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Alter Lands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특임 성기사가 된 영주님 (5)
마검을 든 카민 리스트레토의 모습에 홀 안이 일시에 침묵으로 가득 찼다.
대주교 헤르딤이 고요함을 깨트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 무슨 끔찍한 일인가. 마검을 든 자가 일월성신의 홀에 발을 들이다니?”
마검을 든 자가 누굴까?
악마일 수밖에 없다.
악마를 특임 성기사에 임명하려다 혼란에 빠진 회주 이사벨라.
굳건한 모습으로 나선 대주교 헤르딤.
주교들이 둘 중 누구의 편을 들 것인지는 자명했다.
“대주교님께 성력을!”
“일월성신이시여!”
주교들의 성력이 헤르딤이 치켜든 지팡이를 향해 모여들었다.
월교, 일교 할 것 없이 빛으로 변한 신성력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일월성신이시여. 악마를 벌하소서!”
헤르딤이 외친 [기원>의 주문이 카민에게로 날아들었다.
카민은 악마가 아니었기에 순수한 신성력의 공격에 피해를 입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검은 아니었다.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주교급이 힘을 합쳐 모은 신성력이다.
대비 없이 맞으면 안에 있는 엔드라에게 큰 충격이 갈 터.
‘아공간에 넣을까?’
확실한 방법이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성검 문라이트 소드를 들어 방어했지만 소용없었다.
마나를 신성력으로 바꿔 주니 반대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마검을 들어 [천공조>를 시전했다.
콰지직!
마검에 깃든 레온의 마기와 신성력이 굉음을 내며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결국, 이긴 건 [천공조>였다.
해룡 레비아탄마저 부술 수 있는 공격이 대주교의 [기원>을 반으로 쪼갰다.
물리력을 싣지 않은 신성력의 [기원>이라 해도 공격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쪼개져 다시 수백 개로 흩어진 신성력의 잔해가 일월성신의 홀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홀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일교의 성기사들이 뛰어 들어왔다.
마치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아, 아니. 저게 무엇인가?”
“마검이다!”
마검이 내뿜고 있는 짙은 마기에 성기사들은 경악하면서 검을 뽑아 들었다.
당황하는 이사벨라를 힐끗 쳐다보면서 대주교 헤르딤은 미소를 지었다.
‘카민 리스트레토. 마검과 네 영혼은 이제 내 것이다.’
마검을 지닌 것뿐만 아니라 사용하기까지 했다.
그의 함정에 완벽히 걸려든 것이었다.
* * *
카민이 예술계를 뒤집든 말든 엘튼 타워에 잠입해 있는 세 악마는 별 관심이 없었다.
카민이라는 이름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이미 공고히 세력을 다진 그들이 신경을 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심연이 무너진 후에도 변함없었다.
오히려 고마웠다.
골치 아픈 거머리 하나를 치워 준 느낌?
그러나 최근, 바알의 명령이 떨어진 후부터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간 죽어라 마기를 가져다 바쳐도 별 반응 없던 바알이 모습을 드러내곤 그들에게 하나의 퀘스트를 내린 것이었다.
그 내용은 꽤 충격적이었다.
“카민 리스트레토가 마검 엔드라를 손에 넣었다. 그것을 되찾아 오는 자에게 악마의 좌를 하나 더 주겠다.”
‘마검 엔드라? 마신 쿠르투아의 검 아닌가!’
그걸 카민이 가지고 있다고? 어떻게?
월교의 대주교 헤르딤은 깜짝 놀랐다.
바알이 첫 번째 좌를 차지한 이후.
다른 악마들이 그에게 도전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알이 마신의 좌에 도달할 거라 확신했기 때문에.
그를 적대해 봐야 힘만 빼앗기고 소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특히, 세 악마.
제12 악마 시트리.
제16 악마 제파르.
제40 악마 라움은 남들보다 빠르게 바알에게 달라붙어 손발 역할을 했다.
