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
130화.
아진 그룹 하반기 채용의 전면 중단.
서류 전형에 합격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시험을 준비하던 지원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다른 계열사들 같은 경우는 그저 수십, 수백 통의 전화로 어느 정도 무마되었지만, 아진 건설만큼은 달랐다.
“진짜 취소된 거예요?”
“왜 문이 닫혀 있어요? 아니 바로 하루 전날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갑자기 면접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TV로 접한 지원자들은 허망함을 참지 못하고 광화문에 있는 아진 건설 본사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앞에는 불이 다 꺼진 사무실뿐이었다. 서로 얼굴도 모르던 사이였지만, 취업이라는 절박함과 조급함에 그들은 서로에게 강력한 동질감을 느끼며 이리저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돌아다녔다.
“여기 오늘부터 한동안 영업 안한다든디?”
그리고 그들은 돌아다니다 우연히 만난 건물 청소부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네?”
“그······. 머시냐? 요즘에 그 유명한 지하도시 있잖어. 그거 만들다 압수 수색도 당하고 사장도 교도소 가고 맨시리 욕보다가 결국 문 닫았어. 여기 아무도 없으니까 퍼뜩 돌아가.”
아진 건설이 단순히 채용을 중단한 게 아니라 영업 자체를 중단하고 회사 문을 닫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허탈함에 멍하니 아진 건설 본사 앞 광화문 거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수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늘어났다.
수십에서 수백, 수백에서 수천, 수천에서 수만 명까지.
그리고 그렇게 모인 그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씨발! 우리도 일하고 싶다!”
“정부는 왜 열심히 일하는 기업을 건드냐!”
“일자리 문제도 책임 못 지면서 나대지나 마라!”
“이준희 회장은 당장 약속을 지켜라!”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를 좌절과 분노의 아우성. 그 목소리는 마치 들불처럼 번져나가 광화문에 몰려든 모든 이들의 마음에 활활 타오르는 장작을 쑤셔 넣었다.
“이게 다 국회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한다면서 청년 일자리도 다 조져놓냐!”
“오늘 면접 본다고 산 양복값 물어내라 이 새끼들아!”
광화문을 가득 메운 그들의 분노의 함성이 울려 퍼지자 기자들은 어디에선가 우르르 몰려와서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수십, 수백 대의 대형 경찰 버스가 일제히 들이닥치더니 광화문 거리를 장악한 그들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 광화문 거리에 있는 시위자 여러분들에게 알립니다. 지금 하고 계신 시위는 허가받지 않는 불법 시위입니다. 이 경고 방송 이후로 자진 해산하십시오. 자진 해산하지 않고 계속 광화문 거리를 점거할 시에는 강제 해산을 집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진 해산하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명 물러나는 자는 없었다. 양복을 입은 채 몰려든 그들은, 마치 배수의 진을 친 병사들처럼, 독기 어린 비장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경찰들은 예고한 대로 완전무장을 한 채로 조금씩 조금씩 그들을 압박해왔다.
“꺄아악! 어딜 만져!”
“경찰이 죄 없는 시민을 공격한다!”
강제 해산을 집행한 경찰들에 의해서 아수라장이 된 광화문 일대가 카메라에 담겼다. 그리고 그들은 경찰에게 질질 끌려갈 때까지도 모두가 하나의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도 일할 수 있다!”
냉정한 사회에서 뒤처진 그들의 슬픔과 한이 담긴 외침이 전국에 울려 퍼졌다.
“우리도 일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의 간절함이 담긴 절규는 사람들의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에게 일할 기회를 달라!”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 그곳에서 이준희 회장은 부담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세 사람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그 어색한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허허허······. 이준희 회장님께서 엄청난 결정을 하셨더군요. 그렇게 급작스럽게 채용 계획을 취소하다니요. 사람들의 항의가 대단해서 많이 부담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온화한 표정이지만, 초조한 눈빛을 숨기지 못하는 김하진 국무총리의 말에 이준희 회장은 눈을 뜨며 차갑게 대꾸했다.
“부담스러운 건 내가 아니라 네놈들이겠지. 어디서 내 앞에서 세 치 혀를 놀리고 있는가?”
그 말에 김하진 국무총리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준희 회장은 그것으로 모자란 지 계속해서 그를 쏘아붙였다.
