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843
843
#각오는 됐겠지Ⅱ
신년을 맞이하기 위해 겐이치는 이른 새벽부터 신사로 갈 채비를 했다.
뉴스를 보니 올해는 작년 이맘때보다 훨씬 추워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바람에 노약자는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라는 글자가 아래쪽에 자막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전에는 눈밭에서 굴러도 감기 한 번 든 적이 없을 정도로 체력을 자랑하던 그였지만, 어느새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였기에 겐이치는 통이 넓은 하카마에 두툼한 솜을 넣은 겉옷을 걸치고, 목도리까지 둘러 단단히 추위에 대비를 했다.
겐이치를 따라다니며 항상 시중을 드는 여성 역시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차려입은 후리소데 차림이었는데, 이는 겐이치가 매해 신사에 들러 운세 뽑기를 하는 것을 전통처럼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녀 역시 격식에 맞게 옷차림새를 가다듬은 것이었다.
겐이치가 신발을 신고 나오자 좌우로 늘어서서 대기하고 있던 조직원들이 연달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오야붕.”
“나오셨습니까, 어르신.”
그는 손을 들어 조직원들에게 대충 인사하며 커다란 대문 앞에 세워져 있는 고급 세단으로 몇 발자국 안 되는 걸음을 옮겼다.
고용인들이 말끔하게 치웠다고는 하나 아직도 계속 눈이 내리고 있어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밑에서 뽀드득하며 눈을 밟는 소리가 났다.
뒷좌석에 올라타자 그때까지 허리를 숙이고 있던 조직원들이 자세를 바로 하고는 서둘러 각자 차량에 탑승했다.
건너편 차선에 세워진 닛산 자동차 안에서 잠복근무를 하고 있던 젊은 형사가 그 모습을 보곤 피곤에 찌든 얼굴로 투덜거렸다.
“그냥 방구석에 처박혀 있지. 날씨도 추운데 꼭두새벽부터 이게 뭔 고생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고스케 형사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을 받았다.
“저놈들 연례행사잖아. 놓치지 말고 어서 따라붙기나 해.”
“알겠습니다.”
엔진 시동을 켠 젊은 형사는 줄을 지어서 야쿠자들을 태운 차량들 뒤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출발했다고 합니다.”
약간 긴장한 듯한 하킴의 말에 뒷좌석 가죽 시트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있던 혁권이 눈을 떴다.
차 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가운데 그는 뒤로 몸을 돌린 하킴과 시선을 맞추며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본 경찰은 얼마나 따라붙었어?”
매년 있었던 연례행사이지만 야쿠자 조직원 수십 명과 거물인 겐이치가 움직이는 거였기에 혹시 모를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 경찰이 항상 감시를 하며 따라붙었다.
“형사 둘이 탄 승용차 한 대뿐이랍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적군.”
“저희가 건 협박 전화 때문에 경찰 대부분이 컨테이너 부두에서 폭발물을 수색하느라 숫자가 많이 줄어든 모양입니다. 그래도 목적지인 신사에 경찰 기동대 1개 중대가 배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꼼수가 제대로 먹혀서 다행이군.”
평소처럼 경찰이 많았다면 일을 벌이기가 쉽지 않았을 터였다.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보자 거리 곳곳에 밤새 내린 눈이 쌓여 있었고 아직 이른 아침인 데다가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거의 없었다.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은 혁권은 매섭게 눈을 번득이면서 지시를 내렸다.
“계획대로 시작하라고 해.”
“옛.”
야쿠자들이 탄 차량 행렬이 길게 지나가자 좁은 골목 안에 세워져 있던 택배 트럭이 밖으로 나와 뒤를 바짝 따라갔다.
택배 직원 복장을 하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라미가 긴장한 얼굴로 앞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타깃이 탄 차가 검은색 벤츠 맞지.”
그러자 운전대를 잡은 아미르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 나머지는 경호원 차량이야.”
“좋아. 괜히 같이 뒈지기 싫으면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라고.”
“너나 조심해.”
퉁명스러운 대답에 라미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발아래 숨겨 둔 AK47 자동소총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철컥하는 쇳소리를 내며 장전 손잡이를 당겼다.