그들은 전투형 악마가 아니었기에, 개인의 힘으로 더 높은 좌를 손에 넣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
심지어 누가 바알의 측근이 되느냐를 두고 서로 경쟁하다 보니, 어느새 각각의 영역이 공고하게 다져지기까지 했다.
시트리는 왕실.
제파르는 원로원.
그리고 라움은 무려 일교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사실상 왕국 전체는 악마의 손에 떨어진 셈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왕국 크게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힘으로 손에 넣은 게 아니라 잠입한 것이었으니까.
일월성교회도 마법 학회도 힘이 약한 게 아니었다.
벌집을 건드리면 벌이 튀어나오듯, 도리어 지금의 자리에서 쫓겨날 확률이 높았다.
그들이 택한 것은 자연스럽게, 무너져 가기를 기다리는 것.
그 과정에서 생기는 혼란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감정 에너지를 흡수하는 게 더 나았다.
그런데 조용히 있던 그들에게 갑자기 바알이 시동을 건 것이었다.
“또한 카민의 영혼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제1 악마의 좌를 약속하겠다.”
미래의 마신이 약속하는 제1 악마의 좌?
그만큼 확실한 동기부여도 없었다.
제12 악마 시트리는 그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
“명령을 완수하겠습니다.”
제16 악마 제파르는 바알에게 질문을 던졌다.
“바알이시여. 마검보다 그의 영혼이 중요하단 뜻입니까?”
“그렇다.”
인간의 영혼 따위가 마검보다 중요하다?
영혼에 대해 알고 있는 그들은 카민의 영혼이 악마 사냥꾼 중에서도, 특이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40 악마 라움은 다른 생각을 했다.
어차피 마검 엔드라가 카민의 손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카민을 쓰러트리고 마검과 영혼을 둘 다 챙기면…?
‘내가 마신이 될 수도 있겠군.’
그의 눈에는 바알의 명령을 수행하려는 시트리와 제파르가 한심해 보였다.
‘힘들게 빼앗아서 왜 바알에게 가져다 바치는 거지?’
전대의 마신 쿠르투아가 마검 엔드라를 통해 마신의 자리에 등극했음을 모르는 악마는 없었다.
애초에 100악마 대다수가 그 시대 때부터 살아온 이들이니까.
다시 말하면 라움은 바알이 72악마였던 시절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시절, 라움과 바알은 크게 힘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내심 그의 손발 노릇을 하는 지금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불만과 욕심이 맞닿자, 그는 바알의 명령을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카민을 조사했다.
제40 악마 라움, 대주교 헤르딤은 카민을 조사하면 할수록 그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알이 과한 약속을 해 가며 명령한 이유가 있군. 그놈은 우리를 버리는 패로 쓸 생각이야.’
라움은 바알이 세 악마를 이용해 카민을 약화하려 한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마음을 정했다.
카민을 죽이고 마검과 그의 영혼을 뺏겠다고.
하지만 힘 대 힘으로 붙는다면 승산은 없었다.
그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은 간교한 계책이지, 힘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이번 계획을 준비했다.
바로 카민을 악마로 몰아 죽이는 것.
* * *
레온을 죽인 순간.
그 사체에서 마기가 쏟아져 마검으로 날아들었다.
-으, 으윽! 엄청난 마기!
엄청난 마기가 쏟아지자, 엔드라는 유지하고 있던 환영의 힘을 풀 수밖에 없었다.
그 바람에 마검의 원래 모습이 일월성신의 홀에 드러나고 말았다.
젠장.
이건 마인 따위가 지닐 수 있는 마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마검으로 쏟아져 들어오다니?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저놈이 준비한 게 틀림없어.’
이건 함정이 분명했다.
나는 대주교 헤르딤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놈이 부르르 떨면서 씹듯이 내뱉었다.
“그것은 마검 엔드라! 아주 간악한 자가 아닐 수 없구나!”
그러더니 중얼거리며 [정화의 의식>을 시작했다.
