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
226화.
코퍼레이션 아르고스의 CEO. 미하일 앤더슨.
바이오 메디컬 컴퍼니. 실리코프의 총수. 제니카 폴른.
아진 그룹 회장. 이준희.
가상현실 서비스 회사. 아르카디아의 사장. 이미연.
각자 경영하고 있는 회사가 지구상에서 가장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기업 10위 안에 들면서, 이들의 영향력과 유명세는 엄청날 정도로 높아졌다.
“아마 일본인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은 총리가 아니라 이미연 사장일 겁니다. 만약 그녀가 일본인이었다면, 아르카디아 서비스를 오픈해 준다는 공약 하나만으로도 가뿐하게 총리로 당선될 겁니다. 하하하.”
“이준희 회장이 나이가 많아서 혹시라도 갑자기 돌아가시면 어쩌나 우려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요,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마 지금껏 보지 못한 경제적 충격파가 한국에 불어닥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쩌면 아진 그룹에, 그리고 이준희 회장 개인에게 경제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는 건지 반성해야 합니다.”
우스갯소리지만 혁신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쌓아가는 이들은 어느새 한 국가의 수장보다도 더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암암리에 평가받고 있었다.
“이미 미하일이나 제니카 회장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특별 요인 경호를 지시해서 국토안보부가 직접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붙으며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거 화장실이나 제대로 갈 수 있을까요?”
미 행정부가 직접 나서서 안전을 책임지며 싸고돌 정도로 철저히 관리하는 이들. 그런데 갑자기 이런 귀중한 요인 두 명이 동시에 외국에 다녀오겠다고 밝혔다.
“저. 이번에 한국에 다녀와야겠어요.”
“잠깐 한국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 자신을 담당하는 국토안보부 요원에게 출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 둘. 하지만 그 둘의 요청을 받은 국토안보부는 무척이나 난감했다. 국외로 출장 한번 나가려고 해도 수십 개의 서류절차와 복잡한 보안 점검을 받아야 하는 등 복잡한 절차와 제약이 가득한데, 한 명도 아니고 둘이 동시에 미국의 관할권을 벗어나는 것은 쉽사리 수락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한국에 다녀오시겠다는 겁니까?”
방문 이유를 물어보는 국토안보부 요원의 질문. 그 물음에 미하일과 제니카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대답을 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친놈이 또 지랄해서요.”
“그분이 긴밀히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은 애덤스 대통령의 허가를 받고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오를 수 있었다.
*
– 긴급속보. 미하일 회장, 실리코프 회장. 동시 한국 입국.
– 급작스러운 통보에 당황한 청와대. 급하게 외교부 차관이 마중.
– 밝히지 않은 두 거물의 방한 사유. 과연 그 배경은?
– 미국 측. 한국에서의 공식적인 일정 비공개. 의혹 증폭.
갑자기 한국에 들어온 세계적인 두 명의 거물들로 나라가 온통 떠들썩했다. 보안을 이유로 공항에 비행기가 내리고 나서야 한국 정부에 그 둘의 입국 사실이 통보되어 청와대에서는 부랴부랴 외교부 차관을 보냈지만, 이미 공항을 빠져나간 뒤였다.
“야! 놓치지 말고 빨리 쫓아가.”
“선배님. 이거 이러다 우리 잡히면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 이거 사진만 제대로 찍으면 너나 나나 부장한테 한방 시원하게 먹일 수 있다고!”
“그······. 그렇지만.”
우연히 공항 인근에서 미하일과 제니카가 탄 차량을 발견하고 따라가기 시작한 중소 인터넷 뉴스 소속의 취재 기자 두 명. 안 그래도 요즘 제대로 된 기삿거리를 물고 오지 못해 부장에게 온갖 욕을 얻어먹은 직후라 이들은 특종이 간절했다.
그런 상황에 우연히 손에 들어온 황금과도 같은 기회. 수십 분의 추격 끝에 이들이 당도한 곳은 다름 아닌 아진 그룹의 본사 빌딩이었다. 차마 이 이상은 따라갈 수는 없었는지, 둘은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미하일과 제니카의 뒷모습을 닭 쫓던 개처럼 쳐다만 보았다.
“선배님. 그런데 저 둘이 왜 아진 그룹의 본사에 찾아왔을까요?”
“글쎄······.”