“전기찬. 그 친구가 권한 정지를 당하면서 네놈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됐다고 뭐라도 된 줄 아나? 그런 중요한 직책을 맡긴 사람을 충성을 다해 보좌하지는 못할망정 적과 작당해서 뒤통수를 치다니. 에잉······쯧쯧.”
“허허허. 회장님. 말이 너무 심하십니다. 이 친구라고 뭐 그러고 싶었겠습니까? 정치란 게 다 이런 것이죠. 뻔히 침몰하는 배에 가만히 기다리다 같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건 충성심이 아니라 어리석음이 아니겠습니까?”
이준희 회장의 일침에도 대한자유당의 김국진 의원은 웃음을 잃지 않고 여유롭게 답했다. 하지만 이준희 회장은 앞에 앉아 있는 두 정당의 최고 의원들을 노려보며 꾸짖듯이 말했다.
“서로서로 견제하고 싸우며 나라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도록 해야 할 놈들이 서로 작당해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끌어내리나? 이게 쿠데타랑 뭐가 다르지?”
“다르지요. 쿠데타는 불법이지만 이건 헌법이 내린 정당한 절차에 의한 합법 아닙니까?”
이준희 회장의 말에 비웃음 섞인 웃음을 내뱉으며 김국진 의원이 말했다.
“그러게 왜 그런 짓을 벌이셨습니까? 거대 도시? 그 허무맹랑한 계획 때문에 서울 부동산 가격이 지난 2년간 얼마나 큰 혼란을 겪었으며, 우리 의원님들의 손해가 얼마나 극심한데요.”
새나라민주당의 장태운 의원 마치 왜 그랬냐는 듯이 이준희 회장에게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오르기는커녕 현상 유지나 떨어지기만 한 서울 부동산 가격에 큰 손해를 본 그는 쓰디쓴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 말에 이준희 회장은 인상을 잔뜩 구기며 물었다.
“그래서······. 네놈들이 이런 짓을 벌인 게 고작 그 땅값 떨어지는 게 무섭다는 것 때문인가? 나라가 얼마나 큰 혼란에 빠지는지, 사회 전체가 받는 피해는 생각하지도 않는가? 네놈들은 그러면서도 국민을 대표한다고 소리치고 다니는가!”
이준희 회장의 꾸짖음과 같은 호통에 두 의원은 양심이 찔리는지,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이상 대꾸하지 않고 이준희 회장을 불러낸 진짜 목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잡설은 그만하도록 하죠. 어차피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도 없고, 이미 벌어진 일이니 말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서 논의하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겠습니까?”
“미래?”
“아직은 정정하시지만, 회장님도 이제 많이 늙으셨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거대 기업을 이끌어가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슬슬 아드님에게 아진 그룹을 물려주셔야죠.”
장태운 의원이 은근한 어조로 말하자 이준희 회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하나뿐인 아들놈을 교도소 철장 안에 처넣은 놈들이 네놈들 아니었나?”
그 말에 미묘하게 표정이 변했지만, 장태운 의원은 뻔뻔한 태도로 답했다.
“넣은 것이 저희인 것은 맞지만, 그를 다시 빼낼 힘을 가진 것도 저희입니다. 회장님이 저희의 부탁들만 들어주신다면, 이주용 부회장이나 이민식 사장은 아무 문제 없이 다시 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겁니다.”
“부탁?”
이준희 회장의 물음에 김국진 의원이 대신 답했다.
“지금 광화문 일대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아시고 계실 겁니다. 10만 명이나 뽑겠다고 했다가 이를 취소한 것 때문에 사람들의 원성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채용 계획을 추진하시지요.”
다시 채용 계획을 예정대로 진행하라는 그의 말에 이준희 회장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허허허······. 아진 건설 자체가 영업을 중단한 상태인데 어디서 그런 대규모의 신규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겠는가? 그건 내 눈에 흙이 들어간다 해도 불가능하네.”
“그게 힘드시다면 회장님께서 다시 국민 앞에서 언더월드 프로젝트가 모두 거짓이었고, 10만 명을 애초에 채용할 계획이 없었다고 직접 말하십시오.”
“내가 왜 그러겠는가? 지금도 충분히 오래 살아서 사람들에게 욕먹어서 더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네.”
전혀 협조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준희 회장의 태도에 세 사람의 낯빛이 조금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차가운 눈빛으로 은근한 협박을 그에게 하기 시작했다.
