으로 엎어졌다.
이걸로 벌써 네 명째였다.
재빨리 탄창을 새 걸로 갈아 끼운 그는 다시 자세를 잡고 총을 쐈다.
또 한 명의 적이 쓰러졌지만 아직 죽여야 될 상대가 많았다.
피슝! 슝.
적도 몸을 돌려 대응사격을 해 왔지만 제대로 조준을 못 하고 빗나가는 것이 많은 걸 봐서 확실히 당황하고 있었다.
체계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껏 기세를 올리면서 정부군을 몰아붙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황이 역전돼 앞뒤로 협공을 받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뒤쪽은 몸을 숨길 엄폐물이 마땅치 않았기에 더욱 상대하기가 불리했다.
세 명밖에 없어 전력으로 달려들면 충분히 혁권과 부하들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당황한 적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까 죽은 사수 대신 기관총을 잡으려던 지휘관이 저격을 당하는 바람에 혼란이 더욱 가중됐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혁권 입장에서는 운이 제대로 따라 줬다.
거기다 주둔지에 있던 정부군 병력이 상황을 눈치채고 앞으로 치고 나오자 적은 더욱 코너에 몰렸다.
흔들리던 상대의 전의를 꺾어 버리는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상황을 추슬러야 될 지휘관의 부재에 적들은 어찌해야 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결국 도주를 선택했다.
“보스, 놈들이 도망칩니다.”
“나도 봤어.”
얼마나 급했는지 동료의 시체도 챙기지 않고 허겁지겁 달아나는 적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적이 조금만 더 체계적으로 대응했다면 당하는 건 오히려 이쪽이었을 터였다.
“보스, 주둔지에서 누가 나옵니다.”
함단의 말에 얼른 몸을 돌려 앞을 보자 정부군 군복을 입은 사내 한 명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적들이 버리고 간 픽업트럭 근처에서 멈춰 선 사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거기 소속이 어디야!”
그러자 혁권이 총구를 아래로 내린 채 몸을 숨기고 있던 수레 뒤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같은 편이니 쏘지 마시오.”
확연히 외모가 다른 혁권의 모습에 경계하는 표정을 짓던 사내는 이어서 몸을 일으킨 함단을 보곤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자네는!”
“오랜만이군.”
두 사람의 반응에 혁권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아는 사이인가?”
“예. 제가 말씀드렸던 수송대에 근무한다는 장교가 바로 이 친구입니다.”
“아. 그래.”
뜻밖의 우연에 놀라워하면서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릴 것 같다는 생각에 그는 살짝 얼굴을 풀었다.
“자네가 우릴 도와준 건가?”
“뭐, 그렇게 됐네. 그 전에 인사부터 하게 내가 모시는 분일세.”
혁권은 미소를 지으며 한쪽 손을 내밀었다.
“반갑소이다. 김혁권이라고 하오.”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면서 내쫓기듯 군에서 나간 건 알고 있었지만, 난데없이 나타나 보스라며 외국인을 소개해 주자 사내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그를 탐색하듯 살펴보며 손을 맞잡았다.
“에프칸 중위입니다.”
“함단한테 이야기를 많이 들었소이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온 겁니까?”
“흐음. 그게…….”
뭐부터 말을 꺼내야 될지 고심할 때 마침 하킴이 숨어 있던 모함메드 장관을 데리고 다가왔다.
“마침 저기 나오시는군.”
혁권의 말에 시선을 돌린 에프칸은 모함메드 장관을 발견하고는 얼른 자세를 바로 하며 경례를 올렸다.
그러자 모함메드 장관도 잔뜩 거드름을 피우면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여기 책임자인가?”
“그렇습니다. 새벽에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본대가 출동하고 현재 제가 잔류 병력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남은 병력이 얼마나 되나?”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 둔 데다 방금 전 전투로 피해가 있어 현재 인원은 스무 명이 채 안 됩니다.”
“그거뿐이라고.”
“예.”
생각보다 너무 작은 병력에 모함메드 장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는데 병력이 많다면 고작(?) 서른 명밖에 안 되는 이슬람 형제단의 공격에 밀리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짜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모함메드 장관 앞에서 안절부절 눈치만 보는 에프칸을 그가 나서 구해 줬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스무 명의 무장 병력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래도…….”
모함메드 장관은 아직 마뜩치 않은 기색이었다.
“설마 저희만으로 공항까지 가는 길을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그것도 장관님을 호위하면서?”
“으음. 아무래도 그건 힘들겠지.”
적어도 상식이란 것이 머리에 제대로 박혀 있는 사람이라면 턱도 없는 소리라는 걸 알 터였다.
제 뜻대로 뭐가 안 돼 뾰로통해진 아이처럼 골이 난 표정을 한 모함메드 장관은 공격의 화살을 에프칸에게로 돌렸다.
“중위!”
“옛!”
“지금부터 자넨 휘하 병력을 이끌고 날 공항까지 호위하도록 하게.”
“공항이라 하셨습니까?”
깜짝 놀란 에프칸이 되묻자 모함메드 장관은 흥,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방금 있었던 전투 때문에 귀가 상하기라도 했나? 감히 두 번이나 말을 시키려 하다니 간덩이가 부었군.”
“아, 아닙니다! 확실히 알아들었습니다.”