“어디 한번 화끈하게 놀아 보자고.”
속력을 올린 택배 트럭은 옆 차선을 타고 경호 차량을 추월해 갔다.
커지는 엔진 소리만큼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어느새 겐이치가 탄 벤츠 승용차하고 나란히 달리게 된 라미는 미리 정해 둔 교차로가 나오자 머리에 달린 손잡이를 꽉 움켜쥐면서 크게 외쳤다.
“지금이야!”
그와 동시에 아미르가 이를 꽉 깨문 채 양손으로 쥐고 있던 운전대를 옆으로 확 꺾었다.
“꽉 잡아!”
끼이이이익!
갑자기 방향을 바꾼 택배 트럭은 곧장 옆 차선에 있던 벤츠 승용차 옆구리를 달리는 속도 그대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들이받았다.
꽈아아앙!
범퍼 앞부분을 단단히 보강해 뒀지만 엄청난 충격이 전신에 다 전해지며 마치 온몸이 콘크리트 벽에 부딪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택배 트럭은 측면을 들이받은 채 벤츠 승용차를 끌고 도로를 벗어나 왼편에 있던 스포츠 용품 가게에 다시 부딪치고 나서야 멈추어 섰다.
꽈직.
“이런!”
“어서 차를 세워!”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경호 차량들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서고는 조직원들이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차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그 순간 타이어가 마찰을 일으키는 소리가 나더니 새로 나타난 승용차에서 검은색 방독면을 뒤집어 쓴 혁권과 부하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깡통처럼 생긴 물건을 냅다 집어 던졌다.
“이거나 먹어라!”
퍼어엉! 펑!
폭음을 내면서 터진 건 바로 투척용 최루탄이었다.
순식간에 주변 거리가 하얀 최루가스로 뒤덮여 버렸다.
반응이 빨랐던 몇몇은 급하게 코와 입을 손으로 막았으나 이미 대부분의 야쿠자 조직원들이 무방비 상태로 가스를 들이마신 뒤였다.
“콜록, 콜록!”
“으으. 젠장!”
사방에서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고, 눈과 코는 물론 온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모조리 침과 눈물을 쏟아 내며 흐릿해진 시야로 손발을 허우적대는 조직원들로 인해 한순간에 난장판이 펼쳐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혁권과 부하들이 차량 행렬 사이로 뛰어들어서는 손에 든 권총을 쏴서 상대를 무력화시켰다.
타탕! 탕! 탕!
“크흑.”
“아악!”
총성이 울릴 때마다 야쿠자 조직원들이 피를 뿌리면서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졌다.
이런 가운데 충격을 받아 반쯤 찌그러진 차 문을 발로 걷어차듯이 억지로 열고 내린 라미는 방독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택배 트럭과 건물 사이에 끼여 있는 벤츠 승용차를 보며 흰 이를 드러내 웃었다.
그러자 안에 타고 있던 겐이치가 다쳤는지 이마에서 시뻘건 피를 흘리면서 힘겹게 상체를 바로 세우다가 자신을 향한 총구를 발견하곤 눈을 크게 부릅떴다.
“다 뒈졌어!”
타타타탕!
날카로운 자동소총 소리가 울리면서 총탄이 비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방탄 처리가 되어 있는지 차체에 맞아 오렌지색 불꽃만 튈 뿐 아무런 흠집도 낼 수가 없었다.
“제길!”
와락 얼굴을 구긴 채 욕설을 내뱉던 라미는 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에 옆을 보곤 재빨리 총구를 돌려 방아쇠를 당겼다.
투타타탕! 타탕!
겐이치를 구하기 위해서 달려오던 야쿠자 조직원들이 라미가 쏜 총탄에 맞아 썩은 짚단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총알이 다 떨어지자 얼른 허리에 꽂아 둔 새 탄창을 꺼내 갈아 끼우던 라미는 뒤편에서 들리는 소리에 얼른 몸을 돌렸다.
“다 끝냈어.”
자욱한 흰 최루가스를 헤치고 모습을 나타낸 사람은 바로 혁권이었다.