그의 지팡이에서 뻗어 나온 성력이 레온의 사체를 둘러쌌다.
끔찍한 괴물 같았던 모습의 레온은 서서히 인간 형태로 되돌아갔다.
신기한 건 분명 [정화의 의식>이 맞다는 것이었다.
내 짐작대로 저놈이 악마라면, 대체 어떻게 신성 마법을 쓰는 걸까?
심지어 그의 곁에 있는 이사벨라마저 상당히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녀한테 미리 마검에 대해 오픈을 하는 건데.
타이밍이 이상하게 꼬였다.
지금 와서 변명해 봤자 이상하게 들릴 테니.
“손에 든 마검으로 레온 주교를 마인으로 만들다니. 카민 리스트레토는 악마가 틀림없습니다.”
저렇게 앞서서 나불대는 걸 보니 저놈이 악마란 심증은 더더욱 확실해졌다.
문제는 민심이 저쪽으로 쏠렸다는 것.
“악마가 감히…!”
“흥분하지 말고 집중해라! 상대는 악마다!”
뒤늦게 등장한 성기사들은 당장이라도 날 찢어 죽일 것 같은 눈빛이었다.
“일월성신이시여, 죄송합니다. 저희 부덕함으로 악마를 알아보지 못했나이다.”
주교들은 성호를 그으며 자신의 성물을 꺼내기 바빴다.
“카민 경… 그거 정말로 마검인가요?”
회주 이사벨라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몰라서 묻는 건 아닐 터였다.
큰 눈알이 떡하니 박혀 있으니까.
게다가 쏟아진 마기로 엔드라의 정신이 맛 가는 바람에 흰자밖에 안 보이는 상태라 더욱 기괴했다.
‘어쩌지?’
성기사와 주교가 가득하지만, 이 상황을 무력으로 타개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들의 신성력은 인간인 나에게 해가 되지 않기 때문.
문제는 여기서 이들을 공격하면 빼도 박도 못하고 악마임을 인정하는 셈이었다.
나 하나뿐만 아니라 하알룬, 아니면 가레스까지 엮어 들어가겠지.
클로네의 눈물을 슬쩍 쥐어 봤지만, 눈앞의 대주교 헤르딤에게서는 마기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넘쳐흐르는 일신의 신성력이 그가 일교의 대주교란 것을 입증했다.
나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까 봐, 일부러 엘튼 타워의 악마를 건드리지 않고 있던 건데….
설마 일월성교회의 대주교가 악마라니.
그리고 이런 식으로 선빵을 날릴 줄은….
홀에 살기가 짙어질수록 마음이 급해졌다.
아, 저놈은 악마가 틀림없는데.
대체 어떻게 그걸 증명해 낼 수 있을까?
* * *
난처해하는 카민을 보며 헤르딤, 제40 악마 라움은 스스로를 칭찬했다.
‘레온을 마인으로 만들면 무조건 네 놈이 달려들 줄 알았지.’
예상대로 카민은 레온을 공격했고, 라움은 레온의 마기를 조종해 마검을 드러냈다.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마검을 몸에서 떨어트리고 다닐 리 없다는 짐작이 정확히 맞아 들어간 것이다.
마검의 본래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을 보며 라움은 카민이 안드레알푸스를 죽였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저건 분명히 환영의 힘이군.’
그렇다는 건 마검 엔드라에 영혼을 저장하는 기능이 있다는 뜻.
라움은 마검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영혼 조각 따위가 아니라, 안드레알푸스의 온전한 영혼을 담을 정도라. 왜 바알이 탐을 내는지 이해가 가는군.’
안드레알푸스의 생사는 저번 악마 총회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다.
바알은 이를 분명 알고 있었을 텐데도 공유하지 않은 것이다.
‘음흉한 놈 같으니.’
카민이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이사벨라가 저놈을 끌고 들어왔으니, 회주에서 탄핵을 당하는 건 시간문제.
하지만 그 일을 앞당길 생각은 없었다.