아진 전자나 아르고스, 그리고 실리코프가 오래전부터 사업에 있어 전략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고 긴밀하게 협업을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극히 드물기에 공항에서 곧바로 아진 그룹 본사로 이 둘이 찾아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뭔가 냄새가 나······. 아주 강렬한 특종의 냄새가······.”
어떻게 저 안에 들어가서 이들이 하는 대화를 엿들을 수만 있다면, 올해의 기자상은 자기 것이나 마찬가지였겠지만 건물 전체에 쫙 깔린 아진 그룹의 보안 요원들과 미 정부의 특수 경호원들을 뚫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게 입맛만 다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아저씨들? 거기서 숨어서 뭐 하고 있어요?”
“어어? 너! 너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본 그는 기겁하며 눈을 치켜떴다.
“카메라 들고 있는 거 보니······. 기자인 것 같은데. 어떻게 잘 찾고 여기까지 따라 왔네요?”
재밌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말하는 청년. 적대적이지 않고 오히려 호의적인 기세를 풍기는 그는 은근한 어조로 자신들에게 한 마디 남기고는 아진 그룹의 본사 안으로 들어갔다. 제니카와 미하일이 들어갔던 그 방향으로.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마 재밌는 특종 하나 잡을 수 있을걸요?”
*
“아, 다들 오셨어요? 먼 길 오느라 고생했네요. 이렇게 만나는 것도 다들 오랜만이죠?”
아진 그룹의 회장실 안으로 들어선 나는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4명의 얼굴을 보면서 활짝 웃었다. 하지만 그 반응은 싸늘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우리 전부를 부른 거냐?”
수상하다는 듯한 눈빛을 팍팍 풍기는 이들의 예상외 반응에 나는 묘하게 상처를 받고 투덜댔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간만에 얼굴들도 볼 겸 일부러 이렇게 불러 모았는데 오랜만에 본 사람에게 이런 냉대라니.”
“······. 지랄하네. 네가 언제 보고 싶다고 사람 불러모은 적 있었냐.”
내 말을 들은 제니카는 진심으로 황당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안 그래도 네가 던져둔 나노로봇 개발로 요즘 나나 미하일이나 여기 이준희 회장이나 모두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니까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용건이나 말해.”
진짜 바쁘게 살긴 하는 건지, 지금 가만히 살펴보니 다들 뭔가 핼쑥해지긴 했다. 그 몸 좋고 잘생기던 미하일이 어느새 삭은 중년의 아저씨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이준희 회장도 뭔가 예전 같은 기세가 없었다. 제니카의 눈이 판다마냥 검게 물든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말이다. 이게 다 내가 열심히 부려먹은 덕분이라는 걸 생각하니, 개미 눈곱만큼 아주 약간의 미안함이 들었다.
“뭐······. 본론을 말하자면 이 자리는 비공식적인 주주총회에요.”
“뭐······? 주주총회······?”
내 말에 다들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르고스, 아진 전자, 아르카디아, 실리코프. 내가 회사에 가진 지분들이 많은데 지금까지 신경 한 번 제대로 쓴 적 없었잖아요? 이참에 회사들 돌아가는 사정도 알고 싶고 혹시 고충이나 그런 건 없나 알아보고요.”
명색이 실소유주이거나 제2대 주주거나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지분을 보유한 주주였지만, 지금까지 회사가 돌아가는 속사정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기에 이참에 관심을 좀 가져보려는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말에 분위기는 더 차갑게 냉각되었다.
“자네······. 설마 경영에 관심을 가지려는 건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물어보는 이준희 회장. 회사 경영권에 있어서 제일 민감한 그가 불안한 심증을 내비치며 묻자 모두가 그를 따라 지원사격을 하고 나섰다.
“저······. 민수님. 회사란 게 그렇게 간단히 운영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직원 관리부터 시작해서 미래 사업 설계, 기존 사업 유지와 확장. 하나부터 백까지 모든 것을 세심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안 되겠지만 민수님의 성격으로 하시기에는······.”
“야, 무슨 회사 주가 떨어뜨릴 일 있냐? 이상한 일 벌이려고 하지 말고 그냥 알아서 잘 돌아가게 놔둬.”
“민수야. 아르카디아 서비스 운영하는 게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야. 말도 안 되는 깽판 치는 손님들도 전부 받아줘야 하는데 그런 것들에 있어서 아마 직접 도맡아 하려면 힘들지도······.”
그냥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어본 것인데 벌써 김칫국을 들이켜고 트림까지 꺼억 해 대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내가 왜 그런 회사들을 경영해요? 그럴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는데. 그보다······. 내가 정말로 회사 못 만들까 생각하세요?”