함께 택배 트럭을 탔던 아미르와 다른 동료들도 옆에 있는 걸 보고 라미는 반색을 했다.
“보스.”
“놈은 처리했어?”
“그게 방탄차인 데다가 경호원 놈들을 처리하느라 아직······.”
“그렇단 말이지.”
고개를 돌려 먼지와 콘크리트 파편을 뒤집어쓴 채 건물에 쳐 박혀 있는 벤츠 승용차를 보면서 혁권이 말했다.
“내가 직접 끝내도록 하지.”
벤츠 승용차 가까이로 다가간 혁권은 건물 벽과 택배 트럭 때문에 차 문이 막혀 버려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뒷좌석에 갇혀 있던 겐이치하고 시선이 마주쳤다.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의 보스답게 충혈된 눈으로 그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걸 본 혁권은 무슨 생각인지 얼굴에 쓰고 있던 방독면을 벗어 버렸다.
“네, 네놈은!”
단번에 그를 알아본 겐이치의 눈이 놀라움에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부릅떠졌다.
“날 건드렸으니 이제 대가를 치러야지.”
알아듣던 말든 차창에 얼굴을 바짝 들이댄 채 한국말을 내뱉은 그는 품속에서 수류탄을 두 개 꺼내 들었다.
“······!”
겐이치의 표정에 당혹감이 번지는 가운데 혁권은 능숙하게 안전핀을 뽑은 뒤 수류탄을 벤츠 승용차 밑에 던져 넣었다.
“내가 주는 선물이야.”
그러고는 얼른 다시 방독면을 쓰고는 멀리 떨어지면서 소리를 쳤다.
“모두 피해!”
택배 트럭 뒤로 몸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커다란 폭음이 연달아 울리면서 뿌연 흙먼지가 쏟아졌다.
꽈아앙! 꽝!
엄폐물 밖으로 나와 쳐다보자 총격에도 끄덕 없던 벤츠 승용차가 엉망으로 부서진 채 하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한쪽 손에 권총을 들고 다가간 혁권은 깨진 차창 너머로 피투성이가 된 채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대 신음을 흘리고 있는 겐이치를 내려다봤다.
겐이치는 독기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울컥 검붉은 피를 토해 냈다.
“쿨록. 내가 이렇게 당하다니······.”
“네놈 스스로 자초한 일이야.”
차갑게 말을 내뱉고는 총구를 겐이치의 이마에 대고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가죽 시트가 온통 피범벅이 되며 숨이 끊어진 겐이치는 앉은 자세 그대로 머리를 아래로 툭 떨궜다.
“보스, 이제 그만 가셔야 될 시간입니다.”
번들거리는 눈으로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하킴의 말에 혁권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목표를 달성한 이상 미적거리면서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 다른 부하들도 보조를 맞춰 썰물처럼 빠져나와 세워 둔 차량을 나눠 타고 현장을 벗어났다.
한편 아무 생각 없이 차량 대열을 따라가던 형사들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크게 당황했다.
“주임님!”
시내 한복판에서 그것도 총격전이 벌어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 놀라고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
최루탄이 터지고 날카로운 총성이 쉬지 않고 들리는 걸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고스케는 후배 형사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이제 어쩌지요?”
하필이면 자신이 임무를 수행할 때 이런 일이 생기다니 더럽게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고스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본청에 연락해서 지원 팀을 보내 달라고 그래!”
“알겠습니다.”
후배 형사가 한쪽에 설치된 무전기 핸드 마이크를 집어 들고는 다급하게 지원을 요청하자 고스케는 점퍼 안에서 리볼버 권총을 꺼냈다.
그러고는 조수석 차문을 열자 후배 형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설마 지금 밖에 나가시려는 겁니까!”
“저걸 그냥 놔둘 수는 없잖아.”
과연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더 악화되지 않도록 막는 시늉이라도 해야 됐다.
밖으로 나온 고스케는 소매로 입과 코를 틀어막은 채 하늘에다가 공포탄을 쏘면서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탕! 탕! 탕!
“경찰이다!”
하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아오는 총탄에 기겁을 하며 얼른 바닥에 엎드려야 했다.
피슝! 슝.
“히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