“회장님. 조금 더 숙고해서 결정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좋든 싫든, 칼자루를 쥔 것은 우리입니다. 아직 필요가 있기에 아진 그룹 전체와 회장님을 건들지 않았을 뿐이지,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지금 이 사태가 아진 건설만이 아니라 아진 그룹 전체로 번질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도 그 칼을 휘두르겠다는 섬뜩한 위협에도 이준희 회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태연한 표정으로 시원시원하게 그들에게 말했다.
“마음대로 하게나.”
“뭐······뭐라고 하셨습니까?”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더듬으며 되묻는 그들에게 이준희 회장은 숨을 크게 내쉬며 다시 한번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명명백백히 밝혔다.
“자네들 원하는 대로 하라고. 아진 그룹 전체를 들쑤시고 뒤집어엎어 나까지 교도소에 처넣고 싶다면 그렇게 하게. 이 나이까지 돼서 휠체어 타고 검찰 앞에 출두하면서 쇼하고 싶지 않으니 말이네. 원한다면 내 자백 증언이라도 해 주지.”
“회장님······. 진심입니까?”
“단순한 입에 발린 소리나 할 게 아니라 진심으로 자네들이 그럴 마음이 있다면 막지 않겠네. 물론 그렇게 됐을 때 일어날 후폭풍이 얼마나 큰지는 굳이 내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자네들은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
이준희 회장을 구워삶으려고 온 세 사람은 너무나도 평화로운 표정으로 자폭 스위치를 들이미는 그의 태도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보면서 이준희 회장은 품 안에 든 하얀 봉투를 그들 앞에 던져놓았다.
“이······이게 뭡니까?”
“오늘 나에게 온 통지서라네.”
“무슨······통지서라는 거죠?”
영어로 무언가가 가득 쓰인 종이를 서로 대충 돌려보던 중, 김하진 국무총리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찬찬히 안의 내용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경악해 헛숨을 들이켰다.
“헉······이건!”
“뭐······뭔데 그러나?”
깜짝 놀란 김하진 국무총리를 보면서 두 의원은 당황한 기색으로 물었다.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국무총리를 보면서 이준희 회장은 친절하게 대신 그 안의 내용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었다.
“긴급 주주 총회 소집 통보서네. 나도 오늘 전달받은 내용이지.”
“주주 총회요? 갑자기 무슨······?”
이준희 회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 둘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의결 안건은 아진 그룹 최고 경영자의 강제 퇴진과 아진 그룹 법인 본사의 소속국 변경에 관한 내용이네.”
“뭐······뭐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소속국 변경이라뇨?”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종이를 뺏어가다시피 낚아챈 두 의원은 찬찬히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정말로 이준희 회장의 퇴진과 아진 그룹의 본사를 한국에서 미국으로 변경한다는 안건이 골자로 적혀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 긴급 주주 총회를 소집한 주체가 누구인지 보고는 깜짝 놀라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아르고스가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런 짓을? 회장님이랑 협력 관계가 아니었······”
“기업끼리 친구와 적이 어디 있겠는가? 자네들이 하는 정치가 그렇듯, 재계도 다를 바 없네. 제아무리 거대한 덩치의 맹수라도 한번 약한 모습을 보이면 물어뜯기는 법이지. 에잉······. 하여간 돈 앞에서는 다들 피도 눈물도 없어서 사람 사는 맛이 없다니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젓는 이준희 회장을 보면서 그 둘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지······지금 이렇게 가만히 있을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러다 정말 아진 그룹 전체를 미국에 빼앗기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이럽니까?”
그 말에 이준희 회장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알게 뭔가? 어차피 물려줄 아들놈도 교도소 가서 없는 상황에 말이야.”
“······.”
그 아들을 교도소에 집어넣은 당사자들이 자신들이었기에, 그들은 할 말을 잃었다.
“누군가 나한테 말하더군. 이게 자네들을 위해서 준비한 첫 번째 엿이라고.”
혼잣말하는 것처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이준희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멍하니 앉아 있는 세 사람에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기고는 자리를 떴다.
“잘 버텨보게. 아직도 준비한 엿이 두 개는 더 남았다고 하던데, 나는 그게 도무지 뭔지 상상도 안 된단 말이야.”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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