“······.”
“크흠······.”
“어. 하지 마. 너 같은 성격으로는 절대 못 해.”
“······.”
제니카의 돌직구 말고는 차마 아니라고 대답을 못 하는지, 어색한 침묵과 헛기침이 가득한 이들. 나는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괜한 반발심이 생겨서 물어봤다.
“제가 만약에 회사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것도 자본잠식으로 완전히 망해가는 회사를요.”
“뭐라고······?”
“이번에 망한 진산 해운 있죠? 그거 제가 직접 인수 해서 완벽하게 기사회생시키죠. 아니, 그걸 넘어 해운 업계의 최고 수준으로 탈바꿈시켜 놓을게요.”
너무나도 확고한, 자신이 가득하다 못해 넘쳐 흐르는 듯한 내 발언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제니카는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너······ 도대체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거야?”
그 물음에 나는 사악한 눈빛을 빛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뭐긴? 이참에 나도 사장님 직함 한번 달아보겠다는 거지.”
진산 해운의 파산을 막고, 바닷길이 막혀 혼란에 빠진 유럽 대륙을 구하는 동시에 곤란한 처지에 놓인 헬렌을 구할 한 가지 방법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 워프 게이트 – 관문 ]거기다가 전 세계를 향해 분탕을 치는 이집트까지 엿 먹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타사피였다.
“그러니까······. 이준희 회장님이 진산그룹 쪽에다가 기업 인수 의향을 전하고 매입 절차를 좀 밟아주시고, 미하일은 이참에 사내 이익금 배당 좀 해 줘. 빚도 조 단위로 있는 곳이라서 돈 좀 많이 필요할 것 같거든.”
“배······배당이요?”
“끄응······. 내가 진산그룹 쪽 회장이랑은 사이가 그리 좋지가······.”
“왜요? 싫으세요?”
내 요구에 앓는 소리를 하는 이들. 하지만 그렇다고 미하일은 실소유주인 내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이준희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명색이 나는 아진 전자의 21%가 넘는 지분을 가진 우량 대주주이기 때문에.
“바로······처리하겠습니다.”
“이번 주 내로 저녁 약속 한번 잡겠네.”
내 눈빛을 이기지 못해 굴복한 이 둘을 보며 나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걸로 이야기는 전부 끝! 뭐 필요한 절차들은 전적으로 믿고 맡길 테니까 알아서 해 주세요. 전 그럼 이제 사업 계획 꾸미러 가 볼게요.”
먼저 문을 닫고 떠나는 민수를 허망하게 바라보는 이들. 그가 가고 나서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던 중에 불현듯 무언가를 깨달은 제니카가 화난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거 도대체 나는 왜 오라고 부른 거야?”
귀찮은 일 던져두지 않은 것은 좋았지만, 무언가 병풍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묘한 불쾌감이 드는 제니카였다.
*
“저······선배님? 우리 여기서 계속 기다려야 하나요?”
“기다려봐. 아까 민수 걔가 특종 거리 있을 거라고 했잖아.”
벌써 두 시간도 넘게 아진 그룹 본사 앞에 있는 풀숲에서 얼쩡거리던 그들. 이들이 나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문으로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어? 선배님. 저기 지금······. 다 철수하는데요?”
오랜 기다림 끝에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경호 요원들. 하지만 건물을 떠나는 방향을 다르게 하는지, 이들은 어디론가 속속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젠장! 속았어!”
딱 봐도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 이미 일을 다 보고 모두 떠나갔다는 것을 직감한 그는 낙담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번 기사도 공쳤네.”
또 이 둘이 아진 그룹의 본사로 들어갔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소설을 써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운이 쭉 빠진 이들이 터덜터덜 돌아서려는 순간, 이들의 앞에 민수가 다시 나타났다.
“어? 진짜 아직도 계시고 있었네요? 이미 그냥 간 줄 알았는데.”
“어? 너······너는!”
“진짜 돌아왔구나!”
포기하고 있던 순간에 돌아온 민수를 보며 이들은 반색하며 그를 맞았다. 그러자 민수는 히죽 웃으며 이들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게 한 것도 있으니까······. 까짓거 서비스 좀 해 드리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단독 인터뷰 한 번 합시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이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그 달콤함을 맛볼 수 있었다. 뇌가 녹아버릴 것만 같은 그런 극한의 단맛을 말이다.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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