‘마검을 연구한다는 핑계로 교에 들인 후에 빼돌린다.’
마검을 잃은 책임을 이사벨라가 지게 하면, 아무 문제 없이 회주 자리도 얻게 된다.
‘그렇게 되면… 바알과도 겨뤄 볼 만하겠지.’
바알의 개인 시트리는 몰라도, 제파르는 휘하에 들일 수 있을 것이다.
계산을 끝낸 라움은 성기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성검진을 펼쳐라!”
“예!”
그의 명령에 성기사들이 자신의 성검을 들고 카민을 포위했다.
그러자 카민이 욕을 내뱉었다.
“아씨… 답이 없는데?”
그 말을 들은 라움이 속으로 웃었다.
그야 황당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의심은 가는데, 완벽한 인간으로만 느껴질 테니.
“악을 물리쳐라!”
그 말과 함께 라움과 주교들이 성기사들을 향해 가호를 쏟아부었다.
빛으로 둘러싸인 성기사들이 마검을 든 카민을 공격하는 모습은 흡사 신화에 나올 법한 성스러운 모습이었다.
성기사들의 검이 카민의 몸을 난자하는 순간.
카민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왔다.
‘옳거니!’
라움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준비했던 영혼 구속구를 사용했다.
일부러 요란하게 총공격을 명령한 것은 성기사와 주교의 시선이 카민에게 쏠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지닌 영혼 구속구는 마기로 작동하기 때문.
마기를 충전한 영혼 구속구를 작동시키자 카민의 영혼이 이쪽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왔다.
코앞까지 다가온 카민의 영혼을 본 라움은 의아함을 느꼈다.
“…음?”
분명 카민의 몸에서 나왔는데.
영혼은 카민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영혼의 검은 눈이 영혼구속구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씩 웃었다.
그 순간, 튀어나왔던 영혼이 다시 카민의 몸으로 스프링이 튀기듯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빛이 번쩍였다.
“컥! 으, 으아아아!”
-컥! 으, 으아아아!
인간의 비명.
거기에 등골을 서늘케 하는 괴이한 음역대의 비명이 겹치자, 성기사와 주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으, 으윽!”
그렇게 무너진 성검진의 틈에서 마검을 든 카민이 걸어 나왔다.
* * *
분명 악마 같은데 아무리 봐도 인간으로밖에 안 보인다.
그 명제를 떠올리자, 바르둠 남작의 말이 떠올랐다.
카멜리아는 후궁 헤론 카데닌이 제12 악마 시트리라 추측했다.
그녀의 성격상, 확실한 정보가 있으니 그렇게 말했을 터.
하지만 헤론 카데닌을 직접 만나 본 클로웰은 절대 악마가 아니라 말했다.
그리고 린디아를 통해 나는 헤론 카데닌이 시트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냈다.
그렇다면 악마인 걸 눈치 못 챈 클로웰이 병신인 건가?
그건 아니다.
악마임을 숨길 수 있다고 보는 쪽이 더 타당하겠지.
고민 끝에 나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그래. 영혼은 절대로 속일 수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순간.
방법이 떠올랐다.
어차피 성기사들의 공격은 절대로 나를 죽일 수 없었다.
가호를 처발라 봤자 이들의 무력은 비전 검술보다 못하니까.
그렇다면?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낸다.
그렇게 치명상을 입자 「의식 분리」가 발동했다.
「의식 분리」를 사용하면 나는 영혼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헤르딤을 본 순간.
놈의 영혼이 악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몸은 껍데기였다.
근데… 갑자기 놈이 뭔가를 꺼내더니 마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저게 뭐지?
본능적으로 저게 중요한 물건이란 걸 깨닫고, 영혼을 그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러자 볼 수 있었다.
정체 모를 아이템 속에 부서진 영혼이 한가득 들어 있는 것을.
옳거니. 걸렸구나.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영혼을 몸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성검을 잡아 헤르딤을 향해 집어 던졌다.