찔끔한 얼굴로 차렷 자세하며 에프칸이 대답하자 모함메드 장관은 그제야 입가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있던 혁권은 한 편의 촌극을 보는 듯한 느낌에 기가 차면서도 겉으론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 가운데 대답은 했지만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우물쭈물하던 에프칸이 모함메드 장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장관님.”
“할 말이라도 있나.”
“꼭 공항으로 가셔야 되는 겁니까.”
“뭐야!”
모함메드 장관이 눈을 치켜뜨자 에프칸은 황급히 변명하듯 이야기를 했다.
“현재 전투가 가장 치열한 곳이 바로 트리폴리 국제공항입니다. 대통령께서 군 지휘부와 그리로 옮겨 가시면서 이슬람 형제단도 모든 전력을 투입해 공격을 퍼붓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공항을 포위하고 공격 중인 이슬람 형제단의 병력이 육백 명이 넘습니다.”
생각보다 강한 전력에 모함메드 장관은 흠칫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많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들이 현장에서 대거 가담하면서 세를 불린 것 같습니다.”
“끄으응.”
일반 범죄자들도 있지만 수백 명에 달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걸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솔직히 저희가 장관님을 모신다고 해도 포위망을 뚫고 공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그러지 마시고 차라리 후세인 대령님 쪽에 합류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모함메드 장관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아부카 여단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날 보고 자위야까지 가라는 거야?”
“아닙니다.”
“그럼 뭐야!”
“거기까지 가실 필요 없습니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혁권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설마!”
“후세인 대령님께서 병력을 이끌고 트리폴리로 진격 중이십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외곽까지 진출하셨을 겁니다.”
모함메드 장관도 크게 놀랐다.
“아부카 여단이 이쪽으로 온다고!”
“자위야 전선도 유지해야 되기 때문에 전체는 아니고 일부 병력을 빼내 이리로 오는 건 확실합니다.”
ADDI와의 전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방어 병력을 남겨 두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보다 정부군 최고의 정예부대인 아부카 여단이 움직였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이들이라면 불리한 전세를 한 번에 뒤집어 버릴 수 있는 패였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한 도박이기도 했다.
아부카 여단이 나선다면 이슬람 형제단을 확실히 몰아붙일 수는 있겠지만, ADDI와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 서부 전선이 약해지는 걸 감수해야 됐다.
이슬람 형제단을 격퇴하고 트리폴리를 안정화시키는 동안 전선이 버텨 준다면 다행이었으나, 만에 하나 방어선이 뚫리기라도 했을 때는 정부군은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는 최악의 상황에 몰리는 거였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정부군이라고 해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 분명할 테니 샤라빌 대통령으로서는 승부수를 띄운 거였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겼다.
현재 지휘부와 떨어져 혼자 낙오되어 있다고는 해도 샤라빌 대통령의 측근이자 중요 각료인 모함메드 장관도 모르는 사실을 일개 수송대 장교가 알고 있는 것이 의아했다.
모함메드 장관도 이걸 이상하게 여겼는지 의아한 얼굴로 에프칸 중위를 쳐다봤다.
“자네가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러자 에프칸이 바로 이유를 설명해 줬다.
“실은 보유한 차량을 몰고 가서 아부카 여단의 신속한 이동을 도우라는 지휘부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그렇군.”
이야기를 들으니 모든 의문이 풀렸다.
명령을 받고 차량을 끌고 주둔지를 나설 찰나에 적들의 공격을 받았던 거였다.
혁권은 손에 들었던 AK 소총을 어깨에 메면서 모함메드 장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으음.”
공항으로 가면 샤라빌 대통령과 합류를 할 수 있는 대신 큰 위험부담이 따르고, 아부카 여단을 선택하면 지휘부하고는 떨어지겠지만 신변의 안전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적을 격퇴하는 공까지 세울 수 있으니, 어느 쪽이든 장단점이 있었다.
두 가지 갈림길 가운데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던 그는 긴 고민 끝에 고개를 들었다.
“좋아. 후세인 대령 쪽에 합류를 하도록 하지.”
“아, 잘 생각하셨습니다!”
반색을 하며 기뻐하는 에프칸 중위에 이어 혁권도 슬그머니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더 이상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되는, 편한 길을 선택했으니 그로서는 잘된 일이라 반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 저희와는 여기서 헤어지는 걸로 하지요.”
“왜, 자네들도 함께 가면 좋지 않겠나?”
에프칸 중위가 이끄는 병사들도 있지만, 지금껏 든든하게 그를 지켜 준 혁권 일행과 이제와 떨어져 나간다는 게 약간 아쉬운 듯 모함메드 장관이 물었다.
“뒤에 남은 다른 직원들을 챙겨야 해서 말입니다.”
“흐음. 그런 사정이 있다면야 어쩔 수 없지.”
언제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듯 절박하게 매달리더니, 제 편이 나타나니까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태도를 바꿔 여유까지 부리는 태도에 혁권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래서 사람이 간사한 동물이라고 하는 것인가 보다.
“오늘 일은 잊지 않도록 하지.”
내밀어진 손에 혁권이 팔을 뻗어 마주잡았다.
“장관님께서도 후세인 대령과 무사히 합류하시길 바랍니다.”
짧은 인사가 끝난 뒤, 모함메드 장관은 잔뜩 거드름을 피우면서 에프칸 중위를 따라 수송대 주둔지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